1
깊고 둔중한 고통이 등허리를 지나가며
내게 말한다, 겸허하고 깊어질 것,
자신에게 절실할 것,

나는 네게 말하마,
고통마저 태워버린 너에게

내 아파서 너를 아프게 하는 게 더 아프구나!

2
불탄 나무가 남은 한쪽 팔로 푸른 그늘 이룬 것
악, 악, 하고 입을 벌려
삶을 받아들인 현존, 그 증거

진정한 현존이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에 있다
끊임없이 오고 있는 것
언제나 생성중인 상태에서
그 어떤 죽음들을 통하여......

3
솔숲에 가려 반짝이는 수은 등 하나,
차고 흰 얼굴을 보여주는 불빛
서늘하게 맑은 정신의 결기

우리는 오래 침묵을 나누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침묵......
마음 고요했던가, 강물처럼 깊어갔던가

외로움이란
내 가슴 불타고 남은 공동에
아무것도 채우지 않음으로써 너를 채우는 것

4
첫눈이 우레처럼 우리를 지나갔다
흑백필름에 새겨지는 마그네슘 플래시 발광처럼
환하게 밝아오던 땅 끝
처음 너를 알아보던 때!

엄원태- 불탄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