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의 말(작품해설)

 

"The Lottery(추첨)"는 미국의 소설가 셀리 잭슨(Shirley Jackson)의 단편을 각색한 것이다. 추첨이라고 하면 모두들 복권당첨을 떠올릴지 모른다. 이 연극에서는 어떤 추첨을 하는 것일까?


녹음이 우거진 화창한 초여름 매년 6월 27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추첨행사를 치른다. 어린 아이들은 모여서 무대 한 쪽에 돌무더기를 쌓고 놀고 있다. 화기애애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추첨을 위해 광장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그들은 집안의 자질구레한 이야기, 농사이야기, 자녀 이야기를 나누며 써머즈(여름)씨의 주도아래 추첨절차를 밟는다. 그들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이 추첨 행사가 이 마을 뿐 아니라 모든 마을에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어왔던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의 최고령자인 워너에 의하면 그 옛날엔 종이 쪽지 대신 나무 조각으로 추첨을 했으며 그 당시 사용하던 검은 상자는 다 낡아 부셔져서 그 나무를 이용해 다시 추첨상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옛날의 엄숙하던 의식은 다 사라져버렸다고 워너 노인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참석자 명단을 체크하고 추첨에 들어가려 할 때 테시가 앞치마에 급히 손을 닦으며 헐레벌떡 나타난다. 그녀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추첨행사를 놓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말한다. 이웃인 들라크르와 부인은 그녀를 온화한 미소로 맞아준다.


마침내 한 가족이 먼저 당첨이 된다. 바로 테시 허치슨네 가족이다. 그런데 돌연 테시는 공정한 추첨이 아니었다면서("It wasn't fair") 항의하기 시작한다. 테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테시네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을 뽑는 추첨이 다시 이루어지고 어린 자녀들도 함께 참여한다.


가족 중에 이번엔 누가 당첨되었을까? 모두들 숨을 죽이는 가운데 한사람씩 자신의 종이를 펼쳐 보인다. 모두들 "테시야, 테시가 뽑혔어.."라고 외치고....그리고, 조금 전 가장 친근하게 웃어주던 들라크르와 부인은 무거워서 들기조차 힘든 큰 돌덩어리를 집어 들고 어린 아들 데이브도 남편도 모든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집어 드는데....


6월에 추첨을 하면 농사가 풍작(Lottery in June and corn will be heavy soon.)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이 희생자 만들기는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대 원시인들의 시대도 아니고 마녀사냥을 하던 시대도 아닌 데 아직도 이런 전통이 있는가라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악습에 대한 상징적인 비판도 아니고 특정 지방에서 특정시기에 행해진 희생양 만들기에 대한 우화도 아니다. 이 소설을 각색한 더필드는 셜리 잭슨의 가장 중요한 쟁점을 흐리고 너무 전통에만 치중한 점이 조금 아쉽다. 더필드는 원작에는 없는 서머즈의 누이 벨바를 등장시켜 인습을 공격한다.  하지만 셜리 잭슨은 극의 배경이나 극의 행동과 대사에 어떤 특정 시대나 지역을 배재하고 있으며 사실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경악시키는 인습이 사라지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면 그 인습은 누가 만든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 그 인습이 존속하는 인간의 심리적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고.


셜리 잭슨은 "돌던지기"나 "희생양 만들기"의 인습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본질 속에 감추어진 악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풍성한 수확(여름), 집단의 이익, 다수의 행복을 위한 희생은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사회적인 환상너머에 도사린 인간의 실존적인 추함을 고발하고 싶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돌”에 의한 희생자 만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언어폭력일 것이다.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버테러에 의한 희생자들, 늘어가는 어린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의 희생자들, 그리고, 이 극에서 말하듯 공동체 속에서 행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폭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희생할 때는 헐레벌떡 뛰어오던 테시가 자신이 희생자가 되었을 때는 "부당하다고" 항거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 예수께 데리고 와서는 물었다. 율법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예수님은 어찌하겠는가 라고. 이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이 순간 사람들은 돌연 남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되고 슬그머니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행사를 놓칠 뻔했다고 놀라 뛰어와서는 그 돌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는 “정당치 못하다”고 외치는 이 극의 테시처럼 타인에게 던지려면 돌은 기실은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 남아있던 유일한 분, 유일하게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자격과 권한이 있는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리고 그 분은 이 모든 인간본질의 악을 해결하시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자신을 희생자로 추첨하셨다. "It was unfair"라는 한마디 항거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유형 무형의 희생제의를 끝내기 위해 오늘날 재판문학(trial literature)이 던지는 도전은 무엇일까? 르네 지라르(R. Girard)의 말대로 이제 더 이상 누가 유죄이고 누가 무죄인가 라는 질문과 재판을 잠시 그치고 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정죄하고 정죄 받는가 라고 반문해야 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c)2001BongheeLee

 

| 2010.01.04 23: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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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4 13: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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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9 07: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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