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축복>- (c)bhlee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의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서로를 의심하고 접촉을 꺼리며, 이제는 경제위기까지...증폭되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아마 지금처럼 그동안 몰랐던 삶의 평범한 일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때도 없을 것 같다.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딛치며 북적대는 거리를 걷고,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리며 출근하고, 가기 싫다며 학교에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맘껏 웃고 수다를 떨고,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영화관을 가고, 음악회와 스포츠경기, 미술관 등 문화생활, 쇼핑을 하고, 땀흘리며 운동을 하고, 외식을 하고, 커피숍에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그리고 내일도 변함 없이 오늘과 같은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며 잠자리는 드는 하루하루의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아마 이런 특별할 것 없고 때로 지루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말 한 강렬한 시 중에 하나가  제인 케니언(1947~1995)의 시일 것이다.


 

건강한 두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시어리얼, 맛있는 우유, 잘익은

싱싱한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자무 숲으로 갔다.

아침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

정오에 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웠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우린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탁 은촛대에 촛불을 켜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벽에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나는 잠을 잤다.

오늘과 똑같은 또 하루를  계획하면서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어느 날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제인 케니언)

 

 

이 시는 시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쓴 시다. 그녀는 이 시에서 아주 평범한 하루의 단순한 즐거움을 돌아보고 있다--침대에서 일어나 건강한 두 다리로 서는 일, 우유와 싱싱한 과일을 먹고, 개를 산책시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은.


그런데 시인은 그 모든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마치 경고라도 하는 듯이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천천히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에서 강렬한 보편적인 진실 한 마디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벽에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나는 잠을 잤다
  오늘과 똑같은 또 하루를 계획하면서.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어느날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것이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이든 우리에게 주는 잠언이든 지극히 평범하고 습관적인 삶 속에 내재된 죽음을 매순간 기억하는 이 강렬한 비극적 인식!  

 

그러나 시인의 비극적 인식은 비극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그 무의미성에 감춰진 행복을 깨닫는,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되고 있다. 이 시가 치유적인 이유다.

(c)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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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케니언ㅡ
대학 재학 시절, 문학을 강의하던 19살 연상의 시인 도널드 홀을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20년 후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시인 부부인 두 사람의 사랑과 삶은 TV 다큐멘터리 <A Life Together>로 제작되어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편은 후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아내의 죽음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었고, 아내를 보살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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