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ㅡ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ㅡ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 눈물을 흘리시고, 갈대 숲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무심히 앉아 있는 새들의 존재에도, 모든 우주에 외로움은 존재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이 시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ㅡ라는 공감을 통한 치유의 시이다. 이렇게 공감받을 때, 나만 외딴 섬이 아니라 전 존재와 우주라는 거대한 대륙에 연결된 존재라는 느낌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얼마 전 내가 사소한 사건으로 철렁 놀란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너무 무섭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고맙다 하자 그 친구는 ‘난 그저 같이 무섭다 한 것 뿐인데... ‘라고 했었다.

그게 고마운거지 같이  느껴주는 것.
우리는 내 감정이 어떤 조건 없이 공감받을 때 나만 바보처럼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되어서) 두려웠거나 상처받거나 분노한 것이 아니라는 유대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오히려 우리는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스스로 뛰어넘을 준비, 변화할 준비를 하게 된다. (많은 글쓰기문학치료 참여자들이 나만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이상한 외계인 같았어요. 라는 말을 하시곤 한다. )

 

이 시의 치유적 힘은 비록 '...하지 마라' '..이다'는 어투를 사용했을지라도 흔히 말하는 ‘외로움은 보편적 실존이다 그러니까 슬퍼하지마라’는 교훈이나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는  “you are not alone (나도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냐)”이라는 온 존재가 함께 공유한 외로움을 통한 유대감이 주는 안도감인지 모르겠다.  그 안도감이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공감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게 만드니까. 그래서 일견 ".. 하지마라 .. 이니까. ..하지 마라.."는 교훈조의 말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솔루션이나 깨달음의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스스로에게 ...하지 말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돌아보라고..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그런 위로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 세상을 돌아보고 나만 외로운게 아님을 깨닫는 자신과의 역시 외로운 그러나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은 대화인 것이다.  그래서 흔히 '무엇은 ... 이다'로 정의 내리는 시들의 목소리와 달리 이 시의 목소리는 다르다.  ‘그러니 슬퍼하지말라.. ‘가 아니라 때로 슬플수도 있지만...그럼에도~ 괜찮다로 들린다.  결국 힘든 삶을 살아가는 힘은 아픔의 해결이라기 보다 (그럼 해결될때까지 어쩌지???)   ‘그럼에도....’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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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목이 참 흥미롭다.

수선화에게...
절망적 사랑을 한 수선화에게.

 

아이러니칼하게도 나르시시스는 그 대상이 자기자신임을 몰랐다.

그는 그게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고 사랑한 비극적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 물에 빠지고 수선화로 피어난 신화의 나르시시스.

결국 모든 존재하는 것들 속에 내재된 외로움은 모든 존재가 각자 독특하고 유니크한 개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해도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싸르트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외로움을 대자존재(etre pour soi)의 실존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때 ‘나와 다른 그’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나와 같은 그’ 아니 어쩌면 '내 무의식에 비친 나’ 의 모습으로 인해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ㅡㅡ 


수선화는 유명한 신화 나르시시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에코우(메아리)의 절망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미소년. 나르시시스는 연못에 비친 너무나도 아름다운 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그 연못을 떠나지 못하다 결국 연못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연못가에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묘하게도 나르시시스의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은 심리학에서 자기애성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자기애는 누구나 어느 정도 있고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증적상태가 될 때 자기관찰과 치유가 필요하다.

이 시가 갖는 여러겹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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