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잎 - 이기철]

 

나는 이 가을을 성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과 물속에 떠있는 물방개와
길섶의 앉은뱅이 꽃에 눈 맞추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버린 지푸라기 같은 세상사들,
그것들을 토닥여 잠재우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망 없이 피었다 진 들국화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갈잎 스치는 소리 그리운 날 나는 문득 신던 신발 벗어놓고
지고 온 세상사 던지고 가겠습니다
흔들림이 아름다운 잎새들은 흔들리면서 생을 이룩합니다
그 잎새들 속으로 나는 추운 발 옮깁니다
지는 잎 속으로, 가을 속으로

 

- 출처: 이기철,『 잎, 잎, 잎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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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도 아닌 데 지난주에도 눈보라가 몰아친 3월, 어느새 중순이다.

그래도 어느새 아파트 근처 공원들의 꽃밭마다 설강화(snowdrops)가 하얀 꽃을 피우고

좁쌀만 한 이름 모를 풀꽃들과 호기심에 겨워 뾰족이 얼굴 내민 초록초록 작은 새싹들, 

나무에는 아가의 솜털 같은 봉오리들이 햇살을 쬐고 있다. 
거인처럼 느껴지던 길고 긴 겨울이 미련인지 혹 심술인지 가던 길 되돌아 서성이며 머뭇거려도

작고 여린 봄을 이기진 못한다는 걸 매년 확인하는 3월인데.... 
왠 갑자기 가을 시인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이 가을을 성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라는 첫 고백에서 내 삶의 계절을 읽어서일까?
우주에는 어김없이 회생의 봄이와도

내 삶의 계절은 뒤돌아서거나 반복되는 길이 결코 아닌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이 계절을 그냥 "성큼" 건너갈 수가 없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위로를,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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