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