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보도, 기고 외

비극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희극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2026. 6. 4. 18:04

경험했으나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 뒤늦은 깨달음

 

과거의 어떤 사건의 의미를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경험, 혹시 해보았나요? 그 순간 우리는 너무나 큰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Hobbes)는 “지옥은 너무 늦게 발견한 진실”이라고 말했나봅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 경험을 되살려내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때의 경험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은 의미는 그 경험을 할 당시와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의미 속에서 되살아난 그 경험은 보편적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우리는 경험을 했으되 그 의미를 몰랐다,

그리고 의미에 다가감은 그 경험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우리가 행복에 부여하는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형태로. 내가 전에 말했었다

의미 속에서 되살아난 경험은

다만 한 인생의 경험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경험이라고

- T. 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 중에서>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언니의 일기를 훔쳐본 적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어디선가 이런 저런 멋진 말들을 인용해 일기장에 적어놓곤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었는데 그 중 한 이야기가 어린 내 맘에 깊이 남아 있었나봅니다. 어른이 되고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을 읽을 때였습니다. 순간 초등학교 때 언니의 일기장에서 읽었던 이름 모를 프랑스 작가의 이야기가 섬광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런 것을 ‘아하!’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시나 글을 읽을 때 또는 영화의 대사를 접할 때,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간 어떤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몰랐던 의미가 되살아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학의 연상 작용으로 우리 내면의 무의식적, 의식적 이야기를 불러일으켜서 그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언니의 일기장에서 훔쳐본 인용문은 난해했던 조이스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면서 내 삶의 문제를 좀 더 다른 시간 속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바로 5살무렵의 내 이야기이기도 했지요. 희미한 기억 속에 마음에 남아 내가 해석한 대로 그 이야기를 각색해보겠습니다.

 

어린 소녀가 넓은 꽃밭에 혼자 앉아 놀고 있습니다. 언니, 오빠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큰 집에는 엄마랑 소녀 둘뿐입니다. 엄마는 큰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느라 바쁘고, 어린 소녀는 언제나처럼 혼자 꽃밭에 앉아 작은 풀꽃을 꺾기도 하고 꽃잎을 따 소꿉놀이도 합니다. 그러다 그만 소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무릎을 보니 빨갛게 피가 납니다. 소녀는 ”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런데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아아앙!“ 하고 웁니다. 아파서 운다기보다는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엄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급히 달려옵니다. ”우리 아가 왜 울어? 누가 그랬어?“ 엄마는 항상 소녀가 울면 ”누가 그랬어?“라고 말합니다. 그게 누구든 반드시 소녀 편을 들어줄 것처럼 말입니다. 소녀는 얼른 무릎을 가리키며 ”피, 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엄마는 ”아가, 이건 피가 아니라 꽃잎이야. 이제 울 아가 안 아프지?“ 하며 소녀를 꼬옥 안아줍니다. 엄마에게는 누구에게도 맡을 수 없는 포근한 엄마냄새가 납니다. 엄마가 할머니 댁에라도 다니러 갈라치면 소녀는 그 사이 옷장 문을 열어 엄마 옷에 코를 대보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엄마냄새를 맡고 싶어서입니다.

엄마 품에서 소녀는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소녀를 떼어놓으며 말합니다. “울 아가 착하지? 엄마 바쁘니까 혼자 놀고 있어.” 엄마는 다시 집안일을 하러 갑니다. 소녀는 갑자기 소꿉장난도 시시해지고 꽃잎 따기도 시시해집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아 공연히 심통이 나기도 합니다. 소녀는 무심코 하늘을 바라봅니다. 순간 쨍하게 눈부신 봄 햇살이 가슴에 들어와 꽂히면서 가슴 한구석이 끄응, 하고 아파옵니다.

지금 깨닫지 못한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작가는 단 한 구절로 이야기를 끝맺었습니다. “후에 그 소녀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때의 아픔이 외로움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한 구절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 너머에서 또렷하게 기억해낸 말입니다. 어린 소녀는 그때 아파오던 가슴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겠지요. 어린 마음에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그래서 가슴이 끄응, 하고 아팠다고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아니면 엄마가 놀아주지 않아서 속이 상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때의 일은 다 잊고 어른이 되었겠지요.

그런데 그 소녀가 어른이 된 어느 날,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에 울지 않으려고 올려다본 하늘에서 마주친 따가운 햇살이 화살처럼 가슴에 와 꽂힙니다. 그리고는 문득 그 어린 시절의 아픔을 기억해냅니다. 아, 내가 그때 느꼈던 그 이름 모를 아픔이 바로 외로움이었구나, 하며 경험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가슴 한편이 알 수 없이 시려오는 날 어느 날 이 외로움이 인간의 실존적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겠지요. “당신이 곁에 있어도 나는 당신이 그립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누구나 살면서 답을 찾지 못한 때로는 행복했거나 또 더 많은 경우 아팠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풀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그 삶의 의미들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가치없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지금 내가 깨달은 의미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훗날 알게 됩니다. 부모님의 그리고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 친구의 행동, 또는 내가 겪은 여러 상처 입고 원망했던 많은 사건들이 나중에 새롭게 경험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그 의미가 상처와 고통만은 아니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삶을 배우고 나를 성장시킨 귀중한 경험, 나아가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직은 내게 고통스러운 사건, 아픈 경험, 원망스런 사건,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의미라고 절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쩌면 반대로 내게 지금 축복이고 행복인 경험들이 지금 생각하는 의미의 전부가 아니라고 좀 더 겸손해져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먼 훗날 웃으면서 내 삶의 희극은 잠재된 비극이었으며, 내 삶의 비극은 다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희극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c) 출처: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내 마음을 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