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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러스Les Choristes(2004)> 

 

 

One's need for loneliness is not satisfied if one sits at a table alone. There must be empty chairs as well.  <Karl Kraus (1976). “Half-truths & one-and-a-half truths: selected aphorisms” >

 

홀로있고 싶은 고독에의 욕구는 빈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의자도 비어있어야한다. <칼 크라우스>

 

물론 본인이 원한 외로움. 혼자 있고 싶은 욕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라우스의 말은 참 강렬한 외로움에 대한 이미지를 불러온다.
빈 테이블이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어쩔수 없이 우리는 누군가가 와서 앉을 가능성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의자마저 비어있어야한다.

하지만 나는 그 빈 의자가 가진 가능성마저 박탈당한 한 사람을 생각해본다.
외로움이란 바로 그런거라고.  빈 의자마저도 없는 빈 테이블.



의자 하나

(c)2005이봉희

그 여자가 갔다. 유배지와 같은 시골, 감옥 같은 우울한 건물의 학교, 간수 같이 어린 학생들과 선생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교장선생, 그리고 죄없이 이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 학생들....    잿빛의 그 삶에 나를 지탱해주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음악이 무채색 아이들의 가슴에 알록달록 꽃을 피우리라는 신념 뿐이었다.   

그런 내게 어느날 뜻밖에 그녀가 나타났다.  모항쥬 때문에 상담하기 위해 날 찾아왔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야 말로 무채색 같은 내 삶에 붉은 꽃물을 뚝  떨구어주었던 것이다.   

그날은 내게 삶의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던.... 그런 그녀를 만나는 날이었다.  아, 나는 그날 얼마나 꿈에 부풀어있었던가ㅡ마치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처럼. 아, 나는 얼마나 찬란하였던가ㅡ 마치 세상 구석구석을 비춰주는 태양처럼.

나는 그녀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 가슴을 두군거리며 앉아있는데...
어떤 멋진 차가 내 앞에 서고 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그날 어느 때보다 눈이 부셨다. 사랑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한 눈에 그녀에게서 빛나는 생명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날 찾아왔던 길 잃고 당황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날개 다친 외로운 새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의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그 빛과 에너지와 희망으로 연녹색 봄처럼 충만해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숨가쁘게 말했다. '저 결혼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자 저 사람도 만나게 되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다음에 셋이 같이 만나주실거죠.. ' 하고는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생명이 빠져나가는, 그래서 화석처럼 굳어져가는 내 뺨에 입을 맞추고는 돌아서 그 남자에게 뛰어갔다. 나비처럼 나풀나풀... 내 덕분이라고 하였지.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 덕분에..."

그래,  '내 덕분'에 나는 나의 사랑을 잃고 말았다.

이 모두가 너무나 꿈처럼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가 왔다 간 것인지, 나의 뺨에 남은 그 감촉이 그토록 원하던 그녀의 감촉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그녀에게 준 꽃이 다 부서져, 아니 한껏 피어났던 내 꿈과 사랑과 희망이 다 잎잎이 떨어져 산산히 흩어져 날아가듯 그녀는 거짓말처럼 일 순간 내 앞에서 떠나 갔다.

그리고 .... 그녀의 빈자리를 내게 확인시키려는 듯 웨이터가 다가와 '의자를 가져가도 됩니까'라고 묻고는 내 앞의 의자를, 꿈처럼 그녀가 앉았던 그 의자를 가져가 버렸다.

나는 정말 혼자 남은 것이다.
동그란 테이블에 나 홀로. 

 

내 앞엔 어떤 빈의자 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녀가 혹 돌아와 다시 앉으리라는 가능성조차도 없이, 아니 이 순간 기댈 수 있는 그런 한가닥 헛된 환상조차 불가능하도록 그녀가 앉았던 자리,  그녀의 흔적조차 가져가 버렸다.   나는,  진정, 홀로 동그란 테이블앞에 자그마한 노인으로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앞에 와 앉지 못할것이다. 내 앞에 의자는 없으니까. 의자는 하나 뿐이니까. 내가 홀로 앉은 그 의자 하나...
갑자기 나는 내가 이제 모든 생을 다 살아버린 노인이 되어버린 듯 느껴졌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있다.

나는 떠날 곳이 없는 것이다....  (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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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음악가의 지휘장면, 그리고 빗속에 그를 찾아온 까마득한 어린시절의 친구와 그가 가져온 일기장에서 시작된다. 두 노년의 친구가 펼쳐 든 한 권의 일기장은 그들을 어린시절로 이끌어간다.  그 일기장은 두 친구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초라한 음악 선생님, 마티유의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꿈도 없이 살아가던 작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에게 마티유 선생은 어떻게든 꿈을 키워주고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바로 '그들의 것'인 웃음과 생명력을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주제는 무척 낯익다.  특히 이런 경우 선생은 대개 아픔과 실패와 좌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세상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디얼리스트이거나 소외된 자이거나 외로운, 그러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고 사제간의, 의사와 환자간의 서로의 우정으로 치유가 이루어지는 수 많은 버디무비들이 그렇듯이   <코러스>도 희망없는 아이들/환자/친구와 실패한 선생님/친구/제자가 서로 하나가 되어가면서 새롭게  희망을 찾게 된다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영화의 끝은 같다.  서로에게 새 삶을 주고 서로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 곁을 떠나고, 변화되고 성장한 아이들은 선생 곁을 떠나고, ....   아니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선생이 떠난다기 보다 아이들 곁에서 추방된다.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니까.  마치 어린아이의 놀이터처럼 아이들은 키가 자라면 더이상 키낮은 그네와 장난감같은 미끄럼틀에 와서 놀지 않듯, 그렇게 놀이터가 아이들의 삶에서 추방되듯이. 그게 그들의 만남의 의미이다.  열매를 위해 꽃이 떨어져야 하는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슬픈 만남인 셈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장 "자연스런" 만남인지 모른다.   선생이 그들에게 준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불을 붙여준 것은 문학이며 음악이며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다만 그것의 전달자였을 뿐이었으므로 그들의 영혼에 불이 붙으면 이제 그 곁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씨가 그렇듯.


영화의 시작과 끝에 잠시 등장하는 어른이 된 모항쥬는 바로 <시네마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의 역을 한  자크 페렝이다.  그뿐 아니라 안쓰럽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꼬마 페피노를 연기한 막상스 페렝은 그의 아들이다. (판박이^^ ) 자크페렝의 미소는 참 묘하다. 참 편안하면서도 속모를 신비함이 있다.

모든 영화평이 예외없이 마티유선생(제라르 쥐노)이 희망도 없이 살고 있는 시골학교에 와서 일으킨 아이들 맘속의 기적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 마티유의 고독과 외로움과 실패와 좌절과 소외감 그리고 그럼에도 막을 길 없는 그 속에서 흐르는 그만의 멜로디에도 관심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마티유의 입장에서 그의 마음을 상상해보았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사나이였다.  종이비행기가 날아오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세상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머물 곳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c)2005이봉희

아그라 | 2008.02.21 15: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있던 자리가 비었다. 자리를 내어준 기억도 없는데 떠나고 난 뒤 뭉텅 큰 웅덩이 하나 마음에 생긴다. 그래서였을까. 그만 몸이 아프고 만다. 열이 오르고 뼈마디가 쑤시고 살들이 침을 놓고 뽑지 않은 듯 움직일 때마다 아리다. 나는 불씨였을까. 내곁에 왔다 떠난 많은 이들에게 불을 지폈을까. 그랬다면 내 아픔도 기쁨이겠다. 꿈과 땀과 아픔으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통증이 약간 수그러든다. 휘청거리며 나선 거리에 걸음걸이가 빼딱한 사내아이 몇이 허옇게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는 킬킬대며 걸어간다. 졸업식... 아, 그렇지 참. 지금은 모두 떠날 때로구나. 낯선 세상을 향해 낯익은 것들과 이별하는 시즌이로구나. '때'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떠나온 나, 밀가루 뒤집어쓴 아이들을 지나치며 조금 울적하고 조금 씁쓸하고 조금 외롭구나 느낀다. 님의 글을 읽으며 아까보다 좀더 깊이 내느낌 속으로 떨어진다. 떠날 곳이 없는 나... 그 말이 자꾸 나를 잡는다.
NM | 2008.02.21 15: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살면서 진정을 담았던 그 모든 만남이,
숱한 그 사람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치명적이어서
내가 그렇게 독하게 앓았구나, 그렇게 하염없이 외로웠구나
사람아 사람아....
님의 글 속에 난 외길을 보며 말건네고 싶어서 문득,
| 2019.03.24 17:38 | PERMALINK |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 2019.03.24 21: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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