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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길에 선 사람의 모습으로 고향을 떠나는 한 사람...
아니, 집으로 돌아오는 외출길이라고 해야할까?
시골길에 연미복과 모자와 우산을 갖춰든 이방인의 행색을 한 귀향인.

장욱진의 다른 그림들에서 더 잘 나타나있지만 그의 색채를 보면서 참 눈에 익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겨울 나와 그 전시회를 보고 싶어 일부러 먼 길을 올라온 친구와 함께 장욱진 전을 보다가 답을 찾았다. 그의 색채는 민화의 색채와 너무나 흡사했다. 그게 그의 동화같은 그림에 한국적인 깊은 정서와 이야기를 담은 이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천국도 불교의 니르바나도 아닌 현세와 영원한 곳이 구분되지 않는 특이한 해탈의 경지. 세상을 부인하지도 세상에 묶여있지도 않는 그의 세계. 그의 세계에는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이분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공존한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현실과 꿈의 세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지 모른다. 한 공간에 존재하는 달과 해, 하늘 위에 자리잡은 땅, 땅 속에 떠있는 하늘들.

이 그림에서도 떠남과 돌아옴이 공존하고 있다.
화가의 얼굴에 담긴 아이와 어른의 신비한 조화처럼.  슬픔인지 기쁨인지 무엇인지 모를 표정처럼.
이런 이들의 얼굴에서는 그 조화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장욱진 화백의 얼굴이 그렇듯이.

반면 그 두가지가 투쟁을 벌이는 얼굴들이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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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의 말:
그는 이 그림을 '자상(自像)'이라고 불렀다.  자상(나의
모습)과 자화상(나를 그린 모습)을 구분한 의미가 무엇일까 흥미롭다.

" 일명「보리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 그림은 나의 자상自像이다.
  1950년대 피난중의 무질서와 혼란은 바로 나 자신의 혼란과 무질서의 생활로 반영되었다. 나의 일생에서 붓을 못들은 때가 두 번 있었는데 바로 이때가 그중의 한번이었다. 초조와 불안은 나를 괴롭혔고 자신을 자학으로 몰아가게끔 되었으니 소주병(한되들이)을 들고 용두산을 새벽부터 헤매던 때가 그때이기도 하다.
   고향에선 노모님이 손자녀를 거두시며 계시었다. 내려오라시는 권고에 못이겨 내려가니 오랜만에 농촌자연환경에 접할 기회가 된 셈이다. 방랑에서 안정을 찾으니 불같이 솟는 작품의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감 몇 개 뿐이지만 미친 듯이 그리고 또 그렸다. 「나룻터」,「장날」,「배주네집」. 이「자상自像」은 그중 하나이다. 많은 그림들이 그 역경 속에서 태어났니 동네사람들이 가인이라 말하도록 두문불출, 그리기만 했던 것이다. 간간이 쉴 때에는 논길 밭길을 홀로 거닐고 장터에도 가보고 술집에도 들러본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 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畵廊 1979년 여름호>

물론 장욱진에 대한 생각은 나의 생각이다. 난 그림을 볼때 전문가들의 해석을 읽지 않는다. 나와 그림과의 대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우리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진후 그후에야 시간과 기회가 허락되면 미술평을 읽는 셈이다. 음악도, 시도 마찬가지지만...

가끔 내 생각이라고 밝히는 이유는 전문가적, 학문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고 또하나는 내가 말하고 나면 전문가 누군가가 그 말을 한 것을 나중에 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내 생각과 남에게 따온 생각을 구분하여 밝혀두고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