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공개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공개된 글]- 제자와의 대화

*이 글은 한 제자가 공개글로 쓴 것이며 동의에 의해 실었음.

난 회사에 묻어 있다. 오물처럼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는 총무부 라는 곳이다. 영어로는 General Administraion Dept. 총무부는 회사 살림을 하는 곳이다. 집살림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들이 모여 회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큰 즐거움이다.

회사는 단지 사장과 Executive member들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아침에 우편물이 발송 또는 배달되고, 신문이 배달되고, 서류들이 도착하고, 전화가, 컴퓨터 네트웍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하고, 전기가 들어와야 한다.

우편물이 배달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전화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정상적으로 되기 위해선 365일 휴가 한 번 제대로 못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적은 월급과 훨씬 안 좋은 근무 환경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날 직원들이 회사에 출근했을 때 전화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게 하기 위하여, 담당 직원과 업체 사람들은 새벽까지, 주말도 반납하며, 성실하게 기계처럼 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총무부 일은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 한바가지라고 한다.

회사가 실적 위주와 성과 위주로 그 직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난 정말 난감하다. 내 일은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실적으로 혁혁한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성격의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날 힘들게 하는 건 상사와 소통이 안 된다는 거다. 내 부서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내 생각을 말을 하지만,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신다. 내 말을 알아 듣는 능력이 아예 결여되어 있는 분 같다. 내가 그렇게 어렵게 말을 했나? 내 친구들은 내 얘기들을 잘 알아 듣는데… 정말 신기한 경험들이다.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나 혼자 아득한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외로움과 창피함, 수치심, 부끄러움이 뒤섞여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경험이다.

요즘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런 현상을 자주 겪는다. 나의 일하는 스타일이 고집스럽게 미련해 보이지만, 그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 때문에 절망스럽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이용만 하려는 야박한 사람들. 알고보면 다 도둑들. 더 큰 도둑이 될려고 출세하려는 사람들.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이용 당해줄려고 마음 먹었는데, 결국 내 실력은 뽀록이 난다. 난 실은 그걸 감당할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어정쩡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냥 회사에 묻어 있다. 오물처럼.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위로를 해준다고 한 말.“그래도 암선고 받고 한 달밖에 못사는 사람들도 있어. 네 처지가 그 사람들 보다는 낫잖아?” 정말 어이가 없다. 그래도 목숨 부지하고 살아 있는게 나은 거라니… 그게 나를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라니…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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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아, 얼마나 사무치게 고독한 일인데... 그 무리들 속에서 혼자 표정 관리하고 있는게. 심장이 멎는 일이지. 그 무리들이 그런 나의 연약함을 짐승 같은 본능으로 냄새맡고 덤비면 안되니까 들키지 않으려고 숨을 죽여 울어야 하지.

살면서 너무 자주 그런 걸 느껴. 사람들은 너무나 당당하게 뻔뻔스럽게 이기적이라는 걸. 눈에 불을 켜고 자신에게 유익한 일을 위해 덤벼든다는 걸. 오직 자신이 누구인지 그걸 드러내기 위해 24시간 호흡하는 것 같다는 생각. 그걸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종종 본단다. .

모두가 비겁한 벙어리가 되어야만 가장 평화롭다는 생각이 서글프다.

세상은 갈 수록 사막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곳에서 모두는 그저 눈에 불을 켠 맹수들로 변하고 있어. 너무 서글픈일이야. 기가 죽어서 살고싶지조차 않단다.
고독이 사무칠 지경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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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

선생님, 세상이 점점 낯설어요. 전 마치 트루먼쇼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요. 저만 철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요,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학교도 저보다 더 좋은 곳을 나왔구요, 학위도 높고, 외국에서도 공부했고, 저보다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한 사람들이예요,

정말 미치겠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최소한 상식적이지도 못하다는 거예요. 인격적인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 좋은 머리와 많은 공부, 경험이 대체 뭐였나 싶어요.

최소한의 상식과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이기적이고 무례한 그리고, 도둑의 대가들. 그들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어요. 무슨 끝없이 먹어 치우는 괴물같아요. 전혀 소통을 할 수 없는 똑똑하고 잘난 괴물들이예요.

그 괴물들이 돈과 지위 앞에서 얼마나 추하게, 얼마나 쉽게 자신의 인격과 인간됨을 가차없이 버려버리는지... 실은 그 모습을 보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들 편에 서볼려고 한때는 분발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바로 뽀록이 났어요. 너무 어설퍼서. 결정적으로 제가 그들 앞에서 너무 기가 죽어서 연습한대로 하나도 못했어요. 쩔쩔매다가 나왔어요. 그들한테는 사람을 그 앞에서 꼼짝 못하게 하는 기술까지 갖고 있더라구요.

선생님, 그들과 소통도 안돼지만, 전 아직 견딜 실력도 없어요. 가끔은 그들한테 붙어서 부스러기라도 두둑히 챙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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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RE:
아, 그렇게 말하는 그 맘 알아. 나도 그런 생각 수도 없이 오간단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라진 세상에 나만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외로워서.

네가 당하는 일들이 버거워서라기 보다는 외로워서 더 견디기 힘든 거야. 아무도 너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혼자이지 않기 위해, 외톨이가 되는 두려움에 가장 비참해지거나 비굴해지지.

힘내. 넌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 사람들을 멀리서 떨어져서 바라 봐. 그들도 속에는 모두 두려움을 숨기고 있단다. 어쩌면 정말 바보들이야. 눈을 감고 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내일이면 사라질 안개를 움켜쥐려 일생 자신을 파는 사람들. 그것을 행복이라고 속고 사는 사람들. 그냥 한 발 멀리서 바라 봐. 네가 속한 곳은 여기가 아니야. 힘내. 네 곁에 있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봐..


[ 우리의 특권, 우리의 긍지 ]

졸면서졸면서 한참을 썼는데 컴이 갑자기 움직이질 않아서 다 날렸네.

어제 밤 네 글에 답을 쓰고부터 갑자기 인터넷이 안되어서 이제야 고쳤어. 참 말성이야.-말썽 ( 난 새끼 손가락이 힘이 없어서 늘 쉬프트 누르는 글자는 두번 쳐야해. )

Y아, 네 말 한마디 한마디 너무나 공감해. 네가 처한 상황이 유리창밖에서 보듯 환히 보여... 너무 맘이 아프다... 너무 아파.. 너희들은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살 줄 알았는데. 너희들은 나처럼 되지 않기를 그렇게 원했는데.

네 글 읽고 난 후 요즘 또 다시 읽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뽀르뚜가의 죽음 부분을 읽다가 엉엉 소리내어 한참을 울었단다.

Y아 넌 혼자가 아니야. 많은 말을 썼었는데 다 지워져서 그대로 다시 쓸수가 없네.

그들의 그런 행동은 지극 당연한 거야. 그게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야. 슬픈 일이지만...

그리고 우리는 절대 그들의 방법으로 그들을 이길 수 없어.

그런데 그게 우리의 긍지요 특권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니?
조용히 패배하는 것. 이 세상의 법칙과 이 세상의 가치,  이 세상의 잣대로는 우리의 정당성과 우리의 옳음과 우리의 억울함을 인정받을 곳이 없어. 우리의 정당함을 판결해줄 법정은 이세상엔 없어. 그래서 늘 그 싸움에서 지고 고통의 형을 사는 거야. 추방되고 낙인찍히고. 무고히 무고히. 그저 혼자 조용히 존재할 자유조차도 보장받을 수도 없지. 그게 순교야. 그게 바울이 말한 "날마다 죽노라"라는 의미야.

날마다 날마다 내가 세상에서 없는 자처럼, 수치를 당하고 부당하게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소리나지 않는 총을 등 뒤에서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사는 거. 그게 날마다 죽는 거야. 우리를 "미말에 둔 자 같이 하셨다"고 하잖아. 미말이란 사형장에 끝려가는 걸 말해. (투기장에서 맨 마지막..) 자기들은 소리나지 않는 총과 칼로 나를 난도질하고도 내가 한번 정당방위로 총을 쏘면 당장 체포당하지. 감히 소리내면서 총질이냐고... 그리고 유배당하는 거야.

그래도 난 믿는단다. 그래도 난 믿어...
그래도 내가 통곡하고 울어도 끝까지 다시 일어서는 이유는, 당당한 이유는,  내가 비록 육신은 세상에 속해 있어 두려움을 느낄지라도 (바울처럼, 다윗처럼) 결론은 "내가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 않음은 -- I fear not evil--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야.

주님은 우리 곁에 계서. 잊지마. 넌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들 앞에 나아갈때 늘 기도로 무장을 해.
다윗의 말을 봐. 그가 사망의 골짜기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해받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남들이 해꼬지하는 해- 가 아니라 EVIL, 즉 내 영혼을 타락시키는 악을 두려워한다는 거지. (우리 수업 중에 오셀로 공부하면서 했던 말 기억나? 진정 비극은 무엇인지.)

얼마나 차원이 다른 기도요 고백이니. 세상에는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멋진 사람들이, 멋진 믿음의 선배들이 여기 저기 숨어 있어. 내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 70명을(400명인가??) 두었노라 고 하시잖아. 우리 시시한 사람들 바라보지 말고 저 높은 곳을 보자. 저 넓은 곳을 보자. 아무리 못 견딘다 해도 생은 꿈같이 지나간단다.

아직 다 안썼어. 또 쓸게.

우선 시 하나 보낸다. 오래전에 누구에게 보낸 시인데 그걸 전도사님이 방에 붙여 놓고 있더라구 해서 용기내서 올려본다.

다시 또 쓸게... 힘내. 네 곁에 주님이 부리시는 천군천사가 있어. 그리고 이기고 지고 그런 거 하지마. 우린 그들이 모르는 양식이 있자나. 세상을 두려워하지마...

야고보서와 로마서 앞부분을 읽어봐. 하늘로서 온 지혜와 땅에서 난 지혜의 차이가 무엇인지. 사람들의 행동이 어쩌면 그렇게 자세히 정확히 적혀있는지. 시기, 질투, 당파지어 남을 거부하기, 자기 사랑, 거짓말, 뒤에서 수근거림.... 너무나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그게 인간의 모습이야. 우리도 옛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어. 그러니 놀라지 마. 두려워 마. 알았지?

얼마나 인간의 속성이 악하면 10계명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셨겠니. 거짓을 '밥먹듯' 먹으며 양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그게 인간의 타고난 모습이야.

네 생각만 하면 왜 이리 가슴에 마구 분노와 안타까움과 설움이 몰려오는지. 그렇게 똑똑하고 시원시원한 네가. 깔끔하고 깨끗한 성격의 네가 힘든 거 맘이 너무 아프다. 겉만 강하고 "아무치도 않아요 괜찮아요" 하면서 속으론 위경련이 나도록 두려워하고 위축되고 외로워하는 널 알고 있어. 내가 알 때 주님이 모르실 리 없잖아.

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는지 나도 모른단다.

얼마전에 E와 백화점 갔다가 갑자기 "잠간 어디가서 쉬자... "하더라구. 내가 금방 알았지. "너 울고 싶구나.." 했더니 끄덕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하는 거야. 화장실에서 한참 울면서 그애가 말했어.
"고난은 그냥 고난일 뿐이야.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망가진걸. 그 고통 때문에 이렇게 불쑥 불쑥 병을 앓고 있는 걸... "

나도 말했어. 그럼. 고난은 그냥 고통일 뿐이야. 뜻이고 뭐고 몰라... 그냥 운명처럼 운이 없어서 걸리는 거야. 그리고 운명을 받아들이듯이 그냥 그걸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어.

그애의 그 천사같이 예쁘던 옛날 얼굴이 점점 어두운 그늘로 덮여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든지..

나도 모른단다. 세상은 왜 이리 엉망진창 진흙탕같은지. 왜 그속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꽃을 피우려고 이렇게 아파해야하는지. 다만  세상은 어둠이기에 주님께서우리에게 빛이 되라 하셨지.  세상이 얼마나 악하면 예수님을 못박겠니? 

역사상 가장 억울하신 분은, 가장 고독하신 분, 그분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약속을 믿고 그 비밀을 배우며 살자.
"네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힘내. 힘내. 넌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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