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존재의 가치

(c)이봉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오로지 부모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도 온 마음으로 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 된다는 것을. 아직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필요로 한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나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가슴 벅차던 어린 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밤낮 없이 속만 썩이고 실망시키는 말썽꾸러기,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앤 머레이(Anne Murray)<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You Needed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히 당신을 원하고 필요로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고 노래합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중에서

 

 

조건 있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 

어린 시절 흔히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인형 중에서 하나의 인형을 유독 아꼈습니다. 항상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인형은 여러 개 중 가장 못생기고 팔도 한쪽이 떨어져나간 낡고 초라한 인형이었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왜 그 못생긴 인형을 그렇게 꼬옥 품고 다녀?”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다른 인형은 예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이 힘들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스럽지 못할 때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못난이 인형을 사랑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는 그때 나를 먼저 사랑해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너를 잃을까봐 겁이 났단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아버지 무파사는 어린 사자 심바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경계를 지어줍니다. 하지만 심바는 아버지의 경고를 거역하고 코끼리 무덤에 갔다가 하이에나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타나 심바를 구하지요. 무파사는 훈계하고자 심바를 부릅니다. 심하게 벌을 받을 줄 알고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다가간 심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자기도 아버지처럼 용감해지고 싶었다고,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고 겁낼 것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오늘 두렵고 겁이 났단다.... 너를 잃을까봐!”

 

그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심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심바는 아버지의 품에서 말합니다. “우린 친구죠, 그렇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동물의 왕인 아버지도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니, 심바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조건 없이 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집으로 막 뛰어 들어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하나님도 우리 없인 못사신대.” 그렇습니다. 신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셔서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과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합니다. 하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실망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 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지고, 자꾸 눈치도 보여서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까 눈치보지 말라고.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약함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해보겠다고 우쭐대는 어린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아이는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데도,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위로인지요.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나도 지쳐버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요. 그러므로 이제 브레히트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고나의 길을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하는, 사실은 내가 필요로 하는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Morgens und abends zu lesen>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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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 Philippian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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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 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ㅡㅡㅡㅡㅡ

거의 모든 나라의 언어로 알려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터키의 격언인 이 말은 주로 고통과 고난의 시기에 있을 때 가장 위로가 되고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의 참 의미를 이 시는 아주 잘 전달하고 있다. 행운이 미소짓고 기쁨으로 가득할 때도 이 진실을 가슴에 새기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wheel of fortune 행운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면서 희/비극이 교차한다고 믿는 신화를 봐도 희극과 비극은 영원히 지속되는 고착된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드라마 강의 때 나는 늘 원의 정점에 이르는 희극(comedy/행복)은 다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잠재된 비극(potential tragedy)이며 원의 가장 낮은 지점인 비극(tragedy/불행)은 다시 바퀴가 돌아 위로 돌아갈 수있는 미완성의 희극(incomplete comedy)라고 설명하곤 했었다. 중국 고사 새옹지마도 결국 같은 이야기겠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도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This, too, shall pass.)"라는 말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는 말인가! 자만심을 갖고 있을 때에 얼마나 우리를 일깨워주는지! 그리고 고통의 늪에 있을 때에는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 2020.03.30 21: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Journal Therapy | 2020.03.30 21:45 신고 | PERMALINK | EDIT/DEL
반가워요 선생님.
근데 왜 갑자기 비밀글로^^

잘 지내시죠?
요즘은 이 평범한 인사가 정말 가장 소중하고 진실이 담긴 안부인사가 되었네요.

온라인 수업 준비 한 번 하고 나면 일주일쯤 앓고 또 준비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따님과 세분이서 서로 사랑으로 힘을 실어주며 어려운 시기를 잘 넘어가시기를 빕니다.
윤임경 | 2020.03.31 00: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ㅎㅎ
그게요. 교수님
따님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와서 혹시나 싶어서요.
온라인 수업 준비로 힘드시겠다어요 ㅜ

저는 요즘 각종 요리를 하면서 보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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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숄(카운터 테너)의 노래 중 특히 좋아하는 비발디의 Stabat Mater와

언제나 가슴을 흔드는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Che farò senza Euridice?)를 권해본다.

내가 아끼던 비발디의 CD를  마음이 통하던 친구에게 선물했었는데 그에게는 별로 의미없는 것이었던 게 맘이 아프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어디선가 버림받은 그 CD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돌아다니고 있겠지. 그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 이 음악이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Andreas Scholl - Vivaldi: Stabat Mater, RV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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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uck의 올페오와 에우리디체 중에서 Che farò senza Euridice?
이 아리아, 안드레아 숄 만큼 절절하고 드라마틱하게 부르는 연주를 나는 아직은 들어본 적이 없다.

꼭 들어보길 권한다.

 

오늘은  안드레아 숄 대신 마리아 칼라스의 연주로 들어본다.

 

하데스로 사랑하는 에오리디체를 찾으러 가서 데리고 나오던 올페우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뒤를 돌아보고.... 에오리디체를 영영 잃게 된다.

고통과 한탄 속에 부르는 노래.

 

Che farò senza Euridice?
Dove andrò senza il mio ben?
Euridice, o Dio, rispondi!
Io son pure il tuo fedele.

Euridice! Ah, non m´avanza
più soccorso, più speranza
ne dal mondo, ne dal ciel.

---

What will I do without Euridice?
Where will I go without my beloved?
Euridice, oh God, answer me!
Yet I still belong to you faithfully.

Euridice! Ah, no help comes to me anymore,
No hope anymore,
Neither from this world, nor from heaven.

음악을 올리고 시를 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이곳은 잘 알려진 곳도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처럼 떠돌다 온 그 누구라도 위안이 되라고 올려본다. 
고통 뿐 아니라 누군가와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 싶은 게 우리 마음인가 보다. 

 

유수정 | 2010.09.04 21: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름답다.
슬픔, 절절함..
고통과 괴로움은 다른 것.
고통은, 순수한 고통은 아름다운 거.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도 아름답더라.
Journal Therapy | 2010.09.05 17:26 신고 | PERMALINK | EDIT/DEL
맞아.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러고보니 아름다움은 때로 잔인한 것 같네.
수정아. 우린 언제나 보려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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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축복>- (c)bhlee

 

COVID19로 인한 팬데믹의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서로를 의심하고 접촉을 꺼리며, 이제는 경제위기까지...증폭되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아마 지금처럼 그동안 몰랐던 삶의 평범한 일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때도 없을 것 같다.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딛치며 북적대는 거리를 걷고,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리며 출근하고, 가기 싫다며 학교에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맘껏 웃고 수다를 떨고,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영화관을 가고, 음악회와 스포츠경기, 미술관 등 문화생활, 쇼핑을 하고, 땀흘리며 운동을 하고, 외식을 하고, 커피숍에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이 오늘과 같은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 잠자리는 드는 하루하루가 새롭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아마 이런 특별할 것 없고 때로 지루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말 한 강렬한 시 중에 하나가 인용된 제인 케니언(1947~1995)의 시일 것이다.


 

건강한 두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시어리얼, 맛있는 우유, 잘익은

싱싱한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자무 숲으로 갔다.

아침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

정오에 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웠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우린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탁 은촛대에 촛불을 켜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벽에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나는 잠을 잤다.

오늘과 똑같은 또 하루를  계획하면서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어느 날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제인 케니언)

 

 

이 시는 시인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쓴 시다. 그녀는 이 시에서 아주 평범한 하루의 단순한 즐거움을 돌아보고 있다--침대에서 일어나 건강한 두 다리로 서는 일, 우유와 싱싱한 과일을 먹고, 개를 산책시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은.


그런데 시인은 그 모든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마치 경고라도 하는 듯이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천천히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에서 강렬한 보편적인 진실 한 마디를 남기며 끝을 맺는다:

 

  “벽에 그림들이 걸린 방에서 나는 잠을 잤다
  오늘과 똑같은 또 하루를 계획하면서.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어느날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것이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이든 우리에게 주는 잠언이든 지극히 평범하고 습관적인 삶 속에 내재된 죽음을 매순간 기억하는 이 강렬한 비극적 인식!  

 

그러나 시인의 비극적 인식은 비극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그 무의미성에 감춰진 행복을 깨닫는,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되고 있다. 이 시가 치유적인 이유다.

(c)bhlee

ㅡㅡ
제인 케니언ㅡ
대학 재학 시절, 문학을 강의하던 19살 연상의 시인 도널드 홀을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20년 후 48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시인 부부인 두 사람의 사랑과 삶은 TV 다큐멘터리 <A Life Together>로 제작되어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편은 후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아내의 죽음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었고, 아내를 보살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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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 일상의 재발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여기 이렇게 살아 있지.

아마도 계속 살아갈 거야.

내 사랑, 아가씨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난 살려고 태어난 것 아니겠어.

 

외치는 내 소리 당신이 듣게 될지도 모르고

우는 내 모습 당신이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 죽는 걸 보게 되는 일은, 사랑하는 아가씨,

앞으로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포도주처럼 멋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 랭스턴 휴즈,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Life is Fine중에서

 

시의 주인공(시적 화자)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지요. 간혹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결코 죽지는 않겠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Life is fine”이라고. 나는 Life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모두들 번역한 대로 인생으로 번역하고 보니 시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생이 고통스러워서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이, 살면서 다시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포도주와 같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는 삶이 고달플지라도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좋은 거야)”라고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꼭 극적이어야 멋진 인생일까?

미국의 극작가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우리 마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보여줍니다. 즉 사람들이 태어나고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그 죽은 자들이 또 산자들을 바라보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극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학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아무런 극적인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좀 더 극적이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그린 극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에밀리는 다릅니다. 세상을 떠난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자신의 생을, 평범했던 열여덟 살의 생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게 된 그 하루 동안 엄마와 가족과 이웃의 말 한마디, 엄마가 아끼는 꽃 한 송이,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하루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이렇게 말합니다세상아, 너는 인간들이 깨닫기엔 너무도 멋진 곳이구나.”

 

그리고는 극중 스테이지 매니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살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순간을요.”

 

그러자 스테이지 매니저가 대답합니다. 아니, 없지. 어쩌면 성자나 시인 중에는 있을지 몰라.”

 

극 중에서 죽은 자로 나오는 사이먼이라는 인물은 에밀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너도 알았구나. 그게 살아 있다는 거야. 무지의 구름 속을 걸어 다니는 것.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으면서 살아가는 것. 마치 백만 년이라도 살 듯 시간을 낭비하면서 사는 것. 이런 저런 이기적인 열정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것. 이제는 알겠지. 그게 바로 네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삶이라는 것을. 무지와 몽매함.

- 손턴 와일더, 우리 마을Our Town중에서

 

극적이고 가슴 뛰는 일들을 기대하느라,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날들을 기다리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있을까요? 작은 일상이 주는 의미와 기쁨과 감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들의 그 우주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그저 싸울 태세로 달려듭니다. 절망과 끝없는 경쟁을 되풀이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한 후배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순간순간 자신이 물 없는 어항에 갇힌 물고기인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 끔찍한 순간을 겪다가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느낄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병원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뒤뚱거리며 걸어가거나 휠체어를 탄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프고 나니 세상이 다시 보여요. 기어가는 벌레 하나도 너무 소중하고, 그 생명력이 무척이나 부러워요.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겠어요.” 그런데 벌레는 알까요? 거대한 존재들 틈에서 무심코 밟히기라도 하면 이내 사라지고 말 자신의 운명이 절망스러울 때, 힘겹게 온몸으로 기어 다녀야 하는 그 삶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 세상의 누군가는 자신을 지켜보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를 벌레처럼 작고 힘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알까요? 내가 살아서 존재하는 그 자체가 포도주처럼 더 없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통스럽기만 한 몇 년간의 암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그 후배는 오히려 감사함을 배우고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이 완치되고 나서 다시 교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서 그럴 때마다 다시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그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리며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와일더는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보물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에만 참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보물 1호는 바로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입니다. 욕심의 키가 커져서 사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질 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봅니다. “살아 있는 건 참 좋은 거야!” 쓸쓸해도 오늘 또 하루 감사해하며 살아 있을 것입니다. 장정일 시인의 말대로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기 때문입니다.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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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ㅡ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ㅡ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 눈물을 흘리시고, 갈대 숲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무심히 앉아 있는 새들의 존재에도, 모든 우주에 외로움은 존재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이 시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ㅡ라는 공감을 통한 치유의 시이다. 이렇게 공감받을 때, 나만 외딴 섬이 아니라 전 존재와 우주라는 거대한 대륙에 연결된 존재라는 느낌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얼마 전 내가 사소한 사건으로 철렁 놀란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너무 무섭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고맙다 하자 그 친구는 ‘난 그저 같이 무섭다 한 것 뿐인데... ‘라고 했었다.

그게 고마운거지 같이  느껴주는 것.
우리는 내 감정이 어떤 조건 없이 공감받을 때 나만 바보처럼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되어서) 두려웠거나 상처받거나 분노한 것이 아니라는 유대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오히려 우리는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스스로 뛰어넘을 준비, 변화할 준비를 하게 된다. (많은 글쓰기문학치료 참여자들이 나만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이상한 외계인 같았어요. 라는 말을 하시곤 한다. )

 

이 시의 치유적 힘은 비록 '...하지 마라' '..이다'는 어투를 사용했을지라도 흔히 말하는 ‘외로움은 보편적 실존이다 그러니까 슬퍼하지마라’는 교훈이나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는  “you are not alone (나도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냐)”이라는 온 존재가 함께 공유한 외로움을 통한 유대감이 주는 안도감인지 모르겠다.  그 안도감이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공감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게 만드니까. 그래서 일견 ".. 하지마라 .. 이니까. ..하지 마라.."는 교훈조의 말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솔루션이나 깨달음의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스스로에게 ...하지 말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돌아보라고..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그런 위로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 세상을 돌아보고 나만 외로운게 아님을 깨닫는 자신과의 역시 외로운 그러나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은 대화인 것이다.  그래서 흔히 '무엇은 ... 이다'로 정의 내리는 시들의 목소리와 달리 이 시의 목소리는 다르다.  ‘그러니 슬퍼하지말라.. ‘가 아니라 때로 슬플수도 있지만...그럼에도~ 괜찮다로 들린다.  결국 힘든 삶을 살아가는 힘은 아픔의 해결이라기 보다 (그럼 해결될때까지 어쩌지???)   ‘그럼에도....’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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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목이 참 흥미롭다.

수선화에게...
절망적 사랑을 한 수선화에게.

 

아이러니칼하게도 나르시시스는 그 대상이 자기자신임을 몰랐다.

그는 그게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고 사랑한 비극적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 물에 빠지고 수선화로 피어난 신화의 나르시시스.

결국 모든 존재하는 것들 속에 내재된 외로움은 모든 존재가 각자 독특하고 유니크한 개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해도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싸르트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외로움을 대자존재(etre pour soi)의 실존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때 ‘나와 다른 그’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나와 같은 그’ 아니 어쩌면 '내 무의식에 비친 나’ 의 모습으로 인해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ㅡㅡ 


수선화는 유명한 신화 나르시시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에코우(메아리)의 절망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미소년. 나르시시스는 연못에 비친 너무나도 아름다운 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그 연못을 떠나지 못하다 결국 연못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연못가에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묘하게도 나르시시스의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은 심리학에서 자기애성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자기애는 누구나 어느 정도 있고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증적상태가 될 때 자기관찰과 치유가 필요하다.

이 시가 갖는 여러겹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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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아주 오래 전 천상병 시인의 <약속>이라는 시를 읽고 끄적끄적 일기장에 그림을 그렸었다.

가로등과 기다림ㅡ
약속.... 누구와의 약속이든 그건 어쩌면 다만 약속을 기억한 사람, 그걸 잊지 않는 사람의 슬픈 풍경 같은 기다림인지 모른다.

...

그림을 보니 내가 인적이 없어 굳이 서 있을 필요도 없는, 길을 밝혀줄 필요도 없는 가로등을 그린 것이다.
게다가 전구가 없는 가로등을!

오늘 밤엔 저 가로등에 전구를 끼워줘야겠다.
보이지 않는 길 잃은 한 영혼이 어떤 외딴 길 끝에서 이 작은 빛을 보고 안도하며 길을 찾을 수 있게..
집을 찾을 수 있게..

 

 

by bhlee

 

[천상병 -약속]

 

한 그루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120516
| 2007.03.10 17: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약속 | 2007.10.01 09: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약속. 그건 뭘까. 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못지키는 경우 반드시 미리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내가 까막히 잊은, 잊은지 조차 잊은 약속도 있겠지 싶다. 그가 한 약속은 무슨 의미일까. 늘 기다린다. 언제까지, 라는 말을 믿고. 하지만 맘이 바뀌거나 그러기 싫으면 언제나 달라질 수 있는 그 약속들. 그의 약속은 그 약속을 하는 순간 그냥 그러겠다는 의견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빈 길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어느 새 10월이다. 나는 아직 빈 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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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갈피를 더듬는 바람의 환대- 이봉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기지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나는 어떤 문학치료수업이든, 특강이든, 또는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이든 첫 날 이 시를 청중/학생/내담자들에게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상담시간엔 이 시를 읽어주지 못하지만 늘 같은 마음이다.)

 

내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과거, 현재, 미래,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일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책처럼 꼭꼭 덮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 갈피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바람도, 마음 갈피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조우이다. 그 바람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읽거나 쓰는 한 구절 글이나 시일 수도 있고, 치료자가 건네는 공감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글쓰기문학치료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이상하다. 왜 엉뚱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이상하다 왜 눈물이 자꾸 나지?’가 바로 그런 순간인지 모른다. 이 시는 나와의 만남이, 내가 진행하는 치료모임 때 읽은 시 구절이, 나의 경청이 바람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이다. 그것도 마음갈피를 그저 “더듬을 수 밖에 없다”는 치료자의 한계를 나는 늘 겸손히 그분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열고, 듣고, 읽어야한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김없이 울컥하고야 만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소망을 내가 만나는, 나를 방문한 분들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나 간절히 그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기에....

 

그리고 나는 권고한다. 이 글쓰기문학치료모임에서는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환대’해야 한다고. 내가 여러분을 만나듯, 여러분이 만나게 될 ‘방문객’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이 모임은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 즉 '나 자신'을 친절히 환대하는 모임이라고. 그것이 두렵고 아파서 마음갈피를 굳게 닫아두었다면 그래서 힘겹다면 나와 함께 조심스레 열어 대면하자고. 결국 신영복님은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일이 최고의 독서라 했는데 그 무엇보다 그 한 사람 중 먼저 나의 인생사를 경청하고 내 마음갈피를 펼쳐 읽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독서가 아닌가?

 

치료모임은 단순한 위로와 억압된 감정의 해소에서 더 나아가 자기관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자기 관찰이란 치료모임이 즐거운 교제나 독서토론, 주고 받는 칭찬, 맛난 음식, 웃음꽃 피는 모임이 아닌 진지한 심리치료 모임이란 말이다. 자기 관찰을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그 길을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치료기간에 자신의 추한 점, 상처, 절망과 실패, 수치심, 뜻밖의 얼굴이 들어나도 거부나 비난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것이 ‘친절한’ 관찰이다. 즉 내가 문학치료에서 글을 쓰면서 만나는 방문객---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고통이 내 모습의 한 부분일 뿐임을 믿어야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서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치료모임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를 두려움이라고 했고 그 두려움은 고통을 직면하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를 비유로 생각해본다.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두려워 꼭꼭 억압했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수많은 흉한 모습과 기억과 상처가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덮어버리고 억압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수치심과 불편함에 다음 시간에 모임에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한다. 그 상자 맨 밑에서 판도라에게 들려오던 작은 소리를.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요...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나의 고통스런 상처나 수치스런 경험들, 내가 불가항력적이었던 불행한 일들이나 실패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남은 용기와,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삶의 의지와,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와,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투지가 희망처럼 더 깊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실현되고 싶어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참 나의 모습인 것을.

 

오늘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담자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함께 환대할 준비를 하면서.....(ⓒ2016이봉희)

FB | 2019.08.25 2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from my facebook

SWY
제가 안식월 가지면서, 나사렛교회를 방문해 말씀 전한 주일, 교수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그 마음의 환대가 생각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세월 참 많이 흘러가 버린 그 옛 시절 학교의 부족한 동료였던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
LBH
에궁. 아닙니다.
교수님이 떠나신 학교 빈자리가 늘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몇 번밖에 들은 적 없지만 매번 깊은 통찰과 성찰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설교에 공감하고 힘을 얻곤 했더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귀한 분에 대한 아주 작은 추억도, 어딘가 이런 분이 계시다는 기억도 제겐 문득문득 눈 둘 곳 없는 공허한 날 참 큰 힘이 됩니다.
늘 강건하세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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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Mozart에게 영감을 받아 차이코프스키는 이 우아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했다.
가장 즐겨듣는 곡 중의 하나인 이 곡은 장한나의 연주(EMI)를 가장 좋아했었다.  어린 한나의 연주는 정말 완벽하다.

 

도입부에서 혼(horn)의 음이 들리고 첼로가 첫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할때 나는 너무 아름다워서 울어버릴 거 같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느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오늘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첫 변주곡 주제를 들어본다.

전설적인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33, TH.57 - Moderato assai quasi andante · Mstislav Rostropovich ·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1969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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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haikovsky's Nocturne in D minor for cello by Julian Lloyd Webber and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Maxim Shostakovich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줄리안 로이드 웨버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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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Yo Ma - Bach: Cello Suite No. 1 in G Major, Prélude (Official Video)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https://www.youtube.com/watch?v=1prweT95Mo0

 

"음악처럼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어인가를 말할 때 사람들은 이건 고전이라고 말한다. 죽은 유럽인들의 예술이라고.. 그러나 나는 고전예술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개념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예술에서 다루는 것은 단순히 음악, 미술, 혹은 문학이 아니다. 그보다.... 예술은 인류, 사상, 감정 등을....사실은 누군가의 정신의 최상을 것을 함께 알리는 것이다." - YoYo Ma

https://www.facebook.com/bonghee.lee.7399
Journal Therapy | 2020.03.10 22:40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곡을 요요마의 연주로 처음 들었던..... 늘 그렇듯 뜻밖에 듣게 되었던 그 날이 생각난다.
그 때의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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