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전북일보 

 

예술·심리·철학·문학 분야 전문가와 함께 만나는 인문학

 

전북교육문화회관, 4~7월 ‘마음을 채우는 끌림의 인문학’ 강연 운영   

--예술·심리·철학·문학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인문학으로 마음을 채운다.

전북교육문화회관은 오는 7월까지 총 12회에 걸쳐 지역주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마음을 채우는 끌림의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강연은 특정 주제의 명사를 초청, 소통과 배움을 통해 지적 욕구 충족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 5월부터 7월까지 주제별 3회씩 명사와의 이야기 시간을 펼칠 예정이다.

5월 6일 시작하는 강연의 첫 주자로는 하브루타부모교육 연구소 김금선 소장이 나선다. 김 소장은‘심리’라는 주제에 맞춰 ‘하브루타 대화법과 독서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6월의 주제는 ‘철학’이다. 한국사마천학회의 김영수 이사장이 강사로 나서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지역주민과 만난다.

7월까지 이어지는 ‘문학’주제 강연에서는 나사렛대학교 문학치료학과 이봉희 명예교수의 ‘내 마음을 만지다-나를 찾아가는 글쓰기문학치료’를 운영할 예정이다.

7월 8일부터는 융합미술연구소 크로싱 대표인 이은화 작가가 ‘유럽 미술관 산책’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이번 강연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전북교육문화회관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신청와 당일 현장 신청으로 접수하고 있다.

전북교육문화회관 관계자는 “지역 독서문화 중심 기관으로서 학생과 학부모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인문학 강연을 준비했다”면서 “코로나19의 감염 예방을 위해 추후 강의 일정이 변동될 경우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공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태경 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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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아직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전 작년 겨울에 계획된 프로그램이다.
[내 마음을 만지다] 글쓰기문학치료 강의/워크숍에서는 코로나19의 시대에 맞춰  마음을 만지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일부 내용을 바꾸려고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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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정호승

 

아침마다 단단한 돌멩이 하나
손에 쥐고 길을 걸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누가 또 고요히
말없이 소리치면
내가 가장 먼저 힘껏 돌을 던지려고
늘 돌멩이 하나
손에 꽉 쥐고 길을 걸었다
어느날
돌멩이가 멀리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거리에 있는 돌멩이란 돌멩이는 모두 데리고
나를 향해 날아와
나는 얼른 돌멩이에게 무릎을 끓고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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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교수의 말(작품해설)

 

"The Lottery(추첨)"는 미국의 소설가 셀리 잭슨(Shirley Jackson)의 단편을 각색한 것이다. 추첨이라고 하면 모두들 복권당첨을 떠올릴지 모른다. 이 연극에서는 어떤 추첨을 하는 것일까?


녹음이 우거진 화창한 초여름 매년 6월 27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추첨행사를 치른다. 어린 아이들은 모여서 무대 한 쪽에 돌무더기를 쌓고 놀고 있다. 화기애애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추첨을 위해 광장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그들은 집안의 자질구레한 이야기, 농사이야기, 자녀 이야기를 나누며 써머즈(여름)씨의 주도아래 추첨절차를 밟는다. 그들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이 추첨 행사가 이 마을 뿐 아니라 모든 마을에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어왔던 아주 오래된 전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의 최고령자인 워너에 의하면 그 옛날엔 종이 쪽지 대신 나무 조각으로 추첨을 했으며 그 당시 사용하던 검은 상자는 다 낡아 부셔져서 그 나무를 이용해 다시 추첨상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옛날의 엄숙하던 의식은 다 사라져버렸다고 워너 노인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참석자 명단을 체크하고 추첨에 들어가려 할 때 테시가 앞치마에 급히 손을 닦으며 헐레벌떡 나타난다. 그녀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추첨행사를 놓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말한다. 이웃인 들라크르와 부인은 그녀를 온화한 미소로 맞아준다.


마침내 한 가족이 먼저 당첨이 된다. 바로 테시 허치슨네 가족이다. 그런데 돌연 테시는 공정한 추첨이 아니었다면서("It wasn't fair") 항의하기 시작한다. 테시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테시네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을 뽑는 추첨이 다시 이루어지고 어린 자녀들도 함께 참여한다.


가족 중에 이번엔 누가 당첨되었을까? 모두들 숨을 죽이는 가운데 한사람씩 자신의 종이를 펼쳐 보인다. 모두들 "테시야, 테시가 뽑혔어.."라고 외치고....그리고, 조금 전 가장 친근하게 웃어주던 들라크르와 부인은 무거워서 들기조차 힘든 큰 돌덩어리를 집어 들고 어린 아들 데이브도 남편도 모든 사람들이 돌을 하나씩 집어 드는데....


6월에 추첨을 하면 농사가 풍작(Lottery in June and corn will be heavy soon.)이라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이 희생자 만들기는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대 원시인들의 시대도 아니고 마녀사냥을 하던 시대도 아닌 데 아직도 이런 전통이 있는가라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악습에 대한 상징적인 비판도 아니고 특정 지방에서 특정시기에 행해진 희생양 만들기에 대한 우화도 아니다. 이 소설을 각색한 더필드는 셜리 잭슨의 가장 중요한 쟁점을 흐리고 너무 전통에만 치중한 점이 조금 아쉽다. 더필드는 원작에는 없는 서머즈의 누이 벨바를 등장시켜 인습을 공격한다.  하지만 셜리 잭슨은 극의 배경이나 극의 행동과 대사에 어떤 특정 시대나 지역을 배재하고 있으며 사실적인 분위기를 주고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경악시키는 인습이 사라지지 않고 내려오고 있다면 그 인습은 누가 만든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 그 인습이 존속하는 인간의 심리적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고.


셜리 잭슨은 "돌던지기"나 "희생양 만들기"의 인습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본질 속에 감추어진 악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풍성한 수확(여름), 집단의 이익, 다수의 행복을 위한 희생은 정당화 될 수 있다, 라는 사회적인 환상너머에 도사린 인간의 실존적인 추함을 고발하고 싶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돌”에 의한 희생자 만들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언어폭력일 것이다.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버테러에 의한 희생자들, 늘어가는 어린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의 희생자들, 그리고, 이 극에서 말하듯 공동체 속에서 행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폭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희생할 때는 헐레벌떡 뛰어오던 테시가 자신이 희생자가 되었을 때는 "부당하다고" 항거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 예수께 데리고 와서는 물었다. 율법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예수님은 어찌하겠는가 라고. 이때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이 순간 사람들은 돌연 남을 향해 있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되고 슬그머니 물러가기 시작했다. 이 행사를 놓칠 뻔했다고 놀라 뛰어와서는 그 돌이 자신에게로 향할 때는 “정당치 못하다”고 외치는 이 극의 테시처럼 타인에게 던지려면 돌은 기실은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 남아있던 유일한 분, 유일하게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자격과 권한이 있는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그리고 그 분은 이 모든 인간본질의 악을 해결하시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자신을 희생자로 추첨하셨다. "It was unfair"라는 한마디 항거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는 유형 무형의 희생제의를 끝내기 위해 오늘날 재판문학(trial literature)이 던지는 도전은 무엇일까? 르네 지라르(R. Girard)의 말대로 이제 더 이상 누가 유죄이고 누가 무죄인가 라는 질문과 재판을 잠시 그치고 왜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정죄하고 정죄 받는가 라고 반문해야 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c)2001BongheeLee



| 2010.01.04 23: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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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4 13: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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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 곳에
사람들은 급히 발자국만 남기고 떠나갔다
멋지다, 왁자지껄 감탄 한마디씩 하고 ...
몇몇은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서둘러 떠났다
늘 갈 길이 급했으므로
해지기 전 산을 넘어가야 했으므로
넘어가야 할 산은 늘 있으므로
돌아가야 할 곳이 늘 있으므로
발자국만 어지러이 남는 외딴 곳
바다도 먼 산도
어스름도
아름다움도
이젠
말이 없다
기다림이 사라진 곳
침묵.

 

--

photo by bhlee

 

MP

앱코 | 2020.06.14 00: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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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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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지 못하면 내일도 없다.
내일은 언제나 오늘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평생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라고 하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목표를 위해서는 현재를 인내하고 참아야한다는 것이 너무 깊이 학습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목표지향적이고 성과지향적인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늘 내일만 바라보고 현재를 건너뛰라는 듯했다.

그래서 Carpe Diem이라는 말을 한다. 오늘을 즐겨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즐기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순간임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내일을 위해서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을, 오늘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게 이 소중한 오늘이 단지 "내일의 전날"일 뿐인 것은 아닐까. 그 내일이 또 ‘오늘’이 될 텐데.

내일 쓰려고 오늘 쓰지 않은 편지는 영원히 쓰지 못할 것이다.
오늘을 살지 못하면, 나는 그저 영원한 귀가길에 있을 뿐 집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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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잡초다 -이문조]

 

  저 푸른 들판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잘난 장미도 백합도 아니다

  이름도 없는
  있어도 불려지지도 않는
  잡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각기 자리 잡아
  제 역할에 충실한 들풀

  그들이 들판을 푸르게 한다
  소리 없는
  그들이 세상을 지탱한다.

 

photos by bhlee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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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이봉희 교수

국내유일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담심리사

 

 

이 연필 속에 말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한번도 쓰인 적 없는, 표현된 적 없는,

생각한 적 없는 말들이

숨어있다.

어둠, 그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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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의 글: http://journaltherapy.org/3888

 

*이번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은 서울이 아니고 특별히 천안에서 모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모임 수칙은 아래 댓글을 반드시 확인해주십시오.

 

1. 일시:  6/12~7/3일 (4주 8회) 매주 금요일  1회) 오전 11시~12:30/  2회)12:45~ 2:15  

   <인텐시브이므로 주 2회 연속 진행함>

2. 장소:  천안  구체적 장소는 추후참여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함.

3. 준비물줄쳐지지 않은 A4용지 크기의 공책. 혹은 스케치북+ 12가지 사인펜이나 유성펜  

4. 신청:  <5명 내외로 선착순마감>

    이메일  journaltherapy@hanmail.net로 연락처와 함께 신청

   또는 블로그에 비밀댓글로도 신청가능함(단, 블로그에는 전화번호/이메일주소/성함을 남기시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반드시 비밀댓글로 해주십시오. 참고로 비밀댓글은 pc로 가능하므로 되도록 이메일로 보내주십시오.) 

5. 참고도서: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선정

         [분노치유] 이봉희 역 /학지사

         페니베이커의 [글쓰기치료] 이봉희역/학지사    

6. 참여관련 자세한 문의journaltherapy@hanmail.net 

7. 워크숍에 대한 참여자 인터뷰/후기의 한 예

   http://journaltherapy.org/2958  

   저서 [내 마음을 만지다]에 대한 리뷰는 http://www.journaltherapy.org/2779 -를 참고 

  이봉희교수 프로필은 공지사항 -연구소 소개를 참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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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글쓰기문학치료 연구소는 K.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CJT-Center for Journal Therapy)의 한국지소(CJT-Korea)로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수하거나 치료모임을 할 수 있는 합법적 자격을 가진 국내 유일한 연구소입니다. 

 

이 워크숍은 글쓰기치료/저널치료/문학치료에 대한 강의나 수업 또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닌 글쓰기문학치료모임입니다. 

모여서 차를 나누고 다과를 나누면서 좋은 시나 책을 함께 읽고 감상과 의견을 나누고, 글을 쓰고또는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것 같은 독서모임이나 독서코칭, 또는 교제를 위한 모임과는 다른 진지한 치료모임입니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 블로그에는 광고목적으로 워크숍 사진을 공개/활용하지 않습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의 워크숍:

국내유일의 미국 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이며 상담심리사(한국상담심리학회)인 이봉희 교수의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은 시치료와 저널테라피(그림저널 포함)를 활용한 치료모임입니다.  수 십 년간의 교수생활, 지난 13년간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다양한 연령층의 성인남녀, 고령자 어르신들, 그리고 언론전문인클럽, 의대학생, 가정의학과교수, 교사, 학부모, 장애뇌변병요양환자, 암환자 및 가족, 교정시설, 위기의 부부, 폭력의 희생자, 트라우마 생존자, 학교폭력,  등 수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과 수많은 개인 상담, 여러 연수와 학회 특강 경력을 가진 치료전문가가 주관하는 전문적 글쓰기문학치료모임입니다.  

*치료모임 프로그램은 이곳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 "이야기 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 이성복 

Journal Therapy | 2020.05.23 06: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워크숍은 안전과 위생수칙을 지켜며 소수로 모임을 갖습니다.
- 참여자들은 워크숍 시간 동안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셔야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합니다.
- 소독제를 준비하겠지만 각자 개인용 소독제를 지참하주시고 물/음료수도 혹은 휴식시간에 필요한 간단한 간식도 각자 개인이 지참합니다.
- 필기구 등을 절대 빌리거나 함께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마스크 미 착용시 그날은 모임에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Journal Therapy | 2020.05.25 11:1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강쥐맘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연락처가 들어있는 공개 댓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비밀글로 연락처(전화번호와 성함)를 올려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위 공지에 말씀드린대로 비밀글은 pc로만 가능한 점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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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갈피를 더듬는 바람의 환대- 이봉희

(ⓒ2016이봉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기지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나는 어떤 문학치료수업이든, 특강이든, 또는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이든 첫 날 이 시를 청중/학생/내담자들에게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상담시간엔 이 시를 읽어주지 못하지만 늘 같은 마음이다.)

 

내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과거, 현재, 미래,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일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책처럼 꼭꼭 덮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 갈피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바람도, 마음 갈피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조우이다. 그 바람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읽거나 쓰는 한 구절 글이나 시일 수도 있고, 치료자가 건네는 공감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글쓰기문학치료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이상하다. 왜 엉뚱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이상하다 왜 눈물이 자꾸 나지?’가 바로 그런 순간인지 모른다.

 

이 시는 나와의 만남이, 내가 진행하는 치료모임 때 읽은 시 구절이, 나의 경청이 바람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이다. 그것도 마음갈피를 그저 “더듬을 수 밖에 없다”는 치료자의 한계를 나는 늘 겸손히 그분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열고, 듣고, 읽어야한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김없이 울컥하고야 만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소망을 내가 만나는, 나를 방문한 분들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나 간절히 그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기에....

 

그리고 나는 권고한다. 이 글쓰기문학치료모임에서는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환대’해야 한다고. 내가 여러분을 만나듯, 여러분이 만나게 될 ‘방문객’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이 모임은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 즉 '나 자신'을 친절히 환대하는 모임이라고. 그것이 두렵고 아파서 마음갈피를 굳게 닫아두었다면 그래서 힘겹다면 나와 함께 조심스레 열어 대면하자고. 결국 신영복님은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일이 최고의 독서라 했는데 그 무엇보다 그 한 사람 중 먼저 나의 인생사를 경청하고 내 마음갈피를 펼쳐 읽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독서가 아닌가?

 

치료모임은 단순한 위로와 억압된 감정의 해소에서 더 나아가 자기관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자기 관찰이란 치료모임이 즐거운 교제나 독서토론, 주고 받는 칭찬, 맛난 음식, 웃음꽃 피는 모임이 아닌 진지한 심리치료 모임이란 말이다. 자기 관찰을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그 길을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치료기간에 자신의 추한 점, 상처, 절망과 실패, 수치심, 뜻밖의 얼굴이 들어나도 거부나 비난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것이 ‘친절한’ 관찰이다. 즉 내가 문학치료에서 글을 쓰면서 만나는 방문객---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고통이 내 모습의 한 부분일 뿐임을 믿어야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서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치료모임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를 두려움이라고 했고 그 두려움은 고통을 직면하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를 비유로 생각해본다.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두려워 꼭꼭 억압했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수많은 흉한 모습과 기억과 상처가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덮어버리고 억압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수치심과 불편함에 다음 시간에 모임에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한다. 그 상자 맨 밑에서 판도라에게 들려오던 작은 소리를.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요...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나의 고통스런 상처나 수치스런 경험들, 내가 불가항력적이었던 불행한 일들, 혹은 나의 실패가 나라는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남은 용기와,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삶의 의지와, 수 많은 상처에도 사람과 나 자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용기,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투지가  내 안,  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실현되고 싶어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참 나의 모습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믿는다. 내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마지막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오늘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담자가 만날 그 '방문객'을 기다린다--함께 환대할 준비를 하면서.....(ⓒ2016이봉희)

 

FB | 2019.08.25 2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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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Y
제가 안식월 가지면서, 나사렛교회를 방문해 말씀 전한 주일, 교수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그 마음의 환대가 생각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세월 참 많이 흘러가 버린 그 옛 시절 학교의 부족한 동료였던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
LBH
에궁. 아닙니다.
교수님이 떠나신 학교 빈자리가 늘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몇 번밖에 들은 적 없지만 매번 깊은 통찰과 성찰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설교에 공감하고 힘을 얻곤 했더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귀한 분에 대한 아주 작은 추억도, 어딘가 이런 분이 계시다는 기억도 제겐 문득문득 눈 둘 곳 없는 공허한 날 참 큰 힘이 됩니다.
늘 강건하세요 목사님
존재자체만으로도 | 2020.06.05 14: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났어요.
이렇게 진심으로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오고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심을 느꼈습니다.
내 마음의 갈피를 읽는 시간이 되길 소망하며 용기를
내어 제 자신을 깊이 만나서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싶습니다. 함께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감사드립니다.
journaltherapy | 2020.06.08 22:04 | PERMALINK | EDIT/DEL
진심으로 환영받는 마음이 드셨다니 참 다행이에요.
선생님의 자신도 그렇게 환영해주시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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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조각>- 나희덕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늘은 내가 밤길을 간다. 아이는 내가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저를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굉장한 걸 발견한 듯 손을 끌어당기며 외친다.
“엄마! 저기 보석이 있어요.”
아이는 골목 입구의 폐차장 쪽을 가리키며 그리로 달려가려고 한다. 그곳엔 외등의 불빛을 받아 무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부서진 차체에서 흩어져나온 유리조각일 것이다. 낮에 그 앞을 지나오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밟으면 위험할 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성주야, 빛난다고 다 보석은 아니란다. 저건 깨진 유리조각일 뿐이야. 잘못 만지면 다쳐.”
나의 말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에요. 보석이란 말이에요.”
아이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럴 떄 나의 어머니라면...... 어머니는 아마도 나에게 “그래, 보석이 맞아. 보석이 참 예쁘구나.”하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반짝이는 게 보석이라고 믿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어느 대낮 빛을 잃고 흙먼지 속에 뒹굴고 있는 유리조각의 초라함에 스스로 실망하기 전까지는, 또는 빛나는 그것에 손을 베이기 전까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밤에 개울을 건넌 적이 있다. 지금 내 아이가 그러듯이 어린 나도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으리라.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하나님 목소리를 들어봤어요?”
“그럼, 들었구말구.”
“어떤 목소린데요?”
“마치 저 물소리들을 합쳐놓은 것 같지.”
나는 물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거렸고. 또렷하지는 않지만 들릴 듯 말 듯 한 어떤 소리가 내 마음에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불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의 모습은 낮에 볼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머니 무릎 아래서 키워온 신앙은 이제 거의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주머니에 불룩하던 유리구슬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 것처럼, 신앙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맑은 눈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물가에 앉을 때면 그 많은 물소리 속에서 어떤 음성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아 귀기울이곤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이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빛나는 게 다 보석은 아니라고.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내 속의 빛 하나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음을 느꼈다.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깨달음만이 그 빛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유리조각이 불빛에 반짝이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한 장의 유리일 수 없도록 깨어졌기 때문이다. 깨어진 유리의 날, 그 속에는 제 몸을 잃어버린 슬픔이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슬픔들이 밤마다 되살아나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시절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왜 그리도 아름다웠는지, 모든 게 반짝이고 그래서 모든 게 보석처럼 마음에 와 박혔는지...... 그때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또 다른 슬픔의 빛 하나를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 밤길을 간다. 한 어린 영혼의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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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 2008.05.23 22: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bhlee | 2008.05.25 08:31 | PERMALINK | EDIT/DEL
음... 후유증이 은근히... 보내준 거 잘 받았어. 고마워ㅠㅠ
H이 차차 좋아질거야. 많이 기도하자.
논문 잘 마무리하고 심사도 잘 받기를. Sj도 논문이 마무리하고 있다고 편지왔던데. 다들 열정적인 모습, 자랑스럽다.
우리 Hy이 위해서도 늘 함께 기억해주고 기도하자. 방학하면 한번 뭉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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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Mangione - Feels So Good with vocals by Don Potter

Album '70 Miles Young' 2003 (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https://youtu.be/jo1CjBBqQPs

 

Chuck Mangione의 가슴에 파고드는 트럼펫 연주에 Don Potter가 노래를 하는 이 곡을 참 좋아했었다.

Don Potter의 첫 음성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었지.

어스름이 내려오는 저녁 시간과 럼펫 소리는 참 잘 어울린다..........

오랜만에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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