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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때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 살배기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生(생)!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 속에서 달려 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 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기)가 ―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마음의 수수밭], 창비,1994) ---------------------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시인의 후기: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한 것들과 생각해야 할 것들이 길이 되어주었다. 삶 속에는 왜 그런가요? 라고 물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다. 일년 내내 눈이 먼 채고 살다가, 가을이 되어 문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앞을 볼 수 있다는 숭어대해, 벚꽃이 필 무렵, 남풍이 부는 따듯한 날에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가을에, 제가 태어난 하구로 돌아가서 알을 낳고 죽는다는 은어에 대해, 땅 속에서 6년 동안 애벌레로 살다가 네 번째의 껍질을 벗은 뒤, 가장 날씨가 좋은 여름날을 택하여 다섯 번째의 껍질을 벗고, 땅 속을 뚫고 나와서야 날개 달린 한 마리 매미가 된다는 유지매미에 대해, 둥지가 없어 춥고 긴 밤을 떨면서 날이 밝으면 꼭 둥지를 지어야지 하고 밤새 다짐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그 따뜻함과 편안함에 취해 집짓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는 야명조라는 새에 대해, 나, 할말을 줄이려 한다. 다시는 아무 곳에나 내 이름을 내려 놓지 않으리라." ----- - 김사인 시인의 발문 중
___________________ 참 오랜만에 시를 올린다. 기력이 바닥이어서 랩 탑을 열지도 못한 채 지냈다. 게다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또 다시 나는 가해자가 차라리 편한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어린 딸이 대뜸 해 준 말이 기억이 난다-- "그거야 엄마가 피해자니까 그렇지." 천양희 시인의 신실한 싸움과 견딤을 읽는다. 언제나 내가 의지해야 할 것은 나의 두 다리 뿐. 나의 몇 가지 삶의 철학 중 하나인 wait and hope, 아니 희망 없이도 견디는 순전한 마음과 용기를 또 다시 지팡이처럼 붙잡는다. 다시 일어나 주어진 길을 반박자로 절둑이며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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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 강재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너무 어렵게 셈하며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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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곳에서- 오세영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쓸쓸하지 않은 따스함을 당신은 보셨는가?" - 허수경
---------------------------- "살아 있는 동안의 기록
읽히지 않고 들릴 때도 있다
한 장 한 장
오래오래
시간이 안쓰럽게 우리를 번역하고 있었다
비 오기 직전 구름 같은 우리의 마음을
마음의 생애를
…
그러다 언제쯤
당신과 나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
이 지구에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이 될 거다
아무도 건설해본 적 없는 국도를 걷는 아픈 고아,
꿈꾸는 귀가 듣는 발자국일 거다"
<허수경, "듣는 책" 일부>
허수경 시인은 말한다. "고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기댈 전통이 외부에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통이라는 것에 기대면 스스로를 베끼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위기감" 때문에 "시인으로서 나의 존재는 고아"라고.
"그 박하의 나날 동안 보라빛 박하꽃은 피고
숲 속에 들어간 벌 한 마리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니?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
나는 나에게 물어본다 박하의 나날 동안 나를 동반한 것은
박하와 나 뿐. 이 절대의 향기는 시간의 눈물 같은 것이었다."
<허수경, "박하의 나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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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1964~2018)
아까운 분. 지도 교수로 만났던 독일인 남편을 두고 암투병 중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났지.
찬란한 시를 쓰는 날들을 '박하의 나날'이라 고백하던 시인.
내가 이를 수 없는, 가 닿을 수 없는 깊이의 눈과 진솔한 고뇌와 쓸쓸함, 그리고 따스함의 언어를 가진 시인. 그 언어의 깊이는 시인의 말대로 어쩌면 꿈꾸는 귀가 되어야 들을 수 있는 발자국인지 모르겠다.
그녀의 시에서 나는 nostalgia라는 슬픔을 읽는다. (좀 더 근원적인 의미의 노스탈지아.)
"쓸쓸하지 않은 따스함을 당신은 보셨는가?
따스한 쓸쓸함을 당신은 보셨는가?
따스함이 쓴 쓸쓸의 안경
서럽고 따뜻하고 흐릿하다"
시인의 이 시구절을 그녀에게 되돌려 말해주며 말 건네본다.
쓸쓸하다 내가 말하는 것이 그 언어에 왠지 죄스러운 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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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잡초다 -이문조
저 푸른 들판을 보라 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이름도 없는 그들이 들판을 푸르게 한다
- 2009년 월간 <한비문학>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비오는 날 - 마종기>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오늘 빗속을 오래 걸었다 참 오래도 그리 걸어왔다 그래, 그래, 비는 비끼리 만나야
MP 080420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반 고흐, 빗속의 밀밭(1889)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김수영, "비"(1958) 일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르상티망(ressentiment) 르상티망은 라틴어의 접두사 "다시(re)", 그리고 "감정을 느낌(sentiment)"에서 온 말로 영어로는 resentment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이것은 철학, 심리학, 특히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개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르상티망을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약한 입장의 사람(약자)이 강자에 대해 갖는 질투, 원한, 열등감 등의 감정인 시기심과 연결지었다.
실존주의자들에 따르면, 이것은 좌절감을 느낄 때 그 책임을 좌절감의 원인이 되는 것에 부여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적대감"이다. "원인"을 제공한 것에 직면한 약점이나 열등감, 그리고 질투심은 그 원인을 공격하거나 부정하는 거부, 정당화의 가치 체계 또는 도덕성을 만들어 자신을 방어한다. 즉 이 가치 체계는 선망의 원천이 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판단함으로서 자신의 약점을 정당화한다. 그럼으로써 질투심을 느끼거나 상대적으로 분개한 사람이 자신의 불안정과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자아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게도 넘어질 권리가 있다 - 실패의 힘
어느 날 직장에 다니는 제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들어 마치 제가 먼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가지 실수로 요즘 많이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어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성과 위주로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에서 늘 뒤처지고 말아요. 모두가 인정받는 곳에서 저만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외로워요. 실수를 할까봐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모두들 어떻게든 잘하려고 열심인데,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존재로 어정쩡하게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먼지처럼, 오물처럼 말이에요. 요즘은 대체 내가 누구인지 혼돈이 와요."(글쓴이의 허락하에 사용함) 편지를 읽고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이 먼지처럼 작게 여겨지는 순간들, 누구나 살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실패자인 듯 우울하고 힘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그런 먼지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 먼지를 보는 일이 뭐 그리 감사할까 싶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먼지처럼 무시하고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 - 중략-
축복(benediction)은 라틴어의 ‘누군가에 대해 좋은(bene) 말을 한다(dictio)’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바로 타인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존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력이 되는 ‘좋은 말’이란, 나의 업적이나 재능, 혹은 성공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먼지 같은 나’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면, 즉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햇살을 받지 못한 새싹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나 씨앗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를 그대로 긍정하고 축복하기
헨리 나우엔(Henri Nowen)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이란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예스”라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를 인정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서로를 찬란하게 비춰주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햇살 같은 축복이 절실할 때는 자신이 먼지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축복의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입니다. 작은 문틈으로도 축복 같은 햇살이 찾아와 나와 함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햇살로, 또 내일은 내일의 햇살로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날마다 우리를 축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스”라고 긍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먼지처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마야 안젤루(Maya Angelou)의 시처럼 이렇게 말해보세요.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 중에서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자신에게 이렇게 격려해주세요. “끊임없는 시도, 끊임없는 실패, 그 무슨 상관인가.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훌륭히 실패하라.” 더불어 나를 긍정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교류를 나눠보세요. 적극적으로 그런 모임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내가 나를 긍정해주는 연습을 부단히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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