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에 해당되는 글 3건

  <새 - 마종기>

 

 비 오는 날에는, 알겠지만
  대부분의 새들은 그냥 비를 맞는다.
  하루종일 비 오면 하루종일 맞고
  비가 심하게 내리는 날에는
  대부분의 새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새들은 눈을 감는다.  
  말을 하지 않는 당신의 눈의 그늘,
  그 사이로 내리는 어둡고 섭섭한 비,
  나도 당신처럼 젖은 적이 있었다.
  다시 돌아서고 돌아서고 했지만
  표정죽인 돌의 장님이 된 적이 있었다.
------

창밖으로 늘 새들이 하는 말이 들리는 집이 참 감사하다. 
새들의 이야기가 늘 똑같지 않아서 더 그렇다. 
이해하지 못해도 느끼는 그들의 지저귐. 


내가 정말 좋아하는 K. 맨스필드는 “카나리아 새”라는 단편소설에서 

새의 노래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었지. 

자신이 언어를 찾지 못한 이야기,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카나리아 새는 노래하고 있다고. 

언제부터였을까? 
비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늘 비를 맞는 새가 생각났었다.  

갑자기 뚝! 기온이 떨어진 비 오는 날~ 

새들의 어제와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 듣기보다 느낀다는 말이 맞겠지. 
모든 언어가 참 불완전하고 부질없다고 느낄 때면 더 그렇다. 

사람사이에 이해하기보다 함께 느끼며 살고 싶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  
말이 너무 쉽고 빠른 세상을 느리게 걷는 날지 못하는 새가 된 기분일 때 더 그렇다. 

by bhlee


[겨울기도 1-마종기]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오래 먼 숲을 헤쳐 온 피곤한
상처들은 모두 신음 소리를 낸다
산다는 것은 책임이라구.
바람이라구. 끝이 안 보이는 여정.
그래. 그래 이제 알아들을 것 같다
갑자기 다가서는 가는 바람의 허리.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고
같이 없어도 같이 있는, 알지?
겨울 밤 언 강의 어둠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는 숲의 상처들.

그래서 이렇게 환하게 보이는 것인가.
지워 버릴 수 없는 그 해의 뜨거운 손
수분을 다 빼앗긴 눈밭의 시야.
부정의 단단한 껍질이 된
우리 변명은 잠 속에서
밤새 내리는 눈먼 폭설처럼
흐느끼며 피 흘리며 쌓이고 있다.


[상처 - 마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