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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Cherry trees in full bl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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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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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겹의 마음을 가졌기에 그 나무가 까닭 없이 불편하였습니까. 

멀리로 멀리로 지나쳐가며 혼자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 스스로에게 그 나무 탓을 했나 봅니다.

"내가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다 말하기 불편하였을까......

그러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여 나무를 멀리서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멀리서 멀리서 보면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그동안 눈이 부셔서 직시하기 불편했을까요?  그리고 그 여러 겹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합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아서라고, 하나의 꽃빛을 피우기엔 너무 많은 소망과 열정이 있어

켜켜히 마음을 피우고 있는 그 나무가 참 외로웠겠구나.......... 깨달았다 합니다.

 

그러다 또 생각합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아 외로웠을 것이지만 그 나무는 어쩌면 외로운 줄로 몰랐을 거라고.

그렇게 고고하게 홀로 제 열정을 따라 여러 꽃빛을 피우고 있는 그 나무는 외로운 줄도 몰랐을 거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 또 알았다 합니다. 

그 오랜 시간 당신은 그 나무를 떠나지도 못하고 멀리서 멀리서 계속 지켜보았군요.

외롭게 피워 올린 꽃잎들 다 흩어져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에야

그 나무 이제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려 겹 꽃잎 같은 마음 다 흩날아가버리고 맨 몸으로 선 그 시간에야

비로소 당신은 그의 그늘에 앉았습니다.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진 나무라 생각하던 그 나무 아래, 당신은 그제야 다가가 앉았습니다.

심심한 얼굴을 한 나무 곁에.

 

알 수 없네요.

그 나무가 심심한 얼굴을 하고 나서야 당신은 편하게 그에게 다가간 것인지

다가가 보니 외로운 줄도 몰랐을 듯,  열심히 겹겹이 피워내는 마음을 가진 그도 어쩌면 참 심심한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심심하고 외로워서 더 여러겹 꽃빛을 피워 제 맘을 감싸 입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당신은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이제, 어둠이 머지않아 내려올 소리를.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하십니다.

그 몇 겹의 색깔을 읽어 보셨을까요. 

까닭 없이 부담스러워 멀리서 멀리서 떠나지도 못하고 지켜만 본 당신,

당신도 그 나무처럼 외로웠나요?
어둠이 내려오는 그 시간에야 그를 통해 알게 된 당신의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저녁 당신이 찾아와 앉았던 그 나무, 여려 겹 꽃잎 다 흩어 보낸 그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수천의 꽃잎이 비명도 없이 떨어져 날아와 내 마음에 쌓입니다.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

 

<유리조각>- 나희덕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늘은 내가 밤길을 간다. 아이는 내가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저를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굉장한 걸 발견한 듯 손을 끌어당기며 외친다.
“엄마! 저기 보석이 있어요.”
아이는 골목 입구의 폐차장 쪽을 가리키며 그리로 달려가려고 한다. 그곳엔 외등의 불빛을 받아 무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부서진 차체에서 흩어져나온 유리조각일 것이다. 낮에 그 앞을 지나오면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밟으면 위험할 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성주야, 빛난다고 다 보석은 아니란다. 저건 깨진 유리조각일 뿐이야. 잘못 만지면 다쳐.”
나의 말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에요. 보석이란 말이에요.”
아이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럴 떄 나의 어머니라면...... 어머니는 아마도 나에게 “그래, 보석이 맞아. 보석이 참 예쁘구나.”하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반짝이는 게 보석이라고 믿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어느 대낮 빛을 잃고 흙먼지 속에 뒹굴고 있는 유리조각의 초라함에 스스로 실망하기 전까지는, 또는 빛나는 그것에 손을 베이기 전까지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밤에 개울을 건넌 적이 있다. 지금 내 아이가 그러듯이 어린 나도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으리라.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하나님 목소리를 들어봤어요?”
“그럼, 들었구말구.”
“어떤 목소린데요?”
“마치 저 물소리들을 합쳐놓은 것 같지.”
나는 물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거렸고. 또렷하지는 않지만 들릴 듯 말 듯 한 어떤 소리가 내 마음에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불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의 모습은 낮에 볼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어머니 무릎 아래서 키워온 신앙은 이제 거의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주머니에 불룩하던 유리구슬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 것처럼, 신앙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맑은 눈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물가에 앉을 때면 그 많은 물소리 속에서 어떤 음성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아 귀기울이곤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아이에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빛나는 게 다 보석은 아니라고. 어머니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내 속의 빛 하나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음을 느꼈다.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현실에 대한 씁쓸한 깨달음만이 그 빛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음을 말이다.
유리조각이 불빛에 반짝이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한 장의 유리일 수 없도록 깨어졌기 때문이다. 깨어진 유리의 날, 그 속에는 제 몸을 잃어버린 슬픔이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 슬픔들이 밤마다 되살아나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시절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은 왜 그리도 아름다웠는지, 모든 게 반짝이고 그래서 모든 게 보석처럼 마음에 와 박혔는지...... 그때의 빛은 잃어버렸지만 또 다른 슬픔의 빛 하나를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 밤길을 간다. 한 어린 영혼의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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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정작 눈부신 보석보다는 제 슬픔의 빛을 빌려 살아가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