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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수)

고달픈 심신 치료법 ‘저널테라피’ 를 아시나요

일요일 낮 서울 청량리 한 교회의 세미나실에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앉았다. 이들 앞엔 색연필, 도화지, 일기장이 놓여 있다. ‘저널테라피’를 체험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마음에 드는 색깔의 색연필을 골라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린다. 형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낙서다. 그다음 치료사가 낙서에서 떠오르는 형상을 찾아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꽃, 어떤 이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냈다. 이 낙서에 대해 각자 스스로 감상문을 쓴다. 참석 경험이 적다는 한 참가자가 당황하자 치료사가 “생각을 하려 하지 말고 펜 가는 대로 순식간에 써내려 가라”고 주문한다.

그리고는 그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을 또 쓰게 했다.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글을 직접 읽고 분석하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 속에서 때론 웃음, 때론 울음이 쏟아졌다. 논리나 이치에 맞는 글은 아니지만 감정을 충실히 담아낸 글이다. 글 쓴 당사자는 자기 글을 읽어보며 조금씩 내용도 감정도 변하는 걸 경험한다. 부치지 않고 쓰기만 한 편지 한 장, 감정 흐르는 대로 쓴 일기 한 토막이 놀라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글쓰기를 이용해 심신의 병을 치유하는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0년께 국내 의과대학 등에서 도입됐지만 잠잠하다 최근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보급, 응용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최근 ‘의사문학제’란 이름으로 이와 연관된 행사를 진행했다.

저널테라피는 일종의 문학치료다. 마음속이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하면 마음이 진정되던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쯤 갖고 있게 마련이다. 저널테라피는 그런 원리에 착안해 지난 60년대 미국에서 자기계발과 자가치료의 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정신과 상담이 보편화된 미국이지만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국내에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주 사용하는 까닭에 문학치료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미국 공인 문학/ 저널치료 전문가인 이봉희 나사렛대 교수(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소장)는 “저널테라피는 의학적.임상적으로 검증된 기법으로서 미해결된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해결받을 뿐 아니라, 이를 익혀 습관화하면 일생 동안 여러 작은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에 보고된 저널테라피의 효과는 몸과 마음의 병을 아우른다. 영양주사로 연명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경우 앓던 우울증이 호전됐고, 류머티즘과 천식환자들의 질병 심각도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의학전문지 자마(JAMA)에 소개된 바 있다.

이봉희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사례가 많다. 미혼 여성 안모(47) 씨는 27년간 어머니와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살았다.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싶은 심보로 결혼도 하지 않고 머리도 자르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런 중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뿐만 아니다. 어두웠던 안색도 밝아지고 그간 겪던 탈모 증세도 사라졌다. 심지어 이마 주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1년 뒤엔 아토피 피부염도 사라졌다.

30대 여성 직장인 김모 씨는 직장상사의 강압적이고 일방적.비협조적인 처사 때문에 두 달이 넘도록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직장상사와의 감정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이 밖에도 국내에서 탈모, 변비 증상이 개선되거나 금연, 금주에 성공하는 등 다양한 치유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저널테라피는 애초에 자가치료로 개발된 만큼 누구나 혼자서 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날짜를 기록하며 쓰는 것이 규칙 정도다. 하지만 일기조차 남을 의식하고 써온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현실이다. 이때 관련 자습서적이나 저널테라피 전문가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뢰인이나 내담자들이 마음속 감정을 편안하게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여러 문학작품, 특히 시를 사용하여 글쓰기 주제를 던져주거나 가장 효과적인 저널기법 등을 조언해준다.  일기,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반응을 글로 쓰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을 향한 보내지 않는 편지, 혹은 대화기법 저널, 목록, 순간포착, 등 글쓰기 형식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뀐다.

그렇다고 저널테라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 대상이며, 전문적인 의학치료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예컨대 저널테라피가 혈압을 낮춘 사례는 보고되고 있지만 고혈압 환자가 꾸준한 관리와 약 복용 없이 저널테라피만으로 혈압을 낮출 생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심각한 우울증이 있다면 저널테라피를 먼저 시도할 게 아니라 정신과 상담이 우선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저널테라피 등 문학치료가 일반인 뿐 아니라 정신과 환자와 약물중독자, 교도소 수감자 등에게 폭넓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경쟁과 성과 위주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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