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마법의 옷장에서 현실로 -〈셰도우랜즈>속의 영혼의 동반자
저자 : 이봉희 ( Bong-hee Lee ) 발행학회 :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발행정보 : 한국문예비평연구 13권 발행년도 : 2003 pp. 289-314
I 아텐보로 감독의 영화 <셰도우랜즈 Shadowlands>(1993)는 작가이며 영문학 교수, 그리고 평신도 신학자인 C. S. 루이스(Lewis, 1898-1963)가 50이 넘은 나이에 만난 15살 연하의 유태계 미국인 조이 그래샴(Joy Grasham)과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상실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어떤 평자는 "옥스포드 스타일의 <러브스토리>"라고 평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과 사랑의 상실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1) 그 뿐 아니라 작가가 갖는 두려움, 즉 현실이 상상, 혹은 관념의 세계를 침입해 들어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적인 확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2) 또한 고통과 행복, 지성과 감성, 환상과 현실, 세상의 고통과 신의 사랑, 영국과 미국의 대립 등 여러 대립들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내걸진 않았지만 이 영화 속에 나타난 조이야 말로 페미니스트들이 눈 여겨 볼만한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페미니스트들이 지양하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즉 부조리하고, 부당한 것 같이 보이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의 당당함, 독립심, 주체성이 도전적일지라도 결코 반항적이거나 호전적이지 않게 한 인격체 속에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셰도우랜즈>에서 말하는 영혼의 동반자(소울 메이트soul mates)의 의미를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사랑 속에서 보여주는 주제중 하나인 환상(관념)과 현실(경험)의 관계와 연관지어 논하고자 한다. 영혼의 동반자로서의 잭과 조이의 만남은 그림자 세계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환상(문학/상상의 세계)과 현실(경험)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성격의 차이를 짚어보면서 두 사람이 대변해 주는 두 세계의 의미를 살펴보고,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궁극적으로 환상(문학)과 현실의 소울 메이트로서의 이상적인 만남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II 영화의 처음 몇 시퀀스3)는 관객들에게 루이스를 소개하면서 조이를 그의 세계 속으로 연결 시켜주기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회색 빛 속에 옥스퍼드대학촌의 고풍스런 모습이 성가대의 합창을 배경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된 첫 장면은 곧이어 식당으로 이어진다. 옥스퍼드의 전통대로 학생과 교수가 가운을 입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루이스(안소니 홉킨스)의 동화책,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잭(실제 루이스는 어린 시절 이미 클라이브 스테이플즈(Clive Staples)라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잭으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한다.)이 어떻게 동화책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음 장면은 회색 빛 안개 속에서 루이스와 형 워니(에드워드 하드윅)가 집으로 오면서 여성 독자가 보낸 편지이야기를 한다. 두 사람 다 쉰을 넘긴 나이지만 독신이다. 그리고 다음날 술집에 교수들이 모여 또 다시 루이스의 동화책을 놓고 빈정거린다. 교목은 마법의 나라로 가는 문이 있는 옷장이 교회의 상징이 아니냐며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자 루이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한다: "그냥 마법일 뿐입니다. 자, 보세요." 그러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일어나 교수들 앞에서 옷장 문을 열고 마법의 나라로 들어가는 어린아이의 역할을 해 보여주다가 웃음을 참고 있는 교수들의 반응에 무안한 듯 황급히 자리를 뜬다. 교수들은 서로 바라보며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린다. 다음 시퀀스는 루이스가 전 장면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을 약간의 로우 앵글로 잡아서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즉 청중의 눈으로 바라보는 루이스는 전 장면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당당하고 약간은 도도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신에 찬 연설가이다. 강의 내용은 인간이 당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당한 고통과 신의 섭리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일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버스사고로 수많은 청년사관생도들이 죽어갔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느냐는 신의 선함과 뜻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편지를 인용하면서 연설을 한다:
그 날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왜 그 사고를 막아주지 않으셨지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 아닌가요?...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이게 그분의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예"라면 어떨까요?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특별히 원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시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남을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원하십니다.
루이스는 오늘날도 설교 중에 흔히 인용되는 "고통은 귀머거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을 한다. 고통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신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돌을 쪼아 완벽한 형상의 조각품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라고 확신에 찬 시선으로 청중을 둘러보며 말한다. 카메라는 그의 말에 감동 받고 매료되는 청중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여러 팬들의 편지들 속에서 조이의 편지를 읽는다. "당신 꿈을 꾸었어요. 당신도 내 꿈을 꾸시나요?"라고 하는 다른 여성 팬들과 달리 조이의 편지는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다고 잭은 형 워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좀 다른 것 같아. 마치 나를 알고 있는 듯이 편지를 쓰거든... '저는 당신이 마법에 걸린 어린 아이인지 아니면 마법을 거는 마술사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썼어.
이런 조이의 편지에 관객은 지금까지 살펴본 앞의 두 시퀀스에서 나타났던 잭의 두 가지 얼굴, 즉 마법의 옷장 문 앞에 선 어린아이의 역을 해 보이던 잭의 아이 같은 천진한 얼굴과 청중들 앞에서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며 그들을 매료시키던 자신만만한 마법사 잭의 두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꿰뚫어 본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조이가 안락한 고치 속에서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삶을 살고 있는 루이스의 세계에 침입해 들어오게 될 것을 암시함으로 시작되고 있다. 편지에서 시작한 조이와 루이스의 만남의 과정은 그녀가 옥스퍼드로 찾아오면서부터 이 영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처음에는 호텔 커피샵에서 시작하여 웅장한 옥스퍼드 대학건물, 어려서부터 살아온 루이스의 집, 책들이 성곽을 이루고 있는 서재, 그리고 여자 방문객은 찾아 온 적이 없는 학교 연구실로, 점점 사적인 공간으로 이동해 가면서 결국 조이는 단단히 방어하고 있던 잭의 내면의 세계와 그가 숨어있던 마법의 옷장 속까지 찾아가게 된다. 잭의 마법의 옷장에는 상실된 어린 시절이 억압되어 환상 속에 숨어 있었다. 어떻게 조이가 루이스를 옷장 밖으로, 유아방 밖으로, 관념적 상상의 세계 밖으로 이끌고 나오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만남을 과정을 차례차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이스와 조이(데브라 윙어)의 첫 만남에서부터 루이스는 조이의 도전 앞에 당황한다. 조용한 호텔 커피샵에서 큰소리로 "루이스라는 분 계세요?"라고 자신을 찾는 조이에게 루이스는 초등학교 교실의 학생처럼 수줍게 손을 든다. 그러나 그런 과감한 행동과 달리 그녀는 섬세하고 민감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자기가 대중적인 유명인사가 아니라는 말에 그 많은 책을 쓰고 연설을 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모른 채 그냥 내버려두길 원하는가 라고 허를 찌른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루이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곧 알아차리고는 그녀의 과장된 행동은 두려움과 긴장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음을 고백한다:
조이: [긴장감과 싸워 이겨보려는] 제 행동이 좀 유치하긴 하죠. 금방 괜찮아 질 거예요. 잭: 너무 서두를 건 없어요. 저도 멋진 싸움을 좋아하니까요. 조이: 그래요? 잭: 네. ....놀랍다는 표정이시네요. 조이: 아니, ... 아니에요. 좋죠, ... 멋진 싸움을 좋아 하신다니... 멋지시네요. 잭: 그런데요? 조이: 그런데 당신이 마지막으로 싸움에서 진 게 언제였지요?
잭이 다른 사람과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월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대등한 멋진 싸움을 좋아한다고 말하니까 조이가 날카롭게 지적해 주는 말이다. 아이러닉하게 이 짧은 첫 대면 장면에서부터 이미 두 사람은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넘기는 언어의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 (뒷부분을 제외하고) 나타나는 두 사람의 언어의 대결은 셰익스피어이래 금세기 최고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4) 루이스는 어린 조이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도전을 받으면서 당황해 한다. 잭이 한번도 옥스퍼드의 가장 높은 교회 탑에 올라가 5월 첫날 벌어지는 옥스퍼드의 전통적인 해맞이축제를 구경한 적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눈을 감고 사느냐"고 허를 찌르는 조이 앞에 그는 할말을 잃고 만다. 확실히 조이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열광하는 팬들, 청중들과는 다른 여자이다. 잭(루이스)은 조이와 아들 더글라스(죠셉 마젤로)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워니는 그녀가 못마땅하다. 첫 만남에서 그녀의 당돌한 지성과 통찰력에 감동을 받았음에도 워니가 그녀를 불신하고 계속 냉소적인 것은 외견상으로는 조이가 결혼한 여자라는 점과 미국인이라는 점에 대한 미묘한 편견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오래된 성, 안전한 세계를 침입 당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조이의 어린 아들 더글라스는 또 다른 잭의 팬, 동화 나니아 이야기의 팬이다. 루이스는 더글라스의 나니아 책표지에 "마법은 끝나지 않는다" 라는 사인을 해주자 조이는 "만일 그렇지 않거든 고소해라"라고 말한다. 조이는 루이스에게 자신의 시, "마드리드에 내리는 눈(Snow in Madrid)"을 낭송한 뒤 자신이 전쟁이 일어났던 그 곳에 직접 가보지 않고 이 시를 썼다고 말하고 이로 인해 루이스와 조이는 직접적인 경험(고통의 체험)과 간접 경험인 독서(안전한 대리경험),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대한 의견의 대립을 보인다:
잭: 개인적인 경험이 전부는 아니지요. 조이: 제 생각은 달라요. 제 생각엔 경험이 전부예요. 잭: 그럼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겠군요. 조이: 아니요. 시간낭비는 아니지만 독서는 안전하지 않나요? 책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으니까요. 잭: 누가 상처를 입고 싶어하겠어요?
잭은 고통을 직접 체험한다고 더 진실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통은 신의 확성기라는 자신의 연설 내용을 반복하지만 조이는 이미 그 말을 다 외고 있다. 이렇게 조이는 잭의 내면세계를 속속들이 여행한 사람인 듯 하다. 그렇기에 그녀가 잭의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 누에고치 속에서 그를 해방시키고 날아오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치 밖의 세계는 잭의 말대로 위험한 곳이다. 그 곳은 마법이 끝난 세상, 옷장 밖의 세상, 어른의 세상인 것이다. 잭은 조이를 책이라는 벽돌로 든든히 지은 안전한 세계인 서재로 안내한다. 그러나 그곳도 조이 앞에선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벽에 걸려있는 [황금 골짜기] 그림은 액자로 상징되는 틀 속에 갇힌 루이스의 관념의 세계처럼 보인다. 하늘에서 황금빛 빛이 비치고있는 골짜기를 보자 조이는 "이 곳, 실제로 있는 곳인가요?"라고 묻는다. 그 그림은 어린 시절 유아 방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잭의 곁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어릴 때는 그곳이 실재하는 곳이 아니라 천국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어느 날 길모퉁이를 돌면 문득,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문득, 그곳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한다. 실재하는 장소이지만 잭은 그곳에 가 본 적이 없다. 황금골짜기가 실재하는 장소인가 묻는 조이의 질문 때문인지 아니면 유아 방에 걸려있던 황금골짜기 그림이 기억을 상기시킨 것인지, 잭은 갑자기 깊이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고는 자신이 조금 전 대답을 회피했던 조이의 질문, 즉 진정으로 아픔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바로 더글라스와 같은 나이인 9살,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나이였지만 아직은 그것을 직면하거나 수용하고 대처할 수는 없는 어린 나이에 경험한 첫 고통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처음 겪을 때 가장 힘들지요...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나버린 것 같았어요." 조이는 죽음 이후의 만남(죽음 후의 세계인 천국)에 대해 묻지만 잭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뿐이라는 말을 한다. 이런 잭의 회상은 후에 어머니의 죽음 앞에 보이는 더글라스의 반응을 미리 암시해준다. 치통으로 아파 울면서 엄마가 와주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회상하는 잭에게 조이는 "복도에서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여전히 엄마는 오시지 않았지요?"라고 잭의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실감, 그리고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에 공감해준다. 조이는 이런 모습은 잭에게 도전이상의 위로를 준다. 그의 주변의 모든 이들이 완벽한 학자이며 연설가이며 작가인 잭의 아픔이나 연약함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의 당당한 겉모습에만 존경을 보내고 혹은 경계하거나 일방적으로 경청하는 반면, 조이는 연약할 수 있는 인간 잭의 모습을 바라보고 진정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이다. 조이는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불러일으킬 반응을 감지하고 앞서 나가는 예민한 통찰력과 섬세한 배려의 소유자이며 자아 반성적 인물이다. 이에 비해 오히려 자기 확신과 논리의 성에 갇혀 정체된 잭은 조이 앞에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사물을 분석하고 삶의 고통과 그 수수께끼를, 심지어는 신의 마음까지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날카롭고 차가운 지성은, 그리고 경험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인 상상력은, 조이의 날카롭지만 따뜻한 통찰력과 다르다. 조이의 통찰력은 오히려 삶의 한 복판 전쟁터에서 겪은 "자신에 대한 회의, 두려움, 고통, 공포" 그리고 그에 따른 자아반성의 결과로 생긴 것이며 아픔을 겪은 사람이 그 대가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실제인물 루이스는 『내가 목격한 고통』에서 아내 조이를 딸이자 어머니이며, 전우였다고 회상하는 것이다.5) 영화는 차차 '방문객'인 조이의 역동성에 의해 앞으로 나가게 된다. 잭은 조이를 크리스마스에 다시 집으로 다시 초대한다. 이번에는 기차역까지 마중 나간 잭의 행동에서 그가 조이에게 맘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장이 주최하는 대학 성탄파티에 잭과 함께 참석한 조이는 모든 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앞에 당당하다. 그 동안 간간이 보이던 영-미의 대립의 주제가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이 상아탑의 파티이다. 그는 잭의 동화책을 "자기들의 우정을 시험하는" 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크리스토퍼 라일리(죤 우드) 교수에게 그 책이 마술처럼 경이롭다고 말한다. 라일리는 잭에게 "축하하네, 잭. 자네 영혼의 짝을 만난 것 같군."이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은 라일리 교수의 의도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적절히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조이는 노골적으로 미국인과 여자를 경멸하는 라일리에게 멋진 언어의 펀치를 날린다:
라일리 교수님, 알고 계신 대로 저는 미국에서 왔어요. 문화가 다르면 말하는 법도 다르지요. 아마 그 점에 대해 교수님이 절 좀 도와 의문을 풀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일부러 상대방을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그런 어투로 말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어리석으신 건가요?
이처럼 조이는 강하고 정직하며 용감한 사람이다. 알코올 중독자이며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과 그의 새로운 여자관계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도망 온 가난하고 불행한 여자, 잭이 묘사하듯이 유대인이며 여자이며 미국인이며 이혼녀라는 핸디캡을 가진 그녀의 이런 당당함은 거친 운명 앞에서의 당당함과 용기인 것이다. 실제 인물인 루이스도 조이를 모든 남자친구에 맞먹는 친구였다고 말하고 있다.6) 잭은 조이가 남편을 떠나 아이와 함께 먼 이국에서 성탄을 보내는 이유가 불행한 결혼생활 때문임을 알게 되고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오솔길을 따라 멀어져 가는 조이의 차를 바라보며 루이스가 뒤늦게 망설이듯 시도해 보는 그러나 곧 포기하고 마는 굿 바이 동작은 마음 빗장을 붙잡고 두려워하는 루이스의 마음을 표현해주는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이다. 영화에서 거의 대부분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루이스의 표정을 잡아 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장면에서는 얼굴 표정 대신 뒷모습을 앵글을 서서히 높여가며 보여준다.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고 서있는 머리가 벗어진 두 형제의 뒷모습과 허망하다 해야할 지, 아니면 고통스럽다고 해야할 지 모를 제스츄어, 그리고 오른쪽 프레임 옆으로 두 사람을 옮겨 화면에 담은 마른 잎들이 몇 개 뒹구는 집 앞길의 풍경은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루이스의 내면의 풍경을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후에 같은 길로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영구차를 떠나보낸다.) 조이가 떠난 후 루이스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그는 여전히 고통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보다는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줄 알기를 원합니다"라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의 장난감이 모든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아 방이 전 세계인줄 알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우리를 그 유아 방에서 쫓아내어 다른 이들의 세계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한 어린아이의 세계에서 쫓아내는 그 무엇은 바로 고통입니다."
루이스의 설교에 의하면 성장한다는 것은 사랑을 배우는 것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나만의 세계에서 다른 이들의 세계로 고통을 통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난감으로 상상하며 만족하는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세계에서 다른 이들의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그의 연설은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하다. 이제 C. S. 루이스는 예전처럼 안전히 옷장 속에 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삶이 예전의 평안함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허전함을 감출 수 없는 잭은 그러면서도 아직 자신이 조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강연장 수많은 청중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아내고 그녀에게 다가갔을 때 기껏 그가 할 수 있는 말, 그 나름대로의 고백은 "당신 생각을 늘 했어요. 그래요, 늘 당신생각을 하며 지냈어요..."를 반복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지금까지의 탄력과 재치와 역동성을 잃고 겉돌고 어긋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스가 두려움에서 진실을 회피하고 자기 방어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잭이 친구의 우정으로 영주권이 필요한 조이와 서류상의 결혼을 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잭의 자기방어 심리를 잘 보여준다. 반지도 없는 결혼식을 형식적으로 마친 후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기차시간 때문이라며 퍼붓는 비속에 조이를 남겨두고 급히 가버리는 그의 행동은 형 워니 마저도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안전한 환상과 관념의 세계가 흔들리는 위험을 감지한 루이스의 과장된 자기방어일 뿐이다. 이런 고집스런 방어 벽 앞에서 조이는 마침내 지치고 만다. 옥스퍼드의 졸업식장에서 조이의 말에 딴전을 피우며 거리감을 두는 그의 우월감을 견딜 수가 없어진 조이는 자신에 대한 회의도 두려움도, 아픔도 공포심도 가져본 적이 없이, 아무에게서도 도전 받은 적 없이, 항상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경지에서 담을 쌓고 군림하는 루이스에게 자신은 친구가 될 수는 없다며 방을 나가버린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경우도 그들을 지켜본 친구들은 루이스가 일찍부터 조이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사랑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남아있는 나날들(The Remains of the Day)>에서 보여준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는 연기뿐 아니라 그 든든한 자제력의 벽이 균열되어 새어 나오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의 누출을, 때로는 더글라스보다 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노학자의 모습에서부터 자아를 발견해 가면서 부드럽고 온화하게 변화하는 루이스의 내면을 드러내는 표정변화까지를, 절제된 연기로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영화의 한 장면도 한 대사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그 "고통스런 느림" 속에서 변화되는 잭의 모습, 마침내 두려움을 끌어안고 인정하게 되는 내면의 성장과 사랑의 과정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조이가 암으로 쓰러지고 마침내 또 다른 상실의 고통 앞에 서서야 비로소 잭은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그의 눈빛과 표정도 무장을 해제하고 올바로 조이를 바라본다: "그거 아세요? 당신 달라졌어요. 이제는 날 제대로 바라보시는 군요."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 상실에 대한 내면의 두려움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잭이 죽음을 앞에 둔 조이에게 청혼을 할 때 조이와 함께 관객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잭: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 바보 같고 겁에 질린 늙은이와 결혼해 주겠소? 조이: 이번 한 번 만이에요.
조이는 잭을 관념과 환상의 옷장에서 경험과 현실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마지막 여행을 하게 된다. 기적처럼 병세가 좋아진 조이는 잭과 함께 처음으로 5월 첫날 해맞이 축제도 구경하러 가고 액자 속의 천국인 '황금골짜기'를 찾아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 여행은 잭에게는 세상 밖 경험의 세계로의 입문과 같다. 잭은 호텔 룸서비스에 진을 시키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쩔쩔맨다. 잭이 어린 시절 천국인 줄 알았다는 황금골짜기는 사람들의 실수로 잘못 지어진 이름이었다. 그곳은 태양이 아름답게 비치는 곳이 아니라, 날씨가 늘 궂은 장소이다. 잭은 약속의 땅은 고통이 없는 곳이라는 것은 동화적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잭은 그곳을 찾아가면서 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잭: 나는 물론 우리가 이미 거기에 와 있는 걸 알아. 조이: 어디요? 잭: 거기 조이: 아, 거기요. 그래요.
잭은 그 곳에 가보지 않아도 이미 조이로 인해 "그 곳"에 와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잭이 생각한 종류의 "행복"과 달리 조이가 생각하는 천국과 행복은 비가 오는 황금골짜기처럼 직시해야 하는 고통과 현실이다. 두 사람이 황금골짜기에서 소낙비를 피하고 있는 동안 잭은 다시 한번 자신이 도달한 행복(황금골짜기)에 대해 말한다. 이제는 다시 길모퉁이를 돌거나 산을 넘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미 그곳에 와 있으니까. 그러나 조이는 잭에게 "비가 그치기 전" 그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자신은 죽어가고 있으며 잭이 지금 생각하는 '황금빛'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닐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과 고통은 관념 이상의 현실이며 그 현실 속에서 고통과 행복은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처럼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사랑과 행복을 택할 때 고통은 더불어 선택되는 것이며 그러한 현실을 용감히 직시하고 모험하고 선택하고 경험해야지 안전히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잭: 나는 더 이상 다른 곳엔 가고 싶지 않아.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도, 다음 번 모퉁이를 돌아보거나, 또 다른 언덕을 넘거나 하지도 않을 거야. 여기 우리가 이렇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조이: 그게 당신이 말하는 행복이군요, 그렇죠? 잭: 그래. 조이: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잭. 잭: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 같이 있는 동안만은 그런 생각으로 그 행복을 깨뜨리지 맙시다. 조이: 행복을 깨뜨리는 게 아니에요. 더 진실 되게 바라보는 거죠. 비가 그치고 돌아가기 전에 곡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잭: 꼭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조이: 난 죽을 거예요. 그 후에도 난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잭: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내 걱정은 하지 마오. 조이: 아니요. 그냥 견디며 살아가는 거 말고, 당신 그 보다 잘 지낼 수 있어요. 내 말은, 그 때 당신이 겪는 고통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이에요. 그게 정당한 거죠.
조이가 죽은 후 잭은 그 동안 그가 의지해오던 세계에 대한 엄청난 회의에 빠지게 된다. 청중들 앞에서 확신에 차서 말했던 고통의 목적과 의미는 경험의 도전 앞에 속수무책이다: "이제 보니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이야. 명분도, 목적도, 양식도, 뭐도 없어. 아무것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이젠 알겠어.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까... 경험은 잔인한 선생이지만, 확실히 가르쳐 주는군. 맙소사. 경험이 가르쳐 주어."7) 이제 잭은 다시 어린 시절처럼 고통 앞에서 도망쳐서 안전한 옷장 속으로 숨어 들어갈 것인지 어떤지 영화는 그림 같은 장면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어른 잭이 더글라스와 함께 다락방 옷장 앞에 나란히 앉아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마법의 옷장 앞에서 기적을 바라는 마지막 시도라고 보이기 보다 열리지 않는 마법의 문을 인정하는 절망으로 보인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잭(더글라스)과 현재의 잭은 마법의 옷장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되어 다시 예전처럼 강의를 시작한 루이스는 체드윅이라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혹 누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위해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면?" 학생 체드윅의 대답은 조이를 만나기 전 잭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체드윅이 "경험한 적은 없지만 책에서 읽은 사랑에 대해" 열심히 논하는 동안 루이스는 창 밖을 바라다보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보이스 오버 나래이션으로8) 이야기한다:
상실의 고통이 이렇게 아프다면 왜 사랑을 할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답이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삶밖에는. 그 삶 속에서 내게는 두 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어린아이로 한번, 그리고 어른으로 한번. 어린아이는 안전함을 택했고 어른은 고통을 선택한다. 지금의 고통은 그 때의 행복의 한 부분이다. 그게 정당한 거다.
III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 잭을 방문했을 때 더글러스는 우선 다락방을 찾는다. 그 곳에서 낡은 옷장을 발견하고는 달려가 그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본다. (그 옷장은 나니아 동화책에 그려진 마법옷장 그림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있다.) 어린 더글러스에게는 동화책의 세계와 현실세계가 구분되지 않는다. 두 번째 잭의 집을 방문한 더글라스는 또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가 본다. 그는 부모님의 불화와 아버지의 폭력, 타국에서 보내야하는 성탄절 등 모든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조심스레 옷장 앞으로 다가가 낡은 코트를 헤치고 옷장 벽을 두드려보지만 마법의 문을 열리지 않는다. 더글라스는 이 영화에서 내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나 고통 앞에 보이는 어린아이 특유의 반응인 부루퉁함으로 방어기제를 삼는다: "그냥 낡은 고물 옷장일 줄 알았어. 아무려면 어때.... " 조이가 떠나가면서 잭에게 남겨놓은 더글라스는
-이하 생략-
- Abstract
Attenborough`s Shadowlands is as one describes it a "Love Story-Oxford style." However, within this love story movie based on the real life story of C. S. Lewis and Joy Grasham, there are some of the basic questions of life. What is real and what is not? What is reality and what is fantasy?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he soul mates of this movie represent the ideal fellowship between the fantasy world(books, ideals, illusion) and the real world(experience). This paper is to study how C. S. Lewis who, as Joy put in her letter, was not only a magician casting magic but also a little boy caught by it, is led by his soul-mate, Joy, out of his little "magic wardrobe" into the world of others, into the real world. By studying that process, this paper tries to find out one of the main themes of the movie. The script writer, Nicholson changes the real life two sons of Jack and Joy to an only son, Douglas. This paper also will discuss the meaning of Douglas. Like an intruder Joy enters into the safe cocoon of Lewis. Their meeting places are symbolic as well as real. Their first meeting at a Hotel coffee shop leads them little by little to a more private world of Lewis. He invites her to his study where the books are stacked like the brick wall that shuts him safe from the real outside world. Finally Joy can penetrate deeper into the "wardrobe" of Jack, the fantasy world where "magic never ends." "The nursery is not the whole wide world" and the childish toys do not bring all the happiness. Nor is the Golden Valley(the imagined Paradise of Jack`s childhood) golden. It is wet when the two visits there as a honeymoon. As Jack himself lectures to the audience "something must drive us out of the nursery into the world of others [in order for us] to grow, to love and be loved" and that something is suffering. Now Jack experiences the loss again as a man as he once had really been hurt as a boy. The symbolic scene of Jack and Douglas sitting together like the past and the present in front of the "magic wardrobe" represents his final and desperate appeal in vain to the safe fantasy world. However, this paper concludes that Attenborough`s <Shadowlands> does not put any more weight on experience/reality(Joy) than on fantasy, ideal world(Jack). As the title speaks itself, and as its facade-story of love show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eeming opposite worlds constantly affect and heal each other like "soul-mates" because Joy, too, is healed and gets strength to walk against the harsh reality because of Jack, his fantasy books, and his sermons on the meaning of pain. (c)2003Bonghe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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