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이형기

 

언제나 트이고 싶은 마음에
하야니 꽃피는 코스모스였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었다.

송두리째ㅡ희망도, 절망도,
불타지 못하는 육신

머리를 박고 쓰러진 코스모스는
귀뚜리 우는 섬돌가에
몸부림쳐 새겨진 어룽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흐느끼지 않는 설움 홀로 달래며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련다.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셔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   

 

ㅡㅡ 

가을하늘이 숨이 막히도록 푸르게 점점 높아만 갑니다. 어느새 한해도 이 가을이 질 때 함께 저물어갈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물처럼 내 손에 잡히지 않지만 우리에겐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이 시간의 굽이굽이마다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꽃은 국화와 코스모스입니다. 싸늘한 국화의 향기가 쓸쓸함과 외로움, 고독함의 냄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스모스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트이고 싶은 마음, 목이 가늘도록 참아내던 우리 가슴 깊은 곳의 이루지 못한 '간절함'을 그리움이란 설움으로 말없이 피워내고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남은 한 해, 나의 그 간절함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습니다.  돌아서며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이 오늘도 목이 가늘도록 날 바라보며 손짓하고 있는 데 나는 무심히 등 돌리고 부지런히 세상의 물결을 쫓아 떠밀려가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한해가 저물기 전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문득 뒤돌아 달려가 그 그리움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움은 내 가슴 깊은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며 온전히 꽃피워야할 '나의 참 모습'입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나그네로 세상에 살되 영원한 고향을 기억하며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살아있게 하는 손짓입니다. 저 까마득한 하늘가에 내가 파랗게 파랗게 부셔져 하늘과 나,  하나가 되는 그날을 위해..
-[2004 덴버 중앙일보 칼럼, <내 마음의 작은 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