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감수하는 용기’

어느 때부터인가 나의 모토 중 하나가 된 이 생각ㅡ오해를 감수하는 용기!

 

살다보면 우리 모두 내게 이유 없이 도전해 오는 수많은 사람들, 견디기 힘든 관계, 오해받는 관계나 인생의 문제들과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내게 이유라도 말해주면 좋은데 뒤에서 비난을 하고, 그 말이 돌아서 나에게 오느 경우가 더 많지요. 처음에는 누구나 자동적으로 나가 무슨 문제였을까 내 잘못이 무엇이었나 먼저 이모저모 생각하고 반성합니다. 무척 힘든 시간입니다. 하지만 내 스스로 그런 비난을 받을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나에게 화를 내거나 괴롭힌다면, 그것은 많은 경우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님을 배우게 됩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데는 그 사람만의 이유, 내면의 상처나 미해결과제, 하지 못한 말들이 있기 때문인입니다. 그게 나의 어떤 면으로 인해 인해 촉발된 것입니다. 나에 대한 도전과 싸움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 문제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내가 친절하게 다가가면 내가 그렇게 싫다고 표현해도 그런다고 비난합니다. 내가 피하면 무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관계는 내가 노력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싸움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시훈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이 모두 바깥을 향해 달려 있다는 거다!

나는 한 번도 내 안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 캄캄한 어둠의 깊이를. 나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온갖 추악한 언어의 난동을. 내 안에 고여 있는 물의 지독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건 천만다행이건만. 나는 내 안을 향해

말하지 못한다. 오, 가엾다고.

 

부디 나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 이시훈, "나로부터 나를"

 

오래 전 영화 <황금연못>에는 은퇴한 노교수 노먼과 십 대 소년 빌리와의 갈등이 나옵니다. 빌리는 괴팍한 할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할머니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난 할아버지가 싫어요. 나만 보면 항상 소리만 지르잖아요.”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그게 아니야. 할아버지는 너에게 소리 지르시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고 소리를 지르시는 거란다.” 할아버지의 분노의 대상, 소리 지르고 있는 대상이 ‘나’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할머니의 말은 빌리에게 두 사람의 갈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옵니다. 이 새로운 관점은 애매한 고통으로 인해 시달리는 자책감과 피해의식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도와줍니다. 그뿐 아니라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 그로 인한 분노, 그리고 방어심리로 부터 나를 지켜주기고 하지요. 더 나아가 실체가 없는 세상 대신, 눈에 보이는 누군가에게 그 분노를 전이시키는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도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이며, 강하기 이전에 상처 입은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되지요.

 

저는 여기서 감시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내가 그 할머니라면 빌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니, 어쩌면 할아버지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란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