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에 해당되는 글 3건

<어떤 그물 - 나희덕>

  나무들이 공중 가득 펼쳐놓은 그물에
  물고기 한 마리
  잠시 팔닥거리다 날아간다

  나무 그물은 상하는 법이 없어
  물고기 날아오른다
  비늘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열렸다 닫히는 그늘 아래로
  거꾸로 걸어가는 사람들

  누군가 물을 건너가는지
  흰 징검돌 몇 개 보였다 안보였다 하고
  그물 위로 흘러가는 물결 속에는

  저렇게도 많구나
  나무들이 잡았다 놓아준 물고기들이.

ㅡㅡㅡ

가끔 비온 후 공원 길을 산책할 때면  공원 길에 물이 크게 고인 곳, 그 작은 못에 그림처럼 담긴 나무와 새와 지나는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곤 했었다. 


이 시는
물(연못 혹은 호수.. 그 무엇이든) 에 비친 나무들을 그물로,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에 비친 하늘을 나는 새는 날아가는 물고기로 바라본 놀라운 시선이다.

물속에 비친 사람들이 거꾸로 걸어가듯 …시선을 뒤집어 바라보는 동화 같은 세상이
이렇게 온유하고 해함이 없이 공존하며 평화롭다니.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담을 수 있는 시인의 눈이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호수’라는 생각이 든다. 

시의 제목인 "어떤 그물"은 바로 시인의 눈, 시인의 시선이 아닐까? 


문득 샤갈의 그림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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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마을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에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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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천천히 녹여낸다

- 과거의 상처

 

누구나 가슴 속에 쓸어도 쓸어도 치워지지 않는 굳어버린 덩어리 하나쯤 떠안고 살아갑니다. 이미 죽은 색깔을 하고 있는 과거의 덩어리이지만, 없다고 외면하고 잊었다고 눈 감아도 문만 열면 꼭 발끝에 차이는 돌부리처럼 가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억지로 쓸어버리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공동주택

밖의 계단을 비질하는데

안 쓸리는 작은 덩어리

죽은 나뭇잎 색깔의

알 수 없는 덩어리

이 꼼꼼한 비질에도

떨어지지 않는

 

지금 안 쓸리는 것은

지금 쓸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장맛비가 한 차례 다녀간 뒤에

굳은 그것은 저절로 풀릴지 모릅니다

죽은 색깔의 그것은 빠져나갈지 모릅니다

 

(......)

 

사는 동안 쓸렸으면 더 좋았을

계단 밖에 나와 앉은

꼼짝 않는 덩어리

- 이진명 <지금 안 쓸리는 것은> 중에서

 

때로는 환상도 위로가 된다

   문학치료 시간에 각자에게 그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다음은 그때의 답변 중 일부입니다.

 

“내 안에 안 쓸리는 것은 하소연이다. 제발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말에 지지해달라고 애걸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하소연을 닮았다. 9년간 지속된 나의 직장 동료인 B의 하소연을 닮았다. 이들과 나의 하소연의 공통점은 자기주장이 없고, 자기 색깔이 없고,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삶인데, 본인은 한이 많아서 자신들이 양육해주어야 할 어린 사람에게 투덜거리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희생자였는데, 가해자로 살고 있다.”  

 

“시에서는 ‘계단 밖에 나와 앉은 꼼짝 않은 덩어리’라 했지만 난 그 덩어리를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나는 계단 밖이 아니라 아직 계단 안에 있는 덩어리인 것 같다’라고 글을 쓰고 있어서 놀랐다. 내가 덩어리였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뭉쳐온 것이다. 그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그 덩어리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갇힌 내가 아니라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제는 조금씩 그 덩어리를 밀어내고 싶다.”

 

  ‘덩어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보면 사람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누구는 살면서 쓸어도 쓸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덩어리가 ‘하소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어느새 가슴 속 그 응어리를 길고 긴 글로 실컷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덩어리가 분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아주 작은 일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무척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 덩어리가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고는 왜 단단한 덩어리 속에 자신이 갇혔는지를 성찰했습니다.

상처가 아물 때는 딱지가 생깁니다. 상처는 그 딱지가 떨어져야 낫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불편하다고 억지로 딱지를 떼어냈다가 상처에서 다시 피가 나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딱지 아래 새로운 살이 돋아나야만 딱지는 저절로 떨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쓸리지 않는 덩어리가 아직은 아프더라도 그 또한 내게 필요한 추억일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거라도 붙잡아야 내가 살 수 있는 환상일 수 있습니다. 환상이라도 마음을 붙여야 살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요. 가끔 환상은 고통스런 현실을 견디게 해줍니다. 다만 잠시일 뿐이지만 말입니다.

 

상처는 천천히 조금씩 녹여내야 한다

   얼마 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보다가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젊어서도 이미 몇 번이나 본 영화였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에 볼 때와 전혀 다른 장면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남부가 전쟁에서 패하고 스칼렛은 그 화염 속 전쟁터에서 천신만고 끝에 자신이 평생 짝사랑하는 애슐리의 부인 멜라니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마치 기도처럼 애슐리를 부르면서 견딥니다. 그와 한 단 하나의 약속 때문입니다. “스칼렛, 나의 부인 멜라니를 지켜줘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대결하는 스칼렛의 용기는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스칼렛은 애슐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줄만 알고 그 사랑을 구원의 약속처럼 의지하며 온갖 어려움을 견딥니다. 결국 뒤늦게야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깨닫지요. 환상에 매달린 그녀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은 맞지만 그녀에게 그 환상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그런 스칼렛을 보면서 환상일지라도 사랑의 힘이 필요하고, 결국 그것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물론 스칼렛은 그 환상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놓치고 말지요).

   제자 중 한 사람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외도한 남편과 그것을 감싸고도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고통 받다가 어린이를 데리고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그 제자는 다시 좋은 사람과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이유로 상대는 마음을 접고 떠났습니다. 그때 제자가 했던 말이 가슴에 남아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선생님, 요즘 저는 그 사람이라도 그리워하는 힘으로 살고 있어요. 저와는 인연도 아니고 사랑할 만큼 사귄 것도 아니지만 환상이라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면 지금 상황이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요.” 물론 지금 그녀는 더 이상 그 환상에 기대어 살지 않습니다. 자신의 갈 길을 용감히 가고 있지요. 환상은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인간들이 잠시 쉬어가는 섬일 뿐입니다. 다만 그 환상을 현실과 혼동할 때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또 다른 병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슬퍼하는 것을 허락하기

  상처는 그 깊이와 크기마다 새살이 나는데도, 그 굳은 딱지가 풀어지는데도 각기 다른 시간이 걸립니다. 그 덩어리가 무엇이든 간에 쏟아지는 장맛비에 응어리가 풀려 떠내려가듯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상처의 딱지가 채 굳기도 전에, 그리고 상처에서 새 살이 돋기도 전에 이내 그 딱지를 뜯어내버리고 싶어 합니다. 없던 일처럼 억지로 잊으려는 것이지요. 차라리 그 굳은 아픔과 기억을 용감히 끌어안고 조금씩 녹여내야 합니다. 그 아픔을 녹여내는 ‘장맛비’는 고통 속에 갇힌 ‘나’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스스로의 따뜻한 연민과 무조건적인 사랑의 눈물일는지도 모릅니다.

  슬픔은 곧 치유의 감정입니다. 브래드쇼는 만일 슬퍼하는 걸 허락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의 분출과 표현은 그것이 분노의 외침이든, 장맛비 같은 통곡이든 부끄러운 것도 나약함의 표시도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살아나기 위한’ 절실한 무엇입니다. 눈물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과거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과거와 함께 죽어 있는, 살아남았으나 죽은 자처럼 굳은 덩어리가 되어 있는 나를 녹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날지 모릅니다.

  가슴 한구석에 돌부리처럼 남아 있는 단단한 덩어리와 그 속에 갇혀 혼자 두려워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세요.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그리고 장맛비 같은 눈물로 흠뻑 다독여 녹여주세요.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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