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bhlee 

 

모란 터져버린 "찬란한 슬픔의 봄" -   5월이다.  

 

아파트 화단에 며칠 전 모란이 함박웃음처럼 화알짝 피었었다. 어제저녁 일부러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모란꽃을 보면 내 맘에 살아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아주 큰 꽃밭이 있었다. 뒷마당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꽃밭에는 키 작은 채송화부터 맨드라미, 해당화, 모란, 샐비어, 칸나, 매화, 온갖 색깔의 장미, 사철나무, 무궁화, 찔레, 수국,.. 등등, 참 많은 꽃나무들이 (그리고 대추나무도)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가 모두 학교 가고 혼자 남은 오후, 쨍하게 깨질 듯한 정적 속에서, 그리고 현기증 나게 환한 햇살아래서 항상 꽃밭에서 놀았던 것 같다.  바닥에 뚜욱뚜욱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서 돌로 찧어 혼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가면 커다란 무쇠 솥들이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주르륵 앉아있고 그 아래 불 꺼진 아궁이는 오후의 정적만큼이나 거대한 암흑의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킬 듯 쳐다보았다.  평소 따뜻하던 부엌은 나른하고 외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참 외로웠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유달리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는 모란꽃을 꽃밭에서 파서 싣고 오셨다.  서울에서도 몇 차례 이사를 갈 때마다 잘 견디어오던 모란을 어머니는 오빠가 마침내 아파트로 집을 바꿀 때 집 화단에서 우리 집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주셨다.  못내 남의 손에 그 사연과 역사가 담긴 모란을 넘기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마침 우리 아파트가 1층에 있었기에 거실 바로 앞 화단에 그 모란을 심어주셨다.  엄마의 모란은 오랜 세월 죽지도 않고 참 감사하게도 봄마다 자줏빛 짙은 웃음을 벙실벙실 성실하게도 피워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또 이사하면서 엄마의 모란은 그만  이제 남의 집 베란다 앞에 남겨지게 되었다.  가끔 그 아파트단지에 사는 언니를 방문할 때면 나는 일부러 내가 살았던 동엘 가본다.  베란다 앞 화단에 모란이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모란은 내 기분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지만 전과는 달라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히 살아남아 몇 개의 짙은 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올봄엔 가보지 못했다.  사실 두렵다. 그 모란이 어느 날 웃음꽃을 거두게 되는 것을 보는 게...

새벽에 어렴풋이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라디오에서 새벽의 명상 프로그램을 듣고 계셨다. 잠결에 들려오던 음악은 타이스의 명상곡과 생상의 백조였다.  그 많은 일과 중에서 늘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  나이 들어, 앉아서 졸고 계시는 어머니께 '엄마, 누워 자..' 하면 얼른 '아니다..' 하시고 다시 무언가 하시던 어머니.. "잠자는 시간은 죽은 거 한 가지인 데....." 하시며 살아 있는 시간들을 아끼시던 엄마. 

 

엊그제 동네에서 모란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잠든 공원묘원은 봄이 되면 꽃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봄에 늘 공원묘원으로 놀러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필 묘지로 봄나들이를 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던 Mrs. Patch의 말이 생각난다.  난 마음과 달리 엄마의 묘소에 혼자서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게 참  염치없고 죄스럽다. (얼마 전 딸과 사위와 함께 엄마와 아버지, 오빠가 잠든 그곳을 찾아뵈었을 때 우리 마음처럼 안개비가 내렸었지... 아이는 그만 눈물을 터뜨렸지...)

 

어김없이 5/8일은 찾아오는데 나는 엄마를 찾아뵐 수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친정이 이제 없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치매 병원에 계실 때도, 그렇게 그곳에 홀로 남겨지는 게 싫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우리만 가면 집에 데려다 달라고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며 보채셨는데....  다른 사람 다 몰라봐도 그리 사랑하셨던 우리 딸이 가면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일부러 곡기를 스스로 끊으신 엄마....  그때도 나는 내 고통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자주 찾아뵙지도 않았다.  참 모질고 이기적인 나쁜 딸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이기적인가.   내가 엄마 그립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후회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지....

사람들은 꼭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야 후회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란 안전 하다. 책임이 따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때에야 후회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다. 

용서를 해 줄 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허공에 대고 용서를 구하는 이 이기심.


부끄러운 나의 사랑은 늘 그렇게 한 발 늦고야 만다.... (2008.5.8.)

----------------------------

2023.5.1.

올해는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온 봄 때문에 모란도 일찍 피었다 진 거 같다.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에 갔다가 오면서 엄마의 모란을 보러 정말 오랜만에 예전 살던 "그 집" 앞 화단에 가보았다. 
고맙게도 두 주전 들렀을 때 꽃망울만 보여주던 모란이 그 사이에 활짝 피었다.  그리고 전보다 더 풍성해진 꽃나무!!! 

엄마 본 듯 반갑고 고마워서 가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잘했다고, 이쁘다고... 말 걸어주고 돌아왔다. 
벌써 15년 전 이곳으로 옮겨 심은 (실은 55년전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올 때  옮겨 온) 꽃나무가

몇 번의 이사를 견디고 저렇게 잘 살아주다니... 
뿌리가 더 깊이 넓게 가지를 쳐서 새가족을 이루며 이렇게 잘 살아주다니... 대견하고 고마웠다. 


오빠에게 모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오빠가 내 맘을 알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오빠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그곳 관리소의 동의를 얻고) 나와 함께 몇 뿌리 캐서 가져오려고 그곳엘 갔었다. 
그런데 어찌 뿌리가 깊이 내려 뻗었든지 허리가 무척 좋지 않은 일흔 중반 오빠와 손관절염으로 불편한 내게는 역부족이었다. 아쉽지만  다음에 장비를 더 준비해서 와야겠다며  그냥 돌아왔었다. 

 

그런데 어제 지난주 올케언니의 도움으로 몇 뿌리 어렵게 어렵게 파서 가져왔다고, 잘 키워서 자라면 나에게도 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반갑고, 고맙고...   부디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  하늘나라에서 엄마도 기뻐하실 것 같다. 그러셨으면 좋겠다.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거야말로 꿈같은 소망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