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 [6] 중년 여성과 행복


50代 한국 여성, 10개국 중 '불행 점수 1위' 기록
남성은 50代 들어 행복지수 상승 선진국 여성들은 개인 생활 즐겨
빚과 자녀의 굴레… 피로감 심해 "가족은 필요로 함께 사는 것"

전체 평균의 3배 넘게 답해
"삶의 위안 얻으려 종교 활동" 한국 78% vs 덴마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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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팍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남자 형제들에게 대학을 양보하라고 했다. 22세쯤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2명의 아이를 낳아 길렀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을 한푼 두푼 모아, 아이만큼은 '못 배운 설움'을 겪지 않도록 매섭게 공부시켰다. 사회는 이들의 열성에 '치맛바람'이란 별명을 붙였다. 남편이 한창 일할 때인 40대 초반, 외환위기에 가정이 휘청댔다. 생계, 그리고 아이들의 등록금을 위해 생전 처음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혹은 임시직뿐이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인 2005년, 20대 젊은이의 7.5%가 실업자인 '청년 실업의 시대'가 시작됐다.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아이들은 아직도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경제활동인구 조사'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55세 여성의 전형적인 삶이다. 전통적 가치관과 급변하는 사회를 치열하게 버텨온 한국의 50대 여성은 조선일보·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신년기획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를 위해 실시한 10개국 5190명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불행한 집단으로 조사됐다. 중년 한국 여성의 불행 뒤엔 평생 축적된 경제적 부채의 굴레, 삶을 바쳐 뒷받침해온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50대 여성, 10개국 중 가장 불행한 집단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인생의 행복도가 20대에서 40대까지 꾸준히 떨어지다가 50대에 다시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생이 내리 하락세가 아니라 40대에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이른바 'U자형 행복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 미 프린스턴대의 연구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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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여론조사' 결과 한국의 남성은 전형적인 'U자형' 행복도를 보였다. 그러나 여성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세대는 50대 여성이었다.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평한 여성의 비율은 40대 77.2%에서 50대 61.1%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한국의 50대 여성은 조사 대상 10개국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 '불행하다'고 답한 비율(37%)이 가장 높았다.

한국 여성의 행복도는 20대·40대 때 높고 30대·50대에 낮은 지그재그형이었다. 남성의 행복도는 20대에서 40대까지 떨어지다가 50대에 다시 상승했다.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세계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한국인 전체의 평균 행복도도 '50대 반등'에 실패했다. 행복한 한국인의 비율은 20대 80.2%로 높게 출발해 30대 69.2%, 40대 67.5%, 50대 64.2%로 꾸준한 내리막을 기록했다.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생의 큰 부담'

50대 여성은 빚과 관련한 질문에서 큰 부담을 드러냈다. 10명 중 7명이 '빚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42.6%는 빚으로 인한 이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빚에 대한 부담은 주로 새 가정을 시작하는 20대·30대 몫이었다. 호주와 핀란드의 경우 30대 여성(각각 41.6%·29.5%), 미국은 20대 여성(35.9%)의 부채 부담이 가장 컸다. 반면 한국의 20대 중 '빚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49.5%로, 조사 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학자금대출 등을 받으며 자립(自立)의 길에 들어서는 다른 나라 청년들과 달리 한국 젊은이 중 상당수가 2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임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가치관 아래 평생 가족을 보살피는 데 힘써온 한국의 50대 여성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피로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들에게 가족은 대체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74.1%)이었지만 '필요에 의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인생의 큰 부담'이라는 답이 한국인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필요 때문에 가족과 같이 산다는 답은 전체 평균(1.4%)의 3배(5.6%)가 넘었다. 같은 세대의 남성 중엔 이 답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김미혜 교수는 "한국의 50대 여성은 전형적인 샌드위치 세대"라며 "보수적인 부모 아래서 자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서도, 정작 다음 자녀들에게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박탈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마음 수행 위한 종교 활동" 한국 50대 여성 78% vs 덴마크 11%

한국의 중년 여성은 삶의 위안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종교를 가졌다'는 비율이 77.8%로 평균(61.8%)을 크게 웃돌았다. '50대 한국 여성'은 전 세계에서 이 답이 가장 많이 나온 집단으로, 덴마크·호주·미국에선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각각 10.6%·22.4%·45.8% 수준이었다. 종교의 본질인 '진정한 믿음'을 좇는 50대 여성은 7.4%에 불과했다. 영국 필로소퍼스 매거진 줄리언 바지니 편집장은 "종교를 종교 자체로 믿는 사람은 높은 행복감을 보이지만, 현실 탈피를 위한 도구로 종교를 활용할 경우 행복감은 거의 상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50대 여성은 다른 세대와 동떨어진 답을 냈다. 한국인이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경제적 부담'에 대한 답은 평균(52.6%)보다 낮게(48.1%) 나왔다. 대신 '살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염세적 의견(20.4%)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선진국의 50대 여성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는 순간 '가뿐하다'는 기분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개인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이 보통"이라며 "반면 한국의 중년 여성 중 대다수는 남편의 고용 불안, 자녀 결혼 자금 마련 등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