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풀잎 -유경환 (1936~2007) 
  마른 풀잎 속엔 
  엽맥(葉脈)의 질긴 기도가 남아 있다. 
  끊기지 않던 가녀린 목숨 소리 
  하늘에 내뿜던 숨 멈춘 채 
  멈춘 그대로 버리지 못한 소망을 
  아름답게 날려 가며, 
  세우던 고개는 떨어뜨렸으나 
  짙푸름으로 적시던 기다림 
  당신의 뜻에 발돋움하자던 
  춤, 그 몸짓을 모르리라. 
  바람에 시달리고 짐승에 밟혔어도 
  어떻게 지금부터 시야에서 
  사라지는가를 
  하늘이 하얗게 흙을 덮어 내리면 
  알리라. 
  끝바람에 몸 부서져 바서지는 것도 
  온몸 소리내며 태우는 불꽃 
  와 주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들판 가득히 일어서는 영혼과 
  그리고 어딘가에 묻혀 거름이 되는 것 
  봄으로 미루는 부활을 
  마른 풀잎 속엔 
  기억해야 할 기도가 남아 있음을 
  당신 한 분이라도 
  당신 한 분이라도. 
   - 1991년 시집 <노래로 가는 배> (문학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