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여러분 누구에게나 사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거껏해야 외부적인 사건의 충격이 있었을 정도겠지요. 말하자면 잠든 채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악몽에 소스라쳐 깨어 본 일이란 없지요. 눈을 크게 뜨고 살자면 인생이란 사실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하수도에서 나오는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악취를... 밤중 3시 그 오래된 침실에서 들리는 무언의 슬픔의 목소리를.
... 나는 오래된 집(古屋)입니다.  독한 냄새가 풍기고 새벽에 신음하는 소리 들리는, 거기에 모든 과거가 존재하는.  거기에서 모든 타락은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대해선 다만 지난 것만이 여러분의 눈에 띄고, 언제나 현존하는 것은 보이질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혼잡한 사막에서, 짙은 안개 속에서, 갑자기 느끼는 고독, 거기에 숱한 생명들은 방향도 없이 움직이고 있지요.  방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딜 가든 그 煙霧 속을 뱅뱅 돌며 방황하는 수밖에ㅡ 목적도 없이, 행위의 원칙도 없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중간 지대에서, 고뇌의 국부마취에 감각을 잃고 자신의 기계적인 행동도 보지 못한 채, 그러는 동안에 오염은 서서히 피부를 뜷고 더욱 깊이 파고 들어 살을 더럽히고, 뼈까지도 변색시키지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달리 옮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는 억지로 도망치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사막을 들끊는 군중 속에서 유령에게 맞고 채이면서 고독을 면치 못합니다.  대서양 한 복판에서 구름 한 점 없는 그날 밤, 나는 그 여자를 갑판에서 밀어뜨려 버렸습니다ㅡㅡ 그러나 그것은 다만 불붙은 바퀴를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려고 무의미한 방향을 역전시킨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
그여자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당장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늘 생각했지요.  내가 어딜 가든 그여자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고,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여자는 죽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
나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압니다.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의 사건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요. 그것을 견디기 어렵기때문에 그러는 거지요.   그래서 여러분은 내가 망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병든 것은 내 양심이 아니고 내 정신이 아니고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 그것입니다.
....
나는 잠을 두려워합니다. 잠이란 쫓기다가 드디어 붙잡히는 최후의 상태 그것이죠. 아니 깨어있는 것 그것도 무섭습니다.  

아가사: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몇가지 있어....  너는 설명 중에 겨우 그 일의 몇가지 단편에만 잡착하는 것 같아.  네가  아는 것을 자꾸 표시하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지.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이 있는 거다. 그 점을  단단히 파악해야 해. 자유에 이르는 길은 그것이니.
....

코러스: 
우리는 모두가 자기만은 만인에게 씌워진 굴레에서
특별한 예외인 듯 보이려 한다.
...
우리는 남이 좋게 생각해주는 것을 기뻐한다.
그것도 결국은 내 스스로 나를 좋게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떤 설명에도 만족할 판.  다만
지하실이나 닫힌 창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스스로 안심되기를 바랄 뿐.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인가?  마치 문이 갑자기 열리고, 커튼이 쳐지고
지하실에서 어떤 무서운 것이 나타나고, 지붕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비현실인지 분간 못할 지경에 이른 듯이.
단단히 맘 먹어라. 단단히 견뎌라.
세상은 우리가 늘 생각하던 그대로라고 주장해야 한다.

(T. S. 엘리엇- 희곡 [가족의 재회] 중에서)
내가 번역하고도 수업에서 가르쳐보지도 못한 아이스킬로스의 그리스 비극 '에우메니데스(복수의 여신들)'를 바탕으로  엘리엇이 독특한 시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보이지 않는 비밀배우' - 에서 내가 들은 말이 무엇이기에 갑자기 이 드라마가 생각이 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