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2T3

 

 

날 품어주던 오늘이

돌아 누었다.

 

나 꿈을 꾸었어

너무 어둡고 추웠어

진눈깨비 흩어지다가

어느새 주먹만 한 흰 눈이

아득한 바람을 타고

숨도 쉬지 않고 내려왔어

내 숨도 막았어

 

누군가에 도움을 청했지만

흩날리는 눈처럼

가볍게 섧게 날아갔어

눈길조차 없는

파닥이며 맴도는 작은 어둠이었어

 

눈 속에 갇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허리 끊어진 엉뚱한 몇 마디

투명한 단어들만 간신히 웅얼거렸어

악몽이었을까.

 

침상에 모로 돌아누운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아, 돌아눕는 얼굴 없는 얼굴

눈 코 입 그려 넣지 않은 헝겊 인형 같은

 

갑자기 등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

또 다른 꿈으로 지워질 또 다른 오늘이

시린 바람 속에 

알 수 없는 선물상자를 들고 서서

나를 깨운다.

 

일어나야지

눈을 크게 뜨고 악몽을 받아들이는 건

용기 있어 아름다운 결단이야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용기

폭설을 떨치고 날아보는 작은 노래야

 

일어나야해

또다시 지워질 얼굴을 그려야 해

 

언젠가 다다를 오늘의 끝은

눈부신 현실일 거야

 

 

MP 

071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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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좋은 꿈은 젊은 시절 외에 꾸지 못한다.
어릴 때는 신기하게 꿈이 잘 맞았다.  기억하는 건 초등학교 때도 군에 간 외사촌오빠가 오는 꿈을 꾸면 꼭 그 오빠가 휴가 나왔다며 우리 집을 찾아오곤 했었다. 
대학교 때는 예를 들면 전날 학교에 불이 나거나, 대통령의 목소리가 학교에서 방송되는 걸 듣거나 같은 꿈을 꾸면 그다음 날 학과 혹은 학부 톱으로 장학금을 받곤 했다. 

내내 그런 꿈을 어김없이 꾸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특히 결혼 이후부터는 거의 악몽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혼자 벽에 기대어 울다 지쳐서 1초 깜박하는 사이 털부숭이 남자가 무시무시한 식칼을 내게 들이대는 찰나 같은 꿈에 놀라 깨기도 했다. 그 후에도 그렇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것들을  순간순간 경험하곤 했었다. 

 

악몽이 현실이 된 꿈 중 예를 들면 어느 날 꿈에서 내가 수술대 위 눈부신 전등 아래 누워있고 옆 테이블에 내 손과 발이 장갑과 부츠처럼 잘려서 놓여있었다. 너무 생생해서 일기에 그림으로 그렸었었다.  그리고 잊힐 때쯤(한 달 후쯤?) 그날도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벽에 학교 가는 길.... 전철역으로 내려가는 층계에서 두 번을 굴렀다.  손목과 다리 모두 다치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는데  새벽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마침 급한 듯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날 도와주려고 애를 쓰시며 연락처를 묻는데 가족은 미국에 있고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백지가 된 패닉상태.  지나가던 청년이 --그 급한 새벽출근시간에--나를 업고 길 위로 올려주고 나는 간신히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던 거 같다.  

 

암튼 내 악몽은 내 마음이 상태뿐 아니고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내 내면의 지혜의 경고였으나 그 경고는 피할 길이 없었다. 지난여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이디푸스처럼 꿈을 피해 도망가는 선택이었는데 꿈을 향해가는 선택이 되었고 아무 일도 아닌데 상상이상으로 심히 다치고 수술하고 아직도 회복 중이다.  그 외 늘 반복되는 꿈도 몇 가지 있다. 그 이유를 나는 스스로 분석도 하고 알고 있다.  그 꿈이 차차 빈도가 낮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꿈은 내게 악몽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악몽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내 삶의 한 메타포가 되기 시작했던 거 같다. 

정말 삶이 외롭고 버겁고  힘들었던 아주 오래전에 쓴 이 시도  산더미 같은 그 간의 공부했던 것들을 버리던 중 공책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제목의 의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시가 들려주는 내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어제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가끔 악몽을 꾸고 나면 나도 영화의 주인공처럼 묻고 싶다. 

 

-언제 이 악몽에서 벗어나 행복한 꿈을 꿀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행복하면 꿈을 꾸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