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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은행나무- 곽재구]
 

잠자리- 김주대

 

지고 온 삶을 내려놓고

흔들리는 끝으로 간다

날개를 접으면

불안의 꼭대기에도 앉을 만하다

어떤 것의 끝에 이르는 것은 결국

혼자다

허술한 생계의 막바지에

목숨의 진동을 붙들고

눈을 감는다

돌이킬 수 없는 높이를 한참 울다가

죽고 사는 일 다 허공이 된다

Rod McKuen-After the Midnight

 

내가 너무너무나도 좋아하는 Rod McKuen.

이 사람의 목소리가 전하는 영혼의 고독의 깊이는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

품- 정현종

 

비 맞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어디

안길 수 있을까

비는 어디있고

나무는 어디 있을까

그들이 만드는 품은 또

어디 있을까

 

(사랑한 시간이 많지 않다.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