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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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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러스Les Choristes(2004)> 

 

 

One's need for loneliness is not satisfied if one sits at a table alone. There must be empty chairs as well.  <Karl Kraus (1976). “Half-truths & one-and-a-half truths: selected aphorisms” >

 

홀로있고 싶은 고독에의 욕구는 빈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의자도 비어있어야한다. <칼 크라우스>

 

물론 본인이 원한 외로움. 혼자 있고 싶은 욕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라우스의 말은 참 강렬한 외로움에 대한 이미지를 불러온다.
빈 테이블이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어쩔수 없이 우리는 누군가가 와서 앉을 가능성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의자마저 비어있어야한다.

하지만 나는 그 빈 의자가 가진 가능성마저 박탈당한 한 사람을 생각해본다.
외로움이란 바로 그런거라고.  빈 의자마저도 없는 빈 테이블.



의자 하나

(c)2005이봉희

그 여자가 갔다. 유배지와 같은 시골, 감옥 같은 우울한 건물의 학교, 간수 같이 어린 학생들과 선생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교장선생, 그리고 죄없이 이곳에서 살고 있는 어린 학생들....    잿빛의 그 삶에 나를 지탱해주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음악이 무채색 아이들의 가슴에 알록달록 꽃을 피우리라는 신념 뿐이었다.   

그런 내게 어느날 뜻밖에 그녀가 나타났다.  모항쥬 때문에 상담하기 위해 날 찾아왔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야 말로 무채색 같은 내 삶에 붉은 꽃물을 뚝  떨구어주었던 것이다.   

그날은 내게 삶의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던.... 그런 그녀를 만나는 날이었다.  아, 나는 그날 얼마나 꿈에 부풀어있었던가ㅡ마치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처럼. 아, 나는 얼마나 찬란하였던가ㅡ 마치 세상 구석구석을 비춰주는 태양처럼.

나는 그녀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 가슴을 두군거리며 앉아있는데...
어떤 멋진 차가 내 앞에 서고 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그날 어느 때보다 눈이 부셨다. 사랑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한 눈에 그녀에게서 빛나는 생명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가 아니었다. 날 찾아왔던 길 잃고 당황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날개 다친 외로운 새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의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그 빛과 에너지와 희망으로 연녹색 봄처럼 충만해 있었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 숨가쁘게 말했다. '저 결혼해요. 감사합니다.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자 저 사람도 만나게 되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다음에 셋이 같이 만나주실거죠.. ' 하고는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생명이 빠져나가는, 그래서 화석처럼 굳어져가는 내 뺨에 입을 맞추고는 돌아서 그 남자에게 뛰어갔다. 나비처럼 나풀나풀... 내 덕분이라고 하였지. "선생님 덕분에... 선생님 덕분에..."

그래,  '내 덕분'에 나는 나의 사랑을 잃고 말았다.

이 모두가 너무나 꿈처럼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녀가 왔다 간 것인지, 나의 뺨에 남은 그 감촉이 그토록 원하던 그녀의 감촉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내가 그녀에게 준 꽃이 다 부서져, 아니 한껏 피어났던 내 꿈과 사랑과 희망이 다 잎잎이 떨어져 산산히 흩어져 날아가듯 그녀는 거짓말처럼 일 순간 내 앞에서 떠나 갔다.

그리고 .... 그녀의 빈자리를 내게 확인시키려는 듯 웨이터가 다가와 '의자를 가져가도 됩니까'라고 묻고는 내 앞의 의자를, 꿈처럼 그녀가 앉았던 그 의자를 가져가 버렸다.

나는 정말 혼자 남은 것이다.
동그란 테이블에 나 홀로. 

 

내 앞엔 어떤 빈의자 조차도 남아있지 않다.  그녀가 혹 돌아와 다시 앉으리라는 가능성조차도 없이, 아니 이 순간 기댈 수 있는 그런 한가닥 헛된 환상조차 불가능하도록 그녀가 앉았던 자리,  그녀의 흔적조차 가져가 버렸다.   나는,  진정, 홀로 동그란 테이블앞에 자그마한 노인으로 홀로 남겨진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앞에 와 앉지 못할것이다. 내 앞에 의자는 없으니까. 의자는 하나 뿐이니까. 내가 홀로 앉은 그 의자 하나...
갑자기 나는 내가 이제 모든 생을 다 살아버린 노인이 되어버린 듯 느껴졌다. 

 

 

내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있다.

나는 떠날 곳이 없는 것이다....  (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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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음악가의 지휘장면, 그리고 빗속에 그를 찾아온 까마득한 어린시절의 친구와 그가 가져온 일기장에서 시작된다. 두 노년의 친구가 펼쳐 든 한 권의 일기장은 그들을 어린시절로 이끌어간다.  그 일기장은 두 친구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한 초라한 음악 선생님, 마티유의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꿈도 없이 살아가던 작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에게 마티유 선생은 어떻게든 꿈을 키워주고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바로 '그들의 것'인 웃음과 생명력을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주제는 무척 낯익다.  특히 이런 경우 선생은 대개 아픔과 실패와 좌절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세상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디얼리스트이거나 소외된 자이거나 외로운, 그러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고 사제간의, 의사와 환자간의 서로의 우정으로 치유가 이루어지는 수 많은 버디무비들이 그렇듯이   <코러스>도 희망없는 아이들/환자/친구와 실패한 선생님/친구/제자가 서로 하나가 되어가면서 새롭게  희망을 찾게 된다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영화의 끝은 같다.  서로에게 새 삶을 주고 서로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는 것이다.  선생은 아이들 곁을 떠나고, 변화되고 성장한 아이들은 선생 곁을 떠나고, ....   아니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선생이 떠난다기 보다 아이들 곁에서 추방된다.  더이상 아이들이 아니니까.  마치 어린아이의 놀이터처럼 아이들은 키가 자라면 더이상 키낮은 그네와 장난감같은 미끄럼틀에 와서 놀지 않듯, 그렇게 놀이터가 아이들의 삶에서 추방되듯이. 그게 그들의 만남의 의미이다.  열매를 위해 꽃이 떨어져야 하는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슬픈 만남인 셈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가장 "자연스런" 만남인지 모른다.   선생이 그들에게 준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불을 붙여준 것은 문학이며 음악이며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다만 그것의 전달자였을 뿐이었으므로 그들의 영혼에 불이 붙으면 이제 그 곁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씨가 그렇듯.


영화의 시작과 끝에 잠시 등장하는 어른이 된 모항쥬는 바로 <시네마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의 역을 한  자크 페렝이다.  그뿐 아니라 안쓰럽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꼬마 페피노를 연기한 막상스 페렝은 그의 아들이다. (판박이^^ ) 자크페렝의 미소는 참 묘하다. 참 편안하면서도 속모를 신비함이 있다.

모든 영화평이 예외없이 마티유선생(제라르 쥐노)이 희망도 없이 살고 있는 시골학교에 와서 일으킨 아이들 맘속의 기적과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 마티유의 고독과 외로움과 실패와 좌절과 소외감 그리고 그럼에도 막을 길 없는 그 속에서 흐르는 그만의 멜로디에도 관심을 돌리고 싶었다. 그래서 마티유의 입장에서 그의 마음을 상상해보았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사나이였다.  종이비행기가 날아오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세상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머물 곳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c)2005이봉희

아그라 | 2008.02.21 15: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있던 자리가 비었다. 자리를 내어준 기억도 없는데 떠나고 난 뒤 뭉텅 큰 웅덩이 하나 마음에 생긴다. 그래서였을까. 그만 몸이 아프고 만다. 열이 오르고 뼈마디가 쑤시고 살들이 침을 놓고 뽑지 않은 듯 움직일 때마다 아리다. 나는 불씨였을까. 내곁에 왔다 떠난 많은 이들에게 불을 지폈을까. 그랬다면 내 아픔도 기쁨이겠다. 꿈과 땀과 아픔으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통증이 약간 수그러든다. 휘청거리며 나선 거리에 걸음걸이가 빼딱한 사내아이 몇이 허옇게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는 킬킬대며 걸어간다. 졸업식... 아, 그렇지 참. 지금은 모두 떠날 때로구나. 낯선 세상을 향해 낯익은 것들과 이별하는 시즌이로구나. '때'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떠나온 나, 밀가루 뒤집어쓴 아이들을 지나치며 조금 울적하고 조금 씁쓸하고 조금 외롭구나 느낀다. 님의 글을 읽으며 아까보다 좀더 깊이 내느낌 속으로 떨어진다. 떠날 곳이 없는 나... 그 말이 자꾸 나를 잡는다.
NM | 2008.02.21 15: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살면서 진정을 담았던 그 모든 만남이,
숱한 그 사람이 하나하나 다 그렇게 치명적이어서
내가 그렇게 독하게 앓았구나, 그렇게 하염없이 외로웠구나
사람아 사람아....
님의 글 속에 난 외길을 보며 말건네고 싶어서 문득,
| 2019.03.24 17:38 | PERMALINK | EDIT/DEL
비밀댓글입니다
| 2019.03.24 21: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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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특강 - 치유하는 영화읽기 (글쓰기문학치료)

 

퇴근길...오늘도 몸과 마음이 많이 피곤하셨죠?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번학기에도 여의도 성천 문화재단에서 [퇴근길 인문학] 특강을 합니다. 이번에는 영화를 활용한 문학치료입니다.

영화 평론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읽기(강의)와 글쓰기(문학치료)를 통한 자기 성찰과 치유시간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퇴근길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술 한잔의 위로와는 또 다른 더욱 의미있고 치유가 되는 만남을 기대합니다.

 

5/23~6/20 매주 목요일 7:30-9:30 4주
여의도 성천문화회관(63빌딩 옆 라이프오피스텔 빌딩 1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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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정말 우연히 다른 자료를 찾다가 10년 전 기록해 둔 (물론 비공개로) 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지난 주 목요일 대학원 수업 간신히 하고 죽어라 앓았다. 
내 몸이 이제는 늘 먹는 간단한 진통제를 견디지 못해서 토하고 또 토하고.

이제야 기운이 나서 오늘까지 준다고 약속한 일을 하려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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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JSL
오늘 T. J. Shannon 의 그림 (1895)을 하나 보았습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에 걸린 거라 하네요.

엄마가  책을 읽어주고 두 딸이 듣고 있는. 엄마는 얼굴이 보이지 않은채 책에 몰두해 있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 처럼 그 책은 그녀의 얼굴이 될까요, 선생님이 달아 논 그림 같진 않지만 얼굴이 보지 않는 - 첫째 딸인 이제 곧 사춘기에 들어갈 소녀는 엄마를 정말 사랑스러우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맘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더군요.

재미있던 것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갈까 말까한 막내딸인데, 엄마의 목소리엔 관심없고 그림그리는 화가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그 시선의 다름들. 그리고 마지막 시선이 화가, 즉 창조자를 쳐다보며, 다시 나, 관객을 쳐다보는.

그 눈들이 다 아름답고 슬프더라구요. 혹 선생님은 그 그림을 알까하여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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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8

 

JS에게

웅. 그 그림 정글이야기라는 거야.
Jungle Tales by J. J. Shannon (NY Metropolitan Museum of Art)

By James Jebusa Shannon - This file was donated to Wikimedia Commons as part of a project b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See the Image and Data Resources Open Access Policy, CC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7366376

 

왠지 쓸쓸한 가족같다. 각자 노력은 하고 있는데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가족.

엄마는 무언가 해보려고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엄마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큰 아이는 그런 엄마곁에 앉아 있지만 그녀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 그 아이의 시선은 엄마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애를 쓰는 엄마를. 하지만 공감은 없다. 그 아이가 읽고 있는 것은 애를 쓰는 (헛되게) 엄마라는 사람, 또는 그 "역할극" 인지 모른다.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이 참 묘하다... 그녀가 읽은 엄마는 어떤 것이었을까?

작은 아이도 그 책엔(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내용엔, 엄마의 퍼포먼스엔) 관심도 없다. 관객을 보고 있는 그녀는 허공을 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엄마의 노력(그녀가 자신의 상황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기 위해 하는 연기와 퍼포먼스)이 슬퍼보인다... 어쩌면 엄마는 아이들을 다 물리치고 혼자 침대에 흩으러져 울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엄마"역에 얼굴을 가린채 최선다하고 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뒷모습의 엄마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다.

왜 하필 제목이 '정글이야기'일까?  엄마가 읽어주는 책 제목이겠지만.
삽화하나 없이 빼곡이 적인 글씨들로 가득한 책.  어른들의 책.  그래서 정글의 의미가 감추어진 그림이다.
그곳에서 말하는 정글 이야기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엄마는 세상이 정글 같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었나? 살아가야할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서일까?

왜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직은 철몰라 계속 동화 같은 꿈을 꾸고 싶기에?

아니면 온갖 미지의 식물과 동물이 가득한 정글 이야기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과 꿈을 말해주는?


화목함속에 감추어진 단절...   어쩌면 거울처럼 남에게 비춰주는
보이지 않는 엄마의 얼굴.....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그 의미를 만들어내라고 우리를 쳐다보는 듯한 어린 딸아이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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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에게 '정글 이야기'를 읽어준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일까?

내가 들려주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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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e Magritte(used here for educational purposes only)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강- 안도현

 

이호정 | 2012.04.27 14: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이 그림 가슴을 울리네요..예전에 제가 그렸던 그림의 새와 너무 달라요..
제 그림의 그 새는 너무 작은 몸통에 비해 너무 커다란 날개를 가져서 몸이 감당할 수 없었는데..
이 새는 정말 펄펄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아요..날아가라 하늘 저 멀리..펄펄..
가시에 찔리지 말고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더 멀리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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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노래와 둘째 언니

 

1960년대 초에는 오늘날처럼 학생의 우상이 되는 연예인은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10대 가수는 아예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듣는 노래는 가끔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검푸른 저 산 넘어, 이슬이 석양빛에 소리 없이 사라져...(나중에야 그것이 영화 <셰인>의 주제가임을 알았다)“ 라든가 암으로 42살에 돌아가신, 살아 계셨다면 지금 70을 훨씬 넘기셨을 당시 영어 선생이던 멋쟁이 큰언니가 벚꽃 만발한 무심천 둑을 내 손을 잡고 거닐면서 불러주던 무언지 모를 영어노래들이 동요 말고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 중에 내가 열심히 따라하던 ”새드 무비(Sad Movies)"는 언니가 친절히 그 노래의 내용을 다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가수들이 영어와 섞어 불러서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히트시킨 노래였다.  

 

당시는 전등불을 시에서 일방적으로 켜주고 끄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밤마다 불이 '나가는' 시간이 통금처럼 정해져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에 들어와서 11시인가 12시가 되면 불이 나갔다. 그래서 늘 어머니나 언니들은 불 나가기 전에 숙제하라고 종용을 하시곤 했었다. 불이 나가면 특히 밤이 긴 겨울이면 언니들과 촛불을 켜놓고 그림자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한 이불 속에 동그랗게 둘러서 누우면 둘째 언니는 어김없이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다 큰 초등학생 동생들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주었을 리는 없고 아마 말로 표현 못한 가슴속의 무엇인가를 어둠 속에서 노래로 대신했었던 것 같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겨울은 가고 따스한 해가 웃으며 떠오고...” 한 시간정도 언니의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유난히 숨이 짧은 둘째 언니가 숨을 참아가며 어찌나 정성스럽게 부르는지, 그리고 그 노래가 어쩌면 하나같이 어두운 밤 혼자 문밖에서 울다 가버리는 겨울바람처럼 쓸쓸하게 들리던지 나는 숨소리도 못 내고 옆에 누워 듣다가는 잠이 들고 했었다.

 

그건 노래가 아니라 차라리 말 못할 하소연이었다. 그 언니가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말없이 나는 가야지” 하고 부를 때면 정말 내일 아침이면 어디로 가버리려고 몰래 보따리라도 싸 놓은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되어서 졸린 데도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두려움과 사명감에 끙끙대다가 잠이 들곤 했었다. 그 언니는 결국 폐가 너무 나빠서 채 피지도 못한 20대 초반에 자신이 즐겨 부르던 노래, “산장의 여인”처럼 요양소로 떠나야 했었다.  

 

큰오빠가 언니를 면회하러 가면 언제나 내가 보내준 편지(그때 내가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 거다.)를 보면서 울고 있었다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언니는 그 곳에서도 의사 몰래(결핵 환자는 크게 웃지도 못하게 했었다.) 밤이면 [노래]를 불렀을 것 같다. 그곳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또다시 같은 노래 가락들 속에 실어서 “말없이 나는 가야지” 하고 불렀을 건 만 같다. 언니의 노래는 어쩌면 내가 책 한 권 내지 않으면서도 혼자서 항상 무언가를 끄적이는 독백의 습관과 어쩌면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때 그 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학교 수업 중에도 혼자서 책 위에 눈물을 떨구며 소리도 없이 울었던 거 같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고 따도 많이 당했었다. "어머머 쟤봐 울어...."라고 나를 보고 깔깔대던 아이들의 소리가 기억이 난다.  

그 언니는 평생 온갖 병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더니, 작년 두 번이나 하나 밖에 없는 폐로 폐렴과 싸우고, 몇 달간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서 고비를 넘겼었다. 이 세상과 저세상을 오가며 겪는 영적인 싸움이 얼마나 무섭고 치열했던지 그 싸움을 할때는 몇일 사이에 완전 뼈와 가죽만 남기도 했었다. 그렇게 힘겹게 살아남았는데 너무 지쳤는지.... 뜻밖에 알츠하이머 초기란다.... 언니는 20살 어린나이 요양소에 홀로 남겨졌을 때처럼 혼자 그렇게 망각 속으로 홀로 숨어버리고 있다.

 

생은 그런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자주 느끼는 슬픔은 생이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9/22/2010

배정순 | 2010.10.15 18: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교수님~삶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힘겨운 과제를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 주워지는 짐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고통은 삶이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의 순간 순간마다 창문이 하나씩 열리듯이
나의 눈이 나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글 읽으면서 마음이 짠합니다.교수님~
bhlee | 2010.12.13 07:35 | PERMALINK | EDIT/DEL
죄송해요. 여기 다녀가실 것을 이제야 알았네요.
소파에 잠시 쉰다는 것이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자면서도 자면 안 돼...안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죄책감없이 그날의 일을 다 끝내고 떳떳한 맘으로 평화롭게 잠잘 수 있을지..
어서 다시 모임을 가져야하는데 도미노현상처럼 밀린 원고들 때문에 이렇게 연락못드리고 있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고 그동안 평안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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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과수원으로 오세요
석류꽃 만발한 곳, 햇살과 포도주와 연인들이 있어요.
당신이 혹 안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당신이 혹 오신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있겠어요.

                                             (루미/ 이봉희 역)

 

photo fr gardening books-Virginia Woolf's garden
(used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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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 본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꼽으라면 당연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를 빼 놓을 수 없겠지만... 그보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티니 컬리지의 정원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 곳은 "아, 좋다"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고요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하던 공간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무도 없는 어둑한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안개처럼 어둠이 내리는 그곳에서 같이 수업 듣던 일본에서 온 학생(선생)과 함께 아무 말 없이 한 동안 앉아 있다가 온 기억이 난다. 휴식과 사색의 공간! 사람들의 의미 없는 소음에 지친 요즘, 나도 그런 의미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요즘,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정원도!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이 가슴 벅찬 아름다움이 당신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니 당신이 있다면 또 이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말이 없어도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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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있는 아이가 입었던 옷과 내가 즐겨입었던 티셔츠)

 

 

 

엄마, 어느새 또 5월 8일이 돌아왔어요. 매년 5월 8일만 잘해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엄마, 제가 엄마 사랑하는 거 아시죠?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를 준비했어요.

엄마. 가만히 오른 손으로 왼손을 쥐어보세요. 전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해요. 꼭 엄마의 손이 제 손을 굳게 잡고 있는 듯해요.

눈을 떠 보았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의 늪 속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는 저를 보았습니다.

어둠과 하나가 되어가는 절망을 느끼며
두려움에 나의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아, 이제는 끝이로구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둠의 늪을 지나 환한 빛을 향해
당당히 걷고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빛에 도달했을 때
저는 비로소 느꼈습니다.
제 뒤에 있던 당신을.

당신을 느끼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아보았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었던
당신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신
당신은 저의 분수십니다.

당신은 제 호수의
분수대이십니다.

은빛 실을 내어
저에게 새로운 삶을 입히시는
당신은 저의 분수대이십니다.

------------------------------------------


나의 사랑하는 딸아이가 어릴 때 어머니날 카드에 쓴 시.
엄마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빈 집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그래서 엄마 손 대신 자신의 손으로 다른 편 손을 잡아주며 엄마를 느껴보던 아이....

 

다 지난 까마득한 옛일인데 아직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딸이 내게 보낸 수 많은 카드들 중 어머니날이면 잊지않고 다시 꺼내보는 카드 중 하나가 이 편지(시)이다.

 

무엇보다 이 편지가 특별한 것은 홀로 버려진 듯 힘든 시간마다 보이지 않지만 등 뒤에 계신, 자신을 홀로 두지 않으신 주님의 임재를 느낀 어린 딸이 대견하고 고마워서이다. 지금도... 늘 그렇게 믿음이 커가는 딸이 고맙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피아노 학원들 다녀오거나, 유치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길가에 핀 작은 꽃이나 작은 돌, 또는 예쁜 작은 카드를 만들어 "써프라이즈!!!" 라고 말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게 자랑스럽게 건네곤 했었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쪽지나 카드를 써주곤 했었지. 지금도 일년에 한 번 만났다 헤어질 때는 어딘가에 편지나 카드를 써서 서로에게 남기곤 한다. 언젠가 아이가 정말 힘들어 할때 내가 그냥 포스트 잇에 세상에서 네가 가장 예쁘고 아름답다고 적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붙어주었는데 일년 후 가 보니 그 낡은 포스트 잇을 그대로 붙여두고 있었다. 딸애가 유학을 떠나던 날 현관문에 붙여놓고 간 쪽지가 아직도 그곳에 붙어 있듯이.
우리에겐 정말 소중한 추억이 많다. 감사하게도.

 


엄마의 딸에게 보내는 글.

나의 생명, 나의 딸,
이젠 엄마보다 훌쩍 커버려서 한참 올려다 봐야 하는 우리 딸. 그래도 엄마는 지금도 늘 네 손을 잡듯이 나의 두 손을 모으고 널 위해 기도한단다. 잊지마,  우리에겐 우리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시고 꼭 잡고 함께 가시는 주님이 계심을.

Do you remember all the pretty letters you gave to me from time to time?
Do you remember you used to prepare a "surprise" for me? -- a little nameless flower, a little card.... anything that said "I love you, Mom"

I knew those little gifts were not just saying"I love you, Mom".  I knew they were telling me that "I needed You.  I missed Mom  all day long."  and that you were  alone and lonely.

I AM sorry, Dearest.   I've never been much of a mother, I know.  However, YOU have been always with me as part of my life.

This is one of your letters you gave me when you were so little!
I miss you so much!

080508

| 2008.02.10 13: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NAPTKOREA | 2008.02.05 17:09 | PERMALINK | EDIT/DEL
정말 너무나 감동적이야..
너가 꼭 해낼 줄 알았어.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만남에서 부터 수업을 통해, 또 연극할 때 널 지켜보면서, 그리고 잠간의 문학치료 모임을 통해, 그리고 결국은 어떤 중대한 갈림길에서 너의 용감한 선택을 통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문학치료의 만남을 통해 차근차근 5년 넘는 세월을 통해 주님이 널 인도하신 발자취가 느껴져. 주님이 널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거 같아.

그 동안 내가 널 참 많이도 울렸지? 물론 난 그런 줄 몰랐지만 콕콕 너의 감추어 놓은 진실들을 피흘리며 대면하게 했지? (사실 지난번 네가 누군가와 사귈 때, 결혼하고 싶다고 할때 내가 많이 많이 염려되었지만 널 믿었어.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참 많이 염려되었었거든. 널 믿고, 또 하나님을 믿었어. 그런데 결국 네가 놀라운 새 만남을 가지게 되었지.. 너무 이것저것 감사해.)

너가 꼭 해낼 줄 알았어. 네 스스로 답을 다 찾아가길 얼마나 바랫는지.... 내가 말한다고 되겠어. 늘 스스로 찾아가야지. 그게 문학치료의 놀라운 힘이야.

바로 그거였어. 이제 보내드려야 해. 그리고 이제 또 맞아들여야 해.

그건 네 맘속에서 네 스스로 해야해. 그부분에 대해선 아마 다음 혹은 그 다음 문학치료 모임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의 모임을 통해서도 할 수 있어.

그리고 짧게 쓰려고 하지마. 늘 길어졌네요..하는데 말이 막힐 때 까지 써야해. 아직도 자의식을 가지면 안돼.. 그렇지? 정말 감동적이어서 잠시 들어왔다가 답글을 써.

이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면 차차 더 놀라운 창의적 자아를 만나게 될거야. 너라면 할 수 있어. 너무 기쁘고 축하해.

I am so proud of you!
| 2008.11.08 21: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JN | 2019.09.15 21: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할머니는 무거운 저를 7살때까지 업고 다니셨어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저는 유일한 친구였나봐요... 제가 그랬듯이... 밖을 나가면 작고 못난 제가 이 세상 최고처럼 자랑을 하고 다니시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 유아원, 유치원도 보내주시고 소풍때마다 간식을 싸서 늘 따라다니셨고... 없는 돈에 우유도 매일 시켜주시고... 할머니와 외출하고 돌아오면 부뚜막에서 할머니와 앉아 방 불을 때면서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할머니에게 기대 잠이들고... 하얀 쌀뜬 물로 만든 김치 찌게로 맛있게 밥을 먹고 저녁 헤질 무렵이면 큰 나무들이 즐비한 수봉산공원이라는 곳에 가서 앉아 이야기하고.... 제 모든 푸르른 기억은 할머니와 나눈 시간들이었어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할머니댁에서 엄마아빠가 있는 서울로 오면서.... 저는 부모님과 살게 되는 것만 마냥 기뻐서... 그 날 하루는 할머니 생각을 못했어요.... 집으로 오는 길에 아빠에게 제가 어떻게 물어봤는지 정확히 기억해요..."나도 이제 엄마아빠랑 살아도 돼?" 라고... 아빠는 대답했어요.."그게 무슨 말이야...우리 딸 당연히 엄마아빠랑 살아야지..." 신나게 팔을 흔들며 집으로 왔는데.... 그 날은 할머니 생각이 단 한번도 안났어요..... 없으면 안 되었던 할머니를요.... 커서도 그 날때문에 할머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할머니가 얼마나 슬펐을까... 많이 우셨을꺼라고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려봤어요.....

문학치료 모임 첫 시간에 했던 회호리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썼어요...."왠지 나를 할머니로부터 떼어놓는 것 같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다..."고...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제 그 자리에 엄마를 앉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늦어졌지만.... 엄마가 내 마음 영혼의 안식처까지 될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엄마를 다시 부둥켜 안아보고싶어요....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마음이 이것을 먼저 알았을까...... 논리가 따라 잡을 수 없는 이 것... 이것을 그래서 직관이라고 부르는 건가? ......

장문의 글을 쓰려고 한 건 아닌데.... 주저리주저리 나오고 또 나오네요.......내 눈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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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가

너희가 하늘을 나는 걸 봤단다.

바람에 실려

소중한 것 하나만 지닌 채

훨훨 길을 떠나는 모습이

마냥 기쁘게만 보였단다.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하잘것없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나면 나도

하늘 높이 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호시노 토미히로 - <민들레> 중에서

 

051414

| 2014.05.22 23: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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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hlee

 

 

모란 터져버린 "찬란한 슬픔의 봄" -   5월이다.  

 

아파트 화단에 며칠 전 모란이 함박웃음처럼 화알짝 피었었다. 어제 저녁 일부러 카메라를 가져갔지만 벌써 시들어가고 있었다.

모란꽃을 보면 내 맘에 살아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어린시절 우리 집엔 아주 큰 꽃밭이 있었다. 뒷마당 비스듬히 경사지게 만든 꽃밭에는 키 작은 채송화부터 맨드라미, 해당화, 모란, 사르비아, 칸나, 매화, 온갖 색깔의 장미, 사철나무, 무궁화, 찔레, 수국, .. 등등, 참 많은 꽃나무들이 (그리고 대추나무도) 있었다. 나는 언니 오빠가 모두 학교 가고 혼자 남은 오후, 쨍하게 깨질 듯한 정적 속에서, 그리고 현기증 나게 환한 햇살아래서 항상 꽃밭에서 놀았던 것 같다.  바닥에 뚜욱뚜욱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서 돌로 찧어 혼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소꿉놀이도 하고....  엄마를 찾아 부엌으로 가면 커다란 무쇠 솥들이 돌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주르륵 앉아있고 그 아래 불 꺼진 아궁이는 오후의 정적만큼이나 거대한 암흑의 입을 벌리고 나를 삼킬 듯 쳐다보았다.  평소 따뜻하던 부엌은 나른하고 외로운 오후의 정적 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두려움을 주는 장소였다.  엄마는 늘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나는 참 외로웠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유달리 꽃을 좋아하셨던 엄마는 모란꽃을 꽃밭에서 파서 싣고 오셨다.  서울에서도 몇 차례 이사를 갈 때마다 잘 견디어오던 모란을 어머니는 오빠가 마침내 아파트로 집을 바꿀 때 집 화단에서 우리 집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주셨다.  못내 남의 손에 그 사연과 역사가 담긴 모란을 넘기고 싶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마침 우리 아파트가 1층에 있었기에 거실 바로 앞 화단에 그 모란을 심어주셨다.  엄마의 모란은 오랜 세월 죽지도 않고 참 감사하게도 봄마다 자줏빛 짙은 웃음을 벙실벙실 성실히도 피워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또 이사하면서 엄마의 모란은 그만  이제 남의 집 베란다 앞에 남겨지게 되었다.  가끔 그 아파트단지에 사는 언니를 방문할 때면 나는 일부러 내가 살았던 동엘 가본다.  베란다 앞 화단에 모란이 잘 있는지 보고 싶어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모란은 전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남아 몇개의 꽃을 성실히 피우고 있었다. 올 봄엔 가보지 못했다.  사실 두렵다. 그 모란이 어느날 웃음꽃을 거두게 되는 것을 보는 게...

새벽에 어렴풋이 눈을 뜨면 엄마는 항상 라디오에서 새벽의 명상 프로그램을 듣고 계셨다. 잠결에 들려오던 음악은 타이스의 명상곡과 생상의 백조였다.  그 많은 일과 중에서 늘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  나이 들어, 앉아서 졸고 계시는 어머니께 '엄마, 누워 자..' 하면 얼른 '아니다..' 하시고 다시 무언가 하시던 어머니.. "잠자는 시간은 죽은 거 한가지인 데....." 하시며 살아 있는 시간들을 아끼시던 엄마. 

 

엊그제 동네에서 모란을 보았을 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잠든 공원묘원은 봄이되면 꽃이 유달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봄에 늘 공원묘원으로 놀러 가서 다른 사람들이 하필 묘지로 봄나들이를 가는지 이상하게 생각한다던 Mrs. Patch의 말이 생각난다.  난 마음과 달리 엄마의 묘소에 혼자서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그립다고 말하는 게 참  염치없고 죄스럽다. (얼마전 딸과 사위와 함께 엄마와 아버지, 오빠가 잠든 그 곳을 찾아뵈었을 때 우리 마음처럼 안개비가 내렸었지... 아이는 그만 눈물을 터뜨렸지...)

 

어김없이 5/8일은 찾아오는데 나는 엄마를 찾아뵐 수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친정이 이제 없다.

엄마.. 정말.. 죄송해요. 치매 병원에 계실 때도, 그렇게 그 곳에 홀로 남겨지는게 싫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우리만 가면 집에 데려다 달라구 아기처럼 애교를 부리며 보채셨는데....  다른 사람 다 몰라봐도 그리 사랑하셨던 우리딸이 가면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일부러 곡기를 스스로 끊으신 엄마....  그때도 나는 내 고통에 함몰되어 허우적거리느라 자주 찾아 뵙지도 않았다.  참 모질고 이기적인 나쁜 딸이었다. 인간은 얼마나 모질고 이기적인가.   내가 엄마 그립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후회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것인지....

사람들은 꼭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야 후회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란 안전하다. 책임이 따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때에야 후회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이기적이다. 

용서를 해 줄 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허공에 대고 용서를 구하는 이 이기심.


부끄러운 나의 사랑은 늘 그렇게 한 발 늦고야 만다.... (2008.5.8.)

패랭이꽃 | 2008.05.06 23: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슴을 후벼 파듯이 스며 들어오는 선율! 너무 슬퍼서 너무 아름다운 곡
음악이 듣고 싶을 때도 교수님의 공간을 찾아 들어 올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bhlee | 2008.05.07 19:35 | PERMALINK | EDIT/DEL
오랜만이에요^^ 잘지내고 계시죠?
qnlrps | 2008.05.25 20: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꽃빛은 붉고
마음은 서럽고.

안전한 후회, 늦은 사랑에 잠시 아프다 갑니다.
chopin | 2008.05.25 20: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직도 사랑 할 이 많습니다.
후회없이 사랑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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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2008.07.03 12: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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