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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 -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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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식구 - 문태준

  작은 언덕에 사방으로 열린 집이 있었다
  낮에 흩어졌던 새들이 큰 팽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한 놈 한 놈 한 곳을 향해 웅크려 있다
  일제히 응시하는 것들은 구슬프고 무섭다
  가난한 애비를 둔 식구들처럼
  무리에는 볼이 튼 어린 새도 있다
  어두워지자 팽나무가 제 식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출처: [맨발, 2003/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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