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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치료사 어떻게 되었을까?

(출처:  캠퍼스멘토 잡지 2020.8./ 예술치료사 어떻게 되었을까?)

 

-문학치료

국내 유일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CJT) 이봉희 교수

 

>>교수님의 어린 시절을 들려주세요.

저는 7남매중 막내였어요.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엄마와, 저보다 18살이나 많은 큰오빠였고요. 당시 서울에서 S대를 다녔던 오빠는 집(청주)에 내려 올 때마다 동화책을 한보따리씩 사다 주었는데 그 책을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오빠의 방에는 늘 철학책, 시집, 문학전집 뿐 아니라 당시로서 정말 구하기 어려운 수입 명화집이 가득했어요. 전축에서는 고전음악이 흘러나왔고, 벽에는 고흐, 샤갈, 마티스, 세잔, 피카소, 고갱, 르노아르 등 화가의 그림들이 걸려있었죠. 그런 오빠 방에서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자랐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도 가끔 남들처럼 입시준비와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에 하염없이 베토벤을 듣거나 책상 앞 벽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바라보며 밤을 새기도 한 기억이 나네요.

 

여름밤이면 마당 툇마루에 엄마의 무릎을 베고 엄마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 듣곤 했어요. 그때 저의 꿈은 국문과를 나와서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고, 초등학교 때는 교내 글짓기상은 물론 시장이나 도지사 상을 타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앞서 말한 내용들이 저에게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것 같아요.

 

저희 집에 딸이 다섯인데, 엄마는 딸이어서 차별하신 적이 없었어요. 여자는 이래야 한다, 라고 하신 적도 없었고요. 엄마는 대가족 큰살림에 고달프신데도 꽃이나 새,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셨어요. 집 뒷마당 커다란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있었고, 마루가 긴 집 벽에는 새장이 빼곡이 있어서 카나리라, 잉꼬 등등 새들을 키우셨죠. 그리고도 틈만 나면 낮이든 밤이든 한국문학전집을 소리내어 읽곤 하셨어요. 새벽이면 잠결에 들려오는 엄마의 책 읽는 소리,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클래식음악과 명언들을 읽어주던 프로그램-이 늘 저와 함께 했고 그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곤 했어요. (주로 듣던 그 라디오의 곡이 타이스의 명상곡이나 생상의 백조라는 걸 후에 알았죠.)

 

그리고 6학년 때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사춘기 시절 친구들은 그 당시 아이돌이던 클리프 리차드라는 가수에게 흠뻑 빠져 있거나, 남학생들이나 다른 소녀다운(?) 관심거리가 많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제 관심을 끈 건 연약한 사람들(나와 같은 나이에 공장에 다니는 여학생들, 아침 만원버스에 매달려 승객을 태우는 우리또래 여자 차장들, 그리고 노인들, 힘겹게 리어커를 끌며 언덕을 올라가는 나이든 노동자들 같은)이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하신 생각은 무엇인가요?

나는 왜 존재하게 되었으며 삶을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삶의 조건들, 삶의 부조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거 같아요.

 

>>학창시절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윤리를 가르치러 오셨던 대학교 철학 강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선생님은 제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해주실 수 있을 거 같았죠. 그래서 교무실에서 주소를 얻어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데 낯선 변두리 지역에 있는 선생님댁을 찾아갔어요. 한옥 선생님댁 마당에 서서 선생님을 부르자 그 선생님께서 안방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셨어요. 90도로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 사람은 왜 살죠?"라고요. 그런 저 자신에게 그 선생님보다 오히려 제가 더 놀랐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들어오라고 하셨죠.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쇼펜하우어의 말이었지만)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는 맹목적 의지(will to live)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대답보다 그날 제게 해주신 말씀이 요즘은 더 자주 기억이 나요. "내가 너를 기억한단다. 네가 교무실을 왔다 갔다 할 때, 얼굴에 고통의 빛이 있어서."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제가 교수가 되고 교실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아요.

 

>>현재의 직업을 꿈 꾸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 소위 모범생보다는 삶과 자신에 대한 의문과 답을 찾기 위해 싸우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에게 더 마음이 갔어요.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것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교수가 되어 영문학을 가르칠 때에도 제 친구들이나 학생들, 주변 사람들은 제게 어려운 일이나 가족의 비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곤 했어요. 저는 마치 상담사처럼 힘겨운 이들의 고민과 비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어려서부터의 삶의 경험들이 이후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을 때에도 제 수업방식을 일반 수업과 다르게 했고, 결국 학창시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심리상담사와 문학치료사의 길을 가도록 이끄는 준비과정이었는지도 모르죠.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들려주세요.

제가 학교를 다닐 시기에는 중고등학교가 평준화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중학교 진학 때부터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입시를 봐야했어요. 대학은 예비고사를 보고 본고사를 학교별로 치러야 하는 시절이었죠. 소위 상위 3대 학교인 숙명여중고는 대학교를 성적 때문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어요. 어느 대학교를 들어가느냐가 문제일 뿐이었죠. 학생 때 제가 가장 잘하던 과목은 영어였어요. 어쩌다 한두 문제 틀리는 경우 외에는 늘 만점을 받았는데 지리나 역사처럼 단순히 외우는 과목을 잘 하지 못했어요. 특히 몇 번 결석하고 나니 수학은 전혀 따라갈 수도 없어서 제게는 가장 힘겨운 과목이었던 것 같아요.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되어서 수학은 혼자의 힘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고요. 또한 당시 학교 교사들에게 국영수는 물론 과학까지 다 과외를 받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방과 후에는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고 그런 고독은 자연스레 저를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시기와 시간을 주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가난이나 고독이 제 자존감을 낮추거나 저를 주눅 들게 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사춘기의 경험들도 훗날 제가 치료사가 되고 특히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경험들이었던 것 같아요. 불행(특히 나의 선택이 아닌)하다고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었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알게 되었죠. 고등학교 때 읽은 루이제 린저의 책의 한 구절 “나는 왜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안 된단 말입니까?”에서 그만 눈물이 나왔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말은 때로 오해를 낳고 또는 털어놓은 걸 후회하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치료가 아주 효과적이고 독특한 치료법이라고 늘 실감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시 계열 및 전공 선택

저는 문학이 좋아서 영문과를 가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등록금 때문에 S대를 가야했고 실력이 모자라 전혀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하다보니 관심도 없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입시에 실패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제게 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당시 2차 대학이던 성균관대 영문과를 수석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4년내내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 걱정은 없었지요. 영자 신문사와 영어연극, 아르바이트 등 정말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졸업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는데, 그게 다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또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해요. 2차 대학을 들어가고 첫 동창회에 갔었는데 소위 SKY대학을 못 간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동창회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던 기억이 나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거의 3시간 가까이 걸어오면서 내가 왜 불행하고 슬픈가 생각해보았어요. 내가 실패한 S대학은 원하던 학과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건 세상이 내가 S대를 실패해서 나를 실패자로 본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3시간 동안 넘게 내 몸과 마음을 적신 눈물 같은 봄비 속을 걸으며 깨달은 것은 그 세상의 잣대가 틀렸다면 내가 세상의 평가를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자유를 느꼈죠. 그 후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일찍 새벽같이 학교를 갔고 빈 강의실에서 혼자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죠. 이제 나는 어른이고 내 삶의 주인은 나이며 내가 책임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학생들이 학과와 학교를 선택할 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권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님과 솔직히 대화하면서 전공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하죠. “내 진정한 자아 속에서 솟아나오려고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내 진정한 내면의 열정과 소리는 정말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해요.

치료사라는 직업도 마찬가지에요. 왜냐하면 지금 치료사들, 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도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흔들리기 때문이에요. 특히 상담심리사와 마찬가지로 예술치료사의 경우 정말 왜 치료사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내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서 그 전공을 선택하는 것 이상의 전문성과 미션이 필요하니까요,

사실 40살에 새로운 대학원에 도전해서 수료한 적이 있었어요. (이제 보니 3개의 다른 전공으로 3개의 대학원을 다녔었네요. 문학치료까지 하면 4개의 전공이네요..)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전문경영인과정이었는데요. 그 공부를 하면서 또 한 번 절실히 깨달았어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해야 내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으며, 힘든 상황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세상에서의 성공 여부와 무관히 내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요.

 

 

>>학창시절 교내 외 활동 에피소드 

중학생일 때는 가정형편 문제도 있었지만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서고 싶어서 중3때 중1학생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학생을 소개시켜주시고 도와주신 선생님께 지금도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연극을 하면서 소극적이던 제가 많이 적극적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연극연습 합숙을 통해서 편식도 고치게 되었고요. 미국대사관 문화원에서 하는 영어회화 팀에서 활동하면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번역하기도 했었죠. 대학 때도 영자신문사 외에 영어연극(연기와 연출)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아마 제가 영문학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전공으로 학위를 받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늘 철학에 관심이 있었고 영문학 외에는 모든 선택과목을 거의 다 철학과 과목을 선택했었어요. 그 외 방학 때면 늘 선후배들과 함께 배낭을 메고 산에 가거나 여행을 자주 갔었어요. 대학교 1학년때는 방학 내내 전축 앞에서 클래식음악만 듣고 보낸 적도 있었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저널테라피(글쓰기치료)와 비슷한 것이더라고요. 일상에서 느끼는 내 마음과 느낌을 적는 습관은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었죠. 출근하면 (늘 일찍 출근해서) 일단 짧게라도 일기를 쓰고 일을 시작했었어요. 이런 모든 게 문학치료사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 걸 이제는 알겠어요. 게다가 저는 시를 무척 좋아해서 시간만 되면 서점에 가서 시집을 골라서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을 공책에 적어보곤 했었어요. 제 삶에서 시와 문학과 글쓰기, 그리고 음악(고전음악)과 그림은 늘 저를 치유해주는 상담사와 친구의 역할을 했던 거 같아요.

 

 

>>졸업 후 어떤 일을 하셨어요? 

저는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삶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죠.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4학년 2학기말부터 체이스 맨하탄 은행(록펠러가 한국에 왔을 때 악수했던 기억도 나네요)과 중국대사관(대사비서)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 후 서른이 넘어서야 원하던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 아기를 갖게 되었어요. 남편은 미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출산 후 공부를 시작했기에 간난 아기와 단 둘이 남아서 아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공부한 곳은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인데 대학원 영문학과에 영어가 외국어인 동양인은 제가 처음이라고 했어요. 먼저 돌아가는 남편과 함께 돌도 안 지난 6개월 된 아기를 한국에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아기 옆에는 엄마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제가 데리고 공부했죠. 수업하다 기숙사로 뛰어와서 모유를 먹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베이비 씨터를 구할 수 없어서 아기를 데리고 대학원 수업을 가기도 했었죠. 제 생에 가장 힘겨웠던 자신과의 싸움의 시간이었어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정말 멋지게 지혜롭게 자라준 사랑하는 딸에게 그저 늘 미안하고 감사하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대학 강사 시절 때는 어떠셨어요? 

그렇게 원하던 영문학과 유학이었는데 물론 감사하고 좋았죠.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문학에서 제가 찾던 답을 찾았다기보다는 내 삶과 마음의 문제와는 조금 무관해 보이는 지식위주의 평론과 문학읽기에 회의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학을 내 자신의 눈과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고, 문학작품이 하나씩 그날그날의 내 삶과 연결이 되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강의가 달라지고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심지어 시간강사일 때 같은 과목을 다른 두 분의 교수님들과 같이 개설했는데 제 시간이 제일 먼저 50명인원이 마감이 되어서 교무처에서 이상하다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도 머리에만 머무는 인지적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경험과 연결된 문학수업방식에 목말랐던 거 같아요. 저의 교육철학은 “우리는 지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칼 로저스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 진심으로 동감하고 지식을 감정과 경험에 연결시키는 통합적 교육을 하고자 한 것이었어요. 이런 수업방식이 결국 많은 학생들이 제가 교수가 아닌 연구실이 없는 시간강사임에도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오게 했고 또 다시 자신들의 고민을 상담하게 했고(연구실이 없으니 커피숍이나 학교 벤치에서), 수업 중에 눈물을 흘리거나 편지를 보내는 일이 생기게 되었죠. 제가 10대 때, 그리고 대학생 때도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이 얼마나 의지할 멘토가 필요했으면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 학생들과 한 명, 두 명, 만나다가 30명 가까이 제 집에 일요일마다 모여서 같이 공부하고 대화하고 개인적으로 상담하는 일을 10년 가까이 하게 되었어요. 특히 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는 외로운 학생들을 명절 때가 되면 불러서 함께 송편도 빚고 떡국도 먹고 했었죠. 정말 돌이켜보면 저는 오래전부터 그때는 알지도 못했던 문학치료사와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한 길을 한걸음씩 걷고 있었던 거 같아요.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끝냈기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이 있었죠. 긴 강사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참 행복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마흔 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천안의 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에 교수가 되었죠. 마침 총장님이 외국인이어서 성별이나 나이에 대한 편견이 없으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는 것은 제가 교수로 첫 출근했을 때 신임교수에게 인사하러 학생들이 여러 명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그들 중 한 대표아이가 한 말은 “저희는 영어를 배우러 왔지 문학 배우러 이 과에 온 게 아니에요. 저희는 문학을 증오해요”라는 말이었어요. 그때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서울에서 문학을 강의할 때 인기 만점이던 저였는데 실망했을까요? 사실은 정말 기뻤어요. “내가 제대로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만큼 저는 서울에서의 강의 경험과 학생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문학의 치유적 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첫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문학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죠. 그리고 수업 때마다 늘 미리 수업에 읽을 문학작품(주로 단편소설)을 읽고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써오게 했는데, 감상문을 쓸 때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을 자유롭게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죠. 만일 남의 이야기를 카피해오면 과제점수 0점. 자신만의 생각과 이야기를 써오면 만점이라고 기준을 정확히 알려주었죠(때로 영어가 어려워 내용을 전혀 다르게 오역해서 읽었다 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당연히 이후에는 수업 때 객관적으로 문학에 접근하는 법을 강의했지만 그 이전에 반드시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개인적인 반응과 목소리를 마음껏 표현하고 서로 맘껏 토론하게 했어요. 그리고 학생들의 과제에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고 공감해주면서 소통하기 시작했죠. (사실 여러과목을 강의하면서 몇십명의 과제를 다 읽고 하나하나 댓글을 써주는 것은 여간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거듭될수록 학생들의 태도와 반응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설마 교수가 내 과제를 읽을까 하고 대충 형식적으로 써오던 학생들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죠. 많은 학생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 마음속에 억압되어 있거나 잠재되어있던 감정들, 아픔, 상처,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을 하나씩 만나고 자유롭게 안전한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들의 독특한 생각과 경험이 평가받거나 비난받지 않고 어떤 것이라도 존중되는 것을 매시간 경험하게 되자 학생들은 차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고 자존감도 높아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또한 15년간 매년 드라마 수업시간에는 영어연극을 공연하고 학생들은 이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 창조 작업을 통해서 성격이나 대인관계의 변화 뿐 아니라 잠재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기도 했죠. 이게 바로 문학치료적인 수업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그럼 본격적으로 문학치료사의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에서 말했던 20여년 동안의 문학수업을 통해 경험한 학생들의 변화가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 문학을 증오한다고까지 (얼마나 문학이 어렵게 느껴졌으면 두려워서 그랬을까요?) 선언했던 학생들이 교실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또는 졸업생들의 편지를 받으면서 문학과 글쓰기의 치유적 힘에 대해 확신이 들었죠. (물론 나 자신 어려서부터 써온 일기의 치유적 힘이 있었지만 제게는 그게 너무 자연스런 일이어서 미처 깨닫지 못했었거든요.) 그래서 교수로서 정년퇴임을 하기 전에 남은 내 삶을 무엇에,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여 살아갈까 고민하다가 문학치료라는 학문을 개발해야겠다 생각했죠.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미 200년 전부터 의사들을 중심으로 병원에서 문학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과 미국이 세계적으로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가장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시행되며 학교, 병원, 상담, 복지, 재활, 아동, 심리치료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정착된 분야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연구년 때 문학치료를 공부하기 위해 떠났죠. 그런데 J-1(교환교수비자)비자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일단 모든 짐을 챙겨서 여행비자로 무작정 갔어요. 큰 위험을 감수한 거죠.

 

제가 살면서 깨닫는 것은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늦는다는 거예요. 간절하면, 내 마음과 열정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다음 확신이 서면 용기내서 일을 시작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생기기 마련인 어려움은 그때그때마다 해결하자는 용기로 살아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제 경우 그렇게 간절한 확신과 열망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정말 드라마틱한 일들과 인연을 통해 덴버에 정착하고 덴버대학원 연구교수 비자를 받게 되었죠. 그곳에서 미리 국제전화로 인터뷰한 제 멘토이며 수퍼바이저 그리고 동료이며 의자매가 된 저널치료의 세계적 대가인 K. 애덤스를 만나 수업과 수련을 받게 되었고요. 모두들 문학치료 하나 배우러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날아온 저를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제가 문학치료사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최초의 동양인이었거든요.

 

 

>>영문학 유학 후 다시 떠난 문학치료 유학 후 후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한국에서 가르치던 방법이 결국 문학치료적인 수업이었음을 알고 반가웠어요. 공부하러가서 몇 달 후 전미문학치료학회에서 (저의 수업 경험에 의한 확신이 있었기에) 세션을 맡아 진행하겠다고 신청하게 되었죠. 그리고 선정이 되었고요. 저의 경험과 확신이 그런 용기를 내게 한 것 같아요. 미국의 전미문학치료학회(NAPT)는 일 년에 한번 일주일간 열리는데 큰 호텔을 빌려서 미국 전 지역에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참여해요. 세션도 수 십 개가 되고 사람들이 각 세션마다 참여비를 내고 선택을 하죠. 그러니 웬 문학치료사도 아닌 한국 사람의 수업에 누가 등록을 하겠어요. 그런데 호기심으로 참여한 8명의 참여자들이 모두 다 놀라운 반응을 보였어요. (세션당 보통 10-15명 정도 참여합니다.) 일일이 악수하면서 감동적인 인사를 하였고 어떤 분은 당신 같은 교수가 있으면 내가 당장 그 학교에 다녔을 거라는 칭찬을 해주었죠. 그 후 2년 뒤 다시 학회에서 워크숍을 하게 되자 그 세션에는 수많은 상담사와 교수들이 등록을 해서 정말 기뻤어요. 수업 중 저를 주제로 시를 써서 주신 교수도 있었고 제 발표와 워크숍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한결 같이 가장 높은 최고점의 평가를 해주어서 너무나 기쁘고 또 감사했죠.

 

그 후 자격증 취득 시에는 우수 치료사례로 인해 미국 전미문학치료학회(NAPT)에서 “기쁨의 씨앗상” 수상도 하고 NAPT공식한국대표(Official Representative)로도 역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교육부문), 파워코리아대상(신지식인)등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에는 열심히 활동을 했어요. 일단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 한국지소인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를 열었고요. 지난 15년간 12권의 역저서와 수많은 문학치료 논문들, 그리고 기고문과 칼럼 등을 써서 문학치료를 알리기 시작했죠. 학교 수업으로도 벅찬 일정인데 먼 작은 지방도시나 늦은 밤 강의해야하는 곳까지 마다하지 않고 사명감으로 달려갔던 거 같아요. 취학 전 아동부터 무학독거노인들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그리고 언론인들의 클럽이나 로터리클럽부터 교정시설까지, 공무원, 교사, 대기업간부, 청소년, 부모, 상담사/치료사들, 도서관사서 등 수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대상 연수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을 하고 있어요. 그 외 전국 5개 병원에서 암환자, 장기요양환자, 뇌병변환자 대상 글쓰기문학치료모임을 한 달 간 이끌었죠. 각종 라디오나 티비 등의 매체에 출연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학치료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문학치료사를 개인적인 센터에서 단기간 몇 과목으로 자격증을 주는 것 말고 심리학/상담학 과목들과 함께 제대로 된 대학원 교육으로 치료사를 교육할 수 있는 커리를 갖춘 대학원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었고 나사렛대학교 대학원에 국내 유일의 단일 전공 (연계전공이 아닌) 문학치료학과를 개설하게 되었어요. 또한 예술치료사로서의 활동범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61살의 나이에 상담심리대학원에 입학하여서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많은 경험과 배움을 얻었죠. 그 사이 전문서적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저서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가 문화관광부선정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고요. 현재 대학원에서 정통 문학치료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미래 문학치료사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2020년 현재 정년퇴임 후 대학원에서 명예교수로 교육을 계속하면서 이제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에서 문학치료사 교육과 수련과정을 운영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문학치료적 방법이 학생들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요. 

이미 설명한대로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했죠.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면 우편배달부가 네루다(페루의 세계적인 시인)에게 시는 시인이 아니라 읽는 독자의 것이라고 말하죠. 일차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만일 오늘 이 문학작품을 읽고 그 의미를 어떠어떠하게 느꼈다면 그 작품을 지금 내게 그런 의미인 거예요. 그런데 같은 작품(시, 소설, 영화, 일기, 노랫말 등)이 일 년 뒤에 전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면 그 시점에서 그 작품은 내게 그런 의미인거요. “좋은 시는 내가 성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한다”라는 말처럼 말이죠.

 

특히 글쓰기는 (수업 중에는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써오는 감상문 과제) 자신의 내면의 아픔이나 고통과 스트레스를 털어놓고 정화하는 아주 중요한 치료적 역할을 하죠. 그러나 배출만 한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죠. 문학은 공감을 해주거든요. “나는 고통 받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니,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독백하고 있는)나에게 문학은 “너만 그런 게 아냐. 나도 그래(you are not alone)”라고 말해주죠. 게다가 저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감상문을 써올 때에 그 과제에 무슨 말을 썼든지 열심히 공감하거나 긍정적 칭찬을 해줄 곳을 찾아서 댓글을 달아주었어요. 보고서 양이 많고, 수업도 여러 과목인데 그것들을 매주 다 읽고 대답을 해줘야하니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그게 학생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된 거 같아요. 학생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공감 받고 존중받는 체험이니까요. 내담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일차적으로 상담자가 들어주고 공감해줄 때 치유가 시작되잖아요. 그런 활동들을 제가 10년 넘게 교실에서 했는데 학생들이 계속 변해가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자존감이 높아지고 집중력, 학업성적도 오르죠. 친구나 부모와의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면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도 결혼해서 학부형이 된 제자들이 찾아와 수업 중 함께 읽은 이야기, 영화, 등 수업 내용을 다 기억하고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변했고 성장했는지 부모가 되어보니 더 실감한다고 해서 제가 더 감동을 받았어요.

 

문학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학부 학과 과목 중에 문학/저널치료를 통한 감정치료와 관계문제를 다루는 과목도 개설했는데 학생들에게 정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지난 주 스승의 날에도 졸업생이 편지에서 그 수업에서 받은 도움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던 자신이 이제는 직장생활에서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주장하고 또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게 놀랍다면서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았어요. 학생들은 처음엔 시험보기 쉽게 판서해서 정리해주는 수업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정서와 접촉하게 하며 토론하고 발표하는 저의 문학수업방식이 낯설어서 훨씬 힘겨워하죠. 저는 제 문학 수업이 지식을 (더구나 이제는 정보나 지식은 인터넷으로 즉각 접할 수 있는데) 전달하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 한대로 지식이 머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전인적 교육이 되도록 부족하지만 늘 노력하고 있어요. 한 학기 수업 후 학생들이 단순히 영문학지식 혹은 문학치료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늘었다기 보다는 자신이 성장했다, 자기 자신과 친구, 가족,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제 수업을 잘 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그런 말이고요. 그리고 그런 경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해도 전과 다르게 더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을 읽는 힘과 문학을 읽는 힘과 치유의 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문학치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문학치료란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하면 심리치료의 한 분야로 치료적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치료사와 내담자(참여자)사이의 상호작용에 문학과 글쓰기라는 언어의 힘을 활용하는 방법이죠.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은 교실에서처럼 문학이 가진 예술적 의미나 해석, 교훈적 주제나 책을 통한 교육(인성교육이라 할지라도)과 무관해요. 독서토론이나 독서코칭과는 다른 심리치료의 영역입니다.

 

문학, 특히 시는 그 상징성과 이미지 때문에 내담자의 마음속에 있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나 감정, 고통, 상처, 스트레스 등을 이끌어내는 ‘촉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힘을 가진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문학치료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죠. 특히 말로 하는 상담과 달리 글쓰기/저널치료를 적극 활용하는데 글이 갖는 독특한 치료적 힘은 의학영역에서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글쓰기문학치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치료워크숍에서 체험에 보는 것이에요.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제대로 자격을 갖춘 치료사의 워크숍에 참여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소장으로 계시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는 문제해결과 치유, 성장을 위해 문학(시와 영화 등 문자활용 매체)과 글쓰기를 활용하는 심리치료인 [문학치료]와 [저널치료]를 위한 학문적 연구(저술, 논문, 워크숍, 강의) 및 치료활동을 목적으로하는 연구소에요. 문학과 글쓰기의 힘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의 치료, 심리적 외상 치료, 관계의 치료, 부적응치료, 스트레스 해소/치유, 그리고 열등감, 불안, 강박, 분노, 우울, 낮은 자존감 같은 등 여러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감추어진 내면의 참자기를 찾아 실현시킴으로서 잠재력과 창의력 개발로 질 높고 풍성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저는 글쓰기치료와 문학치료 전문가로서 뿐 아니라 상담심리사로서 집단문학치료 뿐 아니라 개인상담도 하고 있어요.

 

연구소활동으로는 2004년 이후 지난 15년간 12권의 역저서와 수많은 문학치료 논문들을 써서 문학치료를 전하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활동으로는 취학전 아동 창의적 글쓰기치료, 중고등학생 대상 문학치료, 인터넷중독 초중생치료, 취약계층독거노인을 위한 문학치료/회고록쓰기,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 치료, 학부모 교육, 교사대상 연수, 공무원 간부연수, 기업체 간부문학치료, 남산클럽, 로터리클럽, 교정시설, 도서관, 전국 5개 병원에서 암환자, 장기요양환자, 뇌병변환자대상 글쓰기문학치료모임, 인문학특강, 각종 학회활동, 라디오나 티비 등의 매체에 출연. 그 외 각종 매체에 기고문과 칼럼으로 대중들에게도 글쓰기문학치료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이며 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저널치료수퍼바이저입니다. 또한 국내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육할 수 있는 공인자격증(CIJTTS)소지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치료사로서의 비전

치료자이든 아니든 사는 건 "나 자신이 되어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여정이죠. 그 여정의 선택은 내가 어떻게 살지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과 철학에 따른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내 길만이 옳은 것도 아니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하는 일이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제 한계를 인식하고 늘 스스로를 성찰하며 공부해야하죠. 모든 결정에 현실적 이익보다는 이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인지를 생각 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성장을 통해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뒤늦은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어려운 유학의 길을 떠났을 때도, 나이 50이 넘어서 문학치료를 공부하러 미국에 갔을 때도, 60세 초반에 또다시 새로운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그 모두 현실적 성공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내면의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기실현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늘 소망합니다. 직업적으로도 늘 끊임없이 배우고, 진솔하게 느끼고, 삶의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며 "문학치료사 되어가기"를 꾸준히 계속하는 일. 이게 저의 비전입니다.

 

그리고 제 전문분야에 대한 꿈도 있죠. 모든 이론은 충분한 시간 동안의 실제 경험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섣부르게 책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15년의 강의와 다양한 글쓰기문학치료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치료의 이론와 실제에 대한 책을 쓸 때가 된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정말 쓰고 싶은 책은 전문서적이 아니라 다른 책이지만 더 늦기 전에 전문서적을 내야할 사명감을 느낍니다.

 

그 외에는 미국처럼 전국의 문학치료 관련의 각 센터, 연구소 등을 모아 교육체계나 자격증의 통일을 이루는 하나의 협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모두 정말 많은데 제 건강문제와 시간이 허락해줄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내 삶의 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의 비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점 

모든 직업이 다 나름 힘들지만 치료사/상담사의 일은 특히 정서적으로 소진이 정말 많이 되는 직업이에요.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한 저는 오해를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담자에게 또한 학생들에게서도 상처를 받기도 하고요 휘청거리기도 하고, 오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정서적 지지를 얻도록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들-- 문학, 음악, 미술, 영화--을 더 많이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서적 소진이나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저도 매일 시를 읽고 글쓰기를 합니다. 좋아하는 고전음악을 듣고 또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자주 가고 (서로 바쁘지만) 마음이 통하는 가족과 대화를 자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하느라 신체적 건강을 돌보기 힘든 삶을 살아왔었기 때문에 지친 몸을 위해서 요즘은 수면관리, 제대로 식사하기, 운동 등으로 좀 더 건강관리에 힘쓰려고 노력합니다.

 

>>치료사의 커리에서 다음 단계로 밟을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교육자가 될 수 있겠죠. 사실 문학치료를 가르칠 수 있는 공인된 수퍼바이저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가 너무 부족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어디서 취득한 자격증인지도 모르는 치료사나 전문가라는 명칭을 스스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학치료사의 자질

글쓰기문학치료사로서의 전문적 지식과 공감능력.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받아야 함.

상담심리사의 윤리규정을 따르고 그 기준에 맞아야함.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퍼바이저가 있어야 함.

자신의 한계를 늘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문학치료사이므로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함.

그리고 문학치료사이므로 무엇보다 다양한 문학적 자원이 풍부해야함.

늘 끊임없이 '치료사가 되어가기'를 노력해야하며 항상 공부하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하며 성장과 성숙을 위해 노력해야 함.

 

>>문학치료사가 되기 위한 커리어패스

-문학수업이 필수 선수과목

-상담심리학 관련 수업들 (예: 상담 및 심리치료, 이상심리. 발달심리, 집단역동, 심리검사 등등)

-대학원에서 문학치료관련 전공 이론과 실습, 동료실습, 실습지도(수퍼비전)

-문학치료 체험 필수(자신의 문제해결과 실습을 통한 실제공부)

-기본 2년이상 440시간 이상의 이론 수업 및 수련과정(소정의 수퍼비전 포함) 필수적으로 이수

-자격증 취득(문학치료사/facilitator)

-상담사 자격증이나 의료/건강관련 공인자격취득자, 또는 의사의 경우 추가 수련시간을 통해 문학치료전문가(therapist)가 됨.

 

 

>>대한민국에서 '치료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상담문화, 치료문화가 보편화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담이나 심리치료, 문학치료를 포함한 예술치료가 건강보험의 대상이 되지 못함).

특히 공인된 자격증에 대한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서 무엇보다 정통적인 이론과 실습 그리고 수퍼비전을 통한 훈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개인이 스스로를 치료사, 또는 전문가라고 칭하면서 자격증을 주는 민간기관도 많습니다. 반드시 어떤 기관에서 어떤 사람을 수퍼바이저로 두고 치료사나 전문가자격증, 그리고 수퍼바이저 자격을 얻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학생들에게 문학치료사로서 한마디 해주신다면? 

1. 청소년기 학생들은 정체성 혼돈을 겪는 시기입니다. 내 감정이 통제가 되기도 힘들고 아무도 내 진짜 마음을 공감해주는 것 같지 않고 참 외롭죠. 자신에게 진정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을 소통할 수 없는 때 인간은 가장 외롭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과도한 경쟁과 쉴 틈 없는 학업스케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분노, 무기력, 불안, 수치심,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쓰기문학치료사로서 저는 힘겨운 성장의 시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저널(journal/일기)쓰기를 적극 권합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얼마든지 비밀문서를 작성할 수 있어요.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나 부모,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분노나 억울함, 슬픔. 외로움, 수치심 등 일상에서 느끼는 버거운 감정이 있을 때,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이 있을 때 안전한 비밀일기장에 토해내듯 하고 싶은 말 실컷 다 털어놓기를 바랍니다. 저널(일기)는 아무 비난도 비판도 없이, 또한 반박이나 충고 없이 내 이야기를 그 무슨 내용이든, 그리고 언제든, 들어주고 비밀을 간직해주는 가장 믿을만한 친구이며 상담사입니다. 비밀로 글을 보관하기 어렵다면 일기장에 다 쏟아 낸 후 찢어버리거나 컴퓨터에서 쓴 일기(문서)를 지워버리면 됩니다.

 

2.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동서양 고전 문학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공부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문학과 마음을 나누는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시를 가까이 하시길 적극 권합니다. 한 미국시인의 말대로 문학/시는 우리가 어떤 외롭고 고통스런 거리에 홀로 서있든 누군가는 그 길을 먼저 걸어갔고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감 받는 치유적 힘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주죠.

 

3.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실패와 실수를 통해 성장합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경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남의 인정에 목마르기 보다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시간들이 여러분의 생에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익명 | 2022.05.01 13: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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