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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있던 자리 -천양희>

  잎인 줄 알았는데 새네
  저런 곳에도 새가 앉을 수 있다니
  새는 가벼우니까
  바람 속에 쉴 수 있으니까
  오늘은 눈 뜨고 있어도 하루가 어두워
  새가 있는 쪽에 또 눈이 간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을 보고 있을 때
  내 뼈가 자꾸 부서진다
  새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쳐야
  하늘에다 발을 옮기는 것일까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나도 그런 적 있다
  작은 것 탐하다 큰 것을 잃었다
  한 수 앞이 아니라
  한 치 앞을 못 보았다
  얼마를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
  아직 덜 되어서
  언젠가는 더 되려는 것
  미완이나 미로 같은 것
  노력하는 동안 우리 모두 방황한다
  나는 다시 배운다
  미로 없는 길 없고 미완 없는 완성도 없다
  없으므로 오늘은 눈 뜨고 있어도 하루가 어두워
  새가 있는 쪽에 또 눈이 간다

  어디에서나 나를 지켜보는 새의 눈이 있다.

    - 출처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창비,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