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에 해당되는 글 4건

  바람이 불어 - 윤동주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理由(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理由(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時代(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우에 섰다.
-------------

그림: bhlee

대학교 때 이 시를 번역했었다.  그 번역했던 글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어디에 싣느라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이런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왜 이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생각도 안 했었는데....  요즘 지인들이 자신이 쓴 글이 어느 사보나 동인지에 실리면 늘 그걸 올리면서 축하인사를 받거나 할 때, 자신들이 한 일이나 업적을 일일이 기록할 때 가끔 나는 왜 이런 걸 하나도 기록하지 않으면서(기억하지 않고) 살지? 할 때가 있다. 내게는 그런 게, 그렇게 나를 세상에 자랑하거나 알리는 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그럴 기력이 늘 부족하다.  그래서 가끔 내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 시를 읽고 번역도 할 만큼 좋아했던 내 마음-- 이 시를 좋아했던 그 때의 "내 마음, " 그 시절 나의 가슴에 울림을 준 이 시의 목소리이다.  그런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그치.... 어쩌면 이런게 아무 "쓰잘데기 없는" 일인지 모른다.  내 친구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넌 참 복잡하게 사는구나.... 영화도, TV 드라마도 우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들이 넌 보이니 피곤해서 어떻게 즐기겠냐.  그냥 보고, 그냥 읽으면 될 걸 피곤하겠다."

바람이 분다..

늦은 아침, 창을 열자 제법 센 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밀려 들어온다. 

바람...하면 어떤 바람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를까? 

오늘처럼  차가운 겨울바람? 산에 올라 땀을 식히던 그 맑고 시원한 바람? 
어린 시절 동요에 나타난 잠든 뱃사공 대신 말없이 노를 저어주는 고마운 바람? 
추억을 일깨워주는 수많은 바람들... 
그중에서 나는 윤동주의 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얼마나 맑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또 그래서 끙하고 가슴 저려오는 고백인가?

큰 바람이 불어야만 바람을 느끼는 우리들인데. 

뿌리 깊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도 아니고 작은 이파리 하나가 흔들리는 그 작은 바람에도 그는 아팠다 한다.

 

오늘 찬바람 스치는 거리를 지나며 동주의 이 맑은 시구절을 습관처럼 외다가

아주 오래 전 30대인가, 어느 날이 떠올랐다. 지친 퇴근길에 일몰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ㅡ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야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어가는 것이니까…"

이 나이 되어서도 아직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죽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아직 살아있기에?
나도, 그리고 그들도/세상도.... 

120324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rsvp1

 

3월 내내 교수님 수업을 듣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너무나 챙피 했지만 고장난 수도 꼭지처럼 컨트롤 할수 없는 감정에 한때는 교수님 수업 들어갈때마다 굳게 다짐을 하고 수업에 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절대 울지 말자...'

 

요즘은 저를 들어내고 표현한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절실히 느낍니다. 말은 하고 싶었지만 실수의 두려움이 항상 저를 가로막습니다. 남편은 실수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용기를 얻는 다면서 본인은 그래서 더 일부러 실수를 한다고, 남들에게 좋은 일하는 거라며 얘기합니다.

 

"실수 할 권리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 저를 위한 말씀 같았습니다. 

교수님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냐며 물어보실때 저는 리차드 기어가 과거를 떠올리며 

교회의 닫혀진 문을 여는 장면에서 그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또다시 겪게 되면 어쩌나... 

그 교회안의 사람들이 죽었으면 어쩌나 마음을 조리며 보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를 들어내는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우울합니다. 제 자신에게 진것 같아서... 

저를 그럴 듯 하게 포장 하려는 ... 알면서도 제자신을 깨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서 걸어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다행이다' 그 정도의 감정에서 그치고 말았습니다. 

교수님의 해석을 들으며 어느순간엔가 닫혀 버린 제 생각 폭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은 문학, 영화 , 아니 보여지는 모든 삶의 시각을

새롭게 눈뜨게 하는 그런 능력을 일깨워 주시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느샌가 우울했던 마음이 없어졌네요. 교수님! 

늦었지만 저녁해야 겠어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2006/05/04   

 

_____
선생님, 편지 감사합니다. 

문학이 가진 힘은 예측할 수 없이 우리 가슴에 찾아와 우리를 깨운다는 것을 선생님을 통해 (그리고 수업을 통해) 또 느낍니다. 마치 사랑이 찾아오듯이요.
첨엔 두려움을 주기도하고 거부반응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다  우리가 읽은 쇼팽의 단편소설의 주인공에게 찾아온 각성의 순간처럼 거부를 포기하는 순간, 사랑처럼 밀려오지요.

 

수업을 통해 힘을 얻으셨다니, 선생님 참 다행이에요.
담엔 두려워하지 말고 편히 말하고 포현하세요. 정답이 없다고 했잖아요.
늘 말씀드렸지만 제가 소설이나 문학, 영화를 읽는 방식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니까 저처럼 읽지 않아도 되어요.^^
남편분께서 수업에 오셔서  같이 청강하시는 모습 보면서 너무나 감동이이었어요.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보여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따듯해지던지요. 

어린이날, 날은 흐리지만 꽃핀 야외에서 아이들과 예쁜 추억 많이많이 담아오세요. 그리고 늘 행복하세요.

------

내가 문학치료 자격증을 따기 전 교육대학원 수업에 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