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래를 춤추게 해야하나 -칭찬에 대한 불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아이.
몇 년 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가끔 사람들의 기대와 칭찬이 나를 불편하게 해.
내가 정말 얼마나 힘들게 그 일을 이루어냈는지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아.
그리고 언제나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나를 믿는다고 나를 인정해주는 거겠지만 내게는 그 고통스런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는 것도 
그러다가 실패하면 그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나는 이 말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실종된 일기장에 썼던 기억이 난다.
고래가 춤추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런 훈련을 거쳐야하는가...
고래는 춤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고래가 춤을 출 정도로 칭찬은 못할일 없게 만든다는건 아주 묘한 잔인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고 여겨졌다.
아마 나도 우리 아이와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까?
넌 강해, 넌 뭐든 잘해, 대단해...  한 없이 위축되는 나에게 친구들은 늘 말했다.
넌 혼자서도 잘 하잖아. 누가 뭐래도 흔들림 없이..
심지어 선배들도 말했다.
천하의 이봉희가...
그 말때문에 나는 힘들어도 힘든다고 말 할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지하는 법을 언젠가부터 접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동물의 쇼를 별로 안 좋아한다.
여행지마다 새, 강아지들의 애교 뿐 아니라
고래, 심지어 코끼리가 까치발로 선다든가, 사자를 길들이고 곰들이 쇼를 하는 것을 보는 게 나는 한번도 유쾌한 적이 없었다.
길들인다는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후쿠오카 여행에서 높은 돌 산에 갇혀서 길들여지고 있는 곰들을 바라보면서 위장이 거북했다. 
할머니들처럼 까마득한 산 위, 바위 우리에 갇혀 관광객이 던져주는 음식을 받기 위해 재롱부리는 그들...
동물을 길들이기 위해 조련사가 하는 일은 물론 사랑도 있겠지만
첫째, 배가 부르게 주어서는 안되고 늘 조금씩 갈증나게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부른 동물은 길들일 수가 없다.
손가락만한 한마리 물고기를 선물로 받기 위해 재주부리는 돌고래의 춤이 칭찬 때문이라고?
대체 인간들은 왜 그런 것을 보고 즐거울까?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길들이고 싶은 것일까? 설마....

이야기가 이상한 대로 흘렀다.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것을 칭찬의 기적에 비유한 자체가 거부감을 주어서이다.

그런데 칭찬의 역효과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너무 반갑다.

칭찬은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 기대에 못미치면 상대가 아, 이제보니 너 별것 아니구나. 내가 잘못 봤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쩌나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심지어 부정행위를 통해서라도)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어려운 문제 상자와 쉬운 문제상자를 넣어두고 선택하는 시험이 있었다.
1.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도 끝까지 침착하게 잘하네.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택하고
2. 넌 참 머리가 좋구나. 참 똑똑하구나 하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쉬운 문제를 택하였다.  똑똑하다는 걸 증명해야하니까.

더 큰문제는
두 집단에게  문제푸는 방법이 있는 상자와 아이들의 점수가 있는 상자를 주고 선택하게 했을 때
1군은 문제푸는 방법 상자를 택하였다. 그래야 내가 틀린 문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택의 이유를 말했고
2군은 다른 아이들의 점수가 궁금하다며 그 상자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독똑한지 늘 증명하고 확인하는것에만 집착을 보였다.

칭찬을 들은 집단은 완벽주의가 되려고 한다.
칭찬을 듣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불안이 숨겨져 있다.
칭찬은 판단이다.
칭찬은 통제이다.  praise is judgement, controlling
칭찬이 자신감을 높여준다는 오래된 믿음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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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중요하다.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이다.
칭찬은 정말 사람을 변화시킨다.
단, 이때의 칭찬은 상대가 어떤 상태이든 그 자체를 받아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대를 강요하는 칭찬은 안된다. 즉 인내심, 끈기, 실패를 했을 때도 그것을 이겨내는 힘, 올바른 판단 등 일을 이루어내는 과정과 노력에 대한 것이어야지 성취에 대한 것, 성취를 이끌어내기 위한 강요과 판단을 바탕에 깐 정치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칭찬의 말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 위해 한 '노력'을 "인정"해주어야한다.
때로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인내로 기다려 주기도 해야한다. 그 과정에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진짜 "칭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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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면 사람들은 그럼 어떤 칭찬을 해야하느냐고 칭찬 목록을 달라고 할것이다.
어떤 칭찬?
그것은 내가 상대에 대한 마음을 바꿔야 나오는 것이다.
언어 습관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것은 모범답 같은 샘풀이 아니다.
그런 샘풀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왜 번번히 실패하는가?
끝없이 훈련해야한다. 그것은 언어 훈련이 아니라 상대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다.
배나무가 되어야 배꽃이 피고 배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시나무가 단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다.

(c)2011이봉희/이 글은 수정되어 [내 마음을 만지다]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