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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그릇을 빚는데

그 안에 빈자리가 있어

그릇으로 쓰네

- 노자 [도덕경] 11장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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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고 

없음은 쓸모를 위한 것이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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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나씩 비워야하는 시간

비움도 "빚는 일"임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 천양희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생각(生覺)한다는 건
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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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photo by bhlee  



저버린 일상(日常)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일모(日暮)......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正座)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저문다.
살고 싶어라.


[이형기-'비' 일부]

 

170811

산 위에서- 이해인

그 누구를 용서 할 수 없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묻으려고 산에 오른다.

산의 참 이야기는 산만이 알고
나의 참 이야기는 나만이 아는 것
세상에 사는 동안 다는 말 못할 일들을
사람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품고 산다.


그 누구도 추측만으로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없다


꼭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기 어려워
산에 오르면
산은 침묵으로 튼튼해진
그의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준다.


좀더 참을성을 키우라고
내 어깨를 두드린다.

길가에 버려진 돌 -  이어령

 

길가에 버려진 돌

잊혀진 돌

비가 오면 풀보다 먼저 젖는 돌

서리가 내리면 강물보다 먼저 어는 돌

 

바람 부는 날에는 풀도 일어서 외치지만

나는 길가에 버려진 돌

조용히 눈 감고 입 다문 돌

 

가끔 나그네의 발부리에 채여

노여움과 아픔을 주는 돌

걸림돌

 

그러나 어느날 나는 보았네

먼 곳에서 온 길손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여기 귓돌이 있다 하셨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집을 지을

귀한 귓돌이 여기 있다 하셨네

 

그 길손이 지나고 난 뒤부터

나는 일어섰네

입 열고 일어선 돌이 되었네

 

아침 해가 뜰 때

제일 먼저 번쩍이는

일어서 외치는 돌이 되었네

비가 오면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그리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김용오

우연찮은 만남에서
별스런 담소도 나눈 건 아니었건만

헤어지고 나니 별 하나 손에 있었다

대화라곤 짧은 몇 마디였지만
어눌한 말을 들어주어서일까

맵시나지 않은 몸짓을 미소로 받아 주어서일까

아버지와 같은 사람 어머니와 같은 사람

어깨에 기대어 비밀을 털어놓고
눈물을 흘려도 좋을 친구와 같은 사람

허물 모두를 껴안아 줄 것만 같은
그리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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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똑똑함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저 헤어지고 나니 문득문득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립기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기도 합니다 

바람 - 장석주

 

바람은
저 나무를 흔들며 가고
난 살고 싶었네

몇 개의 길들이 내 앞에 있었지만
까닭 없이 난 몹시 외로웠네

거리엔 영원불멸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달리고
하늘엔 한 해의 마른 풀들이 떠가네

열매를 상하게 하던 벌레들은 땅밑에 잠들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제비들은 시끄러웠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발길과 웃음소리
뜻 없는 거리로부터 돌아와 난 마른 꽃 같이 잠드네

밤엔 꿈 없는 잠에서 깨어나
오래 달빛 흩어진 흰 뜰을 그림자 밟고 서성이네

여름의 키 작은 채송화는 어느덧 시들고
난 부칠 곳 없는 편지만 자꾸 쓰네

바람은 저 나무를 흔들며 가고
난 살고 싶었네 

 

장욱진- 자상(自像)

 

귀향길에 선 사람의 모습으로 고향을 떠나는 한 사람...
아니, 집으로 돌아오는 외출길이라고 해야할까?
시골길에 연미복과 모자와 우산을 갖춰든 이방인의 행색을 한 귀향인.

장욱진의 다른 그림들에서 더 잘 나타나있지만 그의 색채를 보면서 참 눈에 익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겨울 나와 그 전시회를 보고 싶어 일부러 먼 길을 올라온 친구와 함께 장욱진 전을 보다가 답을 찾았다. 그의 색채는 민화의 색채와 너무나 흡사했다. 그게 그의 동화같은 그림에 한국적인 깊은 정서와 이야기를 담은 이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천국도 불교의 니르바나도 아닌 현세와 영원한 곳이 구분되지 않는 특이한 해탈의 경지. 세상을 부인하지도 세상에 묶여있지도 않는 그의 세계. 그의 세계에는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이분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공존한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현실과 꿈의 세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지 모른다. 한 공간에 존재하는 달과 해, 하늘 위에 자리잡은 땅, 땅 속에 떠있는 하늘들.

이 그림에서도 떠남과 돌아옴이 공존하고 있다.
화가의 얼굴에 담긴 아이와 어른의 신비한 조화처럼.  슬픔인지 기쁨인지 무엇인지 모를 표정처럼.
이런 이들의 얼굴에서는 그 조화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장욱진 화백의 얼굴이 그렇듯이. 그의 그림이 그렇듯이. 


반면 그 두가지가 투쟁을 벌이는 얼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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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욱진에 대한 생각은,  (내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모든 글은) 나의 생각이다.
난 그림을 볼때 전문가들의 해석을 읽지 않는다. 나와 그림과의 대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우리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진후 그후에야 시간과 기회가 허락되면 미술평을 읽는 셈이다. 음악도, 시도, 문학작품도 마찬가지지만...

가끔 내 생각이라고 밝히는 이유는 전문가적, 학문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고 또하나는 내가 말하고 나면 전문가 누군가가 그 말을 한 것을 나중에 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내 생각과 남에게 따온 생각을 구분하여 밝혀두고 싶어서이다.
11/2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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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화백의 말:
그는 이 그림을 '자상(自像)'이라고 불렀다.  자상(나의
 모습)과 자화상(나를 그린 모습)을 구분한 의미가 무엇일까 흥미롭다.

" 일명「보리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 그림은 나의 자상自像이다.
  1950년대 피난중의 무질서와 혼란은 바로 나 자신의 혼란과 무질서의 생활로 반영되었다. 나의 일생에서 붓을 못들은 때가 두 번 있었는데 바로 이때가 그중의 한번이었다. 초조와 불안은 나를 괴롭혔고 자신을 자학으로 몰아가게끔 되었으니 소주병(한되들이)을 들고 용두산을 새벽부터 헤매던 때가 그때이기도 하다.
   고향에선 노모님이 손자녀를 거두시며 계시었다. 내려오라시는 권고에 못이겨 내려가니 오랜만에 농촌자연환경에 접할 기회가 된 셈이다. 방랑에서 안정을 찾으니 불같이 솟는 작품의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감 몇 개 뿐이지만 미친 듯이 그리고 또 그렸다. 「나룻터」,「장날」,「배주네집」. 이「자상自像」은 그중 하나이다. 많은 그림들이 그 역경 속에서 태어났니 동네사람들이 가인이라 말하도록 두문불출, 그리기만 했던 것이다. 간간이 쉴 때에는 논길 밭길을 홀로 거닐고 장터에도 가보고 술집에도 들러본다.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속에 있는 자기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 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畵廊 197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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