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만지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생각속의 집)가 나왔습니다. 


추천사를 써준 저널치료의 대가이며 문학치료전문가, 나의 멘토, 수퍼바이저이며 동료이고 의자매인 Kathleen Adams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외 추천해주신 이해인수녀님,  이시형박사님, 채정호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고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만져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사

 

 위로와 평화를 전합니다

-캐슬린 애덤스(RPT/TWI대표/CJTInc.미국저널치료센터장/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회장)

 

  선생에게 가장 큰 선물은 선생의 스승이 되는 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학생이 쓴 책입니다. 나는 저자 이봉희 교수를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덴버대학교 대학원에서 만났습니다. 저자는 내가 가르치는 <글쓰기와 치료> 강좌를 수강했으며 또한 나의 <저널치료센터>에서 공부했습니다. 연구교수로 온 한국의 영문학교수가 내 수업을 듣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대학과 센터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져다 준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그는 문학치료라는 분야에서 다양한 생각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인간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직관과 이해력으로 누구보다 환영 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치료하는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는 우리의 자매와 친구로서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 가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성품과 부드러운 강인함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속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독특한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종종 치유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이봉희교수는 2007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총회에서 한국최초의 공인문학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NAPT의 공식 한국대표가 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저널치료센터>의 한국지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문학치료사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표현하고, 또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떻게 다양한 고통들을 감당하게 해주는지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보다 큰 위로와 평화로 이끌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는 수많은 갈등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전하는 따뜻한 선물을 깊이 호흡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 곁에는 그 누구보다 용기 있고, 사려 깊으며, 당신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


이봉희 교수의 책<마음을 만지다>에 부침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구나 예외없이 안팎으로 크고 작은 아픔들을 경험합니다.  아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아픔을 대면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다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파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밝아지기도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이봉희 교수의 책<마음을 만.지.다>는 우리가 고통이나 상처를 피하기보다 제대로 직시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행함으로써 재발견되는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말해 줍니다.  문학치료사인 작가의 학문적인 지식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체적인 체험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 책을 내가 받은 편지라 여기고 읽어보십시오.    자신의 아픔을 잘 길들이고 객관화 하는 법, 남의 아픔을 보듬고 헤아리는 법, 나부터 변화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더 깊이 알아듣고 마침내는 아픔 또한 축복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해 주는 치유의 지침서인 이 책을 나 역시 아픈 사람으로서 아픈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이해인(수녀, 시인)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 한 번 안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크든 작든 상처는 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열 사람의 칭찬보다 단 한 사람의 비난이 더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우리의 뇌는 플러스 요인보다 마이너스 요인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의 아픈 기억을 이겨내려면 열 번의 좋은 기억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수많은 화살을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듯 말입니다. 세상의 문제들보다 내가 더 크게 변신하는 비법. 그것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 책은 ‘마음의 거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마음의 힘을 키워가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 이시형(정신과 전문의, 세로토닌 문화원장)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어쩌면 마음이 아픈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날 때, 슬플 때, 용서하지 못할 때,  기다려야 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말을 하고, 풀어내며,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이럴 때 책읽기와 글쓰기가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오직 성공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더 행복하게 해주는 책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을 확신합니다.
- 채정호(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

woolf62님의 리뷰입니다. (출처: 네이버/yes24)

 

“왜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나지요?”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가 20년 이상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라고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많은 눈물은 왜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일까? 내 이야기를 진실로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눈물 흘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말에 귀기울여줄 단 한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혹시 들어준다 해도 감정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내게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들은 어쩌면 부모한테는 할 수 없는 말이었고, 아내에게 못할 말이었고, 남편에게 못할 말, 자식한테는 터놓을 수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말 한번 못하고 꾸역꾸역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변함없이 공감해주는 저자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무장 해제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마음속의 감정 덩어리들은 그렇게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았다고 느낄까. 섣불리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던 기억이 더 많지 않았나. 위로하려 했던 그 말이 왜 우리에게 상처가 될까. 아무리 내 몸처럼 사랑하는 상대라도 우리가 그 상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상대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해결해주려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란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 뿐 이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알기 때문일까. 베테랑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의 모토는 너무도 겸손하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다만 함께 하자. 도우려 하지 마라. 다만 사랑하자.’ 다만 함께 해주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말로 설교하기보다는 소설과 시와 영화와 그림과 음악의 한 조각을 우리 앞에 슬그머니 내민다. 지금 내가 아파하는 것과 비슷한 지점을 지나간 그 어떤 사람이 느꼈을 마음의 행로를 보여줌으로써, 나 혼자만이 아픈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골라준 한 조각 위로는 강력하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 거래
-이해인, <꽃이 되는 건> 중에서

지금 아픈 우리의 이 고통이 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선언하는 이 시는 고통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죽음 같은 이 시간 속에 생명력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추스르고 일어날 힘을 준다.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도, 영화 <밀양>의 바탕이 된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속에 오버랩된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도.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럴 빼앗아가 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불공평한 일들과 억울한 일들과 애정 결핍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압도되고 매몰된다. 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난 것일까’,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운명을 탓하게 된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힌 우리에게 저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불행만 탓하느냐고, 당신의 행복에도 의문을 가져보았느냐고?

우리는 불행할 때만 운명을 운운하지만 내가 누리는 축복이나 행복에 대해서는 운명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부잣집에 태어났을까?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잘 생겼을까? 대체 나는 무슨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남보다 머리가 뛰어난 걸까?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는 내게 주어진 고통속의 축복을 알게 되고, 내가 받은 축복을 나눌 권리와 책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들은 종종 제가 받은 고통에만 돋보기를 들이대는 자기중심성에 빠진다.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 과도한 불균형을 깨뜨리는 직방의 질문 아닌가? 내 앞에 던져진 불행 앞에서 오그라들기만 하던 나의 자아는 이봉희 교수의 이 느닷없는 질문 하나로 인해, 순간 기를 펴고 확장된다. 아무 공로도 없이 받은 축복은 마치 나의 권리인 듯 당연히 누려온 삶을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문제에 함몰된 우리의 시각을 한순간에 전환시킨 저자는 문제보다 더 크게 내 존재를 키워보라고 제안한다. 문제 해결은 상대가 변화하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내가 변화해버리면 상대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그렇게 문제보다 내가 더 커버리라고.

 

문학치료사로서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동행해 온 저자의 마음창고에는 아파하는 우리의 마음 갈피에 딱 맞는 말들이 수없이 저장되어있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 내게 필요한 말들을 맞춤처럼 꺼내 주며 위로해주는 것을 보면. 탁월한 공감능력, 함께 아파해주겠다는 애정 어린 의지 때문일까? 이봉희 교수는 우리 마음의 비밀 문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그토록 큰 위로를 받고 눈물 흘렸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아픈 지도 몰랐던 사람, 아팠어도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말해보지도 못한 사람들. 당신의 말을 경청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 마디 건네볼 일이다. 그녀는 분명히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취약한 부분을 감싸주며 그 안에 고인 상처를 토해내게 할 것이다. 혹은 당신 스스로에게조차 발설한 적 없는 당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종이 위에 표현하게 해줄 것이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당신의 상처는 치유될 것이다.

------
K교수님(woolf)의 리뷰에 제가 감동받고 뭉클했습니다.
그동안 적잖이 외롭고 힘들었던 제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viana325&logNo=150128454128
Daum에서 가져옴.

        평화...

-----------------------------------

 

https://gramho.com/explore-hashtag/%EB%82%B4%EB%A7%88%EC%9D%8C%EC%9D%84%EB%A7%8C%EC%A7%80%EB%8B%A4

 

https://www.journaltherapy.org/2791

 

https://www.journaltherapy.org/2783

이전 댓글 더보기
이호정 | 2011.12.21 19: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교수님 그저 책 표지만 보고도 가슴이 뭉클하네요^^ 얼른 얼른 서점 가서 사서 읽겠어요!! 저는 늘 버릇처럼 서점에 가면 교수님의 책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은근히 놓아둬요..저 사람들도 저처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길 바라면서..^^
채송화 | 2011.12.23 12: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최근 참 좋은 책을 읽었다.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둔감해지는 내 감성을 자극할 매체가 줄어들고
있는 요즈음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내겐 큰 행운이다.

국내 유일의 미국공인문학치료사, 이봉희교수가 쓴 "내 마음을 만지다"라는 책이다.

저자의 주요 이론은 글쓰기를 통해서 마음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글쓰기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대단한 글이 될 필요도
없고 .. 그냥 그 때의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 즉 분노, 슬픔,후회,아픔,억울함 등을 써대는 것이다.

정말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을 때 , 누군가 죽이도록 미울 때, 슬픔으로 몸져 누웠을 때
그걸 진심으로 공감하고 나눌 누군가가 옆에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 나와 똑 같이 분노할, 슬플,아플 누군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화나고 아픈데 외로움까지 더해지게 된다.

이 때 내 정서를 안전하게 분출 할 수 있는 탈출구가 있다.
글쓰기..
내 아픔,분노를 글을 쓰므로서 안전한 방에 옮겨 놓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치유되고 안정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이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읽는 도중에 그 당시 마음 가득 차 있던 분노와 억울함을
치유 받았다. 아직 쓰지 않고 읽기만 했는데..

저자는 심리치료사들의 전문용어를 하나도 쓰지 않고 문학작품이나 영화등에서
주옥같은 문구들을 인용하며 부드럽게 독자들을 어루만져 준다.
매 페이지 마다 나를 사로잡았다.
저자가 평생 자신의 자아확대를 위해서 얼마나 부단히 노력했나를 알 수 있는 진솔한 책이다.

용서보다는 자신의 치유가 먼저라는 말..
소인국에서 대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팁..
늙어가며 동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동안이 먼저라는 것..
자아의 확대..

이 책을 덮으며 다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의욕까지 얻었다.

연말 연시에 내가 아는 모든 분들께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알려주는 것으로 연말연시 선물을 대신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

출처 :한빛모임(Hanvitmoim)
reviews | 2011.12.31 21: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YES24 Reviews]

내마음을 만지다. 제목만 보고도 위안을 받을 것만 같았던 이책..
화내지 않는 연습에 이어.. 또 한번 나의 '화'를 마주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찾게 된 이 책이다.
이봉희 교수님의 강의를 언젠가 살짝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강의에서 느꼈던 그 나에 대한 관대함을 책을 읽으면서 더 강하게 다질 수가 있었다.
http://blog.yes24.com/document/5716856

---------

===========

내마음을 만지다 내용 편집/디자인 | anibs03 | 2011-11-30 | 추천1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50409

표지그림의 여인이 꼭 나 같다고 하면서 선물을 받은 내마음을 만지다...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에서 시작하여 아프다고 해도 괜찮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정말 내가 요즘 어쩌지도 못하는 내 마음을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치유를 받게 된 기분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1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받은 선물을 남에게도 베풀어야지
---------
누구나 치유가 필요하다 내용 편집/디자인 | tim239 | 2011-12-05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89044

인류역사상 최고의 부와 편리를 누리는 이 시대의 사람들...그러나 마음의 병은 가장 큰 사람들...그리고 스스로 병든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우리에게는 치유가 필요하다...인정하기 싫어도 우리는 지금 많이 아프다는 것...그리고 인생은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라 '포도주처럼 아름다운 것'임을 느낄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필요하다...그러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나는 예술가이고 내 삶은 내가 창조해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외칠 수 있는 예술가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바람이 시린 어느 겨울날...볕 잘 드는 조용한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나는 다시 책의 첫 장을 펼친다...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읽기 위해...
--------
아픔에 관한 따뜻한 치유 내용 편집/디자인 | khs77 | 2011-12-05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87806

오래동안 기다려온 책이다. 이봉희 교수님의 문학치유 워크샵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심하게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 모든 일에 흥미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다 부질없어 보였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한없이 아래로만 내려가는 나를 걱정하던 친구가 이 워크샵을 권해준 것이다.
별 기대 없이 참여했는데... 나는 이것이 ‘마음치료’라는 거구나, 뜻밖에 체험하게 되었다. 사실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시를 읽거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부모님에게 들었던 아픈 말들을 기억해내고,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상처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나는 내가 무감각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들어줄 그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 책을 받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내 마음을 잘 들어주는 벗을 만난 것 같은…. 나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
내마음을 만지다 내용 편집/디자인 | hjak1004 | 2011-12-05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87674

환갑이 지난 할머니입니다.
자식새끼들 다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남편과 단둘이 콘집에서 지내고 있답니다.
얼마전 딸아이가 출산을 하여 외손주을 돌봐주며 손주의 재롱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맘 한켠에 항상 무언가 치밀어오르고 허전한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엄마 우리아기 보면서 심심하면 보세요'하고 건네준 이책을 정말 심심풀이로 읽어보았답니다.
이제 인생의 후반기에 무슨 걱정이 있겠스며 무엇이 허전하냐고 하겠지만(사실은 남편도 모르는 나만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그렇지 않더란 말입니다. 책을 읽어보면서 가만히 내 인생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받았던 서운함, 남편의 무관심속에서 받았던 상처들이 이제 할머니가 되어서야 서서히 오라오는 것을....이제사 무슨 소용이 있겠냐.....하지만 이제 나도 얼마남지 않은 인생 하루하루 꽉 채워진 마음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은 용기가 생겨납니다.
이책을 만나게 해준 내딸에게 새삼스리 고마움을 느끼며...이책을 쓰신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
내마음을 만지다 내용 편집/디자인 | 수선카시 | 2011-12-05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87481

지난 여름 이봉희 샘의 문학치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별에 상처 받고 애써 잊으러한 나에게 잊지 않아도 된다. 그대로 그리워해도 된다라는 샘의 말씀에 난 그 이별을 쉽게 받아들일수 있었다. 가장 힘들때 힘이 되어준 이봉희 샘에게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에 '내마음을 만지다'를 읽어 보니 책에서 그때의 안도감을 다시 느낄수 있을수 있었다.

-----
따뜻하게 만져주는 책 내용 편집/디자인 | gilsoon | 2011-11-30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54977

그냥 제목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내 마음을 만지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따스함이 무작정 그립다.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가 고맙고 사소한 배려에도 감사하다. 반대로 그런 관심과 배려를 받지 못하면 내 마음은 쉽게 쓰리고 아프다. 나는 왜 그렇게 누군가의 관심과 기대에 연연할까?
이런 예민한 마음들에 대해 이 책에서는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어떨 때 시기와 질투가 나는지, 누군가가 이유 없이 미워지는 이유, 폭풍 같은 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등. 그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건, 공격적인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는 내용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까칠한 친구가 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 친구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 것 같다. 그 상처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에 대해 회의적이고, 그것이 곪게 되어서 공격적으로 변한 것 같다.
아무튼 상처라는 것은 마치 독버섯처럼 쑥쑥 자라는 것 같다.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그러니 빨리 아물도록 해야 한다. 따스한 그 무엇으로 마음을 만지면서…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상처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삼스레 내 마음을 만지면서 남의 마음도 만지는 것을 배운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함으로 다가가길 희망한다

------
상처의 대물림 내용 편집/디자인 | mij0714 | 2011-11-28 | 추천0 | 댓글0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632053

내가 요즘 이유없이 짜증이 난다하니 친구가 읽어보라 권해 주어 만나게 된 [내마음을 만지다]
나의 짜증에 내 아이들이 상처 받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마음을 만지다]에서는 이것을 상처의 대물림이라 했다... 나 같은 엄마들이 꼭 꼮 읽어야햐 하는 책이다...
reviews2 | 2012.01.09 01: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억울하고 그래서 분노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의 탈출구를 알려주는 책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해도 마음은 개운해지기 힘들다. 왜냐하면 진정 내 아픔을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또 외로와지곤 한다.

저널쓰기.. 글로 내 아픔을 쓰기..
쓰다보면 내 분노는 안전하게 글이란 방에 저장되고 .. 내 분노가 나를 떠나 그 방으로..
어느덧 분노와 상처가 치유되고 평화를 얻게 된다는 작가의 이론..

이 책을 살 무렵 본인은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받고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었다.
읽다보니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심리적 메카니즘도 이해가 되고 글쓰기라는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수년간 쌓인 분노가 사그라 들었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아확대를 위해 평생 노력하고 수양해온 사람인 것 같다.
인용구도 그러하고 글 솜씨도 그러하고 정말 수작이다.

본인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 자처하는데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거부감 없이 감동 받으며
읽었다.

한 페이지도 공감하지 않은 페이지가 없었다.. 과장이 아니라..

강추 강추한다.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810025

===============


느즈막히 제 2의 사춘기를 맞고 있는지 요즘 내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어떻게해서든지 잡아보려구 닥치는대로 심리서들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해서 만난 (내 마음을 만지다)는 제목에 이끌러 만나게 되었다.

겉핥기식의 다른 심리서에 비해 아주 디테일하고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저자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 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우리 모두는 선인장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가시처럼 몸에 박아 다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선인장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서로 공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적당하 거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조지아키프의 말처럼 그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제대로 보는 일은 긴긴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공존의 거리를 배우기까지 상처투성이가 될지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도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체온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온기로 어느 날 가시투성이의 몸에서도 어여쁘고 작은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내마음을 잠재워 주다.......
http://book.interpark.com/blog/mij0138/2510377
----

ti**39 님 | 2011-12-05
누군가가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필요하다...그러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나는 예술가이고 내 삶은 내가 창조해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외칠 수 있는 예술가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바람이 시린 어느 겨울날...볕 잘 드는 조용한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나는 다시 책의 첫 장을 펼친다...마음으로 다시 한 번 읽기 위해...
==============

위로
상처를 마주보는 힘 - 내마음을 만지다 mo**86 님 | 2011-12-30
상처 받은 줄 모르고 혹은 내 상처를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것을 상처의 대물림이라 했던가 내 아픔을 보는 것 또한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애써 외면하여 그 아픔은 치유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건강한 수치심을 가지라고 이책에서 말하고 있다. &n...
상처 받은 줄 모르고 혹은 내 상처를 외면하고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것을 상처의 대물림이라 했던가 내 아픔을 보는 것 또한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애써 외면하여 그 아픔은 치유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건강한 수치심을 가지라고 이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녀는 못 뽑힌 구멍투성이다
믿을 때마다 돋아나는 못,
못들을 껴안아야 돋아나던 믿음
그녀는 매일 밤 피를 닦으며 잠이든다 -최문자, <믿음에 대하여> 중에서

내 마음을 만지다 본문 중간 중간 나오는 시들이 내 마음에 콕 박힌다...
추운 겨울 한없이 내려간 내 마음의 온도를 따뜻하게 만져준 [내 마음을 만. 지. 다.]
===================


내 마음을 만지다 an**sl 님 | 2011-12-23 | 넌 참 강해. 넌 혼자서도 잘하잖아.....이런 말 때문에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또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도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항상 강한 나를 증명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는 내가 얼마나 바보같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내가 얼마나 기대고 싶어 하는지를 안다. ...

넌 참 강해. 넌 혼자서도 잘하잖아.....이런 말 때문에 나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또는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도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항상 강한 나를 증명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는 내가 얼마나 바보같고,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내가 얼마나 기대고 싶어 하는지를 안다.
남자니깐 남자라서 더 하지 못하는 말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고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칭찬만 하면 그 어마어마한 몸집을 흔들며 고래도 춤을 출까요?
춤을 추기 위해서 고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우며 고통스런 훈련을 감내해야 할까요. 고래는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런 고래를 춤추게 할 만큼 칭찬은 사람으로 하여금 못할 일이 없게 한다는 이 말에는 긍정적이면서도 묘한 폭력적인 느낌도 묻어납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 칭찬은 고래를 병들게 한다 중에서]


아이들에게도 항상 칭찬으로 북돋아준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넌 잘할수 있어! 라는 말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칭찬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알게 해 준 내 마음을 만지다....오늘 내 뒷통수를 때리다.
--------------------

외로움을 한줄기 빛으로 달래다 [내마음을 만지다] am**paris 님 | 2011-12-22
나는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하루하루 부딪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억지로 웃어야하는 일, 싫어! 하고 거절 못하고 마지 못해 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내 가슴에 멍어리가 생기고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게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 적도 있었고, 이유없이 외로움에 눈물이 흐른적...
나는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하루하루 부딪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억지로 웃어야하는 일, 싫어! 하고 거절 못하고 마지 못해 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내 가슴에 멍어리가 생기고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게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 적도 있었고, 이유없이 외로움에 눈물이 흐른적도 있었다.

그렇게 만난 [내 마음을 만지다]는 내 어린시절 느꼈던 외로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떈 몰랐던 외로움의 감정을 인식하게 하고 인정하게 해 주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어둠속에서도 동행자는 있다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동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쪼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동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정호승<별동별>


이제는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습니다. 라고 하는말은 그 어떤 말보다 나에게는 따뜻하게 와 닿는다.

이호정 | 2012.01.10 22: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교수님 드디어 교수님의 책이 제 손에 들어왔어요^^ 정말 정말 좋아요~ 다시 대학시절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듯 하답니다^^
bhlee | 2012.01.11 23:38 | PERMALINK | EDIT/DEL
^^
호정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에효 가슴 아팠겠다.ㅠㅠ
Journal Therapy | 2012.01.13 23: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Review - 파레시아
“내 마음을 만지다”를 이틀여에 걸쳐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는데, 읽는 내내 내 삶을 돌아보고 나를 들여다 보게 되는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책의 부분 부분 적혀있는 인용구절들이 마음에 참 와 닿았고 한 소절 한 소절 저자의 깊은 사색이 느껴지는 문장속에서 때로는 깊은 위안을, 때로는 성찰을, 때로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부분은 자신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보다 자신의 상처를 투과해 현실의 상황과 사람을 보기 때문에 왜곡된 시야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왜곡된 시야가 주변사람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그 상처는 또 다시 부메랑처럼 자신을 찌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해 먼저 깊이 있는 앎이 필요하고 자신이 어떤 상처를 통해 바라보는가를 안다면 지금보다는 더 타인과 부드러운 관계를 가질 수 있으며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를 비로소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분주함이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모두가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분주함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소중한 것들을 아니 소중한 사람들을 스쳐 지나버리고 있는지...한번쯤 멈춰서서 지나 온 시간들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꿈과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소중한 사람이 더 아프게 한다” 정말 그렇다. 최근 내게도 가깝게 지내고 마음을 주었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도무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으로 또 미움으로 점점 커져갔다. 그러던 즈음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내게 상처를 주었던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있게 되었다. 특히 ‘나를 왜소하게 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이 부분에서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상처를 드린 적이 없는데 왜 근거없이 나를 미워할까? 그것이 끝없이 반복되는 나의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는 내가 아니 내 존재만으로 그분은 스스로를 왜소하게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과 나는 정반대의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르다는 그 부분이 서로에게 호감으로 다가왔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소심한 성격의 그분은 적극적인 성격의 내가 존재함만으로 빛을 잃게 되었다. 나는 점점 드러났고 그럴수록 그분은 점점 작아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분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점점 사그라짐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분의 그 마음 그대로를 수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 미워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인연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회복되지 못한 아쉬운 관계를 다시금 회복시켰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고 살자” -본문에서-

http://book.interpark.com/blog/faresia/2529388
| 2012.01.28 23: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review | 2012.01.31 05: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슬며시 건내는 얘기에 묵은 고민이 녹더라

13번째 전사 | 2012-01-25 | 원문주소 : http://blog.yes24.com/document/5990916


"말이 천 리를 가는 놈은 한 번 먹을 때에
흑 곡식 한 섬을 다 먹어치우는데,
말을 먹이는 자가 그 말이
능히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먹이니,
이 말이 비록 천 리를 갈 수 있는 재능이 있으나
먹는 것이 배부르지 못해서 힘이 부족해
재주의 아름다움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우선 보통 말과 동등하기를 바라나 될 수가 없다.
그러니 어찌 능히 천 리를 가기를 바라겠는가.
채찍질하기를 그 도로써 하지 않고,
먹이기를 그 재능을 다하게 하지 못하며
울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는
채찍을 잡고 임해 말하기를
"천하에 양마가 없다"하니,
아! 참으로 양마가 없는 것인가?
참으로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한유(韓愈), <잡설雜說> 중에서"

책에서 인용된 구절로 크게 와닿는 바가 있어 적어봤으나 작가의 의견과는 다른 느낌이었던 글이기도 해 여러 인용구 중 특별히 옮겨 본 글이다.
작가의 의견은, 누군가의 능력을 믿고 칭찬 등으로 사기를 높여 좋은 결과를 꾀한다는 의도자체가 때론 당사자에겐 기대와 해야 할 노력이 큰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거였는데, 그런 해석을 읽기 전 그냥 윗글로만 느껴졌던 것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발휘될 수 없는 누군가의 안타깝고 어리석은 상황의 느낌이 컸었다.윗글에선 작가의 의도와 독자로써 내가 받는 느낌이 교차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은 이 글대로 내게 가치있었고 다른 글은 반대로 더 큰 교감을 줬던게 많아, 가장 특이했던 느낌의 글이자 작가의 의도에 덜 공감했던 글로써 윗글을 특별히 골라써 보았다.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수많은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외부요인에 자신이 만들어내는 갈등까지 더해져
내면에선 더 많은 괴로움이 추가되고 그로인해 힘든 시간이 길어지는거 같다.

어떤 일들은 현재의 일이 아닌데 어느 순간 문득
다른 느낌의 깨달음으로 내면에서 떠오르면서
새롭게 해석되어 현실에 영향을 주게되는
또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단 걸 얘기할 땐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작가란 느낌과
그게 주는 야릇한 슬픔에 찌릿하기도 했다.

마음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는
많은 실마리를 저자는 들려주는데
완벽한 결말이 없다 느껴지는 불교의 번뇌같은
삶의 연속을 독자인 난 상상하게 되었었다.

어떤 책은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 믿음을 반감시키는데
이 책은 생각치 못했던 너무 깊은 교감으로 독자를 크게 흔들고
그 진실의 솔직함이 무지한 삶속 환상을 완전히 분해해버려
순간 어른아이를 진짜 어른으로 깨워버리는 듯한 비장함을 느꼈었다.

시나 고전 등 여러 문학작품이 적절한 분량으로 짧게 등장해
작가의 긴 이야기들가 흘러가는데 방해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첨부됐던게 읽으며 참 좋았던 것 또한
참 흔치않은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는게
독자로써 너무 만족스러울 때 오는 기분좋은 현상.

책에서 모파상의 '목걸이'를 얘기할 때
그 여주인공이 목걸이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남은 인생동안 벌을 받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야했을 때 과연 그녀는
그런 일을 겪어 마땅했던 사람이었는가 독자에게 물었을 때,
난 그 작품을 어릴 때 읽으며 우울한 감정 정도는 경험했지만
과연 무엇을 느꼈고 어떤 기억으로 그 작품을 간직해 왔었는지
작가가 툭 던지는 이런 모파상의 '목걸이'가 주는 질문같은 걸 받으며
책과 계속 정신적인 씨름을 했다는 여운이 남는다.
종교서적이 아님에도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게 놀라울 뿐이다.
| 2012.05.17 23: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12.05.26 21: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1234 | 2012.05.28 16: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 마음을 만지다- 발췌문
[갈색소파와 까마귀]님이 인용해 놓은 부분들을 가져왔습니다.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alhr&logNo=120153959909&categoryNo=0&isFromSearchAddView=true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복수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찌른 칼을 뽑아서 다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울증이 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는 "돌출된 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나를 병들게 한 그 불행이 그대로 그 누군가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지 못한 희생자인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아이의 두려움을 교묘히 조종하면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고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는 말합니다.
그의 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에게 박탈되었던 것,
즉 보호와 위로, 공포에 대한 설명을 딸아이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두려움과 재난의 예측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의 대물림이었습니다.
"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는 거지?"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그 누구도 내가 이미 스스로에게 한 일이 아닌 것을 나에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비판과 비난에 내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스스로를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한, 내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보다 먼저 나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거라던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다시 나를 알아가고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왜 내가 나에게 물어야 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할 때마다 신기했고, 줄줄이 사탕처럼 나의 스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참 다행이다. 내 자신이 너무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때도,
열등감이 심해서 끝없이 어두운 생각 속으로만 파고들 때도,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리인 양 깨닫고 슬펐을 때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존감이 당장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할 수 있는 이유와 끈기를 배웠다.
지금의 내 모습과 미래는 더 최고가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멈출 수가 없다.
언젠가 또다시 비판자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나를 공격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 소리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알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
 
 
당신은 남의 사랑을 꼭 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켜서도 안 됩니다.
정말로 삶의 중심이 되며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평생 알게 될 모든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 결코 떠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을
유일한 사람은 오직 당신 뿐입니다.   - 조 쿠더트, <실패자의 충고 Advice from a Failure> 중에서
 
 
이처럼 털어버리지 못한 말들은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나만의 언어가 있다면 후련하게 내 안의 비밀을 쏟아버리고 싶습니다.
 
"망각한 기억은 잊힌 게 아니라 대면할 수 없을 뿐이며, 그래서 결국 치유할 기회를 놓친 것"
 
"마음아, 누구를 향해 외칠 것인가"
 
어느 날 거울을 보며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눈과 귀와 코와 입이 모두 바깥을 향해 달려 있다는 거다!
나는 한 번도 내 안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그 캄캄한 어둠의 깊이를.
나는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온갖 추악한 언어의 난동을.
내 안에 고여 있는 물의 지독한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건 천만다행이건만.
나는 내 안을 향해 말하지 못한다. 오, 가엾다고.
부디 나로부터 나를 구원하소서.
- 이시훈, <나로부터 나를> 중에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사랑하는 어린 자녀입니다.
사람은 분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복수를,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어린자녀에게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한 분노가 폭력처럼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계속 대물림됩니다.
한편, 복수의 대상을 밖에서 찾지 못하는 사람은(또는 마음이 순해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자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비하나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정말 어떻게든 그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다 나를 비웃는 것처럼 여겨지고, 그래서 아무에게나 소리치고 모든 것을 다 부수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이 분노와 원한이 가득 찰수록 몸도 마음도 황폐한 건물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 자신이 상처 입은 짐승처럼 너무나 위태하고 또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내 안의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원한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들에게 분노하면서도 그들의 인정을 받고 싶고,
그들의 모임에 섞이고 싶은 외로운 나 자신을 볼 때입니다."
  
"분노란 무엇보다도 개인의 가치가 위협당할 때 그것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의 하나"
 
한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책상 위에 "난 이미 죽었는데 왜 아직도 아픈 걸까?"라고 써 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프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자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인간도 우주도 그 모든 생명은 아픔과 함께 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픔으로부터 피하고만 싶어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죽은 자처럼 살고자 모든 느낌을 차단합니다.
마취제를 맞으면 아픔이야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마취된 시간 동안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파도에 시달리는 해안의
울부짖음 속에 나 서 있습니다.
내 손에는 금빛 모래를 꼭 쥐고서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나마
손가락을 빠져나와 바다로 떨어집니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에 울고 있는 동안에!
오, 신이여, 제가
더 꼭 쥘 수는 없는 것입니까?
오, 신이여, 단 한 개만이라도
잔인한 물결로부터 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 에드거 앨런 포, <꿈속의 꿈> 중에서
 
 
마지막으로 초월적인 힘에 의지해보십시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를 얻게 됩니다.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은 낙엽처럼 떨어져버립니다.
하나, 둘 나무가 낙엽을 떠나보내듯 언젠가는 보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릴케가 말하듯이 "저기 누군가가 있어." 그의 두 손으로 이 모든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주고 있음에 위로를 받기 바랍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집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떨어지듯 떨어집니다.
저 높은 하늘의 과수원이 죽어가는 듯 떨어집니다.
이파리 하나, 하나가 손을 내젓는 듯 떨어집니다. "안돼!"라고
 
오늘밤은 무거운 지구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별들을 뒤로 하고 홀로 외롭게
 
우리는 모두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저 손도 보십시오..... 떨어지는 모두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기 누군가가 있어, 그의 두 손으로
무한대의 고요함 속에서
이 모든 떨어지는 것들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슬픔은 곧 치유의 감정입니다.
브래드쇼는 만일 슬퍼하는 것을 허락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분출과 표현은 그것이 분노의 외침이든, 장맛비 같은 통곡이든
부끄러운 것도 나약함의 표시도 아닙니다.
그것은 곧 내가 살아나기 위한 절실한 무엇입니다.
눈물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과거를 되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함께 죽어 있는, 살아남았으나 죽은 자처럼
굳은 덩어리가 되어 있는 나를 녹여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살아날지 모릅니다.
가슴 한구석에 돌부리처럼 남아 있는 단단한 덩어리와 그 속에 갇혀 혼자 두려워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그리고 장맛비같은 눈물로 흠뻑 다독여 녹여주십시오.
 
 
스캇 펙에 의하면 정서적인 질병이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건강한 정서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대면해야 할 현실은 나의 무력함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일도 있다는 무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며 인격적 결함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숨는다는 것"

 
아버지,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 크고 털이 많고 지저분한 발로 집 안에 드나들게 뻔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기를 꺼려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거치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
그 짐승에게는 사람의 영혼이 있다.
게다가 다른 개와 달리 아주 예민해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내가 개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바로 그 개가 나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1883년 12월)
  
가끔 '나는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유리로 된 집에 살면서 땅 속 깊은 곳에 도망가 숨어버린 나의 목소리,
'살기 위해 죽어버린' 내 목소리를 찾아 해방시키고 싶습니다.
  
"지옥은 너무 늦게 발견한 진실"
 
"후에 그 소녀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는 그때의 아픔이 외로움인 것을 알았습니다."
 
 
 
 
먼 훗날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말하겠지요.
어느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하였다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중에서
 
삶의 중요하고 절실한 순간에 듣고 기억하는(읽는) 시 한 구절, 음악 한 소절은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초대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글자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에 목소리를 주는 것입니다.
"내 안 깊은데서 소리치는 외침에 대해 한 마디의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
 
 
그러므로 슬픔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당신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든 작든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중에는 늘 자신이 피해자라 여기며 '나는 약하며 참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참아낼만큼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결국 그 피해의식을 다른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고야 맙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공격성을 띠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자신은 피해자라는 굳은 믿음 때문에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이 옳다고 확신하면 배움의 기초가 되는 호기심을 멈추게 됩니다.
어떤 일에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며, 결국 배움을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스스로 한계가 있는 존재며 완전하지 않음을 깨닫는 사람은 그 상처를 '건강한 수치심'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늘 깨어 있음으로 나의 한계를 인식하고 모든 일에 내가 옳다는 아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미지의 것들을 탐험하며 나와 다른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가시 끝에서 어여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흔히들 나와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미워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미워할까요?
캐슬린 애덤스는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우리의 교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누군가의 어떤 특성을 좋아하거나 혹은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특성이 그 사람에게 거울처럼 반영mirroring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추기를 투사progection라고 합니다). 
 
 
 
 
내 안에 없는 것은 진정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선글라스에 비친 자신을 보듯이 우리는 타인 속에 투사된 나를 볼 때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미움과 질투를 느낀다면 그것을 나의 내면의 욕구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십시오.
상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나의 욕구를 탐구하는 대신 그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누군가의 무고한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모두 삶의 긍정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안타깝고도 고통스런 일입니다.
 
 
 
 
흔히 용서하면 다 잊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용서란 반드시 기억하지 않는 것, 즉 온전히 잊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용서란 고통스런 기억들이 남긴 심리적 또는 육체적 흉터를 평생 안고 살더라도
그 상흔이 더 이상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잊어도 되는, 잊어야 하는' 기억은 없습니다.
그것을 직면하고 떠나보내야 합니다.
루이스 스미디즈lewis smedes의 말처럼 "용서란 누군가를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내 자신입니다.
 
 
 
 
 
"왜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황해할까요?
왜 나는 화를 내면 안 될까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나의 분노에 불을 지핀 그들은 아무도 비난받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분노하면 사람들은 괴물이라도 바라보듯 놀라서 나를 쳐다봐요.
그들이 소리 없는 총을 쏘았다면, 나는 소리나는 총을 쏘았기 때문일까요?
나는 그들의 그 철가면 같은 얼굴이 두려워요.
그러면서 왜 나는 그들처럼 사회성이 없을까 하는 깊은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김왕노, <사칭>
 
여기서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이란 말은,
내가 아닌 나로 사는 것이 나의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나의 진실한 내면을 외면한 채 타인의 눈에 맞춰서 다른 얼굴을 사칭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하는 일, 그래서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이런 삶은 스스로를 지치고 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바꿔 쓰지도 못하는 자신을 비난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가면을 벗고 그 누구도 '사칭'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면으로 가려진 나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슬금슬금 나를 멀리합니다.
절망한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가면을 골라잡습니다.
더욱 능수능란하게 가면을 쓰고는 또 다른 얼굴을 사칭합니다.
자신의 내면과 멀어진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집니다.
 
 
 
 
우리는 종종 대화를 포기하고 차라리 외로움을 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소통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고장 난 피아노 건반처럼 제 음을 전달할 수 없거나 서로 불협화음을 내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이 상대에게 낯선 나라의 말처럼 소통되지 않는다는 좌절 때문입니다.
누군가와의 소통이 더없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통수단은 대부분 언어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참 불완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그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각자 타인 앞에서 해석하고 번역해야 하는 하나의 언어로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사전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언어 이상의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나는 조용조용 설명한다. 당신은
고함치는 말로 듣는다. 당신은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나는
오래된 상처가 들추어짐을 느낀다.
 
당신은 양면을 본다. 나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당신을 본다. 나는
달래주려고 한다. 당신은
새로운 이기심을 느낀다.
 
나는 비둘기다. 당신은
매로 보인다. 당신은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나는
가시를 느낀다.
-로저 맥거프, <당신과 나 You and I>중에서
 
 
 
 
 
타인이 알고 있는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나. 둘 중 어느 쪽이 더 진실한 나의 모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목소리, 성격 그리고 습관화된 나의 말투들이
타인이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소통의 한계 앞에서 한 번 더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꽃을 꺾기 위해 가시에 찔리듯,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상처받는 것"
 
 
 
 
모두가 강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절망하며, 때로는 간절하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정도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어딘가는 흔들리고, 아프며 그리고 외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늘 부러워만 했던 그들도
어쩌면 나보다 더 연약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끔 몹시도 피곤할 때면,
기대서 울고 위로받을 한 사람이 갖고 싶어진다.
나는 생후 한 번도 위안자를 갖지 못했다.
고독이 가슴 속에서 병균으로 번식했다.
꽃향기만 무섭게 공기에 얽혀 있는 밤,
온갖 겪지 못한 생과 격동과
정열의 회한이 나를 엄습한다.
다르게 살고 싶다!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중에서

피자의 한 조각처럼 생긴 그 잃어버린 조각은 모가 나서 홀로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마냥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나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불완전한 동그라미가 찾아와야만 그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동그라미로 굴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동그라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번쩍이는 치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며도 보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자신을 원하는 동그라미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긴 외로움과 기다림 끝에 잃어버린 조각은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났습니다.
둘은 하나의 완전한 원이 되어 행복해하며 함께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잃어버린 조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동그라미와 맞지 않게 되어, 결국 잃어버린 조각은 동그라미에게서 떨어져 나옵니다.
그는 또다시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동그라미, O를 만납니다.
"네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동그라미 같아.
어쩌면 네가 잃어버린 조각이 바로 나일지 몰라."
"하지만 나는 잃어버린 조각이 없어. 내게는 네가 들어와 채울 곳이 없어."
잃어버린 조각은 그에게 매달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그러자 O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나와 함께 굴러갈 수 없어. 하지만 어쩌면 너 혼자 구를 수는 있겠지."
"나 혼자? 잃어버린 조각은 혼자서 구를 수 없어."
"노력이라도 한 번 해봤니?"
다시 혼자 남겨진 채 자신을 데려갈 동그라미를 기다리다 지친 조각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스스로 일어서기를 시도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혼자 힘으로 굴러보려 애를 씁니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닳아서 잃어버린 조각은 자그마한 o가 됩니다.
작은 동그라미가 된 잃어버린 조각은 이제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전에 만났던 커다란 O를 다시 만났습니다. 마침내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굴러갑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욕구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에 그 욕구를 전이시켜 거짓 욕망에 집착합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비만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이나 군것질을 달고 살거나,
술이나 게임 등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초콜릿을 먹지 말라거나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럼 거짓 욕망에 대한 강박증은 사라집니다.
 
 
 
칼 융은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사소통할 수 없을 때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너머 말없이 침묵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서로의 욕구를 읽어주고 들어준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일 년이 넘도록 같은 일로 다투다가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당신이 주실 수 있는 것밖에는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사랑의 방식임을 어머니를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내가 가진 것, 내가 줄 수 있는 것 밖에는 줄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비록 나의 기대와는 달랐지만 말입니다.
 
 
 
 
엄마 : 난 뭘 기대한게 아니야. 네게 뭘 바란 적이 없어.
         다만 희망을 가졌을 뿐이야. 네게 최선의 것을 희망하고 있을 뿐이야.
         희망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야.
 
딸 : 아니라구요? 난 그 때문에 상처를 받아요.
     엄마가 내가 해낼 수 없는 무언가를 희망할 때마다 상처가 된단 말이에요.
     엄마, 그것이 날 아프게 해요.
     엄마가 무엇을 희망하든 난 내 모습 이상이 될 수 없어요.
    그런데 엄만 그걸 모르세요. 엄마는 내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해요.
 
 
 
 
그날 그는 정말 나를 상대로 이야기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의 굴로 들어가는 긴긴 독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던 것이지요.
 
 
 
 
 
 
처음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은 창조적인 사랑의 능력이며 무엇보다 의지입니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 사람들이 나를 냉정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때마다 늘 열심히 돌아가는 기계의 바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곁에 서보라. 열정적으로 돌아가는 바퀴일수록 찬바람이 불어올테니.
하지만 그 바퀴가 멈추었을 때 만져보렴. 얼마나 뜨겁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지'라며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밀러는 우연히 공원에 산책을 나온 한 가족을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고 아이는 계속해서 그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보챘습니다.
부부는 정말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보채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부부는 연신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을 점점 더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없게 높이 쳐들었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손에 녹아 흘러내리거나
떨어뜨릴까봐 자신들이 먹여주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아이는 점점 더 심하게 보챘고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밀러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이가 느끼는 수치심의 한 예를 발견했습니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서 떼를 쓴게 아닙니다.
아이는 자신도 어른들처럼 그 아이스크림을 자랑스레 '손에 들고' 먹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들이 그런 욕구를 알아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욕구를 웃어넘김으로써 아이에게 수치심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은 대가를 바라는 순간 더 이상 희생이 아닙니다.
..
미안함 속에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죄책감은 교만함과 묘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도 원치 않는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쳤다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일 수 있지만,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불편함도 담겨 있습니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그만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는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 저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사람을 보내지 마라;
저 조종은 바로 그대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것이니.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섣부른 위로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에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고통에는 다 뜻이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때가 되면 다 해결될 거다 등등 이런 위로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이런 위로는 온갖 복합적인 감정을 다독여주고, 가슴에 솟구치는 의구심과 회의를 막아주며,
절망과 허무의 피멍울을 어루만져주기에는 너무도 식상해서 거부감마저 듭니다.
진정한 위로는 충고를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길 없고 답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무력감을 공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로 우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가슴으로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 내가 냉소적인 건 그렇지 않으면 울음이 나오기 때문이야.
엄마는 왜 그걸 몰라?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엄마만이라도 나를 위해서 그냥 가슴으로 아파해주면 안돼?"
 
 
 
 
 
 
이처럼 우리의 위로에는 왜 한계가 있을까요? 그것은 무엇이든 꼭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 몸처럼 사랑해도 우리는 상대와 그 상대가 겪는 삶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고통이나 슬픔은 어찌 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에서 나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것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서둘러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상대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주기 이전에 먼저 함께 느껴줄 수 있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시인 가이 존슨의 말처럼 문학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우리가 인생의 어떤 어두운 길목에 서 있든지
누군가는 이미 나보다 먼저 그곳을 지나갔고, 그리고 승리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에요> 중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칭찬만 하면 그 어마어마한 몸집을 흔들며 고래도 춤을 출까요?
나는 이 말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기 위해서 고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우며 고통스런 훈련을 감내해야 할까요.
고래는 춤을 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런 고래를 춤추게 할 만큼 칭찬은 사람으로 하여금 못할 일이 없게 한다는 이 말에는
긍정적이면서도 묘한 폭력적인 느낌도 묻어납니다.
..
무엇인가를 길들인다는 것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품은 뜻과 재주가 다릅니다.
그런데 그 각자의 재능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모두 똑같이 돌고래처럼 춤추기를 바라며 길들이려고 합니다.
...
돌고래로 하여금 작은 보상에 길들여져 사람들 앞에서 춤이나 추게 하는 칭찬이 아니라,
푸른 바다에서 더 맘껏 헤엄치도록 하는 격려의 칭찬이면 좋겠습니다.
 
 
 
 
나는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으면 더 이상 아무 해명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해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정의감에서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
인간에게는 남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능력이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럴 만한 인격적 실력자가 못 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우리는 한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쉽게 규정지어 말하는 걸까요?
나도 나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답이 없어도 우리는 이런 질문을 계속해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생각을 멈춰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앎이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생각처럼 우주의 모든 것을 인간 이성과
지식의 한계속으로 축소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참된 앎이란 "자아(사고의 주체)와 비자아(사고의 대상)와의 결합"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고의 대상이 광대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커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상의 세계를 뛰어넘는 보다 자유로운 세계나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할 때, 우리는 그 거대한 문제와 하나가 되어 자아의 확대를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자아의 확대"야말로 철학의 궁극적인 선이며 가치입니다.
 
 
 
T.S. 엘리엇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대부분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도피"이기 때문에
시는 보다 더 심오한 이름없는 감각들을 우리가 좀더 잘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를 아무리 결박해도 그는 떨치고 일어납니다.
소인국들 간에 전쟁이 났을 때도 걸리버는 수없이 화살에 맞습니다.
하지만 아프고 상처가 나더라도 그는 쓰러지거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이렇게 소인국 릴리푸트에서 걸리버로 살아가는 게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며 치료입니다.
어른이 되면 아무리 아이가 싸움을 걸어와도 더 이상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서로 다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와 싸우는 어른은 아이처럼 너무나 작은 소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뒤집히지 않는 한 절대 변할 것 같지 않은 그 누군가와의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를 저널치료사 카파키오니는 독성적 관계라고 부릅니다.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사람, 내 안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기운을 빼앗는 사람,
내가 못났다고 끊임없이 자책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내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내 안의 의심과 두려움,
자기 비난이 스스로를 사로잡게 만듭니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직장 동료일 때가 많습니다.
피할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아무리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말해도 좀체 달라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
"쌓여만 갔던 상처도 5년쯤 지나면서부터는 무뎌졌고 상처투성이었던 가슴도 
절대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로 묻어두었다.
하지만 잊었다 싶었는데도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 들었던 부정적인 언어들을
내 아이들에게 쏟아 붓는 내 거친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다.
넌 생각이 있니 없니? 네가 제대로 할 줄 아는게 뭔데?
그렇게 날 왜소하게 만들었던 언어들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 자신도 싫고 어머니도 미웠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말았다. 그것도 남이 아닌 내 가족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절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분명히 예민한 성정을 타고납니다.
그래서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아파하며, 더 많이 절망하고, 더 많이 자신을 성찰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의 햇살을 기쁜 마음으로 마주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구석진 응달에서 떨고 있는 겨울의 파편에 마음 한 구석이 찡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그 친구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과 내가 왜 그 친구가 얄밉고 질투가 나는지를 아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조건 나쁜 사람, 질투심 많은 사람 등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기 이전에 자신의 욕구를 깨닫게 해줍니다.
동시에 내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나도 크레파스가 갖고 싶은 것이며, 친구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라는 깨우침을 얻게 됩니다.
즉, 친구에게 투사된 나의 욕망을 발견함으로써 동시에 친구에 대한 감정적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지요.
 
 
 
 
내 안에서 소리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비난하기 이전에 귀 기울여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헤아리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긍정입니다.
 
 
 
 
겸손이란 "나는 못해"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어. 나에게도 실수할 권리가 있어."라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함은 오히려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됩니다.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Still I Rise>중에서
 
 
 
 
 
요슈타인 가아더는 철학하는 유일한 능력은 "놀라워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놀라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느낀다는 것이고,
곧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놀라워하는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세상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눈은 있지만,
그 경이로움을 보다 높은 차원의 자아성찰이나 정신적 영역으로 연결할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합니다.
반면에 그런 경험과 지식을 지닌 어른들은 놀라워하는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만일 어른이 건강한 아이의 눈을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말 중 '아름답다'는 말은 '자기 존재답다'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외적인 꾸미기와 가꾸기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나를 찾는 쉼없는 여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자기 존재답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은 공허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성공해도 어딘가 빈 것처럼 공허한 이유는 자기다운 모습에서
소외된 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무엇을 전공을 해야 잘 팔린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잘 팔린다, 여자는 어떠해야 잘 팔린다고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성공은 내가 얼마나 잘 팔리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무도 사고 싶어 하지 않는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잘 팔리려면 타인들, 즉 구매자(대중)의 욕구에 부합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소비시장에서 물품화되어 하나의 자동기계인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외된 현대인의 문제라고 프롬은 지적합니다.
즉, 내 존재다운 아름다운 삶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들은 단지 배우일 뿐
그들은 각자의 퇴장과 등장의 시간이 있지
그리고 한 사람은 일생 동안 여러 역할을 한다네
-셰익스피어, <당신 뜻대로 As You Like It>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이중 시각을 갖도록 만듭니다.
이중시각이란 우리의 삶, 또는 어떤 사건을 유한한 시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영원한 시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하나의 삶(혹은 사건)을 두 가지 시각으로 새롭게 통찰하게 됩니다.
지금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삶도 영원의 눈으로 보면 성공일 수 있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생전에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감을 살 돈이 없을만큼 비참한 삶을 살았던 그는 "인생은 고통의 드라마"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열정을 따르며 살았습니다. 그를 품을 수 없어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그는 그 세상을 버릴 수 없어서 차라리 자기 스스로를 버렸습니다.
처절하게 고독했던 위대한 화가는 쓸쓸하게 실패자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삶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불행은 실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흐는 가장 불행했으나 가장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
나의 현재의 아픔과 고통이 거대한 우주의 무대에서 보면 그 누군가의 삶에 심어놓은 복의 씨앗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이 불행하다고 결코 실패는 아닙니다. 내 인생의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련하게 패배할 게 뻔한 경주를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한계에 묵묵히 도전합니다.
그는 이 게임이 토끼가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성실한 과정이 중요할 뿐입니다.
 
 
 
 
 
결과만으로 나의 여행, 나의 사랑, 나의 꿈과 모험이 허망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어떤 과정도 무의미한 실패는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거북이처럼 성실하고 묵묵히 나를 도전하며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해안가의 수많은 모래알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내든 그것은 결국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나는 [찬란한 사물들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마치 뇌졸중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기능을 회복하려고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듯이
나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에게 기쁨을 가르쳤다.
 
-바버라 킹솔버, <투손의 만조High Tide in Tucson> 중에서
 
최악의 날들에 절망의 잿빛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녀는 찬란한 사물들을 '골똘히'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바라본 찬란한 사물은 빨간 제라늄 꽃이었고, 노란 원피스를 입은 어린 딸이었으며
초승달과 광활한 밤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삶을 사랑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기쁨을 가르쳤습니다.
킹솔버는 이것을 마치 마비된 두뇌의 새로운 부분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비유가 있을까요? 릴케는 "우리 슬픔의 대부분은 마비의 순간들"이라고 했습니다.
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상병 시인의 새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더 이상 감정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마비된 상태입니다.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양이다.
 
-천상병, <새3> 중에서
 
이처럼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의 심연 속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심연이란 말은 독일어로 '압그룬트Abgrund', 즉 존재의 기반을 잃어버린, 또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그 어디에도 없는 부재중이라고 여겨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절망입니다.
그래서 여림 시인의 말대로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라고 호소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절망의 심연에서 마비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한 인간 영혼의 승리입니다.
그들이 찾은 삶의 의미와 희망은 생의 작은 것에서 찬란함을 찾아내어
감탄하는 따뜻한 감성과 강한 긍정적 의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살아갈 이유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프랭클은 "최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에밀리는 다릅니다.
세상을 떠난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자신의 생을,
평범했던 열여덟살의 생일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게 된 그 하루동안 엄마와 가족과 이웃의 말 한마디,
엄마가 아끼던 꽃 한 송이, 그리고 진부한 일상의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아, 너는 인간들이 깨닫기엔 너무도 멋진 곳이구나."
 
 
 
와일더는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보물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에만 참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보물 1호는 바로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입니다.
욕심의 키가 커져서 사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질 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봅니다.
"살아 있는 건 참 좋은 거야!"
 
| 2012.05.28 16: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koo | 2012.11.20 13: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교수님..
간만에 서점에 나갔다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을 잠깐 보았더랬어요.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이 주고받은 사제간의 정을 그린 책인데,
문득 교수님 생각이 났어요..
황상이 그러했듯, 저또한 5월 교수님을 만나뵈면서
삶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 경험을 하고 있다보니
마치 스승 정약용을 만나 삶이 바뀐 황상이 마치 저같다고 생각하며
서점에서 빙그레 웃었답니다.

같은 시대에 이렇게 교수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럽고 삶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열정도, 실행력도 거의 없는 사람이 교수님 책을 서점에서 처음 보았을 때,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의 첫장을 읽어내려 갔을 때 강한 전율을
느꼈더랬습니다.
'내가 꼭 만나뵈어야 할 분이시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마치 천상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마음속에 계속 메아리쳤었지요.
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어느새 저는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려
번호를 누르고 있고, 메일을 드리며 문학치료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저를 그렇게 움직였을까 궁금하던 차, 어느 책에서 말하길,
그것이 바로 마음의 소리를 충실히 따라간 결과라고 하더군요.

25차 문학치료 마지막 시간에 말씀하신 '3호터널'이야기가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났어요.
'아...어쩌면 내가 터널의 끝에 다 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터널의 모양이 휘어져서 빛을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내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 말씀이 제가 터널의 끝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들렸습니다.
함께 걸어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길목마다 등불을 손수 들고 밝혀주신
교수님께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다시 터널을 걸어야 할 때에도 주저앉아 있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교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합니다.
걸음이 늦더라도 다시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잠시 쉬더라도 주저앉아 있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찬 기온에 감기드시지 않길 바라고, 두통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Koo 드림
| 2012.12.29 01: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bhl | 2014.01.03 03:12 | PERMALINK | EDIT/DEL | REPLY
2014. 1 1.
안녕하세요~ 뽱쥐입니다!!^^

아직 이책을 2/3 밖에 읽지 못했지만 앞의 내용들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책의 제목처럼 정말 내 마음을 만져줬기 때문이다.

아직 인생을 길게 산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경험이 많은 나인데 읽으면서 너무 많은 부분을 공감하였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게 아니었구나' , '나만 이러한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게 하고 '맞아 정말 이랬어.' 라는 공감형성도 많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힘내 괜찮아 잘할수 있어. 라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난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힘내 괜찮아 아니야~ 잘할 수 있어~ 라는 말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 힘내. 라는말은 사실상 전혀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날 더 외롭게 만들었다. 상대방은 그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겐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정말 내 마음을 만져주듯이. 엄청 냉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늘 보듬어주듯이 감싸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는 책이 아닌 때론 감싸주듯이 때론 냉정하게 말해주는 책이다.

인생에서는 너도 나도 할것없이 모두다 많은 아픔들을 경험한다. 그 아픔으로 사람이 망가지기도 하고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기도 하고 한층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인생의 가르침이 있는 책이다. 아픈 상처를 무조건 보듬어 주고 위로해주는 책이 아닌 그걸 이겨낼수있는 힘을 주고 방법들을 알려준다. 많은 단점들을 지닌 나를 많이 깨닫게 해주고 그저 깨달음만 얻게 해주는게 아닌 나를 한번 더 돌아보게 하고 바뀔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책.

아직 너무나도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좀 더 성숙해진 기분이었다. 읽기만 하고 끝내면 소용이 없겠지만 정말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 것이다. 한번에 다 읽지는 않고 내용 하나하나씩 깊고 자세하게 읽어 볼 것이다. 하나도 놓칠 내용이 없고 하나하나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내용들이다.

꼭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른일지라도 나이가 많을지라도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속이 넓지 않기에 더욱 더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아무리 친한친구, 부모님이 옆에서 좋은얘기와 의지가 되준다 할지라도!
자신을 바꿀 수 있는건 결국 자신입니다. 전 이책의 내용 하나하나를 기억하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우연히 검색하다가 발견한 19살 밖에 되지 않는 고등학생이 쓴 평이다. 참 성숙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져왔다.
그 나이에 내 책에 공감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ow234&logNo=201627397
Journal Therapy | 2016.11.25 17:3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몇년동안 리뷰를 볼 새가 없었다.
오늘 다른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리뷰가 있어서 여기 소개하고 싶다.
아직도 많은 리뷰가 올라오고 있어서 감사하다.
얼마전엔 교정시설에서 이 책을 읽은 분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jubinmom27/220682727585

https://brunch.co.kr/@smile-sea/250
| 2017.01.23 01: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김민지 | 2019.02.12 23: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상담심리학과 3학년학생입니다.
교수님께서 글쓰기치료에 대해서 좋은점을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접하게 된 책인데요~
몇번을 눈물 흘리면서 보는지 모르겠어요.
표현이 바람같기도 하고,햇빛같기도 하고 너무 부드러워서 읽는내내 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좋은책 읽을수 있게 해주셔서 참 감사드립니다.
Journal Therapy | 2019.03.11 13:1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안녕하세요 민지씨,
참 반가워요. 제 책이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글쓰기치료는 집단뿐 아니라 개인상담에 적용하면 정말 큰 도움이 되어요. 문제해결에 집중하기도 쉽고 그래서 상담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어요. 특히 언어로 자신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내담자에게 큰 도움이 되더라구요.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도 개인 상담에 자주 활용해요...

언젠가 뜻이 있으면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Journal Therapy | 2019.03.11 13:1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교수님! 그 동안 잘 계셨어요? 바쁘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메일을 보내다가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됐네요^^ 하하
오늘은 인터뷰가 아니라 사적으로 교수님께 편지를 보내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사람들이 저에게 질문을 했을 때 당황하거나 말을 더듬는 성격이 아닌데 유난히 이러한 질문을 해올 때면
말 문이 막혔었습니다. "좋아하는 게 뭐야?" 라는 질문. 모든 것에 있어서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서를 쓰면서 "인생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할만한 것을 쓰시오." 라는 문장을 보면 막막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다시 한번 내 인생을 바꿨던 일이 뭐가 있었지... 고민을 하다가 교수님의 말처럼 아하의 순간!이 드디어 몇 개월 만에 찾아왔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던 이 지문의 답이 제 꿈을 찾아 을 때 이후의 또 한번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뭐 교수님의 예상대로 바로! 그건 교수님이었습니다.

교수님의 책을 읽기전까지 저는 정말로 내가 이세상에서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그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 가시 같은 생각들이었어요. 그랬어요!
그 동안 저는 순간의 행복을 위해서 상처는 무의식 속의 생각에 가둬놓고 '내 안의 나'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내가 진정한 문학 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 속에 있는 나'의 이야기부터 들어야 할 것 같았어요.
나와의 첫 대면.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어요. 아마 그 동안 유리관 속에 가둬 흙 속에 묻어 놨던, 순간의 행복을 위해 외면 대신 가시에 찔렸던, 상처 입은 나를 모른 체 외면했던 것을 직면하려니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또 저의 행복을위해서 "나를 버리지마."라고 애원했던 내면의 나를 버리고 염치없이 다시 찾으러 가는 것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괜찮아. 내가 있잖아. 두려워 하지 말고 얼른 내게 와줘."라는 말이 들렸고 그 말에 용기를 내어
대면했습니다. 화가 나면 내 딴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스스로 화를 풀고 잊어버리는 것이 화를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무의식 속의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입니다. 나를 제일 사랑한다는사람이 이렇게 날 아프게 하고 미안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렇게 나와 대면하면서 진정한 나의 생각, 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대면하게 되면 더 아플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되려 한층 더 마음 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내 감정으로 후에 문학치료사가 되었을 때 나와 같이 자신의 마음과 대면할 때 두려워 할 사람들에게 '이렇게 다가가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언젠가 풀어야 했던 내 마음의 상처와 문학치료사가 되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마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과 목표를 심어 주신 이봉희 교수님! 정말 감사하고 이런 말 처음이라 쑥스럽지만 존경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메일 드려도 될까요? 답장은 안 해주셔도 되요! 그저 제 이야기만 들어주셔도 저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Sender : L**H *********nate.com >
To : 이봉희 < bhlee@kornu.ac.kr >
-------------
RE: **학생,

감동적인 이야기 나눠주어서 감사해요.

고등학교 학생이면 입시에만 매달리고 맘껏 고민도 못해보는 나이인데
이런 깊은 고민도 하고 자기성찰도 하고 대견하네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맘으로 응원할게요.
꿈꾸는 일을 위해 멋지게 도전해보세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그림책과 문학치료 | 2019.07.19 15: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지한 심리치료와는 무관히 문학치료라는 말로 덪입혀져서 여기저기 이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심지어 대학원에서도 말이다) 국내 유일의 정통 미국문학치료전문가 (CPT)이자 저널치료전문가 (CJT), 심리상담가인 이봉희 교수님의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늘 안타깝다.
왜냐하면 실제 이봉희 교수님 내공의 1/10정도만 표현된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즐겨 선물하는 책인데,
선물하고 나면 어김없이 지인들이
"정말정말 좋은 책이다. 내 삶이 달라졌다"
이런 말을 꼭 듣는다.

그럴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노인마냥
소리치고 싶다
교수님의 평소 모습의 1/10 정도 밖에 안돼요!!!!​

수업시간에는 정확하고 엄격하면서 때로는 무섭기까지한 교육자셨다.
수퍼비전때는 항상 치료자 입장이 아닌 내담자, 대상자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하셨기에
문학을 텍스트로 치료 세션을 만들 때, '왜 이걸 해야만 했는지~'물으셨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엄하게 꾸짖으셨다.

국내사례를 보면 치료 세션이라는 게 비슷한 패턴이 있고 대부분 그렇게 하는데
우리 교수님은 왜이렇게 유난하시고 깐깐하실까? 살짝 서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학 치료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렇 것들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따뜻하고 공감적이고 귀엽기까지 한 어머니같은 분이셨다.
문자에는 항상 귀여운 이모티콘을 넣으시면서 격의없는 모습을 보이신다.

교수님과 함께 한 나의 대학원 과정은 철저하게 자기분석을 할 수 있었고
행복과 기쁨, 설레임이었고 내 인생의 축복같은 시간이었다.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국내 유일 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님|작성자 그림책과 함께한 20년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