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에 해당되는 글 4건
"[이 정원의 그림이] 현실과는 다르게 보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 그림이 내가 느끼는 시적인 정원의 모습과 스타일을 전달해주고 있다.  네가 이걸 이해할 지 모르지만,  색깔을 잘 배열하기만 해도 시를 말할 수 있다. 마치 음악으로 위로의 말을 하듯이.........그림 속에서 이 정원의 풍경과 인물들을 마치 꿈속에서 보듯이, 현실보다 더 신기하게 나타내주는 거지. "-고흐의 편지 11/12/1888 아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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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of the Garden at Etten (Ladies of Arles)
 (State Hermitage Museum/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이 그림은 1888년 11월 반 고흐가  아를르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가 고갱과 함게 살고 있었던 때 그린 그림으로  다른 화가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던 열망들이 좌절되고 고갱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입던 시기이다. 그런 그의 좌절과 고통이 이 그림속의 색갈로 나타나고 있다.  프로방스는 홀랜드 고향을 생각나게 했고 그는 불안한 노란색, 녹색, 푸른색에 붉은 색을 여기저기 섞어 그의 그리움과 좌절과 고통을 "시"로 표현했다. 캔버스 표면, 그림의 질감은 두껍고 직접 물감을 짜 넣음으로써 고흐의 긴장과 절박한 심정을 드러내준다.
Chagall- Me & the Village/ The Dance (used here for therapeutic/educational purpose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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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우리들의 시선을 대하여 저의 시선으로 응답한다.
사물은 우리가 그것을 무심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무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맑은 눈에는 모든 것이 거울이다.
솔직하고 진지한 눈길에는 모든것이 깊이를 가지고 있다.
(바슐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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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gall:

"석판화를 찍는 놀이나 동판을 손에 들고 있으면 나는 마치 부적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돌이나 동판에다 나는 나의 슬픔이나 기쁨의 모든 것을 내 맡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나긴 세월동안 나의 인생을 스치고 지나간 모든 것--탄생, 죽음, 결혼, 꽃, 동물, 새, 가난한 노동자, 부모, 밤의 연인들, 성서 속의 예언자들, 길 가, 집안, 성당, 하늘,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의 인생의 내부와 주위에서 일어난 슬픈 사연을....[석판화] 1권 중


"나는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샤갈 자네는 실체적이 아냐'.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네도 비실체적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좋을 걸세'.

"아무 말도 없다. 나의 몸 속에 숨어 있는 모든 것이 움직여 날뛰며, 너에 대한 기억과 같이 방황한다. 너의 창백하고 가느란 손, 말라빠진 너의 뼈가 나의 목을 힘껏 조인다. 누구에게 기도드려야 할까?"    Chagall, Monumental Week에서

현대는 감동이 솔직하게 눈물이 되지 않고 단지 아무 개성도 없는 미소가 우리들  눈앞에 커튼같이 드리우고 있는 그러한 슬픈 시대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예술에 대한 나의 꿈, 이 세상의 인생과 이 세상 아닌 곳의 인생, 존재했던 것과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나의 꿈을 여러분에게 털어놓고 싶은 것입니다.  (1963년 일본 샤걀전에서 작가의 메시지)

"내 눈에는 예술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어떤 영혼의 상태라고 여겨진다"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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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샤갈의 화집 뒤에서 발견한 나의 빛바랜 메모들이다.  까마득한 그 시절... 내가 그리던 이 나이의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bh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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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와진 이미지와 이미지의 원천들이 마음것 펼쳐지는 모습을 그 어느누구보다도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샤갈(Chagall)일 것이다.

그는 후일 자신의 언어로 사용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어린 시절동안 자신의 존재 속에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내린 이미지들을 외부세계 속에서 취하여 간직한다. 그 이미지들은 아직 두꺼운 껍질이 생겨나지도 않은 채, 그토록 유연한 어린시절의 영혼으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저 감미로운 상처들과 만났을 때 그의 내부로부터 들어온 것이다.  아주 일찍 그는 자기가 기구하는 소원들이 그 이미지들은 통하여 이루어 지리라는 것을 예감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그 기도가 예술가의 기도라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찾고 기도했다. 하나님, 구름들 속에, 신기료 장수의 집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 내 영혼이 나타나게 해주세요. 아직 말을 더듬는 어린아이의 고통스런 영혼아, 나에게 길을 가르쳐다오. 나는 다른 사람들 처럼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

도시는 그 기도에 대한 대답처럼 낯선 얼굴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모든 주민들이 그들의 평소의 자리를 떠나서 땅위로 떠서 걷기 시작한다. 낯익은 인물들이 지붕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휴식한다...

초년기 궁금중 많은 눈이 포착한 그 일상의 이미지들, 시각적, 감정적 언어들을 샤갈을 그 본래의 환경에서 꺼내 새로운 환경, 즉 그의 영혼 속에 집어 넣는다. ... 즉 중력의 소멸이다. 새로운 별 속으로 자리를 옮긴 이미지들은 더 이상 중력을 느낄수 없게 된다. 그들의 존재이유처럼 여겨졌던 물질성으로 부터 마침내 해방되고 주관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들의 의미에로 환원된 와관들은 오직 감각적인 자력에만 복종할 뿐이다.  그것들은 소옹돌이치고, 서로 잡아 당기고, 헤어지고, 공중에 뜨고, 혼연일체가 되고, 뒤집힌다. .....

거꾸로 서기 일쑤인 그의 인물들 처럼 가시적인 세계도 샤갈의 내부에서 뒤집혀 넘어지고 심연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 ...
(르네 위그/ 예술과 영혼 중에서)

왜 고래를 춤추게 해야하나 -칭찬에 대한 불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아이.
몇 년 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던 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가끔 사람들의 기대와 칭찬이 나를 불편하게 해.
내가 정말 얼마나 힘들게 그 일을 이루어냈는지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아.
그리고 언제나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나를 믿는다고 나를 인정해주는 거겠지만 내게는 그 고통스런 과정을 또 겪어야 한다는 것도 
그러다가 실패하면 그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나는 이 말이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실종된 일기장에 썼던 기억이 난다.
고래가 춤추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런 훈련을 거쳐야하는가...
고래는 춤추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고래가 춤을 출 정도로 칭찬은 못할일 없게 만든다는건 아주 묘한 잔인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고 여겨졌다.
아마 나도 우리 아이와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까?
넌 강해, 넌 뭐든 잘해, 대단해...  한 없이 위축되는 나에게 친구들은 늘 말했다.
넌 혼자서도 잘 하잖아. 누가 뭐래도 흔들림 없이..
심지어 선배들도 말했다.
천하의 이봉희가...
그 말때문에 나는 힘들어도 힘든다고 말 할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지하는 법을 언젠가부터 접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동물의 쇼를 별로 안 좋아한다.
여행지마다 새, 강아지들의 애교 뿐 아니라
고래, 심지어 코끼리가 까치발로 선다든가, 사자를 길들이고 곰들이 쇼를 하는 것을 보는 게 나는 한번도 유쾌한 적이 없었다.
길들인다는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후쿠오카 여행에서 높은 돌 산에 갇혀서 길들여지고 있는 곰들을 바라보면서 위장이 거북했다. 
할머니들처럼 까마득한 산 위, 바위 우리에 갇혀 관광객이 던져주는 음식을 받기 위해 재롱부리는 그들...
동물을 길들이기 위해 조련사가 하는 일은 물론 사랑도 있겠지만
첫째, 배가 부르게 주어서는 안되고 늘 조금씩 갈증나게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부른 동물은 길들일 수가 없다.
손가락만한 한마리 물고기를 선물로 받기 위해 재주부리는 돌고래의 춤이 칭찬 때문이라고?
대체 인간들은 왜 그런 것을 보고 즐거울까?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길들이고 싶은 것일까? 설마....

이야기가 이상한 대로 흘렀다.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것을 칭찬의 기적에 비유한 자체가 거부감을 주어서이다.

그런데 칭찬의 역효과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너무 반갑다.

칭찬은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 기대에 못미치면 상대가 아, 이제보니 너 별것 아니구나. 내가 잘못 봤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어쩌나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심지어 부정행위를 통해서라도)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어려운 문제 상자와 쉬운 문제상자를 넣어두고 선택하는 시험이 있었다.
1.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도 끝까지 침착하게 잘하네.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택하고
2. 넌 참 머리가 좋구나. 참 똑똑하구나 하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쉬운 문제를 택하였다.  똑똑하다는 걸 증명해야하니까.

더 큰문제는
두 집단에게  문제푸는 방법이 있는 상자와 아이들의 점수가 있는 상자를 주고 선택하게 했을 때
1군은 문제푸는 방법 상자를 택하였다. 그래야 내가 틀린 문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택의 이유를 말했고
2군은 다른 아이들의 점수가 궁금하다며 그 상자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독똑한지 늘 증명하고 확인하는것에만 집착을 보였다.

칭찬을 들은 집단은 완벽주의가 되려고 한다.
칭찬을 듣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쁨보다는 불안이 숨겨져 있다.
칭찬은 판단이다.
칭찬은 통제이다.  praise is judgement, controlling
칭찬이 자신감을 높여준다는 오래된 믿음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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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중요하다.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것이다.
칭찬은 정말 사람을 변화시킨다.
단, 이때의 칭찬은 상대가 어떤 상태이든 그 자체를 받아주는 상대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대를 강요하는 칭찬은 안된다. 즉 인내심, 끈기, 실패를 했을 때도 그것을 이겨내는 힘, 올바른 판단 등 일을 이루어내는 과정과 노력에 대한 것이어야지 성취에 대한 것, 성취를 이끌어내기 위한 강요과 판단을 바탕에 깐 정치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칭찬의 말을 바꾸어야 한다.
이제 어려운 일을 극복하기 위해 한 '노력'을 "인정"해주어야한다.
때로는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인내로 기다려 주기도 해야한다. 그 과정에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진짜 "칭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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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면 사람들은 그럼 어떤 칭찬을 해야하느냐고 칭찬 목록을 달라고 할것이다.
어떤 칭찬?
그것은 내가 상대에 대한 마음을 바꿔야 나오는 것이다.
언어 습관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것은 모범답 같은 샘풀이 아니다.
그런 샘풀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왜 번번히 실패하는가?
끝없이 훈련해야한다. 그것은 언어 훈련이 아니라 상대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다.
배나무가 되어야 배꽃이 피고 배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시나무가 단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다.

(c)2011이봉희/이 글은 수정되어 [내 마음을 만지다]에 실림.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 [6] 중년 여성과 행복


50代 한국 여성, 10개국 중 '불행 점수 1위' 기록
남성은 50代 들어 행복지수 상승 선진국 여성들은 개인 생활 즐겨
빚과 자녀의 굴레… 피로감 심해 "가족은 필요로 함께 사는 것"

전체 평균의 3배 넘게 답해
"삶의 위안 얻으려 종교 활동" 한국 78% vs 덴마크 11%

http://news.chosun.com

6·25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팍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남자 형제들에게 대학을 양보하라고 했다. 22세쯤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2명의 아이를 낳아 길렀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을 한푼 두푼 모아, 아이만큼은 '못 배운 설움'을 겪지 않도록 매섭게 공부시켰다. 사회는 이들의 열성에 '치맛바람'이란 별명을 붙였다. 남편이 한창 일할 때인 40대 초반, 외환위기에 가정이 휘청댔다. 생계, 그리고 아이들의 등록금을 위해 생전 처음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혹은 임시직뿐이었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인 2005년, 20대 젊은이의 7.5%가 실업자인 '청년 실업의 시대'가 시작됐다. '88만원 세대'로 전락한 아이들은 아직도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경제활동인구 조사'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55세 여성의 전형적인 삶이다. 전통적 가치관과 급변하는 사회를 치열하게 버텨온 한국의 50대 여성은 조선일보·한국갤럽·글로벌마켓인사이트가 신년기획 '2011년, 한국인이여 행복하라'를 위해 실시한 10개국 5190명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불행한 집단으로 조사됐다. 중년 한국 여성의 불행 뒤엔 평생 축적된 경제적 부채의 굴레, 삶을 바쳐 뒷받침해온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50대 여성, 10개국 중 가장 불행한 집단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2월, 인생의 행복도가 20대에서 40대까지 꾸준히 떨어지다가 50대에 다시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생이 내리 하락세가 아니라 40대에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이른바 'U자형 행복 곡선'을 그린다는 것이 미 프린스턴대의 연구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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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여론조사' 결과 한국의 남성은 전형적인 'U자형' 행복도를 보였다. 그러나 여성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장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세대는 50대 여성이었다.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평한 여성의 비율은 40대 77.2%에서 50대 61.1%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한국의 50대 여성은 조사 대상 10개국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 '불행하다'고 답한 비율(37%)이 가장 높았다.

한국 여성의 행복도는 20대·40대 때 높고 30대·50대에 낮은 지그재그형이었다. 남성의 행복도는 20대에서 40대까지 떨어지다가 50대에 다시 상승했다.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세계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한국인 전체의 평균 행복도도 '50대 반등'에 실패했다. 행복한 한국인의 비율은 20대 80.2%로 높게 출발해 30대 69.2%, 40대 67.5%, 50대 64.2%로 꾸준한 내리막을 기록했다.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인생의 큰 부담'

50대 여성은 빚과 관련한 질문에서 큰 부담을 드러냈다. 10명 중 7명이 '빚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42.6%는 빚으로 인한 이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빚에 대한 부담은 주로 새 가정을 시작하는 20대·30대 몫이었다. 호주와 핀란드의 경우 30대 여성(각각 41.6%·29.5%), 미국은 20대 여성(35.9%)의 부채 부담이 가장 컸다. 반면 한국의 20대 중 '빚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49.5%로, 조사 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학자금대출 등을 받으며 자립(自立)의 길에 들어서는 다른 나라 청년들과 달리 한국 젊은이 중 상당수가 2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임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가치관 아래 평생 가족을 보살피는 데 힘써온 한국의 50대 여성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피로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들에게 가족은 대체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74.1%)이었지만 '필요에 의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인생의 큰 부담'이라는 답이 한국인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필요 때문에 가족과 같이 산다는 답은 전체 평균(1.4%)의 3배(5.6%)가 넘었다. 같은 세대의 남성 중엔 이 답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김미혜 교수는 "한국의 50대 여성은 전형적인 샌드위치 세대"라며 "보수적인 부모 아래서 자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서도, 정작 다음 자녀들에게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박탈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마음 수행 위한 종교 활동" 한국 50대 여성 78% vs 덴마크 11%

한국의 중년 여성은 삶의 위안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성향이 강했다.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종교를 가졌다'는 비율이 77.8%로 평균(61.8%)을 크게 웃돌았다. '50대 한국 여성'은 전 세계에서 이 답이 가장 많이 나온 집단으로, 덴마크·호주·미국에선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각각 10.6%·22.4%·45.8% 수준이었다. 종교의 본질인 '진정한 믿음'을 좇는 50대 여성은 7.4%에 불과했다. 영국 필로소퍼스 매거진 줄리언 바지니 편집장은 "종교를 종교 자체로 믿는 사람은 높은 행복감을 보이지만, 현실 탈피를 위한 도구로 종교를 활용할 경우 행복감은 거의 상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50대 여성은 다른 세대와 동떨어진 답을 냈다. 한국인이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경제적 부담'에 대한 답은 평균(52.6%)보다 낮게(48.1%) 나왔다. 대신 '살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염세적 의견(20.4%)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선진국의 50대 여성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는 순간 '가뿐하다'는 기분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개인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이 보통"이라며 "반면 한국의 중년 여성 중 대다수는 남편의 고용 불안, 자녀 결혼 자금 마련 등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