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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가 보낸 선물을 열듯이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낯선 이가 보낸 포장된 선물과도 같았다.

현관문을 여는 것은 뜻밖에 받게 된 선물의 리본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았다. - 마야 안젤루

 

위 시는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노래하는지 알고 있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의 작가 마야 안젤루가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하면서 한말이다. 마야 안젤루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살 때 부모의 이혼, 그리고 할머니 집에 보내진 마야는 이후 다시 어머니에게로 보내졌고 8살 어린나이에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그 후 그 남자가 살해당하자(추정하건데 삼촌들로부터) 마야는 자신의 목소리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스스로 목소리를 닫고 5년간이나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녀 속의 시와 노래, 춤에 대한 열정은 다시 그녀를 살아나게 했다.

 

"알 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보낸 선물"을 맞듯이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을 생각해본다. 선물은 늘 우리를 기대에 가득 차게 한다.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익명으로 보낸 선물은 기대 뿐 아니라 또한 두려움도 준다. 무서운 무엇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날 놀라게 하거나 때려눕힐 지도 모르니까. 판도라처럼 상자를 연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두려워서 선물을 열지 않고 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궁금한 것이 또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그러면서도 동시에 늘 좋은 무엇을 기대하는 희망이 낯선 사람이 보낸 선물을 앞에 둔 우리의 마음인 것 같다. 그게 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 Frost)는 인생은 길이 없는 숲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름답지만 때로는 낯선 숲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안심하고 따라가기도 하지만 새로운 희망과 모험심으로 길을 개척하기도 하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가장 힘들 때는 이 숲 속에 나만 홀로 버려졌고 내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는, 나만 이방인이 되어있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럴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스쳐지 나갔던 자그마한 시 한 구절이, 그저 한 번 웃고 말았던 영화 한 편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며, 가슴의 깊은 상처를 보듬어 주고 용기를 주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해주니까.

 

오늘 하루 내게 배달된 선물은 무엇일까. 그 선물의 리본을 풀듯 새로운 기대로 오늘을 향해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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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다

- 무언의 소통

 

 

내 안에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중세시대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표현하는 것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표현하지 않은 말들은 어디에 숨었을까요?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말할까요? , 남이 내게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을까요?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무(nothing)는 없음, 아무것도 아님, 혹은 결핍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불리는 그 무엇(something called nothing)’을 뜻합니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등 이 모든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nothing’의 말이 단순한 없음이나 무의미를 뜻하는 부정어가 아니라 보다 능동적인 긍정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무엇(something)’을 소통하지 못하는 데서 극의 비극성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리어왕은 세 딸들에게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럼 땅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지요. 땅을 물려받고 싶은 욕심에 두 딸들은 전혀 마음에도 없는 거창하기만 한 거짓 사랑을 고백합니다. 반면 셋째 딸 코오딜리어는 진정으로 아버지 리어왕을 사랑하는 딸입니다. 두 언니의 사랑 고백을 듣고 있는 코오딜리어는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만일 사랑이란 말이 언니들이 말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언니들이 사용한 것과 같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코오딜리어는 아버지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고 너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느냐는 기대에 부푼 왕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Nothing)”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코오딜리어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을 알아차릴 수 없는 리어왕은 실망과 배반감으로 셋째 딸을 추방하고 맙니다. 그때부터 리어왕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뒤늦게야 겉으로 드러난 언어 뒤에 숨은 무언의 진실에 하나씩 눈 떠가지만 이미 때늦은 깨달음일 뿐입니다.

 

침묵도 하나의 언어다

 

고백을 해야 할까?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내가 당황했다는 것을……. 나는 처음에는 그가 말하는 침묵이 그 무엇의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능동적인 그 무엇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의 형이상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피카르트(Max Picard)침묵의 세계The World of Silence를 읽고 한 말입니다. 피카르트는 말합니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인 것이다라고. 피카르트가 말하는 침묵의 깊은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일상 언어에 숨어 있는 말들, 침묵한 의미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무언(침묵)도 엄연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머어윈의 시처럼 그 언어들은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연필 안에

말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번도 쓰인 적 없는

말해진 적 없는

배운 적 없는 말들이  

숨어 있다

 

어둠, 그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다

- <쓰이지 않은 말> 중에서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의미 없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말이지만 동시에 소음입니다. 소음이 의미 없는 목소리(meaningless voice)’라면, 침묵의 언어는 목소리가 없는 의미(voiceless meaning)’입니다. 그 언어가 목소리를 갖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unspoken) 침묵의 언어, 또는 말할 수 없어서(unspeakable) 하지 못하는 침묵도 있습니다. 또 스스로도 내 마음 깊은 곳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 속에 그 말과는 다른 진정한 나의 마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프로이드는 말의 실수도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다보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단어를 쓸 때가 있습니다.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우연인 것 같은 실수 속에서 나의 무의식이 건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나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독일의 해석학자 E. D. Hirsh의 말이 생각납니다. 한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는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머리가 아파라고 하소연합니다. 이때 아내가 그래요?” 하고 진통제만 가져다준다면 아내는 남편의 말 뒤에서 침묵하고 있는 진정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남편도 그 말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때 남편이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머리가 아파가 아니라 당신의 위로가 필요해. 나를 좀 동정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만일 아내가 남편의 말 뒤에 숨어 있는 침묵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면 아내는 남편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남편의 욕구를 채워줄 것입니다. “당신 오늘도 밖에서 일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며 다른 날보다 더 특별한 위로를 해줄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낮 동안에도 수시로 아이가 궁금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친 몸으로 퇴근해 친정에 가면 어린아이가 드라마에서처럼 달려 나오며 엄마!” 하고 매달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는 엄마를 반기기는커녕 언제부턴가 스티커!” 하면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얼굴은 외면한 채 말입니다. 스티커를 사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이는 이내 토라져서 작은 일로도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썼습니다. 스티커에 대한 끈질긴 집착은 오랫동안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외국에 출장을 갔다 오면서도 엄마는 스티커를 사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단순히 스티커에만 집착했던 것일까요?

 

스티커를 달라는 아이의 투정은 바로 엄마, 하루 종일 어디 갔다 왔어? 엄마가 날 두고 가버렸을까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아?”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 내면의 그런 두려움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스티커가 엄마의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합니다. 어쩌면 스티커는 부재의 시간 동안 엄마가 자신을 기억했다는 증거품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아가야, 네가 원하는 건 스티커가 아니란다라고 말해주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스티커를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스티커만 준다면 사랑을 갈망하는 아이의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fear of the unknown), 즉 엄마가 대체 자신을 두고 어디에 가 있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은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따라서 아이가 말한 스티커와 함께 표현되지 못한 말의 의미인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합니다.

 

엄마는 아이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이 낮에 무엇을 하는지 직장에 데려가 보여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가 안 보이는 동안 불안하지 않고 엄마가 지금쯤 어디 있겠지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스티커는 물론 사랑도 열심히 표현해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와 함께 15분 정도 뒹굴며 놀아주고 꼭 안아주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는 그렇게 집착하던 스티커를 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속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욕구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에 그 욕구를 전이시켜 거짓 욕망에 집착합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비만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이나 군것질을 달고 살거나, 술이나 게임 등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초콜릿을 먹지 말라거나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욕망에 대한 강박증은 사라집니다. 이런 강박증은 때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친정어머니는 손녀를 유달리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치셔서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전화를 하셔서는 오늘은 애한테 뭐 먹였니?”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불고기를 해주었다고 하면 야채를 먹여야지!” 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다음 날 야채 반찬을 해주었다고 하면 고기를 먹여야지!” 하고 또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무슨 대답을 해도 단번에 만족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만 시작하면 다 듣기도 전에 벌써 화부터 났습니다. 때로는 전화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안톤 체홉의 <비탄>이라는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한 구절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포타포브는 이제는 너무 늙어 일하기 어려운 마부입니다.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가 늙어서 말을 제대로 몰지 못하자 마차에 탄 젊은 청년들이 노인에게 심한 모욕을 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욕적인 행동을 느끼지 않고 다만 소리로만 듣습니다. 그리고는 허허, 참 유쾌한 젊은이들이야하고 웃어버립니다. “느끼지 않고 다만 말을 듣기만 한다는 한 구절은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게 아하!” 하며 머릿속을 강타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어머니의 말을 일일이 들리는 대로 해석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했을까? 그냥 단순히 소리로만 들으면 되는데.’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은 고기를 먹여도, 야채를 먹여도, 그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의 표현임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네 딸을 사랑하는지 알지?’라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진심이 무시당하자 어머니는 나름대로 욕구불만이 쌓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심을 알아달라고 점점 더 엉뚱한 잔소리를 하신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에도 나는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렇게밖에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아이처럼 귀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알았어, 알았어요. 울 엄마, 손녀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라며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게 찾아온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의 진정한 마음을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간섭과 잔소리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욕구를 알아주자 어머니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변화로 어머니도 변하셨던 것입니다.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이면 새삼 삶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Jung)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사소통 할 수 없을 때 온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할 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 너머 말없이 침묵하는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서로의 욕구를 읽어주고 들어준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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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Public Library에서 >

 

북커버 디자인이 예술인 책들... 특히 이번에 발견한 팽귄 디럭스판은 너무 이뻐서 다 사고 싶었다. 다들 인터넷으로 책을 보니까 종이책은 소장하고 싶을 만큼 멋지거나 예뻐야할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책이면 사서 종이책으로 읽고 싶겠다. 종이도 정말가볍고 좋았다. 눈이 휘둥글@-@)!

 

유명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인 Ruben Toledo의 북커버 작품.
샬르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푹풍의 언덕]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인 톨레도의 부인 이자벨 톨레도는 패션디자이너다. 그녀의 옷을 오바마 부인이 취임식에 입었었다.
톨레도의 이 북커버 디자인을 사람들은 "예술과 패션이 문학과 맺어진 결혼"(marriage of art and fashion to literature)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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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 아프게 읽었던 책, 죤스타인백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의 표지도 나름 설득력있다.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불만의 겨울], [에덴의 동쪽], [진주], [분노의 포도] ......
[불만의 겨울]이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리차드 3세의 대사이다. 고등학교 때 [불만의 겨울]을 읽고 참 감동받았었다.
처음 존스타인 백을 처음 알았을 때는 초등학교 때였다. 이름조차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5학년 때인가 [Red Ponny/붉은 망아지]라는 소설을 읽고서였다. (알고 보니 첫 에피소드였다.) 너무 슬퍼서 울었었던 기억이 난다.
이 나이에 예전에 가슴에 깊은 여운을 주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 어떤 또 다른 의미가 내 마음 속에 다가올지 궁금하다. 그게 문학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닌가.. 읽는 사람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고 창조되는...

 

Jane Eyre(제인 에어):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Pride and Prejudice(오만과 편견)                                Of Mice and Men(생쥐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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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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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gogh-souvenir de m..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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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멀리서 멀리서 보고 알았습니까.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까.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아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로 몰랐다고 하십니까.

그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 오랜 시간 외롭게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에야

당신은 그 그늘에 비로소 앉았습니다.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진 나무라 생각하던 그 나무 아래,  당신은 그제야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이제 저녁이 오는 소리를.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하십니다.

그 몇겹의 색깔을 읽어 보셨습니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 가슴엔 수천의 꽃잎이 비명도 없이 떨어져 쌓입니다.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

패랭이꽃 | 2007.02.28 23: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세상의 꽃이 아니라 천상의 꽃같아요. 아름다운 색감과 그 보다 더 아름다운 하늘 그보다 더 아름다운 대지...오늘 날씨와 같은 아름다움과 느낌과 감동이 있는 그림이 너무나 너무나 좋네요.
솜사탕 | 2007.03.01 12: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따스한 봄날에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고 싶다.
복숭아 꽃도 좋고 파릇파릇 새싹들도 좋다.
땅 속을 삐집고 살짝 나온 얼굴들을 쳐다보며 늦기 전에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생각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사건들, 일들을 다 해방시켜주고 싶다.
오랜 시간동안 내 안에 같혀서 답답해 하는 이들과 일들을 보내어 주자.
이 봄날에 그들을 자유롭게 하자.
아니, 나를 자유롭게 하자.
복숭아나무 | 2007.03.01 16: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즘 읽은 시집에 있는 시였는데...이 시를 읽으며 내가 복숭아 나무로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 그림과 함께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문득 나를 멀리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복숭아나무의 꽃빛을 보진 못했지만 그런 아름다운 빛깔이 나의 어딘가에도 숨어있을까? 나는 꽃빛이 숨어있지 않은 부분만 들여다보며 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리라 여겼었다. 내가 생각하는 남의 눈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나의 눈이 아닌 그저 멀리서 보는 눈으로 나는 어떤 모습일까...어떤 빛깔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난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을까...내 스스로 나의 꽃빛을 가리고 있던건 아닐까...남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지않고 그 그늘로 내 자신의 꽃빛을 가리우고 있었던건 아닐까...
NAPTKOREA | 2007.03.02 22: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모두들 역시 그림을 좋아하세요. 시와 그림을 같이 올리는 경우 대개 그림에 반응을 보이시네요. 앞으로 참고가 될 거 같아요^^
자귀나무 | 2017.11.24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복숭아 나무와
관련된 옛 추억들이 떠 오르네요.
500평 남짓의 작은 복숭아 농원이었지만,
복사꽃이 전해주는 빛, 색, 향의 향연은
지금도 아른 거립니다~
Journal Therapy | 2017.11.26 17:50 신고 | PERMALINK | EDIT/DEL
과일은 무심히 즐기지만 과일 나무와 꽃이 전하는 빛, 색, 향연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분들은 많지 않을 텐데 자귀나무님은 참 소중한 추억이 있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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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봉숭아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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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 - 이외수

 

 

흐린 날
누군가의 영혼이
내 관절속에 들어와 울고 있다
내게서 버림받은 모든 것들은
내게서 아픔으로 못박히나니
이 세상 그늘진 어느쯤에서
누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가
저린 뼈로 저린 뼈로 울고 있는가
대숲 가득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언젠가는 | 2007.05.14 11: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늘 버림받은 느낌이었지만 내게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들도 있을까 내가 눈길을 주지않아 시들어버린 꽃들도 있을까 내가 부르지않아 사라져 버린 노래도...많은 것들을 놓치고 흘려보내고 그러곤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던건 아닐까 나를 내 손길을 내 눈길을 기다리고 있던 것들도 있을까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그런게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만 내가 뭘 하겠어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에게도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을까 있겠지 있었으면...기대는 늘 사라져버리지만 눈을 들고싶은데 나만 바라보던 눈을 들고 싶은데 어디로 눈을 들어야 할까 누구와 눈을 맞추어야할까 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늘 당황한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 너무도 두려워서...이제는 이제는..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걸어가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후기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늘...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채워지지않는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것같다. 다른 사람들의 손길 눈길을 바라면서도 바라지못하는 마음...우선은 눈물을 닦고 아름다운 것들을 내 마음이 즐거워할 것을 찾고 싶다. 충분하다 충분하다...나를 위로하고 싶다.
NAPTKOREA | 2007.05.15 01:33 | PERMALINK | EDIT/DEL
내가 울고 있는 사이 내 손을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이 있어요. 내가 울고 있는 사이 내게 버림받는 내가 있어요.
내게 버림받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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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습관처럼 밀려올 때 가만히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일 거야
석양빛에 물든 검은 갈색의 바다, 출렁이는 저 물의 大地

누군가 말을 타고 아주 멀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거야
그럴 때, 먼지처럼 자욱이 일어나던 生은 다시 장엄한 음악처럼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되돌아오기도 하지

북소리, 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어봐
고독이 왜 그렇게 장엄하게 울릴 수 있는지 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어봐

너를 뛰쳐나갔던 마음들이 왜 결국은 다시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오는지
네 가슴속으로 되돌아온 것들이 어떻게 서로 차가운 살갗을 비벼대며 또다시 한 줄기 뜨거운 불꽃으로 피어나는지

고통이 습관처럼 너를 찾아올 때 그 고통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 봐
고통과 깊게 입맞춤하며 고독이 널 사랑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너만의 보폭으로 걸어가 봐

석양빛에 물든 저 검은 갈색의 바다까지만
장엄한 음악까지만

그녀에게- 박정대: 아무르 기타, 문학과사상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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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한 구름이 하나 살았다.
물새들이 가끔씩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혹은 모른 척 그냥 지나기도 하였다.

[기형도 - "시인 2/첫날의 시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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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 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선생님은 숨을 내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공중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왔으니까, 그떄가 어떤지 알지. 어린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 게 즐거워. 또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네.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이해가 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에서>

bhlee | 2007.05.24 17: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나는 울 권리가 있다.
슬퍼할 권리가 있다.
실수할 권리도 있다.
아파할 권리도 있다.
미워할 권리도 있다.
그리워 병들 권리도 있다.
네 뒷모습을 사랑할 권리도 있다.
다만 거기 머물지 않을 뿐이다.

어린아이가 될 권리도,
노인이 될 권리도
때론 여자가 될 권리도
때론 남자가 될 권리도 있다.
다만 거기 머물지 않을 것이다.
NAPTKOREA | 2007.06.01 11: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5월이 터질듯 피어오르는 날이면 쉰이 넘은 나이에도 어김없이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때론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5월의 설렘은 청년들의 특권인 것만 같아서 가을 중턱에 들어선 나이에 느끼는 그런 [철]모르는 감정을 숨겨야할 것만 같은 부끄러운 맘이 들기까지 합니다. 자라오면서, 그리고 세상 속 세월을 거치면서 가장 흔히 하는 말 중 하나는 철이 들어야한다는 말, 철이 없다는 말, 철모르는 어린아이 같다는 말.. 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도 계절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사철이 나뉘어 있기 때문일까요. 다만 계절은 돌아오지만 인생은 겨울이 지나도 봄은 되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만 다르기에 한편 서글프고, 또 한편으로 그렇기에 우리의 하루하루가 더더욱 의미 있고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리교수처럼 우리 안에 내 인생의 사계절을 모두 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순수함을 잃지 않는 어린아이의 맘을 간직하고, 그 눈에 호기심이 별처럼 반짝이며 때로는 젊은 청년의 열정으로 내가 뿌리 내린 곳보다 더 아름답고 높고 깊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이 아직도 살아 숨쉬며, 그러면서도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잘 제어하고 나의 옮길 발걸음과 내 몸과 맘을 앉혀놓을 자리를 분별하는 지혜를 가진 노년이 함께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면 그보다 아름답고 성공적인 인생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문득 감상주의적 환상과 순수함을 혼돈하거나,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찬 이기적 호기심과 심리적 불안정을 모험심으로 착각하거나, 때로는 쌓아 놓은 정보와 지식이 지혜인양 허세를 부리거나, 세월과 성숙함이 저절로 비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연륜을 내세워 허망한 자기 자랑과 주장만 화석처럼 굳어지는 그런 노년이 될까봐 무척 두렵습니다.

젊음이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며,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라는 사무엘 울먼의 유명한 글, [젊음]에서의 말도 결국은 우리 속에 살아 공존하는 모든 계절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울만은 60살 노인이든 16살 청소년이든 우리들의 가슴 한 복판에는 무선 전신국이 있다고 합니다. 그 무선전신국이 인간과 저 높은 초월자에게서 오는 아름다움, 희망, 환호, 용기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우리는 주름과 관계없이 청년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청년이라도 이미 수 십 년을 더 늙어버린 주름투성이 노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 합니다.

오늘 무너지도록 부신 햇살아래서 내 영혼의 안테나를 저 5월의 하늘, 그 가슴 한복판을 향해 높이 올리며 소리쳐 말하렵니다. [내 나이를 물어 무엇하랴. 나는 5월에 있다](피천득) 라고... [문학칼럼 중에서 2005]
슬픈6월 | 2007.06.01 15: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선생님이 쓰신 이 글이 정말 너무나 가슴에 와서 닿습니다. 감정을 숨겨야할 것만 같은 부끄러운 맘이 들기까지 했다는 구절은 특히 그러합니다. 이러한 감성과 순수를 가지고 느끼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데 왜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그 순수와 감성과 열정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 2007.11.24 02: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NAPTKOREA | 2008.06.11 12:2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있으면 그걸 보고 있던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는 법이다. 멋진 일에 가슴일 설렐 때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따위 시시한 것'하고 속삭인다. 그렇게 해서 까치발을 하다가 주저앉고 손을 내밀다가 뒤로빼고 조금씩 뭔가를 포기하고 뭔가 조금씩 차갑게 굳어가면서 나는 어른이라는 '특별한 생물'이 될 것이다.

온다 리쿠. [굽이치는 강가에서] 중에서
| 2010.05.05 17: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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