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에 해당되는 글 8건

마음갈피를 더듬는 바람의 환대- 이봉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기지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나는 어떤 문학치료수업이든, 특강이든, 또는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이든 첫 날 이 시를 청중/학생/내담자들에게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상담시간엔 이 시를 읽어주지 못하지만 늘 같은 마음이다.)

 

내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과거, 현재, 미래,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일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책처럼 꼭꼭 덮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 갈피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바람도, 마음 갈피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조우이다. 그 바람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읽거나 쓰는 한 구절 글이나 시일 수도 있고, 치료자가 건네는 공감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글쓰기문학치료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이상하다. 왜 엉뚱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이상하다 왜 눈물이 자꾸 나지?’가 바로 그런 순간인지 모른다. 이 시는 나와의 만남이, 내가 진행하는 치료모임 때 읽은 시 구절이, 나의 경청이 바람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이다. 그것도 마음갈피를 그저 “더듬을 수 밖에 없다”는 치료자의 한계를 나는 늘 겸손히 그분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열고, 듣고, 읽어야한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김없이 울컥하고야 만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소망을 내가 만나는, 나를 방문한 분들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나 간절히 그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기에....

 

그리고 나는 권고한다. 이 글쓰기문학치료모임에서는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환대’해야 한다고. 내가 여러분을 만나듯, 여러분이 만나게 될 ‘방문객’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이 모임은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 즉 '나 자신'을 친절히 환대하는 모임이라고. 그것이 두렵고 아파서 마음갈피를 굳게 닫아두었다면 그래서 힘겹다면 나와 함께 조심스레 열어 대면하자고. 결국 신영복님은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일이 최고의 독서라 했는데 그 무엇보다 그 한 사람 중 먼저 나의 인생사를 경청하고 내 마음갈피를 펼쳐 읽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독서가 아닌가?

 

치료모임은 단순한 위로와 억압된 감정의 해소에서 더 나아가 자기관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자기 관찰이란 치료모임이 즐거운 교제나 독서토론, 주고 받는 칭찬, 맛난 음식, 웃음꽃 피는 모임이 아닌 진지한 심리치료 모임이란 말이다. 자기 관찰을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그 길을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치료기간에 자신의 추한 점, 상처, 절망과 실패, 수치심, 뜻밖의 얼굴이 들어나도 거부나 비난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것이 ‘친절한’ 관찰이다. 즉 내가 문학치료에서 글을 쓰면서 만나는 방문객---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고통이 내 모습의 한 부분일 뿐임을 믿어야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서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치료모임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를 두려움이라고 했고 그 두려움은 고통을 직면하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를 비유로 생각해본다.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두려워 꼭꼭 억압했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수많은 흉한 모습과 기억과 상처가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덮어버리고 억압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수치심과 불편함에 다음 시간에 모임에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한다. 그 상자 맨 밑에서 판도라에게 들려오던 작은 소리를.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요...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나의 고통스런 상처나 수치스런 경험들, 내가 불가항력적이었던 불행한 일들이나 실패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남은 용기와,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삶의 의지와,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와,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투지가 희망처럼 더 깊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실현되고 싶어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참 나의 모습인 것을.

 

오늘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담자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함께 환대할 준비를 하면서.....(ⓒ2016bhlee)

FB | 2019.08.25 2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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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Y
제가 안식월 가지면서, 나사렛교회를 방문해 말씀 전한 주일, 교수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그 마음의 환대가 생각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세월 참 많이 흘러가 버린 그 옛 시절 학교의 부족한 동료였던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
LBH
에궁. 아닙니다.
교수님이 떠나신 학교 빈자리가 늘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몇 번밖에 들은 적 없지만 매번 깊은 통찰과 성찰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설교에 공감하고 힘을 얻곤 했더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귀한 분에 대한 아주 작은 추억도, 어딘가 이런 분이 계시다는 기억도 제겐 문득문득 눈 둘 곳 없는 공허한 날 참 큰 힘이 됩니다.
늘 강건하세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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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찾는 사람 - 박노해]

 

봄이 그리워
겨울 속을 걸었지요
웅크린 몸으로...
봄 길 찾아 걸었지요

 

꽃이 그리워
어둠 속을 걸었지요
사박사박 언 발로
꽃심 찾아 걸었지요

 

좋은 날이 그리워
상처 속을 걸었지요
가난한 마음으로
사람 찾아 걸었지요

 

 

(c)photo by Dr. Lee SYup(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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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 ㅡ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세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 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시집, 슬픔에 손목 잡혀 (시와시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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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위하여ㅡ김시태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희미한 고향집과 어머니
그 개구쟁이들
그들을 도로 돌려주소서
조그만 카드 속에 정성을 담던
그 소년들도 돌려주소서
첫아이 보았을 때 기도드리던
그 아빠와 엄마도 돌려주소서
아이들과 손잡고 이야기하며
성당을 찾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한 번 더 그 종소리 듣게 하시고
눈 내리는 아침을 걷게 하소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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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 Shiji(1926-2013)

 



[슬픔 -김용택 ] 


외딴 곳
집이 없었다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어디 울 곳이
없었다

 

---

지난 주에는 갑자기 눈보라가 쳤습니다. 슬픈 재즈 같이 젖은 눈이 아프다는 소리도 없이 잿빛 바람에 마구 휩쓸려 불려 다녔습니다. 누군들 곱고 하얗게 내려 쌓이고 싶지 않을까요.

세상은 온통 고장 난 시계처럼 하루 종일 희미한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가슴속의 다 타고난 재가 불어오고, 불려 다녔습니다. 공연히 해묵은 아픔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이 작은 냉기에도 마음이 또 다시 위축됩니다. 하루하루 손에 남은 건 녹아버린 눈송이 같은 젖은 방울 몇 점 뿐.
해 놓은 일도, 남겨진 것도 없이 무산된 계획만 헛손질하며 가버리는 하루, 하루, 그리고 또하루....


늘 손잡아 주던 엄마가 이젠 혼자가라고 나를 남겨둔 정류장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흐린 날은 어려서부터 공연히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시인은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외딴 곳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익숙하던 길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잿빛 바람이 불고 날은 쉽게 어둑어둑해지는 겨울날이 우리 삶의 여정에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외딴 곳, 침침한 곳에서 시인이 집을 찾는 이유는 울 곳이 필요해서입니다. 우리 모두 길을 잃은 듯 외로운 날,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이슬을 막아주는 지붕이 되고 기대어 울 수 있는 벽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는 동으로 난 작은 창이 되어 이 외딴 세상에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으로 시를 감히 고쳐 읽어 봅니다.  "
외딴 곳,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작은 창에 불이 켜졌다. 나는 그대의 가슴에, 그대는 내 가슴에  집을 짓고  이름 없는 설움을 비워내며 조용히 울었다." (2005 bhlee, 문학칼럼 중에서)


| 2011.07.16 00: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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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by bhlee @NYC121419 

 

한겨울 공원
한 쪽엔 계절을 잊은 봄 꽃, 
또 한 쪽엔 뒤늦게까지 서성이다 떠나가는 가을
모두 제 길을 잃은 것일까


땅에 누워서야

떠나간 잎들과
다시 하나가 되는
초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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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 하기 보다 함께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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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터들 - 로버트 프로스트



지나가다 들여다 본 들판에

눈이 내린다. 밤이 내린다, 줄기차게, 아 줄기차게 .
땅은 눈 아래에 모두 부드럽게 덮여
몇 그루 잡목과 그루터기만 보일 뿐

빈 들은 숲에 둘러싸여 그 안에 갇혀있고,
짐승들은 모두 굴속에 갇혀 숨을 죽인다.
나는 정신이 멍해져 셈을 셀 수도 없이
어느 샌가 그 고독에 에워싸인다.

지금도 고독한데 이 고독이 줄어들기까지
고독은 더욱 깊어져야만 하리
아무 표정 없는, 표정 지을 것도 없는
밤 눈(雪)의 텅 빈 백색.

인간이 살지 않는 별들ㅡ그 별과 별 사이의  
텅 빈 공간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 가까이서 나를 무섭게 하는 것
그건  내 안의 황폐한 빈 터들.


(번역;bhlee)

---
한 밤, 숲속을 홀로 지나 본 경험이 있는가?  외딴 마을을 홀로 어둠속에서 걸어본 적 있는가?  게다가 모든 것을 형태도 없이 덮어버리는 백색의 눈과 침묵.... 그 안에서 느끼는 전율 같은 두려움. 

하지만 자연의 이 극단적인 고독, 그 죽음과도 같은 침묵과 어둠과 백색의 폐쇄성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그 근원이  바로 인간 내부에 있는지  모른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별 사이의 그 무한 공간보다 인간 마음 속의 빈 공간이 더 겁이 나는 것을 이 시는 깨우쳐준다.  별과 별 사이의 실제 거리는 엄청나겠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별끼리는 텅비 공간의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사람사이의 작은 공간, 아니 그보다 더 작은 내 마음 속의 `황량한 공간`이야말로 가장 공활한 것을, 가장 두려운 것을. 진정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외적인 적막감(loneliness)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황폐함(desert places)인 것을.

오늘 눈이 많이 온 곳이 있었다. 
내 맘의 숲에도 눈이 내렸던가?

 

3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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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 파스칼,  [팡세] 1부 "신없는 인간"

 

 



| 2008.01.23 14: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2008.01.23 14: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NAPTKOREA | 2008.01.25 02: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구두한켤레: 밤 눈의 텅빈 백색은 뻥카야.
시적인 엄살이지.
엄살치고는 드러나는,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혼서 견뎌내는 거지.
그야마로 그냥.

이런거야 , 도대체 지워지지가 않아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가 않아

2008/01/24
acsebichi 눈을 감고, 외면하고, 태우고, 덮고, 얼려버리고, ....
지우려면 기억해야합니다, 천천히, 자세히, 깊이. 용기를 가지고.
그리고, 그래서, 지우지 못합니다.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텅빈 백색은 항상 '그리라...'고 손짓하니까. 백색은 백색인 채로 백색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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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나를 헐어서
붉고 붉은 편지를 쓸까봐
차갑게
비웃는 바람이
내팽개친 들 또 어떠랴
눈부신 꿈 하나로
찬란하게
죽고만 싶어라

[낙엽 쌓인 길에서 -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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