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7'에 해당되는 글 3건

<수선화에게 ㅡ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ㅡㅡ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가끔 눈물을 흘리시고, 갈대 숲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무심히 앉아 있는 새들의 존재에도, 모든 우주에 외로움은 존재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이 시는 “나만 아픈 것이 아니구나” ㅡ라는 공감을 통한 치유의 시이다. 이렇게 공감받을 때, 나만 외딴 섬이 아니라 전 존재와 우주라는 거대한 대륙에 연결된 존재라는 느낌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얼마 전 내가 사소한 사건으로 철렁 놀란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너무 무섭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고맙다 하자 그 친구는 ‘난 그저 같이 무섭다 한 것 뿐인데... ‘라고 했었다.

그게 고마운거지 같이  느껴주는 것.
우리는 내 감정이 어떤 조건 없이 공감받을 때 나만 바보처럼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되어서) 두려웠거나 상처받거나 분노한 것이 아니라는 유대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오히려 우리는 그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스스로 뛰어넘을 준비, 변화할 준비를 하게 된다. (많은 글쓰기문학치료 참여자들이 나만 그런 줄 알았어요. 내가 이상한 외계인 같았어요. 라는 말을 하시곤 한다. )

 

이 시의 치유적 힘은 비록 '...하지 마라' '..이다'는 어투를 사용했을지라도 흔히 말하는 ‘외로움은 보편적 실존이다 그러니까 슬퍼하지마라’는 교훈이나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는  “you are not alone (나도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냐)”이라는 온 존재가 함께 공유한 외로움을 통한 유대감이 주는 안도감인지 모르겠다.  그 안도감이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공감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게 만드니까. 그래서 일견 ".. 하지마라 .. 이니까. ..하지 마라.."는 교훈조의 말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솔루션이나 깨달음의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스스로에게 ...하지 말라고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돌아보라고.. 너만 그런게 아니라고.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그런 위로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스로 세상을 돌아보고 나만 외로운게 아님을 깨닫는 자신과의 역시 외로운 그러나 이제 더이상 외롭지 않은 대화인 것이다.  그래서 흔히 '무엇은 ... 이다'로 정의 내리는 시들의 목소리와 달리 이 시의 목소리는 다르다.  ‘그러니 슬퍼하지말라.. ‘가 아니라 때로 슬플수도 있지만...그럼에도~ 괜찮다로 들린다.  결국 힘든 삶을 살아가는 힘은 아픔의 해결이라기 보다 (그럼 해결될때까지 어쩌지???)   ‘그럼에도....’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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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목이 참 흥미롭다.

수선화에게...
절망적 사랑을 한 수선화에게.

 

아이러니칼하게도 나르시시스는 그 대상이 자기자신임을 몰랐다.

그는 그게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고 사랑한 비극적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대상과 하나가 되기 위해 물에 빠지고 수선화로 피어난 신화의 나르시시스.

결국 모든 존재하는 것들 속에 내재된 외로움은 모든 존재가 각자 독특하고 유니크한 개별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해도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싸르트르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는 외로움을 대자존재(etre pour soi)의 실존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때 ‘나와 다른 그’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그’, ‘나와 같은 그’ 아니 어쩌면 '내 무의식에 비친 나’ 의 모습으로 인해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ㅡㅡ 


수선화는 유명한 신화 나르시시스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에코우(메아리)의 절망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미소년. 나르시시스는 연못에 비친 너무나도 아름다운 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그 연못을 떠나지 못하다 결국 연못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연못가에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묘하게도 나르시시스의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은 심리학에서 자기애성을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자기애는 누구나 어느 정도 있고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증적상태가 될 때 자기관찰과 치유가 필요하다.

이 시가 갖는 여러겹의 의미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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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아주 오래 전 천상병 시인의 <약속>이라는 시를 읽고 끄적끄적 일기장에 그림을 그렸었다.

가로등과 기다림ㅡ
약속.... 누구와의 약속이든 그건 어쩌면 다만 약속을 기억한 사람, 그걸 잊지 않는 사람의 슬픈 풍경 같은 기다림인지 모른다.

...

그림을 보니 내가 인적이 없어 굳이 서 있을 필요도 없는, 길을 밝혀줄 필요도 없는 가로등을 그린 것이다.
게다가 전구가 없는 가로등을!

오늘 밤엔 저 가로등에 전구를 끼워줘야겠다.
보이지 않는 길 잃은 한 영혼이 어떤 외딴 길 끝에서 이 작은 빛을 보고 안도하며 길을 찾을 수 있게..
집을 찾을 수 있게..

 

 

by bhlee

 

[천상병 -약속]

 

한 그루 나무도 없이
서러운 길 위에서
무엇으로 내가 서 있는가

새로운 길도 아닌
먼 길
이 길은 가도가도 황토길인데

노을과 같이
내일과 같이
필연코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

120516
| 2007.03.10 17:3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약속 | 2007.10.01 09: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약속. 그건 뭘까. 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다. 상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경우에 특히 그렇다. 하지만 못지키는 경우 반드시 미리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내가 까막히 잊은, 잊은지 조차 잊은 약속도 있겠지 싶다. 그가 한 약속은 무슨 의미일까. 늘 기다린다. 언제까지, 라는 말을 믿고. 하지만 맘이 바뀌거나 그러기 싫으면 언제나 달라질 수 있는 그 약속들. 그의 약속은 그 약속을 하는 순간 그냥 그러겠다는 의견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빈 길에서 늘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어느 새 10월이다. 나는 아직 빈 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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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갈피를 더듬는 바람의 환대- 이봉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기지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나는 어떤 문학치료수업이든, 특강이든, 또는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이든 첫 날 이 시를 청중/학생/내담자들에게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상담시간엔 이 시를 읽어주지 못하지만 늘 같은 마음이다.)

 

내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과거, 현재, 미래,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일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책처럼 꼭꼭 덮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 갈피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바람도, 마음 갈피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조우이다. 그 바람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읽거나 쓰는 한 구절 글이나 시일 수도 있고, 치료자가 건네는 공감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글쓰기문학치료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이상하다. 왜 엉뚱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이상하다 왜 눈물이 자꾸 나지?’가 바로 그런 순간인지 모른다. 이 시는 나와의 만남이, 내가 진행하는 치료모임 때 읽은 시 구절이, 나의 경청이 바람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이다. 그것도 마음갈피를 그저 “더듬을 수 밖에 없다”는 치료자의 한계를 나는 늘 겸손히 그분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열고, 듣고, 읽어야한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김없이 울컥하고야 만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소망을 내가 만나는, 나를 방문한 분들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나 간절히 그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기에....

 

그리고 나는 권고한다. 이 글쓰기문학치료모임에서는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환대’해야 한다고. 내가 여러분을 만나듯, 여러분이 만나게 될 ‘방문객’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이 모임은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 즉 '나 자신'을 친절히 환대하는 모임이라고. 그것이 두렵고 아파서 마음갈피를 굳게 닫아두었다면 그래서 힘겹다면 나와 함께 조심스레 열어 대면하자고. 결국 신영복님은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일이 최고의 독서라 했는데 그 무엇보다 그 한 사람 중 먼저 나의 인생사를 경청하고 내 마음갈피를 펼쳐 읽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독서가 아닌가?

 

치료모임은 단순한 위로와 억압된 감정의 해소에서 더 나아가 자기관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자기 관찰이란 치료모임이 즐거운 교제나 독서토론, 주고 받는 칭찬, 맛난 음식, 웃음꽃 피는 모임이 아닌 진지한 심리치료 모임이란 말이다. 자기 관찰을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그 길을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치료기간에 자신의 추한 점, 상처, 절망과 실패, 수치심, 뜻밖의 얼굴이 들어나도 거부나 비난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것이 ‘친절한’ 관찰이다. 즉 내가 문학치료에서 글을 쓰면서 만나는 방문객---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고통이 내 모습의 한 부분일 뿐임을 믿어야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서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치료모임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를 두려움이라고 했고 그 두려움은 고통을 직면하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를 비유로 생각해본다.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두려워 꼭꼭 억압했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수많은 흉한 모습과 기억과 상처가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덮어버리고 억압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수치심과 불편함에 다음 시간에 모임에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한다. 그 상자 맨 밑에서 판도라에게 들려오던 작은 소리를.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요...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나의 고통스런 상처나 수치스런 경험들, 내가 불가항력적이었던 불행한 일들이나 실패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남은 용기와,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삶의 의지와,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와,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투지가 희망처럼 더 깊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실현되고 싶어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참 나의 모습인 것을.

 

오늘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담자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함께 환대할 준비를 하면서.....(ⓒ2016이봉희)

FB | 2019.08.25 23: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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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Y
제가 안식월 가지면서, 나사렛교회를 방문해 말씀 전한 주일, 교수님이 제게 보여주셨던 그 마음의 환대가 생각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벌써 세월 참 많이 흘러가 버린 그 옛 시절 학교의 부족한 동료였던 사람을 생각해 주시는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
LBH
에궁. 아닙니다.
교수님이 떠나신 학교 빈자리가 늘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몇 번밖에 들은 적 없지만 매번 깊은 통찰과 성찰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설교에 공감하고 힘을 얻곤 했더랬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귀한 분에 대한 아주 작은 추억도, 어딘가 이런 분이 계시다는 기억도 제겐 문득문득 눈 둘 곳 없는 공허한 날 참 큰 힘이 됩니다.
늘 강건하세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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