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에 해당되는 글 11건
당신이 필요해요 - 존재의 가치 | 2020.03.30
Andreas Scholl 2 | 2020.03.24 일상의 재발견 - 살아있다는 건 멋진 일이야. | 2020.03.19 Tchaikovsky-녹턴 & 로코코주제에 의한 변주곡 | 2020.03.14 Bach Cello Suite- prelude, Yo-yo Ma 1 | 2020.03.10 코로나-19로부터 마음중심 잡기 1 | 2020.03.05 분수 - 김춘수 | 2020.03.02 Pavarotti- Caruso | 2020.03.01 새- 아폴로에서/ 천상병 1 | 2020.03.01 지혜: 분별의 마음 | 2020.03.01 겨울 바다 2 - 신경림 | 2020.03.01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존재의 가치 (c)이봉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오로지 부모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도 온 마음으로 ‘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 된다는 것을. 아직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필요로 한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나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가슴 벅차던 어린 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밤낮 없이 속만 썩이고 실망시키는 말썽꾸러기,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앤 머레이(Anne Murray)의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You Needed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히 당신을 원하고 필요로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고 노래합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중에서
조건 있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 어린 시절 흔히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인형 중에서 하나의 인형을 유독 아꼈습니다. 항상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인형은 여러 개 중 가장 못생기고 팔도 한쪽이 떨어져나간 낡고 초라한 인형이었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왜 그 못생긴 인형을 그렇게 꼬옥 품고 다녀?”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다른 인형은 예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이 힘들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스럽지 못할 때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못난이 인형을 사랑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는 그때 나를 먼저 사랑해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너를 잃을까봐 겁이 났단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아버지 무파사는 어린 사자 심바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경계를 지어줍니다. 하지만 심바는 아버지의 경고를 거역하고 코끼리 무덤에 갔다가 하이에나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타나 심바를 구하지요. 무파사는 훈계하고자 심바를 부릅니다. 심하게 벌을 받을 줄 알고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다가간 심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자기도 아버지처럼 용감해지고 싶었다고,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고 겁낼 것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오늘 두렵고 겁이 났단다.... 너를 잃을까봐!”
그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심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심바는 아버지의 품에서 말합니다. “우린 친구죠, 그렇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동물의 왕인 아버지도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니, 심바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조건 없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집으로 막 뛰어 들어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하나님도 우리 없인 못사신대.” 그렇습니다. 신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과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합니다. 하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실망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 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지고, 자꾸 눈치도 보여서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까 눈치보지 말라고.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약함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해보겠다고 우쭐대는 어린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아이는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데도,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위로인지요.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나도 지쳐버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요. 그러므로 이제 브레히트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의 길을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하는, 사실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Morgens und abends zu lesen>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I am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 Philippian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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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숄(카운터 테너)의 노래 중 특히 좋아하는 비발디의 Stabat Mater와 언제나 가슴을 흔드는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다오"(Che farò senza Euridice?)를 권해본다. 내가 아끼던 비발디의 CD를 마음이 통하던 친구에게 선물했었는데 그에게는 별로 의미없는 것이었던 게 맘이 아프다.
(here only for therapeutic purpose) Andreas Scholl - Vivaldi: Stabat Mater, RV 621 ----- Gluck의 올페오와 에우리디체 중에서 Che farò senza Euridice? 꼭 들어보길 권한다.
오늘은 안드레아 숄 대신 마리아 칼라스의 연주로 들어본다.
하데스로 사랑하는 에오리디체를 찾으러 가서 데리고 나오던 올페우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뒤를 돌아보고.... 에오리디체를 영영 잃게 된다. 고통과 한탄 속에 부르는 노래.
Che farò senza Euridice? Euridice! Ah, non m´avanza --- What will I do without Euridice? Euridice! Ah, no help comes to me anymore, 이곳은 잘 알려진 곳도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처럼 떠돌다 온 그 누구라도 위안이 되라고 올려본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 일상의 재발견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얼마나 느끼고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의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여기 이렇게 살아 있지. 아마도 계속 살아갈 거야. 내 사랑, 아가씨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겠지만 난 살려고 태어난 것 아니겠어.
외치는 내 소리 당신이 듣게 될지도 모르고 우는 내 모습 당신이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 죽는 걸 보게 되는 일은, 사랑하는 아가씨, 앞으로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포도주처럼 멋진 거야!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 - 랭스턴 휴즈,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Life is Fine〉 중에서
시의 주인공(시적 화자)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명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지요. 간혹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결코 죽지는 않겠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Life is fine”이라고. 나는 이 Life라는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모두들 번역한 대로 “인생”으로 번역하고 보니 시인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생이 고통스러워서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이, 살면서 다시 울어버릴 수도 있고 소리 지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포도주와 같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이 고달플지라도 “살아 있는 건 멋진 거야(좋은 거야)”라고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꼭 극적이어야 멋진 인생일까?
미국의 극작가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우리 마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의미 있게 보여줍니다. 즉 사람들이 태어나고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그 죽은 자들이 또 산자들을 바라보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극입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학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아무런 ‘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이 지루하다고 말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좀 더 ‘극적’이기를 기대하는 우리에게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를 그린 극은 지루하고 무의미하며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에밀리는 다릅니다. 세상을 떠난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자신의 생을, 평범했던 열두살의 생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살게 된 그 하루 동안 엄마와 가족과 이웃의 말 한마디, 엄마가 아끼는 꽃 한 송이,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하루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아, 너는 인간들이 깨닫기엔 너무도 멋진 곳이구나.”
그리고는 극중 스테이지 매니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살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것도 매순간순간을요.”
그러자 스테이지 매니저가 대답합니다. “아니, 없지. 어쩌면 성자나 시인 중에는 있을지 몰라.”
극 중에서 죽은 자로 나오는 사이먼이라는 인물은 에밀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너도 알았구나. 그게 살아 있다는 거야. 무지의 구름 속을 걸어 다니는 것.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으면서 살아가는 것. 마치 백만 년이라도 살 듯 시간을 낭비하면서 사는 것. 이런 저런 이기적인 열정에 자신을 맡기고 사는 것. 이제는 알겠지. 그게 바로 네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삶이라는 것을. 무지와 몽매함. - 손턴 와일더, 《우리 마을Our Town》중에서
극적이고 가슴 뛰는 일들을 기대하느라, 내가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날들을 기다리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서 살고 있을까요? 작은 일상이 주는 의미와 기쁨과 감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작은 일들의 그 우주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그저 싸울 태세로 달려듭니다. 절망과 끝없는 경쟁을 되풀이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한 후배가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순간순간 자신이 물 없는 어항에 갇힌 물고기인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 끔찍한 순간을 겪다가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을 느낄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병원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뒤뚱거리며 걸어가거나 휠체어를 탄 환자들을 바라보면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프고 나니 세상이 다시 보여요. 기어가는 벌레 하나도 너무 소중하고, 그 생명력이 무척이나 부러워요.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 알겠어요.” 그런데 벌레는 알까요? 거대한 존재들 틈에서 무심코 밟히기라도 하면 이내 사라지고 말 자신의 운명이 절망스러울 때, 힘겹게 온몸으로 기어 다녀야 하는 그 삶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 세상의 누군가는 자신을 지켜보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를 벌레처럼 작고 힘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알까요? 내가 살아서 존재하는 그 자체가 포도주처럼 더 없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고통스럽기만 한 몇 년간의 암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그 후배는 오히려 감사함을 배우고 행복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이 완치되고 나서 다시 교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서 그럴 때마다 다시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그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리며 나 역시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와일더는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보물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에만 참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보물 1호는 바로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입니다. 욕심의 키가 커져서 사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질 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봅니다. “살아 있는 건 참 좋은 거야!” 쓸쓸해도 오늘 또 하루 감사해하며 살아 있을 것입니다. 장정일 시인의 말대로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기 때문입니다.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Mozart에게 영감을 받아 차이코프스키는 이 우아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했다.
도입부에서 혼(horn)의 음이 들리고 첼로가 첫 주제를 연주하기 시작할때 나는 너무 아름다워서 울어버릴 거 같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느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오늘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첫 변주곡 주제를 들어본다. 전설적인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Op.33, TH.57 - Moderato assai quasi andante · Mstislav Rostropovich · Berli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 1969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 Tchaikovsky's Nocturne in D minor for cello by Julian Lloyd Webber and the London Symphony Orchestra conducted by Maxim Shostakovich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Yo-Yo Ma - Bach: Cello Suite No. 1 in G Major, Prélude (Official Video)
"음악처럼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어인가를 말할 때 사람들은 이건 고전이라고 말한다. 죽은 유럽인들의 예술이라고.. 그러나 나는 고전예술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개념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예술에서 다루는 것은 단순히 음악, 미술, 혹은 문학이 아니다. 그보다.... 예술은 인류, 사상, 감정 등을....사실은 누군가의 정신의 최상을 것을 함께 알리는 것이다." - YoYo Ma https://www.facebook.com/bonghee.lee.7399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코로나-19로부터 학회원들의 마음중심 잡기 (사)한국상담심리학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분수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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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다는 평을 들었던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1873-1921)의 화려한 삶 뒤의 개인적인 삶의 무상함을 옅볼 수 있는 내용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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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어딘가 통증이 있을 때 사람들이 호흡법으로 긴장을 풀 듯이 나는 내 심장 어디께 통증이 있을 때면 천상병님의 시를 읽는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구해야 할 지혜: 분별의 마음(discerning heart)>
"지옥은 너무 늦게 발견한 진실(Hell is truth seen too late)"이라고 흄(Hume)은 말했다. 어떤 잘못도 늦게라도 깨닫고 대처하는 것이 아예 진실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보다 옳다. ...왜 이리 세상의 어리석음은 반복되는 것일까? 과거를 외면하는 자는 과거를 반복하고야 만다는 것을 왜 인간들은 계속 잊는 것일까?
자신이 역사에서 배운 유일한 진실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배운것이 없다는 점"이라고 세계적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했다. 사건과 이름만 다르지 인간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마디로 지적한 것이다.
"저희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아집과 오만함에 대한 영원한 진리 앞에 다시 한 번 겸허해야 하겠다. 이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질병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는 눈감고 귀막고 아집에 갇혀 어떤 우매함과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나를 진리앞에 겸손케 하소서ㅡ 분별의 지혜를 가진 "마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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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들이 날개를 접고 엎드려
[겨울바다2 - 신경림]
---- artist: (c)Hundert Was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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