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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대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은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띄우는 일이었구나

여름날 저녁 - 심재휘
 
내가 그 여름을 떠나면서
여름은 언제나 헛된 저녁이었다
저물녘이면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무렇게나 자란
풀들의 길을 따라
내일을 희롱하며 내가 걷고 있었다 그럴 때면
바람이 터진 기억의 솔기를 자꾸 꿰매며
나를 밀어내는 탓인지 그 때의 들풀 냄새가
나는 듯 할뿐이어서 더욱 손을 내저어 보는데
그럴수록 멀찍이 물러서는
냇물과 산그늘이 있었고
다만 저녁의 푸른 집들만 도드라져서
손 앞에서 잡힐 것만 같았다 여름날 저녁
세상의 모든 윤곽선들은 반듯하였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일과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간선도로의 질주 아래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추억의 박제가
또 산산이 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