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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갈피를 더듬는 바람의 환대- 이봉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기지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나는 어떤 문학치료수업이든, 특강이든, 또는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이든 첫 날 이 시를 청중/학생/내담자들에게 읽어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그분들에 대한 내 마음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내게 그들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분 한 분의 과거, 현재, 미래, 그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일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만난다. 무엇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내게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책처럼 꼭꼭 덮여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 갈피가 예기치 못한 어느 순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열리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은 바람도, 마음 갈피도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조우이다. 그 바람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읽거나 쓰는 한 구절 글이나 시일 수도 있고, 치료자가 건네는 공감의 한마디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참여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기도 한다. 글쓰기문학치료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이상하다. 왜 엉뚱하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이상하다 왜 눈물이 자꾸 나지?’가 바로 그런 순간인지 모른다. 이 시는 나와의 만남이, 내가 진행하는 치료모임 때 읽은 시 구절이, 나의 경청이 바람을 흉내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고백이다. 그것도 마음갈피를 그저 더듬을 수 밖에 없다는 치료자의 한계를 나는 늘 겸손히 그분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서로 협력해서 마음을 열고, 듣고, 읽어야한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나는 어김없이 울컥하고야 만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소망을 내가 만나는, 나를 방문한 분들에게 전달하면서 너무나 간절히 그러기를 기도하는 마음이기에....

 

그리고 나는 권고한다. 이 글쓰기문학치료모임에서는 여러분들도 스스로를 환대해야 한다고. 내가 여러분을 만나듯, 여러분이 만나게 될 방문객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이 모임은 나를 찾아오는 방문객-나 자신을 친절히 환대하는 모임이라고. 그것이 두렵고 아파서 마음갈피를 굳게 닫아두었다면 그래서 힘겹다면 나와 함께 조심스레 열어 대면하자고. 결국 신영복님의 말대로 한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일,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 인생사를 경청하고 내 마음갈피를 펼쳐 읽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독서가 아닌가?

 

치료모임은 단순한 위로와 억압된 감정의 해소에서 더 나아가 자기관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자기 관찰이란 치료모임이 즐거운 교제나 독서토론, 주고 받는 칭찬, 맛난 음식, 웃음꽃 피는 모임이 아닌 진지한 심리치료 모임이란 말이다. 자기 관찰을 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담자와 치료자는 함께 그 길을 동행할 것이다. 그래서 치료기간에 자신의 추한 점, 상처, 절망과 실패, 수치심, 뜻밖의 얼굴이 들어나도 거부나 비난하지 말고 나의 일부로 받아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것이 친절한관찰이다. 즉 내가 문학치료에서 글을 쓰면서 만나는 방문객-내가 직면하지 못했던 나의 고통이 내 모습의 한 부분일 뿐임을 믿어야한다. 나에게는 아직도 수많은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모습이 숨어서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치료모임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를 두려움이라고 했고 그 두려움은 고통을 직면하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상자를 비유로 생각해본다. 그 상자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글쓰기문학치료시간에 두려워 꼭꼭 억압했던 판도라 상자를 열게 되면, 수많은 흉한 모습과 기억과 상처가 탈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얼른 다시 덮어버리고 억압하려 할 수도 있다. 때로 수치심과 불편함에 다음 시간에 모임에 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기억해야한다. 그 상자 맨 밑에서 판도라에게 들려오던 작은 소리를. ‘나 아직 여기 남아있어요...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나의 고통스런 상처나 수치스런 경험들, 내가 불가항력적이었던 불행한 일들이나 실패가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남은 용기와,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삶의 의지와, 사랑하고자 하는 용기와,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하는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투지가 희망처럼 더 깊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바로 실현되고 싶어 간절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참 나의 모습인 것을.

 

오늘도 나는 이런 마음으로 내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담자가 만날 방문객을 기다린다--함께 환대할 준비를 하면서.....(2016bhlee)

 

 

 

             남들이 버린 나를 언제까지 나마저 외면하시겠습니까?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는 고통스런 과거의 그림자ㅡ그 상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나의 삶과 관계를 힘들게 하는 고통스런 경험에서 벗어나 참자기를 찾아가기  

마음 속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만나고 치유해주는 재양육 글쓰기문학치료

그 아이가 창의적 힘(Wonderful Child)으로 자라나게 하는 자기사랑과 성장 워크숍

 

 

<아이에게 공감은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없으면 죽는 것이다 -  코헛>

 

"내 안에 이렇게 만나길 기다리고 있는 ‘나’가 있다는 것에 참 감사했다. 전에는 이런 ‘나’를 만날까 봐 문을 꽁꽁 닫아두고 살았다. 그 문이 얼마나 두꺼운지 아무도 그 문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절대로 듣지 못했다. 나 또한 소리가 새어 나올까 싶어 매일 매일 그 문을 지키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그 소리는 나를 만나고 싶다는 ‘다정한’ 목소리였는데, 나는 그 목소리가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일까 두려워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지키고 있었나 보다.

나를 야단치며 벌주며 비난하는 내 안의 내 목소리---그 목소리는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이렇게 40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여전히 ‘엄마의 목소리’에 벌벌 떠는 어린 아이로 살고 있었다.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에 늘 반응하며 눈치를 보며 살았던 내 모습을 나조차도 구박을 하며 방치해 두고 살았다. 엄마의 목소리에 내가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내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고 싶다. 내 안의 나를 문학치료 기간 동안 기쁘게 만나보려고 한다. 어색하고 힘든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숨거나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을 한다.  <참여자의 글/허락하에 사용함/ 허락 없이 일부 혹은 전부를 이용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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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9/20~10/185회 매주 금요일 저녁 7:00-9:00  

2. 장소서울 (압구정역, 혹은 로데오역 근처입니다. 자세한 장소는 개별연락드립니다.)     

3. 준비물줄쳐지지 않은 A4용지 크기의 공책. 혹은 스케치북+ 12가지 사인펜이나 유성펜  

4. 신청:  <6명 내외로 선착순마감>

    참여비 30만원  

    이메일  journaltherapy@hanmail.net로 연락처와 함께 신청. 또는 이곳에 댓글로도 신청가능함

    (단, 전화번호/이메일주소/성함을 남기시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반드시 비밀댓글로 해주십시오.) 

5. 참고도서:

         [내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선정

         [분노치유] 이봉희 역 /학지사

         페니베이커의 [글쓰기치료] 이봉희역/학지사    

6. 기타 자세한 문의journaltherapy@hanmail.net 

7. 워크숍에 대한 참여자 인터뷰는 http://journaltherapy.org/2958 참고   

   저서 [내 마음을 만지다]에 대한 리뷰는 http://www.journaltherapy.org/2779 -를 참고 

  이봉희교수 프로필은 공지사항 연구소 소개를 참고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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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글쓰기문학치료 연구소는 K.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CJT-Center for Journal Therapy)의 한국지소(CJT-Korea)로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수하거나 치료모임을 할 수 있는 합법적 자격을 가진 국내 유일한 연구소입니다. 

 

이 워크숍은 모여서 차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좋은 시나 책을 함께 읽고 감상과 의견을 나누고, 글을 쓰고또는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것과 같은 독서모임이나 교제를 위한 모임이 아닙니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 블로그에는 광고목적으로 워크숍 사진을 공개/활용하지 않습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의 워크숍은

국내유일의 미국 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이며 상담심리사(한국상담심리학회)인 이봉희 교수의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은 시치료와 저널테라피(그림저널 포함)를 활용한 집단심리상담워크숍입니다.  수 십 년간의 교수생활, 지난 13년간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다양한 연령층의 성인남녀, 고령자 어르신들, 그리고 언론전문인클럽, 의대학생, 가정의학과교수, 교사, 학부모, 장애뇌변병요양환자, 암환자 및 가족, 교정시설, 위기의 부부, 폭력의 희생자, 트라우마 생존자, 학교폭력,  등 수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과 수많은 개인 상담, 특강 경력을 가진 치료전문가가 주관하는 전문적 글쓰기문학치료모임입니다.  (모임에서 쓴 글은 사적인 글이므로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The Immigrants(1973) by Luis Sanguino in Battery Park, New York

(뉴욕 배터리 파크의 동상, 이민자들)

 

photos of the scuplture are from http://www.bigapplesecrets.com (all rights reserved)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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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9살 때 배터리파크에서 처음 만났던 동상.

그 생생한 표정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무척 복잡했었다.

 

이 동상에는 유태인, 자유의 몸이 된 아프리카 노예, 신부, 노동자 등 다양한 인종과 민족, 연령의 이민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생생한 표정과 몸짓은 이민자들의 고난의 여정과 함께 뿌리를 잃어버린 인간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그 망망대해를 거쳐 찾아온 땅....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멀미와 병과, 고난을,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을 겪으며, 그리고 정신적 회의와 불안을 견디며 드디어 발을 디딘 땅. 이미 떠난 그 여정에서 그들은 아무리 회의와 후회에 사로잡히거나 고통스러워도 돌아갈 수도 없었으리라. 그냥 도착할 때까지 견디는 수밖에. 희망과 꿈이라는 그 북극성 같은 먼빛을 바라보며....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 땅에 발을 무사히 디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 동상은 드디어 이제 살았다는 그 감격스럽고도 감사하고도 서럽고도 불안한.. 복잡한 그들의 심정을 생생하게 빚어내고 있다.

 

그 고통스런 항해의 끝인 땅에서 다시 입국심사가 시작이 되었다. 이곳의 캐슬 가든(Castle Garden)은 이민자들이 입국심사를 거치던 곳으로 1885년에서 1890년까지 8백만명의 이민자를 심사했다고 되어있다.

 

입국이 거부되고, 꿈의 종착역에서 다시 쫓겨난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꿈의 땅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또 다시 시작된 고난도 이겨냈겠지. 자유를 찾고, 기회를 찾고, 자녀들에게 새 삶을 주었겠지....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렇게 되고 싶었던 신분을 얻고, 자신의 참 정체성을 찾았을까?

 

“Dear friends, I urge you, as foreigners and exiles,....”라는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는 영원한 귀향길에 있는 이방인이고 나그네 된 존재이다.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망망대해를 견디는 이유는 언젠가 그 곳--꿈의 땅에 도착하리라는 희망 때문이리다. 다른 모든 것 다 포기하고 하나에 열정과 집념을 가지고 달려가는 많은 세상 사람들. 그들은 그 땅에 도착해서 꿈을 찾을까? 그 꿈을 이룰까?

 

 

열심히 살아 온 나는 지금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진정한 고향은 어디일까?

이제는 또 다시 멈춰서 가슴에 물어야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그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였더라면 돌아갈 수 있었으려니와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