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에 해당되는 글 7건

김지수 기자와 이어령선생님과의 만남

(출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중에서)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481055

 

 

"이번 만남이 아마 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거예요."

 

  (사진/김지호 기자)

이어령 선생이 비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주에 보기로 했던 약속이 컨디션이 안 좋아 일주일 연기된 터. 안색이 좋아 보이신다고 하자 "피에로는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운다"며 쓸쓸하게 웃었다. 품위 있게 빗어넘긴 백발, 여전히 호기심의 우물이 찰랑대는 검은 눈동자, 터틀넥과 모직 슈트가 잘 어울리는 기개 넘치는 한 어른을 보며 나는 벅참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

 

-요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뵐 때 마지막 파는 우물은 죽음이라고 하셨는데요.

 

"죽음을 앞두면 죽는 얘기를 써야잖아? 나는 반대를 써요. 왜냐? 죽음은 체험할 수가 없으니까. 사형수도 예외가 없어요. 죽음 근처까지만 가지. 죽음을 모르니 말한 사람이 없어요. 임사체험도 살아 돌아온 얘기죠. 살아 있으면 죽음이 아니거든.

 

가령 이런 거예요. 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어.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어요.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지요.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하지만 죽음이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는 없는 거라. 그래서 나는 다른 데서 힌트를 찾았어요."

 

-어디서 힌트를 찾으셨나요?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다행인 건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죽음과 달리 관찰이 가능해요.

......................

(사진/김지호 기자)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87년간 행복한 선물을 참 많이 받으셨지요?

 

"그랬죠. 산소도, 바다도, 별도, 꽃도공짜로 받아 큰 부를 누렸지요. 요즘엔 생일케이크가 왜 그리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몰라. 그걸 사 가는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여(웃음). "초 열 개 주세요." "좋은 거로 주세요." 그 순간이 얼마나 고귀해. 내가 말하는 생명 자본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기가 먹을 빵을 생일 케이크로 바꿔주는 거죠. 생일 케이크가 그렇잖아. 내가 사주면 또 남이 사주거든. 그게 기프트지. 그러려면 공감이 중요해요. 공의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예요."

 

-공의보다 공감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상품 경제 시대에서 멀리 왔어요. AI시대엔 생산량이 이미 오버야. 물질이 자본이던 시대는 물 건너갔어요.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지요. BTS를 보러 왜 서양인들이 텐트 치고 노숙을 하겠어요? 아름다운 소리를 좇아온 거죠. 그게 물건 장사한 건가? 마음 장사한 거예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즐거움, 공감이 사람을 불러모은 거지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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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내 마음을 달래주는 첼로..

드볼작 다음으로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특히 C major 아다지오 악장.

첫 음에서부터 전율이 온다.....

나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가장 좋다.

 

Joseph Haydn: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Adagio
Akademy of St.Martin in the Fields-Iona Brown
Conductor and Soloist: Mstislav Rostropovich (HD video)

-Here only for therapeutic and/or educational purposes.

  

 


개인적으로는 C major의 2악장을 더 좋아하지만 오늘은 D major도 같이 들어본다.

https://youtu.be/H43jz7KN1qs



| 2010.08.01 04: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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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hotos by bhlee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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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03: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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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가끔 - 문인수

 

저녁이면 가끔 한 시간 남짓

동네 놀이터에 나와 놀고 가는 가족이 있다

저 젊은 사내는 작년 아내와 사별하고

딸아이 둘을 키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인생이 참 새삼 구석구석 확실하게 만져질 때가 있다

거구를 망라한 힘찬 맨손체조 같은 것,

근육질의 윤곽이 해 지고 나서 가장 뚜렷하게 거뭇거뭇 불거지는

저녁 산, 집으로 돌아가는 사내의 커다란 어깨며 등줄기가

골목 어귀를 꽉 채우며 깜깜하다.

아이 둘 까불며 따라붙는 것하고

산 너머 조막손이별 반짝이는 것하고, 똑같다

하는 짓이 똑같이

어둠을 더욱 골똘하게 한다

| 2019.10.15 19: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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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 상처의 대물림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악의 상징인 조커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면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악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자합니다. 시민들의 희망인 고담시의 정의로운 검사 하비덴트는 그런 조커에게 희생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조커와 똑같은 악의 화신이 되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하비덴트의 이중적인 얼굴, 즉 반은 손상되기 이전의 온전한 모습, 나머지 반은 화상을 입고 괴물로 변한 얼굴은, 조커가 원하던 대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고 만 안타까운(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건강의 중요성이 일깨워지면서 상담과 치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의료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뿐 아니라 자가치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음악, 연극 등의 예술치료에 이어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나는 아프지 않은데, 치료 따위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관계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런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악하기 이전에 심히 병들었다는 것을, 가해자는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 말입니다. 이 말에는 그냥 거짓말을 쉽게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생존의 수단()이라는 뜻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달리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도 가해자이기 이전에 하비덴트처럼(그리고 조커처럼) 피해자인 것입니다. 가해자의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가해자(특히 어린 시절의 가정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악의 승리는 상대의 파멸 혹은 선의 파멸이 아니라 상대를 또 다른 악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나는 흡혈귀론이라고 말합니다. 흡혈귀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단순히 누군가를 죽게 하지 않습니다. 흡혈귀는 자기에게 물린자를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살 수 있는 상태, 즉 자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악을 만들고야 맙니다. 이렇게 악은 대물림되듯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괴물과 싸웠으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는 니체의 말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했듯이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치는 노인과 교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 중에서

 

나보다 더 약한 상대를 희생자로 삼는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질병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독감에 걸렸을 때 자녀 앞에서 대놓고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입에 일부러 담배연기를 일부러 불어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감 균보다, 담배연기보다 더 치명적인 파괴적 언어의 독을 아이들 앞에서 재채기처럼, 담배연기처럼 마구 쏟아내고 뿜어냅니다. 내가 들었던 더없이 끔찍한 그 말들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스란히 그 누군가에게 다시 퍼부어댑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모의 잔소리나 비난을 무의식중에 나의 자녀에게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았던 유형과 무형의 폭력을 그 누구에겐가 다시 휘두릅니다. 이때 그 누군가는 나에게 다시 복수할 힘이 없는 안전한 상대, 즉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녀보다 더 연약한 존재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사실은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주어야 할) 자녀에게로 대물림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복수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찌른 칼을 뽑아서 다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울증이 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돌출된 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나만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나를 병들게 한 그 불행이 그대로 그 누군가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지 못한 희생자인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정신분열증에 걸린 어머니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예고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는 매번 공포에 질렸지만 아무에게서도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건 꾸며낸 이야기야. 아빠가 곁에 있잖아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정말 딸을 보호해주는 다정한 아버지일까요? 그는 자기 아이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조종하면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라고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Alice Miller)는 말합니다. 그의 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에게 박탈되었던 것, 즉 보호와 위로, 공포에 대한 설명을 딸아이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두려움과 재난의 예측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의 대물림이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는 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과거 속 고통의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면서 자녀에게 행복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자녀는 자연히 행복해집니다. 나의 고통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 또는 그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반복해서 악을 전파하는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의 정원에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악마를 당신 아들의 정원에서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료 카페>(생각속의 집) 중에서

저작권이 있으므로 정확한 출처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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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1941)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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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쓸쓸하고 더딘 저녁]

이제 컴퓨터 쓰레기통 비우듯
추억통 비울 때가 되었지만,
추억 어느 길목에서고
나보다 더 아끼는 사람 만나면 퍼뜩 정신 들곤 하던
슈베르트나 고흐
그들의 젊은 이마를
죽음의 탈 쓴 사자使者가 와서 어루만질 때
(저 빠개진 입 가득 붉은 웃음)
그들은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밀밭이 타오르고
밀밭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마차가 타오르고
사람들의 성대聲帶가 타오를 때
그들은 왜 몸을 헤픈 웃음에 허술히 내주거나
몸을 피스톨 과녁으로 썼을까?
'왜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재빨리
빠져나가고 싶어했는가?
시장 인심이 사납던가,
악보나 캔버스가 너무 비좁던가?
아니면 쓸쓸하고 더딘
지척 빗소리가 먼 땅 끝 비처럼 들리는 저녁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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