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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잎 - 이기철]

 

나는 이 가을을 성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과 물속에 떠있는 물방개와
길섶의 앉은뱅이 꽃에 눈 맞추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버린 지푸라기 같은 세상사들,
그것들을 토닥여 잠재우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망 없이 피었다 진 들국화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갈잎 스치는 소리 그리운 날 나는 문득 신던 신발 벗어놓고
지고 온 세상사 던지고 가겠습니다
흔들림이 아름다운 잎새들은 흔들리면서 생을 이룩합니다
그 잎새들 속으로 나는 추운 발 옮깁니다
지는 잎 속으로, 가을 속으로

 

- 출처: 이기철,『 잎, 잎, 잎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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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22

샤갈의 마을도 아닌 데 지난주에도 눈보라가 몰아친 3월, 어느새 중순이다.

그래도 어느새 아파트 근처 공원들의 꽃밭마다 설강화(snowdrops)가 하얀 꽃을 피우고

좁쌀만 한 이름 모를 풀꽃들과 호기심에 겨워 뾰족이 얼굴 내민 초록초록 작은 새싹들, 

나무에는 아가의 솜털 같은 봉오리들이 햇살을 쬐고 있다. 
거인처럼 느껴지던 길고 긴 겨울이 미련인지 혹 심술인지 가던 길 되돌아 서성이며 머뭇거려도

작고 여린 봄을 이기진 못한다는 걸 매년 확인하는 3월인데.... 
왠 갑자기 가을 시인가 나에게 묻는다. 

 

"나는 이 가을을 성큼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라는 첫 고백에서 내 삶의 계절을 읽어서일까?
우주에는 어김없이 회생의 봄이와도

내 삶의 계절은 뒤돌아서거나 반복되는 길이 결코 아닌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이 계절을 그냥 "성큼" 건너갈 수가 없다는 시인의 고백에서 위로를,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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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드라미에게 부침 - 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어날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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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빈혈이 일어날 만큼 멀리 있는 파란 하늘 말고
기대면 체온이 전해져 오는 빨간 맨드라미 같은 가슴을 가진
그런 친구 평생 기다려왔다.
평생 그런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그건 환상일 뿐일까....

너무 바빠서 외롭다 말하니까 누군가 웃었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너무 바빠서 나 자신에게서 유기되고 방치된 나는
어느 정류장에 툭! 짐짝처럼 던져져 있을까?

울컥
각혈하듯 깊은 속에서 치미는 뜨거운 고백 한마디...
오늘도 그 말을 발설해선 안되는 비밀처럼 주어 삼킨다.
나는.....

 

091609 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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