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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 박성우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 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욱신거려 견딜 수 없었겠지
오므렸던 그리움의 꼬리 퉁기면
어둠 속으로 튀어 나가는 물별들,

더러는 베개에 떨어져 젖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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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눈과 가슴과 언어를 가질 수 있을까?
이토록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초승달을 보면서  일기에 쓴 나의 말은 겨우 이거였는데.. 

"깜깜한 하늘에 차가운 초승달 

내 가슴에 꽂힌 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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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달 [초승달]- 김강호

 

그리움 문덕쯤에

고개를 

내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내고

눈썹만 남은

내 사랑

 

(출처: [한국의 단시조 156편] 2015/책만드는 집)

 <촛불 켜는 아침- 이해인>

 

밭은 기침을 콜록이며
겨울을 앓고 있는 너를 위해
하얀 팔목의 나무처럼
나도 일어섰다

대신 울어 줄 수 없는
이웃의 낯선 슬픔까지도
일제히 불러 모아
나를 흔들어 깨우던
저 바람소리

새로이 태어나는 아침마다
나는 왜 이리 목이 아픈가
살아 갈수록 나의 기도는
왜 이리 무력한가

사랑할 시간마저
내 탓으로 잃어버린
어제의 어둠을 울며
하늘 위에 촛불 켜는 아침

너를 위한 나의 매일은
근심 중에서도
신년 축제의 노래와 같기를 -

그래서 나는 눈부신 언어를 날개에 단
아침 새가 되고 싶었다

햇빛을 끌어내려
젖은 어둠을 말리는 나무 위에
희망의 둥지를 트는
새가 되고 싶었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별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올 때까지는 저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여줄 따뜻한 이불이란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은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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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 세월 새해아침이면 가슴에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밤새 퍼부어 대던 눈발처럼 그리움에 서럽던 마음을 나의 눈물로 다 씻어 헹구고

새로 떠오른 햇살처럼 밝은 희망이 되어 당신에게 가고 싶습니다.

그 긴긴 밤을 지나는 동안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타는 가슴이

사랑보다 더한 행복임을 자꾸자꾸 일깨워주시니 그도 감사합니다.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이 모습 이대로 당신께 가고 싶습니다.

당신도 상처입고 구멍 난 삶을 데리고 당신 모습 그대로 내게 오고 싶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울 곳이 필요할 때 서로의 등에 기대 말없이 그냥 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 빙그레 웃음 지을 일이 있을 때 하늘 보며 떠올리는

달 같은 별 같은 얼굴이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어둠에 묻혀 어둠이 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기를

그래서 어둠도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어둠 속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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