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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부르기 - 마종기

 

우리는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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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 이름 석자 무엇이 부끄러워, 아니 두려워 어둠에 감추고 익명의 존재들이 되었을까. 

그래서 같은 가지에서 서로를 불러도 더 이상 대답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걸까.  함께 있어도

각자 혼자가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어떤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야 할까?  020214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
왜 이름을 감추게 되었을까?

 

 

(c)Photos by bhlee 102419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 속에 지니는 일이다.

 

- 이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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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는 것은 약속을 한 사람의 몫인데
오히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의 일이 되었다. 

어쩌면 약속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비가 오면 편지를 쓰겠다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혹여 비 오는 날에 어쩌다 문득 그 약속을 기억할까?

 

사랑이란?
--길들이기와 길들여지기

“왜 서로 사랑했는데 그 사람은 떠나고 나만 여기에 남아 있을까요?
우리는 함께 사랑한 것이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대체 무엇이었죠?
사랑이 길들이기라면 그것은 서로를 함께 길들이는 것 아닌가요?
길들여져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혼자서 살아가야 하나요? “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 같은 질문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이란 서로를 길들여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여우는 누군가가 내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를 위해 보낸 시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입니다. 그리고 여우 덕분에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는 여우를 떠나 자신의 장미에게 돌아가려고 합니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특별한 이유를 그를 위해 보낸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우에게는 어린 왕자와의 짧은 만남이 어린왕자와 장미와의 만남 못지않게 중요하고 긴 ‘시간’입니다.

이별의 순간, 어린 왕자는 홀로 남겨지는 여우에게 말합니다. 너를 길들인 것, 그것은 네가 원한 것이었다고. 그러니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는 떠나가 버립니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원한 건 바로 너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런데 넌 울려고 하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얻은 게 있지. 저 밀밭의 색깔이 있으니까.”

물론 여우의 고통은 지난날의 행복에 이미 포함된 것인지 모릅니다. 여우는 “지난날의 행복의 일부”로 존재했던 현재의 고통을, 그런 사랑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우도 언젠가는 어린왕자가 떠날 거라고, 그 미래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행복을 선택했고,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고독하고 외로운 여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홀로 남겨진 여우는 어린왕자의 금발을 닮은 밀밭을 보면서 어린왕자를 기다릴 것입니다.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미 습관이 된, 그의 말대로 ‘길들여진’ 기다림과 그리움이 없다면 여우는 어떤 희망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여우를 어린왕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혹시 부담스러워할까요? 그래서 밀밭을 피해 멀리 도망치지는 않을까요?

함께 길들이기를 연습했는데 여우는 남겨지고,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를 찾아 떠납니다. 이처럼 길들이기란 서로 함께 이뤄가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어린왕자의 금발을 닮은 밀밭이 유달리 바람에 일렁이는 날이면 여우는 바보 같이 두 팔을 벌리고 어린왕자를 만나러 달려갈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어린왕자의 금발이 아닌 밀밭에서 소리 없이 울어버릴지 모릅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밀밭 한구석이 들썩이고 있다면 그것은 바람이 아닌 여우의 울음 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어린 왕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시간을 되살려내는 건 사랑의 힘이니까요. 상대방이 떠났다 해도 그때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열정 속에서 그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마치 예술작품처럼 변치 않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추억입니다.

--출처: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bhlee 역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한사람의 나그네인지라
아쉬운 맘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굽어든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웠지만
어쩌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은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지난 자취가 없었으니까요.
비록 그 길로 가면 그 길도 낡아져
결국 또 다른 길과 같아지겠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은 모두 아무도 밟지 않아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훗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또 다른 길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먼 먼 훗날에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겠지요.
어느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하였다고,
그래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trans./bhlee)

 

시의 제목을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야할지 그동안 모두들 번역한대로 '가지 못한 길'이라고 해야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시의 내용과 또 마지막 연을 봐도 인생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이므로 그냥 나는  

"가지 않은 길"이라고 번역했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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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bhlee8819/at Khuvsgul

 

 

 

가을- 함민복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시월에 -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 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2006년 시집 <가재미> (문학과 지성사)

풀잎 소리-  정 호 승

나의 혀에는 칼이 들어 있지 않다
나의 혀에는 풀잎이 들어 있다
내가 보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바람에 스치는 풀잎소리가
풀잎 하고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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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 들었던 많은 폭력적 언어, 특히 한 존재에게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언어때문에
일생동안 원인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육체적으로 난 상처는 그 흉터가 남아 있어도 흉터를 보면서 예전의 아픔이 다시 우리를 사로잡아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어의 상처가 낸 흉터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어디선가 되살아나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칼은 아닌지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내가 남에게 듣는다면 내 마음은 어떨지요.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말이 언어생활에서만큼 절실히 요구되는 곳도 없는 듯 합니다.


<맨드라미에게 부침 - 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어날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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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빈혈이 일어날 만큼 멀리 있는 파란 하늘 말고
기대면 체온이 전해져 오는 맨드라미 같은 가슴을 가진
그런 붉은 마음 친구 평생 기다려왔다.
평생 그런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환상일까

너무 바빠서 외롭다 말하니까 누군가 웃었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나 자신에게서 유기되고 방치된 나는
어느 정류장에 툭! 짐짝처럼 던져져 있을까?

울컥
각혈하듯 깊은 속에서 치미는 뜨거운 고백 한마디... 

나는........
그리고 오늘도 발설해선 안 되는 비밀도 아닌

그 말을 도로 주어 삼킨다

 

091609 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