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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잘 공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된 것이어서 여기에 실어봅니다.


글: 이봉희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 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  CJT/ 상담심리사)

-문체부 문예위원회 웹진 아르코(webzine arko) 기획연재: 예술치유 (문학치유편)

내 안의 간절한 목소리를 찾아주는 문학치료
글 : 이봉희 (현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 /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상담심리사
all rights reserved. cannot be reproduced without permission(저작권이 있는 글이므로 인용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정확히 밝혀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인간이 존재한 이래 계속되어 온 그 오랜 신화를 잊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에 공주로 변하는 용에 대한 수많은 신화를. 어쩌면 우리 삶 속의 모든 용들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한때는 아름답고 용감했던 공주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모든 끔찍스런 것들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학치료는 내 안에서 도움을 청하는 아름답고 용감한 그 무엇의 간절한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다. 내 안의 나의 모습이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피투성이의 모습이거나, 용처럼 끔직스런 모습일 수도 있다. 내 스스로 미로 속에 깊이 가둬둔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처럼 나의 어둡고 고통스런 과거이거나 내면의 모습일 수도, 아니면 이카로스나 디달로스 같은 창조적 힘과 자유에의 욕망일 수도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이야말로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어서 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진정한 "나"인지 모른다.
문학치료란 영어로는 포이트리테라피(Poetry Therapy),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를 모두 포함한 말로 참여자와 치료사 사이의 치료적 상호작용을 위해 문학과 글쓰기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치료는 문학과 참여자(내담자)와 훈련받은 문학치료사/촉진자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으로, 참여자에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여 줌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자아인식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치료사(촉진자)는 참여자/그룹의 성격과 치료목표에 따라 선별한 여러 형태의 문학을 촉매로 치료적 대화와 토론을 사용하여 참여자의 통찰과 성장과 문제해결을 돕는다.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은 여러 장르의 상상의 문학, 이야기, 신문기사, 노랫말, 연극, 시, 영화, 비디오, TV드라마, 일기 등 생각과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언어를 표현매체로 사용한 광의의 문학을 말한다. 문학은 치료를 위한 촉매의 역할을 하게 되며 치료 경험은 문학치료사, 시인, 또는 시/문학치료의 수련을 거친 전문가의 ‘촉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예술로서의 문학의 초점이 문학 자체에 있다면 문학치료에서 사용하는 문학은 예술적/문학적 가치나 위대함이 아니라 깨달음과 자아발견을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에 중점을 둔다. 문학 치료를 위해 선택되는 문학은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탄’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목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진부해서는 안 된다.
문학 치료 프로그램 중 참여자는 시, 저널(일기), 콜라주나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 등을 하는데 이때 참여자가 쓴 글이 잘 썼는지 예술성이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하!’의 순간, 뜻밖의 깨달음이나 자기 성찰이다.(많은 분들이 ‘나는 글을 못 써요.’ ‘문학은 잘 몰라요.’ ‘시는 어려워서 읽기도 겁나요.’라고 염려하거나 반대로 ‘나는 시인이에요.’ ‘수필가예요.’라고 말하는데 문학 치료와 소위 말하는 ‘글쓰기 재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글쓰기나 문학을 두려워하던 많은 분들이 자신이 쓴 글, 즉 자신 속에 숨어있는 시인을 만나고 놀라게 된다.)
| 문학치료의 역사


고대 테베의 도서관 정문에는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는 글이 걸려 있었고 스위스의 한 중세 대수도원 도서관에도 "영혼을 위한 약상자"라는 의미의 글이 새겨져있었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문학이 가지는 치유의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치료와 성장을 위해 시와 노래가 쓰인 예는 이미 원시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적 제의에서 무당이나 제사장들은 개인이나 부족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서 시나 노래를 읊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최대한 즉각적인 효과를 위해 파피루스에 글을 써서 그것을 물(액체)에 녹여서 환자가 마시게 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030년경에는 다윗이라는 소년의 시와 음악이 사울 왕 속의 “야수”를 잠재우기도 하였다. 의술과 예술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신화 속 아폴로 신이 의신(醫神)이면서 동시에 시/예술의 신인 것을 봐도 알 수 있으며 테살리 지역의 의사로서 명성이 높았다는 아스클레피우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신화에 보면 오세아누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말은 병든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라고 말한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했고 심리극(싸이코 드라마)이라는 용어에 이어 심리시(싸이코 포이트리)라는 용어도 생기게 되었으며 1960년대에 오면 집단 심리치료의 발달과 더불어 심리치료사들이 시치료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문학치료는 재활, 교육, 예술창작, 상담, 심리치료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들어 정신의학전문가들은 첫째, 문학(시)의 환기작용과 둘째, 글쓰기의 힘이라는 문학의 치료적 힘을 확인하여주었다. 문학, 특히 시는 그것을 읽는 사람의 내면에서 연상 작용을 일으키고 의식적 무의식적 기억과 생각을 환기시켜 이끌어 내는 강렬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담자가 다른 사람이 쓴 문학(시)에 대한 개인적 반응을 글로 쓰든 아니면 자신만의 경험과 감정을 글로 쓰든 글쓰기가 놀라운 치료의 힘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 문학치료의 목적

문학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자기개발을 위한 문학치료이든 임상적 문학치료이든 환자/참여자의 자아 존중감의 회복과 향상, 그리고 사기진작에 있다. 참여자의 전인적 성장을 도와서 자신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보다 아름답게 자신을 개발하며  변화될 수 없는 현실과 실존적 상황에 보다 창의적으로 대처하게 함으로써 내재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내적 능력과 적응기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주장하듯이 자신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존경과 관심과 책임, 그리고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진정 먼저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타인에 대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문학치료는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증진시킨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시인 존 던의 말대로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자신을 이해하지 않고는 자신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마틴 부버의 말을 빌리면, “만남을 통한 치유”를 이루는 것으로 특히 그룹/집단 문학치료 모임의 토론을 통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문학치료는 더 나아가 현실을 직면하며 그에 근거한 사고를 하도록 돕는다. 문학치료는 참여자들에게 ‘실존적 문제’를 직면하도록 돕는다. 실존적 문제란 예를 들어 “삶은 때로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고통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구는 없다. 아무리 타인과 친밀할지라도 나의 삶은 여전히 내 홀로 직면해야한다. 나는 나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직면해야한다. 따라서 보다 정직하게 살아야하며 사소한 일에 얽매여선 안 된다. 타인들의 도움과 인도와 무관히 내 삶의 방식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내가 져야한다”와 같이 우리가 보다 성숙하게 직면하고 포용해야하는 실존적 한계상황을 말한다.
이러한 궁극적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문학치료는 의사소통 능력을 강화하여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 자아를 개발하며, 격렬한 감정들을 털어놓고 스트레스를 해소함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고, 새로운 생각, 통찰, 또는 정보들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자유롭고 풍성하고 유익한 미의 가치를 체험하도록 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낯선 자를 찾아가라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낯선 사람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들 속에 있는 보물을 뜻밖에 “낯선 사람들”을 통해서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마을에 사는 현자가 3번의 꿈을 꾸었다.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이웃마을로 가라고 지시하면서 그곳에 가면 성문 앞, 다리 근처에 보물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 현자는 이웃 마을에 도착해서 성의 파수병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파수병은 자신도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의 꿈에서도 천사가 나타났는데 그에게는 바로 현자의 집으로 가면 그 집안 벽난로 앞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현자는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벽난로 앞을 파보았더니 그 곳에 보물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의미에서 문학치료의 진수를 요약하고 있다. “낯선 사람”은 일차적으로 문학치료가 사용하는 도구인 문학을 의미하며, 또한 문학치료사/촉진자이다. 치료사는 또 다른 “타인들” 즉 치료그룹의 참여자들과 함께 보물을 찾는 일이 용이하도록 도와준다.  이 예화에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드러나 있는데 바로 자신의 집에 보물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 ‘보물’은 진정한 자아인식을 말하는 것으로 즉 치료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초점이 외부의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인식의 변화와 자아의 발견과 성장, 확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두려움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표현한 그림일기(11세 남자아이)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도 “시는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지혜로움으로 끝난다. 시의 일차적 기쁨은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음을 기억하는 놀라움에 있다.”고 말한다.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지혜로움으로 이끌며, 그 과정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참여자 스스로가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문학/시라는 이 말 속에 문학 치료의 과정과 효과가 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설화에서 "낯선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은 문학/예술이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우리의 눈은 영국 시인 코울리지의 말대로 "낯익음과 이기적 근심걱정의 막"에 가리어져 있어서 세계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앞에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으되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 막은 우리의 눈, 즉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구태의연한 습관성 때문에 통찰력이 무디어지고 자동화되어서 자동기계나 도식성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과 예술은 그 막을 거두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어야 하며 이것이 문학의 “낯설게 하기" 효과로 문학치료 참여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 두려움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표현한 그림일기(11세 남자아이)

요슈타인 가아더는『소피의 세계』에서 철학하는 유일한 능력은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했다.  문학은 우리의 삶의 사소하고 작은 일상에서 경이로움과 즐거움에 놀라워 할 줄 아는 능력을 다시 회복시켜주고 개발해준다. 이러한 능력의 회복은 자아성찰로 이끌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더 심오한 정신과 영적인 경이로움인 믿음, 신뢰, 우정, 사랑, 아름다움, 등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의 통찰력을 깨우쳐주게 된다. 아름다움이 인식되는 곳에서는 자아의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때 개개인은 산타야나가 말하듯 “자아의 속박”에서 잠시라도 해방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문학의 신선한 시각은 고착되고 습관화된 사고에 새로운 눈을 부여하게 되며, 우리의 건강하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유발시켜준다. 상상력이 없다면 우리는 시공간의 감옥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수인(囚人)과 같다. “지금 이 순간”과 “지금 이 장소”로부터 자유로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상 속에서 “언어를 통해” 자유롭게 무한한 세계로 탐험하고 새로운 진실들을 발견하며 결국 현실 속 우리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 시적(詩的) 요소들의 치료적 원리

문학이 내면의 진실을 환기시키고 감정의 공감과 해방을 통한 정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문학이 지닌 시적 요소들이 우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며 따라서 문학의 시적 요소들이 문학치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학, 특히 시의 힘은 주로 이미지(심상)를 통해서 마음의 눈으로 보는 데서 온다. 심상은 꿈과 무의식의 언어이며 그렇기에 무의식적 자료들을 의식세계로 불러오는 촉매역할을 한다. 우리의 심리는 내적인 심상의 자극과 표현에 의해서 발달, 성숙해져간다. 자아인식은 문학, 연극, 움직임(춤), 소리(음악), 글쓰기, 말하기, 그림그리기, 조형물 만들기 등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이미지를 탐구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미지는 가능함과 불가능함, 실현가능한 꿈과 욕망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끌어안는다.
은유와 상징이 가장 풍성한 것은 시라고 볼 수 있다. 심상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며 우리 속의 숨은 원동력을 일깨워서 역기능요소들을 해소하고 변화를 촉구한다. 프로이드는 시인을 “전문적으로 백일몽을 꾸는 사람”라고 말하면서 꿈과 시의 유사함에 주목하였다. 그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인이다. 마음은 시를 짓은 기관이다”라고도 말하여서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는 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꿈과 시는 심상, 전이(치환), 압축 등과 같은 동일한 심리학기제를 사용한다.  
시의 섬세하고 미묘함은 참여자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다. 참여자나 그룹의 성격에 맞는 신중하게 선택된 시를 소개함으로써 문학치료사는 그 치료세션의 토론주제를 소개하게 된다. 만일 그 집단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것을 회피할 것이다. 그러나 시의 섬세함 때문에 그 저항도 부드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문학을 “매개”로 사용하지 않는 다른 치료와 달리 위협적이거나 거부감이 덜하여서 일반 전통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도 문학치료에는 기꺼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페리 롱고는 시를 읽고 쓰는 것은 “나”를 정의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나”를 강화시켜준다고 말한다.  나를 강화시키는 것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중 하나는 나만 혼자 그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이 광대한 세계에 단절된 혼자가 아니며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 연결되어있고 융화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은 자아 존중심을 키워주게 된다.
   
  ▲ (c) BongheeLee
두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이용악)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화(카타르시스)이론은 그 과정에 정서의 통제와 분출을 모두 포함한다. 문학치료는 정서적공감과 분출을 통해 워즈워즈가 “내게 찾아온 건 오직 슬픈 생각 뿐/ 때맞춰 그 슬픔을 말하니 그 생각 사라지고/ 나는 다시 건강해졌네”라고 노래한 것처럼 치료적 체험으로 이끄는 것이다. 시인 하이네도 “병은 모든 창조적 욕구의 궁극적 근거/ 창조하면서 나는 회복될 수 있었고/ 창조하면서 나는 건강해졌네.”라고 말하여서 문학치료의 카타르시스적 의미를 확인해준다.
또한 시는 은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준다. 참여자(내담자)는 시 쓰기를 통해 산문 쓰기에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들을 표출하게 됨으로써 문학치료 세션은 참여자/내담자가 수치스럽거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문학치료사는 죽음, 상실, 이별, 외로움, 고독, 등과 같은 개인의 “실존적” 관심사들에 말을 건넬 수 있는 광범위한 문학을 찾아내어 사용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일반적으로는 금기시 되어있지만 문학치료세션에서는 가까이 다다가 살펴볼 수 있다. 시는 다양한 층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드러내면서도 감추는 이런 시의 능력은 바로 참여자가 자신을 비난받지 않고 감추어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해준다.
사진:(c) bonghee-Lee 차라리 침묵하라(c) BongheeLee 차라리 침묵하라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들이 표현되지 않거나 억압되어 있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신 육체적, 정신적인 부정적 증상으로 우리 안에 남게 된다. 감정은 라틴어의 ‘흐르다’는 말에서 나왔다. 캐슬린 애덤스를 비롯한 여러 저널치료(글쓰기치료) 전문가들은 감정(이모션 emotion)은 좋고 나쁜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에너지(에너지 인 모션Energy in Motion),” 즉 E(이)-모션 일 뿐이므로 억압할 것이 아니라 표현해서 해소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학자인 페니베이커 교수도 우리가 경험한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의 심각성 자체보다는 그것을 억압하고 털어놓지 못하는 데서 정신적 육체적 건강상의 질병이 초래된다고 말한다. 영국시인 바이런의 말처럼 시는 감정 뿐 아니라“상상력의 용암이기에 지진을 막기 위해서는 분출되어야”한다. 시를 읽고 쓰는 과정은 용암처럼 폭발 잠재력을 가진 심리적인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는 안전한 출구를 제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심리적인 균형과 건강을 회복시켜준다. 또한 시는 미묘하고 다양한 층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 솔직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문제를 탐색하도록 도와준다. 참여자가 시인, 또는 같은 동료 참여자가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듣게 되면 그들도 부담 없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특히 참여자가 내적 느낌을 시나 저널(일기)처럼 글로 쓰는 것은 그 이전에 형태가 없었던 느낌과 생각들을 흰 종이 위에 흑색글씨로 외면화하는 것이다. 이 구체화작업은 참여자로 하여금 자신이 문제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줄 뿐 아니라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문학치료의 정의 속에 저널치료(journal therapy)를 적극적으로 포함시켜 글쓰기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쓰기치료는 다음 소개될 예정임)

| 나는 어떤 시가 될 것인가?

프로이드는 우리의 정신이 시를 짓은 기관이라고 말하면서 또한 우리 각자 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어서 이 세상에서 인류가 멸망하는 날 마지막 시인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종환 시인은 프로이드를 인용하면서 “내 안의 시인”이라는 시에서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라고 묻고 있다.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참자아의 발견이란 또 다른 의미로 우리 속의 놀라운 아이(Wonderful Child)로 대변되는 창조적 자아의 발견이다. 이 참 자아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내 안에 존재하는 “시인”이라 볼 수 있다. “치료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들 속의 시와 작업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일할 때 그들 내면의 시가 우리를 인도하도록 하면 치료사의 일을 바르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는 파프의 말도 프로이드의 말을 상기시킨다.   사진: "이 연필 안에 말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시읽고 시쓰기(30대 직장여성)
  "이 연필 안에 말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시읽고 시쓰기(30대 직장여성)

하지만 필자는 우리 각자가 하나의 시(詩)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는 해석, 또는 번역되어야 할 고유의 언어이며, 시이며, 상징이며 암호이다.  오해라는 말이 해석의 오류를 뜻하듯이 사람사이의 소통은 타인의 언어, 즉 시(詩)로서의 타인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번역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안경과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사전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번역한다. 영어표현에 “나는 당신과 다른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I don't speak your language.)"라는 말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가끔은 세상에 ”나를 함부로 번역하지 말라, 당신의 언어로 나를 정의내리지 말라”(이봉희 시,"나를 함부로 번역하지 말라" 중에서)고 외치고 싶을 때가 있다. 이탈리아 극작가 피란델로의 말대로 누군가를 정의내림은 살인행위이며, 노자의 말대로 무엇인가 명명될 수 있다면 그 이름은 더 이상 그것의 영원한 이름이 아닌지도 모른다(名可名非常名).  그렇기에 문학은 우리에게 시(정의 내릴 수 없는, 물질화 될 수 없는 모든 인간과 세상의 정신적, 영적 존재가치를 상징하는)의 가치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던지는 것이다.

“오, 나여, 삶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어디서 아름다움을 찾을까? /오 나여, 오 생명이여!" (휘트먼)
대답은 오직 하나ㅡ네가 거기 존재한다는 것. 생명과 너의 존재가 여기 있다는 것. 인생이라는 놀라운 연극이 계속되고 있고 너 또한 그 연극에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놀라운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그 연극에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자, 너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톰 슐만, <죽은 시인의 사회>)

나는 과연 어떤 시일까?  끊임없이 계속되는 강렬하고 놀라운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나의 시는 어떤 것이 되어야할까?

|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릴케가『말테의 수기』에서 말하듯 세상은 거대한 병원인지 모른다. 실존적으로 불완전한 인간들은 모두 이런 저런 의미에서 어떤 질병이든 병에 걸려있거나, 또는 잠재적인 환자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그날’ 중)는 이성복 시인의 말대로 실존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들은 다만 병이 들고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외면하고 살아갈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악하기 이전에 깊이 병든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신체적 질병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심리적 상처와 감정적 격변을 겪은 이후의 후유증 등은 거의 전문적인 도움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실정이다. 심지어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경우라도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이 그 도움을 받는 일 자체를 가족의 수치심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렇게 상담문화가 보편화 되어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가 진지한 관심과 상담, 그리고 치료를 받아야 할 질병의 하나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지 못한 환경에서 문학/예술이 본래의 기능과 가치인 치료적 힘을 회복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문장끝


※ 다음 호에는 문학치료 중 글쓰기치료(저널치료)에 대한 글이 연재됩니다.
http://www.arko.or.kr/home2005/bodo/sub/forest.jsp?idx=1689&pidx=1655
http://www.arko.or.kr/home2005/bodo/sub/forest.jsp?idx=1689&pidx=1667
 

[문학이 나를 치유한다] 문학 치료를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었구나

 

 

 

 

BC 1000년경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베의 도서관 위에는 ‘영혼의 치유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문학이 지닌 치유의 힘은 이미 고대로부터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요법으로도 문학 치료가 쓰였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감정 표현 글쓰기’가 감정적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널 테라피를 통해 우울증이 호전됐다는 결과가 의학계에 보고되었고, 관절염과 천식 환자들의 증상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도 의학 전문지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렇듯 문학은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선물합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일기 쓰기(치료를 목적으로 한)를 통해 마음의 환부를 찾아내는 일, 시 한 편에서 ‘나’라는 존재의 귀중함을 깨닫는 일, 이것이 문학 치료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문학은 나만을 지지해주는 최고의 비밀 상담사요 친구가 될 것입니다.

 

 

 

 


저널 치료 사례
“나는 혼수 문제에서 시작된 시모와의 갈등으로 9년을 고통받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여러 저널 쓰기 기법을 사용해 계속 글을 썼다. 그 과정은 맘속 상처 드러내기, 내 맘 전하기, 관점 바꾸기, 저널 쓰기로 나누었다. 그리고 3개월 후 9년간의 갈등이 거짓말처럼 해결되었다.

문제 해결 방법 1 맘속의 상처 그대로 드러내기(5분 집중 글쓰기)
내 맘속에 숨겨놓았던 일들, 하소연하고 싶어도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못하고 마음속에 끊임없이 써 내려갔던 무거운 책을 들어냈다.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의사 앞에 환부를 드러내 보이듯 말이다. “언어폭력은 시간이 지나도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글쓰기 치료 수업 중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기에 생각나는 대로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던 교수님의 말씀에 내 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글쓰기 치료 모임 중에 5분씩 멈추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내 맘을 표출해내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런 글을 썼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 중에 교수님이 권해주신 대로 저널 기법으로 어머니와 내 상황을 재현하며, 대화하던 내용을 아주 재빨리 써 내려갔다. 하지만 자꾸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글쓰기에서조차 어머니 앞에서 자꾸 주눅이 들어 말도 못 잇고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인물 묘사’를 통해 내게 고통스러웠던 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원 없이 분노를 표출해보고 싶었지만 의지와는 달리 왠지 너무 버릇없이 지껄여대는 내 모습에 불안해져 화장실만 몇 번 다녀오게 되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의식되면서 결국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 난 타인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기에 비밀의 글조차도 원 없이 써 내려갈 수 없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또한 내 속은 미움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큼은 착하고 인내심 많은 순진한 사람으로 인정받길 얼마나 원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남들에게 좋다고 인정받는 완전한 사람이길 절실히 원했던 것이다.

문제 해결 방법 2 ‘보내지 않는 편지’를 통해 내 맘 전하기
‘보내지 않는 편지’를 어머니께 써보았다. 이 방법은 그래도 맘속에서 수없이 써 내려왔던 방법이기에 잘 써졌다. 억울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줄줄이 써 내려갔던 그 말을 직접 글로 쓰고 나니 맘이 시원했다. 상처받은 말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언행들에 대해 써 내려갔다. 글 속에서 난 항상 피해자였고 어머니는 그야말로 생각 없이 내뱉는 모든 말 속에 독이 있는 이기적이고 야속한 분이셨다. 나의 얼굴에 미소 대신 어둠이 자리 잡게 만든 악녀였던 것이다. 날 주눅 들게 만들고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 분. 어머니 앞에만 서면 잘하던 것도 떨려서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 분. 내 하소연을 다 쏟아붓고 나니 맘 한쪽에서 ‘그럼 넌 어머니께 어떤 며느린데?’란 생각과 더불어 ‘근데 정말 그런 나쁜 분이셨을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편협된 생각과 내 편에서 잘 해주기만을 바랐던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4주에 걸친 글쓰기에서 W 선생은 털어놓기, 대화하기, 카타르시스 등을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이제는 관점을 바꾸어보는 저널 기법이 효과적인 단계가 된 것이다.

문제 해결 방법 3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상대방 입장에서 재해석해보기(내 생각 바꾸기)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본 며느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머니는 아들141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든 초점이 아들에게 있었기에 내가 보이질 않았던 것이었다. (중략) 어쩜 어머니로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씀조차도 내 마음 밭이 좋지 못했기에 다 역겹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머니의 그런 즉흥적인 표현과 거침없이 쏟아부으셨던 폭언들이 도저히 나의 내성적인 성격, 싫어도 감히 싫다고 말 못하고 살아왔던 내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도 다른 상대방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부터 하나 둘 해나갔다. (중략) 내 생각을 바꿔 어머니 입장에서 바라보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하나 둘 무겁게 엉켜 있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게 되었다. 그 후로 글쓰기는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오해와 상처들이 회복되고 있었다. 눈이 조금씩 뜨이면서 가식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어머니를 이해하며 대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용서한 것이다. ‘관점 바꾸기’ 글쓰기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 9년 동안 가슴 한쪽이 무겁게 짓눌려 아파했던 상처 덩어리가 없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 이상 미움도 아픔도 없이 가벼워진 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론 어떠한 일에도 어머니로 인해 싸워본 일이 없었다. 서로 진정한 마음이 오가며 시어머니는 내게 딸처럼 생각하고 대하겠다는 다짐까지 내보이셨다. (중략) 일 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많은 조언과 믿음을 더해주신다. 서로가 자신이 생각한 그런 사람이 되길 요구했을 때는 상처투성이였지만 한 발자국 뒤에서 서로를 인정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니 사랑이 느껴졌다.
신기한 건 저널 치료를 배울 때 교수님께 들은 대로 ‘치료는 나로부터’ 오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성격, 언어 습관은 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생각이 변한 것이다. 내가 달라지니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_30대 주부 W의 글

시 읽고 모방 시 써보기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그랑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큰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 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 년/ 깊은 땅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깨진다 한들 변함없이 바위요/ 바스러진다 해도 여전히 모래인 것을/ 그 모래 오랜 세월 썩고 또 썩으면/ 지층 한 무늬를 그리며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시 바위가 되는 것을/ 누가 침을 뱉건 말건 심심하다고 차건 말건/ 아무렇게나 뒹굴러다닐 돌이라도 되었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투명하지만 반들반들 빛이 나지만/ 그건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일 뿐/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_‘김기택의 시 ‘유리에게’
모방 시“네가 강해 보인 척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아무리 울고 매달려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날 내버려 둬”라고 말한 후/ 집을 떠난 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아 두려움에 빠진다/ 바위처럼 보이기까지/ 많은 상처를 극복하고 단단해진 굳은살이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달라진다 해도 또 다른 성장의 모습인 것을/ 그 상처 하나하나 모여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될 것을/ 내가 설명을 부탁할 때/ 너의 답답한 마음을 차분히 표현만 해준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스펀지처럼 온갖 감정을 흡수하지만/ 결국 단단한 바위로 너를 무장할 뿐/ 깨질 것처럼 보이지만 바위로 맞서는 너를 보면/ 강해 보인다는 것보다 강해 보이는 척하는 네가 더 두렵다.”
성찰 평소 F 와 내 관계를 바라봤을 때 유리와 바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가끔 F의 내면 깊은 목소리를 들을 땐 그도 약한 존재고,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 같다. 그렇다면 툭 터놓고 말을 하지 F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때론 너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낸다. 요즘엔 부부 관계에서 내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담이니 뭐니 하면서 나는 나름대로 결혼상을 그렸고 F는 아직 구체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내 이상에 F의 모습을 끼워 넣으려니 그는 불편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을 표현치 못하는가? 그가 유리고 내가 바위인가. 우린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향은 비슷한데도. 유리와 바위가 지층이 될 때까지 더 많은 환경적 자극이 필요하다. 내가 그의 눈치를 보는 건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한데, 그가 그 환경적 변수를 견뎌내지 못하고 속내를 드러내 유리처럼 깨져버릴 것 같은 거다. 우리의 결혼이 끝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재성찰 이 글을 쓴 후에 교수님이 내게 준 “완벽한 일치를 꿈꾸지 마라. 내가 해결해주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이 해결토록 곁에 있어주고 기다려주면 어떻겠느냐”는 도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꿈꾸는 것이 완벽한 일치여서 그도 힘들고 나도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도 나도 조금씩 한발 뒤에 가서 살펴보는 자유의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_30대 직장인 신혼 주부 D의 글 자료 제공 이봉희 교수

*이곳에 실린 글은 모두 본인의 동의를 얻고 그분들이 보내준 내용을 실은 것이며 그 중에서도 사적인 내용은 생략했음을 밝힙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다 감동적인 치유 사례가 많지만 사적인 내용이라 공개가 불가능합니다.

기자/에디터 : 최혜경・나도연
도움말 이봉희(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미국 공인 문학 치료・저널 치료 전문가) 그림 이미지 제공 유선태(화가)

출처] 행복이 가득한 집 (2009년 11월호) | 기자/에디터 : 최혜경・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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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멋진 너를 찾아봐

주최:문화관광체육부, 문화예술위원회
주관: 한국통합예술치유진흥회
한국 글쓰기.문학치료 연구소는 문학치료로 참여합니다. 

문체부와 문예위원회가 주최하고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연극치유 단체장들로 이루어진 한국통합예술치유진흥회(문학치유 이사 이봉희)가 주관하는 [10대 청소년 통합예술치유축제](사이버/게임에 너무 몰입/중독되어 힘들어하는 초중생들을 대상으로)가 10월 17일/ 31일 시간을 변경하여(아침 8:30-1:30)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문학치유]대표인 저희 연구소는  마음의 소리(맘껏 말해봐, 네 마음을 들어봐)라는 글쓰기/문학치유 프로그램으로  연구소 연구원 2분과 도우미여러분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신종플루 때문에 모든 행사가 취소될 위기속에서도 10/17일 중학생 대상 문학치료 축제에 이어 10/31일 초등생 대상 모임을 정말 감동적으로 마쳤습니다. (문학치료는 6명의 우리연구소 공동연구원과 도우미분들이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도우미분들이 함께 글을 쓰면서 치유체험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먼 곳에서 와서 준비하고 고생하신 우리 연구소 가족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행사가 다 끝나고 오후 3시가 넘어서 비가 눈앞이 안보일정도로 퍼붓는 길을 운전하고 오면서 가슴 한켠의 앙금들이 다 씻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우리는 한가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일생에 커다란 계기가 되기를.. 오늘 하루의 체험으로 모든 게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이전의 생활과 다른 길을 발견한 사건이 되기를...

무엇보다 지난 번 중학생들(모두 남학생) 모임에서도 놀라운 글들이 많이 나오고 학생들의 마음 깊이 숨어있던 목소리들이 단 한두줄의 글에서 터져나올 때 가슴이 뭉클뭉클 했었는데 오늘 초등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감탄과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한 초등학생 아이는 가장 두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또는 가장 자신을 압박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미래라고 했습니다. 문학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그 미래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면서 너무 마음이 혼란하고 힘겹다는 어른같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쓰고 그리고는 이내 부인하며 지워버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아이의 이름을 쓰고는 얼른 지우기도 하고 그 학생이 가장 친한 친구라고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부모님들은 알까? 아이들이 어떻게 그들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지.... 어떻게 애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들이 그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무덤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얼마나 글솜씨가 뛰어나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지... 그런 의문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글쓰기/문학치료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이들의 글 속에 감추어진 수 많은 사연들이 눈에 밟힙니다.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정말 오늘 한 약속처럼 아이들이 계속 저널을 쓰면 좋겠습니다. 

각 세션을 끝내고 모든 분야가 함께 통합예술치유무대를 가질 때 문학치유분야 발표가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많은 분들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오늘은 준비할 시간이 너무 모자라서 제대로 ppt를 준비할 새가 없어서 그냥 제가 즉흥적으로 요약하고 아이들 작품과 설명을 했는데.... 참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가 있었습니다. 감동받았다는 분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동안의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애써주신 우리 연구소 가족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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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른 예술치유사 선생님에게서 제가 받은 편지입니다.


많이 피곤들하시죠?
그동안 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아까 통합치유 행사때 (이봉희 교수님 발표 시) 각기 다른 곳에 앉아계신 선생님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생각들을 하교계신걸까? 무척 진지해보이셨죠...
2층에 앉아계신 H선생님, 아래층  중간에 C교수님.. 그리고 거의 뒷자리에 앉아계셨던 R교수님...
네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봉희교수님이 아이들의 글을  낭독할 때 정말  많은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게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네분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어 뿌듯하구요..
참여했던 하이들 하나하나의 말들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주세요...

오늘 끝나고 서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것 같아.. 이렇게 몇자 적으려고 들어왔는데..
벌써 두 분 선생님께서 오셨네요 ^^
역시 선배님들은 다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어쩐지 아주 훌륭히 해낼것 같아요. ㅎㅎ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다시한번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가까운 시일에 빨리 뵈었으면 합니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미술치료사 Y드림

                                                                한 국 글 쓰 기 . 문 학 치 료 연 구 소

    [한국 글쓰기* 문학치료 연구소(CJT-Korea)]주최
      미국 저널 치료의 대가 Kathleen Adams 초청
  저널(글쓰기)치료 워크숍

  펜 끝으로 '나'를 찾아가는 저널여행
통역/사회: 이봉희교수, Ph.D.,CAPF,CJF, CJT-Korea소장


 

 


지난 28년간 미국 저널 치료의 보급자이며 저널(글쓰기)치료의 쵀대 권위자인 K. 애덤스(Adams) 특별 초청 워크숍세미나를 개최하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희 연구소[CJT-Korea]는 미국 저널치료의 최대 권위자인 캐슬린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CJT] 한국지소입니다. 
   이번 특별 워크숍에 오셔서 애덤스도 만나 보시고 '진정한 나'를 탐구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육세미나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실습 워크숍입니다.)

 

  주제: "저널쓰기: 혼돈에서 평화로"(통역 및 사회: 이봉희교수/미국공인저널치료사/ CJT-Korea,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수고 소장)
  (공책과 필기구를 지참해주십시오.)


*시간  : 2009년 9월 20일 일요일 (pm1:00-5:30)  12:30-50분까지 등록완료 부탁드립니다.


*장소  : 성균관대학교 퇴계 인문관 첨단강의실(31604호 6층4호)
           

*특전 :  K. Adams 워크숍 이수증 수여

          한국독서치료학회 동료실습시간,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 연수평점 인정
 
*문의처:  http://www.journaltherapy.org
(자유게시판)


*협찬: 학지사 (학지사의 저널치료/ 저널치료의 실제(애덤스 저)와 페니베이커의 글쓰기치료를 할인판매합니다.  저자의 서명 받아가세요...)
 

이 날은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CJT]와 한국지소인 [한국 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CJT-Korea)]가 공동 수여하는 애덤스의 [저널치료(R)] 공인 지도사 자격증 수여식도 아울러 이루어집니다.
(국내 최초의 공인 [저널치료(R)]지도사자격증(CIJTTS) 취득자 여러분들 축하드립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CJT-KOREA)는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의 한국지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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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워크숍은 멋지고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예상보다 두배나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또한 대구, 전주, 충남, 강원도, 등 먼 곳에서 찾아주신 많은 교수님들, LJJ사장님, 특히 감사드립니다. 
오늘 자격증 받으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자세한 소식은 시간이 되면 올리도록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 특히 멀리서 오신 분들과 수고하신 모든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Kay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더 멋진 프로그램으로 여러분을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봉희


예술치유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개최

아르떼진 편집부
지난 6월 25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예술치유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제3차 문화예술교육 연속간담회를 열었다. 한국댄스테라피협회 류분순 회장, 한국음악치료교육학회 정현주 회장, 한국연극치료학회 홍유진 회장, 한국예술치료학회 이윤희 이사, 나사렛대 이봉희 교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대영 원장, 박창준 총괄본부장, 유유미 팀장, 서민정 팀장, 김태연 팀장이 참석했다.

http://artezine.arte.or.kr

SBS러브FM '죽은 시인의 사회' 특집
2008년 12월 27일(토) 10:12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SBS러브FM(103.5㎒) '책하고 놀자'(오전 6시5분)는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죽은 시인의 사회'를 28일과 내년 1월4일에 각각 방송한다.

1부 '시는 죽었다'에서는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만해축전', 경남 통영에서 진행된 '재능시 낭송 캠프', 지자체와 문학단체가 함께 기획한 '작가와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 시를 통해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의 시 치료 모임 등을 소개하고 그 취지와 반응, 한계를 분석한다.

2부 '한국 현대시가 사는 법'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의 생활화를 이룬 가정을 취재하고 문화비평가 김갑수, 시인 장석주, 시평론가 정효구가 함께 하는 좌담을 통해 현대시가 사는 법을 알아본다.

제작진은 "백세를 넘긴 현대시의 현주소와 함께 시와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우리 민족의 시심을 일깨우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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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 >> 생생뉴스 >> 세상사는 이야기
2008.07.23 (수)

고달픈 심신 치료법 ‘저널테라피’ 를 아시나요

일요일 낮 서울 청량리 한 교회의 세미나실에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모여앉았다. 이들 앞엔 색연필, 도화지, 일기장이 놓여 있다. ‘저널테라피’를 체험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마음에 드는 색깔의 색연필을 골라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린다. 형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저 낙서다. 그다음 치료사가 낙서에서 떠오르는 형상을 찾아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꽃, 어떤 이는 사람의 얼굴을 찾아냈다. 이 낙서에 대해 각자 스스로 감상문을 쓴다. 참석 경험이 적다는 한 참가자가 당황하자 치료사가 “생각을 하려 하지 말고 펜 가는 대로 순식간에 써내려 가라”고 주문한다.

그리고는 그 감상문에 대한 감상문을 또 쓰게 했다.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글을 직접 읽고 분석하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런 속에서 때론 웃음, 때론 울음이 쏟아졌다. 논리나 이치에 맞는 글은 아니지만 감정을 충실히 담아낸 글이다. 글 쓴 당사자는 자기 글을 읽어보며 조금씩 내용도 감정도 변하는 걸 경험한다. 부치지 않고 쓰기만 한 편지 한 장, 감정 흐르는 대로 쓴 일기 한 토막이 놀라운 일을 해내는 것이다.

글쓰기를 이용해 심신의 병을 치유하는 ‘저널테라피(Journal Therapy)’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0년께 국내 의과대학 등에서 도입됐지만 잠잠하다 최근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보급, 응용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최근 ‘의사문학제’란 이름으로 이와 연관된 행사를 진행했다.

저널테라피는 일종의 문학치료다. 마음속이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하면 마음이 진정되던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쯤 갖고 있게 마련이다. 저널테라피는 그런 원리에 착안해 지난 60년대 미국에서 자기계발과 자가치료의 한 방법으로 등장했다. 정신과 상담이 보편화된 미국이지만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국내에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 소설 등 문학작품을 매개로 자주 사용하는 까닭에 문학치료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한다.

미국 공인 문학/ 저널치료 전문가인 이봉희 나사렛대 교수(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소장)는 “저널테라피는 의학적.임상적으로 검증된 기법으로서 미해결된 심리적 상처와 고통을 해결받을 뿐 아니라, 이를 익혀 습관화하면 일생 동안 여러 작은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의학계에 보고된 저널테라피의 효과는 몸과 마음의 병을 아우른다. 영양주사로 연명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경우 앓던 우울증이 호전됐고, 류머티즘과 천식환자들의 질병 심각도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의학전문지 자마(JAMA)에 소개된 바 있다.

이봉희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사례가 많다. 미혼 여성 안모(47) 씨는 27년간 어머니와 심각한 갈등을 겪으며 살았다.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싶은 심보로 결혼도 하지 않고 머리도 자르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런 중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뿐만 아니다. 어두웠던 안색도 밝아지고 그간 겪던 탈모 증세도 사라졌다. 심지어 이마 주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1년 뒤엔 아토피 피부염도 사라졌다.

30대 여성 직장인 김모 씨는 직장상사의 강압적이고 일방적.비협조적인 처사 때문에 두 달이 넘도록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저널테라피를 받으면서 직장상사와의 감정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교수는 이 밖에도 국내에서 탈모, 변비 증상이 개선되거나 금연, 금주에 성공하는 등 다양한 치유 사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저널테라피는 애초에 자가치료로 개발된 만큼 누구나 혼자서 할 수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날짜를 기록하며 쓰는 것이 규칙 정도다. 하지만 일기조차 남을 의식하고 써온 사람들에게는 이조차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현실이다. 이때 관련 자습서적이나 저널테라피 전문가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뢰인이나 내담자들이 마음속 감정을 편안하게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을 통해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여러 문학작품, 특히 시를 사용하여 글쓰기 주제를 던져주거나 가장 효과적인 저널기법 등을 조언해준다.  일기,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반응을 글로 쓰고,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을 향한 보내지 않는 편지, 혹은 대화기법 저널, 목록, 순간포착, 등 글쓰기 형식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뀐다.

그렇다고 저널테라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병을 앓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 대상이며, 전문적인 의학치료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예컨대 저널테라피가 혈압을 낮춘 사례는 보고되고 있지만 고혈압 환자가 꾸준한 관리와 약 복용 없이 저널테라피만으로 혈압을 낮출 생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심각한 우울증이 있다면 저널테라피를 먼저 시도할 게 아니라 정신과 상담이 우선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저널테라피 등 문학치료가 일반인 뿐 아니라 정신과 환자와 약물중독자, 교도소 수감자 등에게 폭넓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경쟁과 성과 위주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이나 직장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C)조용직 기자(yjc@heraldm.com)

글쓰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신간 '글쓰기치료'
2007년 02월 03일 (토) 10:10:17 코리아뉴스 webmaster@ikoreanews.com
"심리적 외상과 감정의 격변에서 회복되기 위한 감정표현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

사랑하는 사람의 예견했던 죽음이나, 이미 피할 수 없는 이혼이나, 미래에 벌어질 것이 확실히 눈앞에 보이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글쓰기는 무료 치료사이다. 글을 쓰면서 당신이 왜 지금과 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감정들이 당신의 삶의 다른 사건들에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스스로 탐색할 수 있다.

상처 입고 고통 받은 경험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그저 종이에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인 페니베이커의『글쓰기치료』는 지금 그 자리에서 바로 연습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강력하게 준비되어 있는 글쓰기치료 워크북이다. 각 글쓰기 연습은 세상의 가치에 대한 보다 선명하고 확고한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며, 비록 힘들고 절망적일 때조차 삶은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길러 준다.


글쓰기 치료에 대해..

고통의 경험은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억압하고, 깊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 비밀로 간직하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더 문제가 되어 정신적 부적응성, 질병뿐 아니라 천식, 관절염 등 여러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통스러운 체험이나 말 못할 상처와 비밀들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때, 예를 들면 일기를 쓴다든지 친구나 남편, 아내, 또는 부모에게 털어놓거나 목사나 신부를 통한 종교적 고백으로 아니면 가상의 소설로 써서라도 분출할 때,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일으키는 정신적 질병뿐 아니라 육체적 질병의 치유에도 현저한 효과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문학을 엑소시즘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일 것이다.

페이베이커 교수는 20년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그 어떤 털어놓기나 표현보다 언어를 통한 글쓰기가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면역체계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책은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감적적인 격변과 고통스러운 심리적 외상의 경험을 해결하도록 돕기 위해 만든 책이다. 그뿐 아니라 표현적 글쓰기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개발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만일 당신이 현재 어떤 종류의 심리적 외상이나 감정의 격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을 열면서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계속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문제해결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심리적 외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중에도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당신은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대한 감정의 격변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 워크북은 심리적 외상이나 감정의 격변,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심리적 외상의 복잡성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오래된 과거에 발생되었던 일이었거나 아니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단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고, 장기간의 만성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은 아마도 그 일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고, 걱정하고, 심지어 꿈에서까지 시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표현적 글쓰기 방식들은 당신이 느끼고 있는 갈등, 스트레스, 혹은 고통을 벗어나도록 도와줄 것이다.

워크북 안에다 글을 쓰도록 만들어졌지만, 꼭 책 안에다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컴퓨터에 직접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당신이 워크북 안에다 글을 쓰든 쓰지 않든 글쓰기의 가치에는 차이가 없다. 그 가치는 직접 글을 쓰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이른 아침, 점심시간, 잠자기 전 등 글을 쓰는 시간에 대한 취향부터, 소설, 시, 춤, 미술 등을 활용한 창의적인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얼마나 자주, 무엇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준다.

날마다 일기 쓰기가 좋은 생각인가 아닌가에 대한 물음에 저자는 사람들이 매일 글을 쓰는 습관에 빠지면 중요한 심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기쓰기는 ‘필요할 때 쓰기’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삶이 순조롭거나, 당신이 행복하고 과거의 무엇인가에 얽매어 있지 않다면 자신을 지나치게 분석할 필요는 없다. 지난 일을 버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생을 맞아 즐겨라. 그리고 고통이 다시 찾아온 그 순간 고통을 처리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라.

글쓰기치료
Writing to Heal : A Guided Journal for Recovering from Trauma & Emotional Upheaval
James W. Pennebaker 저 | 이봉희 역 | 332면 | 크라운판 | 반양장
2007-01-10| 13,000원 | ISBN 978-89-5891-379-5 93180

From: ***@aol.com
To: ......
CC: KAdamsRPT@aol.com, dajoslyn@sbcglobal.net, joysawyer@comcast.net
Subject: SEEDS OF JOY INFORMATION
Date: Mon, 19 Mar 2007 08:17:40 -0400

March 18, 2007

Bonghee Lee CAPF
Director, Korea Center for Poetry/Journal Therapy
Prof., English Dept., Korea Nazarene University

Dear Bonghee:

It is with great pleasure that I write to let you know that you will be receiving one of two Seeds of Joy Award to honor our international NAPT members who are making a difference with their work with poetry/journal workshop facilitation.

You were given this award for your work with developmental groups in which you have helped many people in Korea and here in the U.S. with powerful growth opportunities and therapeutic outcomes through the use of journal writing and poetry. Your tireless work to make sure that these classic poetry and journal therapy texts are available to others in Korea indeed makes us in feel very lucky to have you in our midst.

A check for the $1000 award will be presented to you at the conference. Your conference registration will also be paid for. Please do not hesitate to register before the March 31st deadline.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again in Portland. Congratulations!

All best regards,

Normandi Ellis
President, NAPT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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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Normandi Ellis,

It is my greatest honor to get one of  two Seeds of Joy Award. I will continue to do my very best to sow and plant the NAPT(NFBPT) spirit and the power of words and poetry here in Korea. Thank you so much for encouraging me thus.

I want to share this honor with my Mentor and Supervisor Kathleen Adams who never gets tired of listening to me and reading my long email.

I would also like to thank you, Normandi Ellis, and Joy Sawyer, my facilitator at Denver, Perie Longo, Caryn Mirriam-Goldberg, as well as all the beautiful people I met at the NAPT Conference at St. Louis who have become my inspirations.

Looking foreward to seeing you again in person at Portland very soon,

Best wishes,

Bonghee Lee, Ph.D.,CAPF/CJF
Director, Korea Center for Poetry/Journal Therapy
Prof., English Dpt., Korea Nazarene U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