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틀 - 나희덕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오래된 수틀 속에서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이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에서

 

녹슨 바늘을 집어라 실을 꿰어라

서른세 개의 압정에 박혀 나는 아직 팽팽하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크리스마스를 위하여ㅡ김시태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희미한 고향집과 어머니
그 개구쟁이들
그들을 도로 돌려주소서
조그만 카드 속에 정성을 담던
그 소년들도 돌려주소서
첫아이 보았을 때 기도드리던
그 아빠와 엄마도 돌려주소서
아이들과 손잡고 이야기하며
성당을 찾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한 번 더 그 종소리 듣게 하시고
눈 내리는 아침을 걷게 하소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소서

잘 지내시나요?

 

How aren’t you?

 

내가 좋아하는 K. Rosen의 글 중에 나온 인사말이다.  How are you? 잘 지내시나요라는 인사를 바꾼 이 인사가 어쩌면 내가 받고 싶은 인사, 내가 하고 싶은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요즘 문득문득 이 인사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라는 “영혼 없는” 인사를 할 때마다 매번 진지하게 대답을 하려고 끙끙댄 적이 많았었다. 아프다고 하면 안될거 같고, 좋다고 하려니 거잣말이라 불편하고... 그러다 스스로 바보가 되거나 대놓고 웃음거리가 된 적도 많았다. '그냥 한 말에 뭐 그리 진지하게 답하세요~' 하면서 그들은 옆사람과 같이 날 보고 깔깔 웃었었지. 어떤 목사 교수는 내게 '고지식하신거 같아요' 라고도 했다. 

 

바로 좀 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또 다시 몇 번씩 다시 받는 같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phatic communication, 즉 의미 없이 그냥 사교적으로 던지는 의례적인 언어라고 한다. 이건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답없이 동일한 질문을 한다. 질문이 아니므로 물론 누구도 이 인사에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마치 아주 힘겨운 날에도 굿모닝 하듯이.

 

그런데 요즘은 “잘 지내시죠?” “잘 지내지?” “건강조심하세요!”와 같은 이 의례적이고 평범한 인사가 온 마음과 진실이 담긴 가장 소중한 마음의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부재인 언어의 빈 공간에 ‘진심’을 담을 때 언어만 살아나는게 아니라 문득 상대와 나 사이도 의례적인 관계에서 ‘만남’이라는 의미있는 관계로 바뀌는 것을 희미하게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팀 켈러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아무도 스스로 선택해서 풀무불 같은 시련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시기를 거치지 않았으면 결코 깨닫지 못할 깨우침 얻는다.. 이것이 또한 고난 속에 숨은 선물이다. 고난은 우리의 연약함을 일깨워주고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깨닫게 해준다. 인간의 본성은 강하고 독립적이길 원한다. 하지만 시련속에서는 그런 자아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 이런 자아를 벗어버리면 다른 존재와 진정한 관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무엇보다 우리와 참으로 교재하기 원하시는 하느님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안부인사를 건네는 일이 일상이 된 요즘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진심으로 물어본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으면.... 하고 쓸쓸한 날,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나에게 물어보는 일을 잊지 않으려한다. 

 

잘 지내니? 정말 너 잘 지내는 거야??

 

아니, 그렇게 묻고 계신, 안일한 일상에서는 들리지 않는 질문에 귀를 기울여 깨닫기를 기도한다.

참 대화 --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가 부재한 중언부언하는 의례적 기도가 이제야 말로 참으로 인격적 대화와 교제가 되는 기도가 되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한다.


ㅡㅡㅡㅡ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운 때는 속삭임으로 말씀하시지만 고통속에서는 고함소리를 내신다. 고통은 귀머거리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 C. S. 루이스

 

<데스마스크 Death Mask -허만하>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며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

  얼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솔출판사)

물레방아가 있는 좁다란 오솔길로 두꺼비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맨드라미처럼 생긴 볏이 붉은 해처럼 고운 수탉 한 마리가 두꺼비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두껍아, 너 혼자서 참 외롭겠구나. 내가 친구가 되어 줄께. 두툴두툴 네 징그러운 몸뚱이를 보면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을 거야. 게다가 네 발로 어기적 어기적 걸아가는 모습은 바보같이 보이거든, 아무도 널 좋아할 사람은 없는 게 마땅해. 난 이렇게 멋지게 잘 생겼다고 모두들 칭찬을 한단다. 그래서 다투어 친구가 되려 하지만 그건 도리어 귀찮은 일이야. 친구란 마음이 맞아야 된다는 걸 난 알고 있거든."

수탉은 친절하게 두꺼비와 나란히 걸아가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꺼비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웃었습니다.

"고맙다, 수탉아."

둘은 시냇물이 흐르는 둑길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수탉은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보리알, 과자 부스러기, 죽은 메뚜기의 시체, 여러 가지 벌레들이랑, 길바닥엔 먹을 것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주워 먹느라 수탉은 숫제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었습니다. 반대로 두꺼비는 그 큰 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나절을 함께 걸었어도 둘은 얘기 한마디 나눌 수 없었습니다. 두꺼비가 잠깐 멈춰 서더니, 수탉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처럼 잘 생긴 친구와 걷는 것은 좋지만, 줄곧 땅만 내려다보고 먹을 것만 찾는 너하고는 아무래도 사랑하는 친구가 될 수 없어. 먹을 것이란 세끼 필요한 양식만 있으면 그만이야."

그러고 나서, 두꺼비는 주저하지 않고 혼자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수탉은 멍청해진 채 그 자리에 서서, 두꺼비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권정생-[ 아기 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중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1941)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여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양천문화재단 특강] 문학치료- 잃어버린 언어의 발견 

- 강의일시:  2021. 9. 10~9. 24  3주간 매주 금요일 10:00-12:00

- 강의장소: 방아다리문학도서관(코로나 상황에 따라 비대면 전환)

- 강사: 이봉희 교수([내 마음을 만지다] 저자) CPT/CJT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공인저널치료전문가/상담심리사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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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글을 통해 듣게 된

그동안 가슴에 소리없이 묻혀있던 자신의 목소리에 그만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
3주간의 강의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끼시던 00님, 그분이 듣고 싶은 단 한마디는 "미안하다"였다.
늘 그렇지만 시간이 짧다...
후기에서도 모두들 시간을 늘렸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셨다. 

내년 봄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 뵐 수 있기를....

 

 

 

 

 

서울시 간호사협회 보수교육 2021-2 <예술심리치료의 이해>

9/16/2021

 

 

<용서의 의자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 의자도 아닌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여름의 끝 -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