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틀 - 나희덕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오래된 수틀 속에서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이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에서
녹슨 바늘을 집어라 실을 꿰어라 서른세 개의 압정에 박혀 나는 아직 팽팽하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크리스마스를 위하여ㅡ김시태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데스마스크 Death Mask -허만하>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21세기 한국시단 - 이봉희
[사랑] - 이봉희
고통이 말했다 내게 기대렴 고통이 말했다 너 혼자 살 수 없단다 고통이 말했다 내 품에 안기렴 고통이 말했다 내게 돌아와 널 사랑해
계간 『문예연구』 2010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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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시인 2003 문예연구로 등단. 나사렛대학교 교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 소장(https://www.journaltherapy.org). 한국시인협회회원. 전미문학치료학회공식한국대표. -----------------------------------------------------
나를 번역하지 말라, 악몽- 구토, 마지막 잎새. 박제 - 이봉희 / 21세기 한국시단
[나를 번역하지 말라] - 이봉희
나를 함부로 펼치지 말라 나를 분석하지 말라 당신의 문법으로 띄어 쓰고 쉼표를 넣고, 밑줄을 치고, 마침표를 찍지 말라 나의 말없음표를 당신의 언어로 채워 넣지 말라 아직 다 쓰이지 못한 나를 꼬리말, 머리말, 주석과 요약문을 달지 말라 나는 바벨의 언어니 당신의 언어로 이해했다 함부로 전하지 말라 당신의 진부한 해석은 오직 당신을 위한 빛나는 업적일 뿐이니 눈물 한 방울 나눈 적 없는 나의 옷을 입어본 적 없는 번쩍이는 당신의 언어로 나를 목 메달아 덜렁 덜렁 간판으로 내걸지 말라 나는 강물처럼 흐르는 노래이니 나를 움켜쥐지 말라 나는 당신과 다른 언어이니 나를 함부로 번역하지 말라
제10회 전국계간문예지 사화집, 2008 중에서
[악몽-구토] - 이봉희
구토증에시달린다.모든소리와활자가허기지고목말라죽어가는귀에서목에서코에서눈에서가슴에서출혈을일으키며도로토해져나온다.삼킬수가없다.화려하고끈적이는플라스틱언어들이신기루처럼과일쟁반에탐스럽게올려져나오고알수없는구토증은계속된다.당신은누구인가.당신도플라스틱인가.드럼처럼머리를두드려대는삼킬수없는기계음인가.한가지주제의변주만반복하는지루한악기인가.영원한무한대복제인가.저춤추는무희는누구인가.거짓예언자의머리를받쳐들고무희에게다가가는당신은누구인가.저입맞춤은무엇인가.저위에손짓하는탐스러운포도송이의향기는무엇인가.손을뻗어도뻗어도닿을수없는저터질듯한노래는신기루인가깔깔대는환상일뿐인가.아,목마르다.
계간 『문예연구』 2010년 겨울호 발표
[마지막 잎새] - 이봉희
내가 네게 이미 시들어 죽어버린 생명이라면 불가능한 현실이라면
난 차라리 가난한 화가의 마지막 잎새이고 싶다
못 견딜 눈서리 된바람에도 현실보다 강인한 생명을 나누는 죽음
그렇게 영영 지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이고 싶다
계간 『문예연구』 2008년 가을호 발표
[박제]- 이봉희
영원히 곁에 두기위해 신성한 제의처럼 새를 잡았다. 피를 다 빼어내고 가슴을 다 후벼 가져가고 그 속에 건조한 짚을 넣었다. 살아 있을 때 보다 더 빛나도록 유리 눈을 박고 날개를 닦아주고 다시는 이 땅에 내려오지 말라고 영원한 비상의 몸짓으로 펼쳐놓았다.
새는 다시는 이 낮은 곳에 내려앉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그러나 노래하지도 통곡하지도 못할 것이다 안식의 날개를 접지도 눈을 감지도 못할 것이다, 영원히
계간 『문예연구』 2006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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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가 있는 좁다란 오솔길로 두꺼비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맨드라미처럼 생긴 볏이 붉은 해처럼 고운 수탉 한 마리가 두꺼비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맙다, 수탉아." 둘은 시냇물이 흐르는 둑길을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수탉은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보리알, 과자 부스러기, 죽은 메뚜기의 시체, 여러 가지 벌레들이랑, 길바닥엔 먹을 것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주워 먹느라 수탉은 숫제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었습니다. 반대로 두꺼비는 그 큰 눈으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나절을 함께 걸었어도 둘은 얘기 한마디 나눌 수 없었습니다. 두꺼비가 잠깐 멈춰 서더니, 수탉을 향해 말했습니다. 권정생-[ 아기 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중에서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흰 바람벽이 있어(1941)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양천문화재단 특강] 문학치료- 잃어버린 언어의 발견 - 강의일시: 2021. 9. 10~9. 24 3주간 매주 금요일 10:00-12:00 - 강의장소: 방아다리문학도서관(코로나 상황에 따라 비대면 전환) - 강사: 이봉희 교수([내 마음을 만지다] 저자) CPT/CJT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 어김없이 글을 통해 듣게 된 그동안 가슴에 소리없이 묻혀있던 자신의 목소리에 그만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 내년 봄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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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간호사협회 보수교육 2021-2 <예술심리치료의 이해> 9/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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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의자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 의자도 아닌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여름의 끝 - 박연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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