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기도 - 남정림

익어가는 이 고통이
낭비로 끝나지 않게
해주소서

익숙해진 이 상처가
흉터로 끝나지 않게
해주소서

남모르는 이 아픔이
사치로 보이지 않게
해주소서

3월에는
고통의 가지 끝에
명랑한 새의 노래
머물게 하시고

멍든 잎맥 사이로
순한 꽃향기 맴돌게
하시고
어디에서도 터뜨릴
수 없었던
아픔의 꽃을 내 밖으로
활짝 꺼내게 해주소서

고통이 고통을 안아주고
상처가 상처를 덮어주고
아픔이 아픔을 토닥이는
사랑의 3월이 되게 하소서

천장호에서 -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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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무것도 비추지 못하는 얼어붙은 호수.

한때 깊은 가슴에 품었던 빛도, 그림자도 상실한 채 

꽁꽁 언 마음

깨뜨려볼 수 있을까 돌멩이를 던져본다.

자꾸자꾸 네 이름을 불러본다.

작은 돌맹이 하나에도, 

아주 작은 부름 하나에도

부서지듯 포말선을 그리던 그 섬세하던 네 마음 
이제는 노래마저 떠나버린

네 굳어버린 차디찬 마음에 

쩡쩡 부딪쳐 되돌아오는

그래도 불러보는 네 이름

 

너라고 외롭게 얼어버리고 싶었을까
제 스스로 얼어붙는 마음이 있을까
얼마나 대답하고 싶을까


봄은 반드시 올 거야

지치지 않는다면
나도,

그리고 너도

 

(너는 누구일까.. 

네 이름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 

봄은 오겠지....)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박수근 - 나무와 여인 

 

 

귀로- 박수근 

 

 

박수근의 나목 - (c)2013이봉희 


그의 나목은 정직하고 당당하다. 어떤 수식어도 치장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혹은 가리는 일체의 언어도 없이 그 존재 자체로 세상에 서 있는 나무.  그런데 나무들은  땅에 뿌리내리고 있어도 한결같이 하늘로 머리를 두고 하늘로 손을 뻗고 있다. 모든 나무가 그럴지라도 그의 나목들은 그것이 더 당당히 드러나있다. 

 

그 밑 허기지고 지친 여인들의 [귀가]길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는 그림 속에서  그 여인들의 삶을 대변해 주고 또 지켜주는 또 다른 인물이다.  고흐의 나무들처럼 달려가고 용솟음치고 몸부림치는 열정대신 그의 나무들은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채색으로 삶의 고단함을 끌어안고 자신의 이름 없는 존재의 몫을 다하는 그리고 묵묵히 견디는 인내 속에 담긴 희망을.... 

 

[나무와 여인]은 [귀가]와 달리 아침 풍경처럼 보인다.  아이를 업은 한 여인과 머리에 함지를 이고 장사를 나가는 여인.
아이를 업은 여인은 함지를 이고 가는 여인을 목을 꺾어 바라보고 있다. 등에 업은 아이는 다른 곳에 관심이 있는지 다른 곳을 보고있는데 이 여인은 일을 나가는 여인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목... 
그 나무는 두 여인을 나누는 구도 속에 서 있지만  나누기 보다는 오히려 두 여인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든 밖으로 일을 나가든 두 여인 모두 그 나무처럼 이 겨울을 견디는 희망의 상징이며 두 여인을 대변하는 나무이다.  어쩌면 그 나무는 아낙들만 나오는 그림 속에 부재중인 이 춥고 가난한 시대의 모든 가장을 대변하는 존재로 거기 그렇게 서있는지 모른다.  당당하고 늠름하게 비록 잎도, 꽃도, 열매도, 그 무엇 하나 줄 수 없는 앙상한 가지뿐이지만 가정을 지키는 힘으로.  박수근 자신으로...

(c)2013. 2. 이봉희

 

박수근의 그림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었다. 박완서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재로 시나 글을 썼다.

 

2022.6. 

동대문구 가족센터: 이혼 후 치유와 성장을 위한 집단 글쓰기문학치료 
[나는 내 편이 되기로 했다] 

귀국할 때를 기다려주신 주관처, 특히 KJY선생님께 감사드린다. 

KJY선생님은  오래전 나의 집단문학치료모임에 참여하셨던 분으로 글쓰기치료로 논문을 쓰셨던 것을 기억한다. 
매시간 눈물을 흘리시던 참여자분들 한 분  한 분의 내면 깊은 목소리들이 늦은 밤에 마음 깊은 울림을 주셨었다. 

그 후 이 모임을 계속하고 싶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다시 4회를 만났었다.  소그룹이 모이니 더 깊은 공감과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각자에게 적합한 글쓰기기법으로 글을 쓰시도록 권하니 더 많은 자신의 감정을 접촉과 표현을 하게 되었고, 공감과  눈물과 정서적 통찰, 그리고 깨달음과 희망을 얻게 된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아쉽게 다시 출국해야 해서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모임이후에도  저널을 쓰시면서 스스로를 돌보실 힘을 얻으셨으리라 믿고 소망한다. 
부디 어려운 시기를 보내시는 분들 모두 이 긴 힘겨운 터널을 잘 통과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람없이 눈이 내린다

이만큼 낮은 데로 가면 이만큼 행복하리

 

살며시 눈감고

그대 빈 마음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는 눈

 

곧 녹을 

 

행복 3- 김용택                                   


바람 타고 눈이 내린다
이 세상 따순 데를 아슬아슬히
피해 어딘가로 가다가
내 깊은 데 감추어 둔
손 내밀면
얼른 달려와서
물이 되어 고이는
이 아깐 사랑

[덕담 한마디- 김지하]

 

    새해에는 빛 봐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샘물 넘쳐흘러라
    아이들 싱싱하게 뛰놀고
    동백잎 더욱 푸르러라
    몰아치는 서북풍 속에서도
    온통 벌거벗고 싱그레 웃어라
    뚜벅뚜벅 새벽을 밟고 오는 빛 속에
    내 가슴 사랑으로 가득 차라
    그 사랑 속에
    죽었던 모든 이들 벌떡 일어서고
    시들어가는 모든 목숨들
    나름나름 빛 봐라
    하나같이 똑 하나같이
    생명 넘쳐흘러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빛 봐라
    빛 봐라

<크리스마스 카드 - 정영>

 

귓속에서 누군가 우네

 

나, 눈 내리는 카드에서 걸어나와

 

봉투를 닫네 

등불을 끄네 

겨울 골짜기- 조향미

가슴 수북이 가랑잎 사이고
며칠 내 뿌리는 찬비
나 이제 봄날의 그리움도
가을날의 쓰라림도 잊고
묵묵히 썩어가리
묻어둔 씨앗 몇 개의 화두(話頭)
폭폭 썩어서 거름이나 되리
별빛 또록한 밤하늘의 배경처럼
깊이깊이 어두워지리.

photo by bh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