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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 전욱진
휘청거리다 넘어지려다 그래 무너지자, 하고 마음먹은 나를 옆에서 꼭 붙잡는 사람은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그리워하지도 잊지도 않은 채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절대로 지지 말라는 듯 무너지는 마음 정도는 괜찮다는 듯
-----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 (생각속의 집)가 출간되었습니다. 추천사를 써준 저널치료의 대가이며 문학치료전문가, 나의 멘토, 수퍼바이저이며 동료이고 의자매인 Kathleen Adams에게 감사하고, 그 외 추천해주신 이해인수녀님, 이시형박사님, 채정호박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2026. 8. 19. 이 책을 낸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까지도 [내 마음을 만지다]가 여전히 잊히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고 위로받으시고 힘을 얻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사와 함께 죄송한 마음이 늘 가슴 한편에 있습니다. 오래전 출판사로 어떤 나이 많으신 독자 어르신께서 일부러 찾아오셔서 이 책으로 삶이 달라졌다고 다음 책이 혹시 언제 나오느냐고 묻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몇 년간 계속 대학원에서 문학치료 수업과 논문지도 등 혼자 도맡아 했던 거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너무 몸이 지쳤고, 또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을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어서 다시 힘을 얻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귀한 독자들이 올려주셨던 예전의 리뷰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우연한 경우가 아니고는 리뷰를 읽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감동적이고 진솔한 마음을 기억하면서 더더욱 어서 힘을 얻어야겠다고 또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4. 3. NY에서)
[추천사] 위로와 평화를 전합니다 -캐슬린 애덤스(RPT/TWI대표/CJTInc.미국저널치료센터장/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회장) 선생에게 가장 큰 선물은 선생의 스승이 되는 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학생이 쓴 책입니다. 저자는 나의 대학과 센터에 명예와 자부심을 가져다 준 특별한 학생이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그는 문학치료라는 분야에서 다양한 생각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인간의 고통에 대한 탁월한 직관과 이해력으로 누구보다 환영 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봉희교수는 2007년 NAPT(전미문학치료학회) 총회에서 한국최초의 공인문학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NAPT의 공식 한국대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달빛마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는 수많은 갈등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전하는 따뜻한 선물을 깊이 호흡하시기 바랍니다. --(캐슬린 애덤스 Kathleen Adams) =======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구나 예외없이 안팎으로 크고 작은 아픔들을 경험합니다. 아픔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아픔을 대면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다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파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밝아지기도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이봉희 교수의 책<마음을 만.지.다>는 우리가 고통이나 상처를 피하기보다 제대로 직시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행함으로써 재발견되는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해 말해 줍니다. 문학치료사인 작가의 학문적인 지식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체적인 체험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오는 이 책을 내가 받은 편지라 여기고 읽어보십시오. 자신의 아픔을 잘 길들이고 객관화 하는 법, 남의 아픔을 보듬고 헤아리는 법, 나부터 변화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더 깊이 알아듣고 마침내는 아픔 또한 축복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해 주는 치유의 지침서인 이 책을 나 역시 아픈 사람으로서 아픈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 한 번 안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크든 작든 상처는 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열 사람의 칭찬보다 단 한 사람의 비난이 더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우리의 뇌는 플러스 요인보다 마이너스 요인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의 아픈 기억을 이겨내려면 열 번의 좋은 기억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소인국에 도착한 걸리버가 수많은 화살을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듯 말입니다. 세상의 문제들보다 내가 더 크게 변신하는 비법. 그것은 마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이 책은 ‘마음의 거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마음의 힘을 키워가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 이시형박사(정신과 전문의, 세로토닌 문화원장)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어쩌면 마음이 아픈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화가 날 때, 슬플 때, 용서하지 못할 때, 기다려야 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말을 하고, 풀어내며, 마음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이럴 때 책읽기와 글쓰기가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오직 성공만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더 행복하게 해주는 책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책을 덮을 때 내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을 확신합니다. -------------------------------------------------------------------------------- woolf62 교수님의 리뷰입니다. (출처: 네이버/yes24)
“왜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나지요?”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가 20년 이상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라고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많은 눈물은 왜 갑자기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일까? 내 이야기를 진실로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눈물 흘리지 못했던 이유는 내 말에 귀기울여줄 단 한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혹시 들어준다 해도 감정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사람이 내게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들은 어쩌면 부모한테는 할 수 없는 말이었고, 아내에게 못할 말이었고, 남편에게 못할 말, 자식한테는 터놓을 수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우리는 말 한번 못하고 꾸역꾸역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내 말을 들어주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변함없이 공감해주는 저자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무장 해제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마음속의 감정 덩어리들은 그렇게 눈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타인으로부터 위로받았다고 느낄까. 섣불리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던 기억이 더 많지 않았나. 위로하려 했던 그 말이 왜 우리에게 상처가 될까. 아무리 내 몸처럼 사랑하는 상대라도 우리가 그 상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상대의 문제를 진단하거나 해결해주려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란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 뿐 이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알기 때문일까. 베테랑 문학치료사인 이봉희 교수의 모토는 너무도 겸손하다. ‘이해하려 하지 마라. 다만 함께 하자. 도우려 하지 마라. 다만 사랑하자.’ 다만 함께 해주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말로 설교하기보다는 소설과 시와 영화와 그림과 음악의 한 조각을 우리 앞에 슬그머니 내민다. 지금 내가 아파하는 것과 비슷한 지점을 지나간 그 어떤 사람이 느꼈을 마음의 행로를 보여줌으로써, 나 혼자만이 아픈 것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를 위해 골라준 한 조각 위로는 강력하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지금 아픈 우리의 이 고통이 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선언하는 이 시는 고통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님을, 죽음 같은 이 시간 속에 생명력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추스르고 일어날 힘을 준다.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 대한 미움과 분노로 몸부림치는 나의 모습도, 영화 <밀양>의 바탕이 된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속에 오버랩된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가 있어요?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도. 그런데 주님께선 내게서 그럴 빼앗아가 버리신 거예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다시 그를 용서합니까.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불공평한 일들과 억울한 일들과 애정 결핍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상처에 압도되고 매몰된다. 때문에 우리는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집에 태어난 것일까’,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며 운명을 탓하게 된다.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힌 우리에게 저자는 의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불행만 탓하느냐고, 당신의 행복에도 의문을 가져보았느냐고? 우리는 불행할 때만 운명을 운운하지만 내가 누리는 축복이나 행복에 대해서는 운명을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부잣집에 태어났을까? 왜 나는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잘 생겼을까? 대체 나는 무슨 운명의 실수로 이렇게 남보다 머리가 뛰어난 걸까?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는 내게 주어진 고통속의 축복을 알게 되고, 내가 받은 축복을 나눌 권리와 책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자들은 종종 제가 받은 고통에만 돋보기를 들이대는 자기중심성에 빠진다.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 과도한 불균형을 깨뜨리는 직방의 질문 아닌가? 내 앞에 던져진 불행 앞에서 오그라들기만 하던 나의 자아는 이봉희 교수의 이 느닷없는 질문 하나로 인해, 순간 기를 펴고 확장된다. 아무 공로도 없이 받은 축복은 마치 나의 권리인 듯 당연히 누려온 삶을 반성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문제에 함몰된 우리의 시각을 한순간에 전환시킨 저자는 문제보다 더 크게 내 존재를 키워보라고 제안한다. 문제 해결은 상대가 변화하거나 세상이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상대가 바뀌어도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내가 변화해버리면 상대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그렇게 문제보다 내가 더 커버리라고.
문학치료사로서 수많은 이들의 마음과 동행해 온 저자의 마음창고에는 아파하는 우리의 마음 갈피에 딱 맞는 말들이 수없이 저장되어있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 내게 필요한 말들을 맞춤처럼 꺼내 주며 위로해주는 것을 보면. 탁월한 공감능력, 함께 아파해주겠다는 애정 어린 의지 때문일까? 이봉희 교수는 우리 마음의 비밀 문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그토록 큰 위로를 받고 눈물 흘렸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아픈 지도 몰랐던 사람, 아팠어도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말해보지도 못한 사람들. 당신의 말을 경청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 마디 건네볼 일이다. 그녀는 분명히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취약한 부분을 감싸주며 그 안에 고인 상처를 토해내게 할 것이다. 혹은 당신 스스로에게조차 발설한 적 없는 당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종이 위에 표현하게 해줄 것이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당신의 상처는 치유될 것이다. ------
---------------------- b*****f님 리뷰 작가의 말처럼 외부요인에 자신이 만들어내는 갈등까지 더해져 내면에선 더 많은 괴로움이 추가되고 그로인해 힘든 시간이 길어지는거 같다. 어떤 일들은 현재의 일이 아닌데 어느 순간 문득 다른 느낌의 깨달음으로 내면에서 떠오르면서 새롭게 해석되어 현실에 영향을 주게되는 또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단 걸 얘기할 땐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은 작가란 느낌과 그게 주는 야릇한 슬픔에 찌릿하기도 했다.
마음의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는 많은 실마리를 저자는 들려주는데 완벽한 결말이 없다 느껴지는 불교의 번뇌같은 삶의 연속을 독자인 난 상상하게 되었었다.
어떤 책은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 믿음을 반감시키는데 이 책은 생각치 못했던 너무 깊은 교감으로 독자를 크게 흔들고 그 진실의 솔직함이 무지한 삶속 환상을 완전히 분해해버려 순간 어른아이를 진짜 어른으로 깨워버리는 듯한 비장함을 느꼈었다.
시나 고전 등 여러 문학작품이 적절한 분량으로 짧게 등장해 작가의 긴 이야기들이 흘러가는데 방해되지 않고 적재적소에 첨부됐던게 읽으며 참 좋았던 것 또한 참 흔치않은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는 게 독자로써 너무 만족스러울 때 오는 기분좋은 현상.
책에서 모파상의 '목걸이'를 얘기할 때 그 여주인공이 목걸이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남은 인생동안 벌을 받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힘든 일을 겪어야했을 때 과연 그녀는 그런 일을 겪어 마땅했던 사람이었는가 독자에게 물었을 때, 난 그 작품을 어릴 때 읽으며 우울한 감정 정도는 경험했지만 과연 무엇을 느꼈고 어떤 기억으로 그 작품을 간직해 왔었는지 작가가 툭 던지는 이런 모파상의 '목걸이'가 주는 질문같은 걸 받으며 책과 계속 정신적인 씨름을 했다는 여운이 남는다.
종교서적이 아님에도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게 놀라울 뿐이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글의 깊이에 감동받아서....그리고 공개된 리뷰여서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
https://www.journaltherapy.org/3652
https://www.journaltherapy.org/2791
https://www.journaltherapy.org/2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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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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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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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존재의 가치 (c)이봉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오로지 부모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도 온 마음으로 ‘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 된다는 것을. 아직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필요로 한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나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가슴 벅차던 어린 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밤낮 없이 속만 썩이고 실망시키는 말썽꾸러기,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앤 머레이(Anne Murray)의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You Needed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히 당신을 원하고 필요로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고 노래합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중에서
조건 있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 어린 시절 흔히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인형 중에서 하나의 인형을 유독 아꼈습니다. 항상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인형은 여러 개 중 가장 못생기고 팔도 한쪽이 떨어져나간 낡고 초라한 인형이었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왜 그 못생긴 인형을 그렇게 꼬옥 품고 다녀?”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다른 인형은 예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이 힘들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스럽지 못할 때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못난이 인형을 사랑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는 그때 나를 먼저 사랑해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너를 잃을까봐 겁이 났단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아버지 무파사는 어린 사자 심바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경계를 지어줍니다. 하지만 심바는 아버지의 경고를 거역하고 코끼리 무덤에 갔다가 하이에나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타나 심바를 구하지요. 무파사는 훈계하고자 심바를 부릅니다. 심하게 벌을 받을 줄 알고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다가간 심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자기도 아버지처럼 용감해지고 싶었다고,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고 겁낼 것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오늘 두렵고 겁이 났단다.... 너를 잃을까봐!”
그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심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심바는 아버지의 품에서 말합니다. “우린 친구죠, 그렇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동물의 왕인 아버지도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니, 심바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조건 없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집으로 막 뛰어 들어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하나님도 우리 없인 못사신대.” 그렇습니다. 신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과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합니다. 하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실망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 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지고, 자꾸 눈치도 보여서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까 눈치보지 말라고.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약함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해보겠다고 우쭐대는 어린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아이는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데도,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위로인지요.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나도 지쳐버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요. 그러므로 이제 브레히트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의 길을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하는, 사실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Morgens und abends zu lesen>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I am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 Philippian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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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가시 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
글 이봉희(C)2017 나사렛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 교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 상담심리사/ 「내 마음을 만지다」 저자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것.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가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 천상병, ‘나무’
흔히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합니다.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통해서만 자신감이 생긴다면, 자신감을 갖기란 얼마나 힘이 들까요? 그 자신감은 얼마나 위태로울까요? 세상에는 성공하는 순간보다 실패하고 실수하는 순간들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그 누구도 실패나 좌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감은 때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것들을 인내하면서, 실패하는 나를 포용하는 마음에서부터 생길 수 있습니다.
나의 초는 양쪽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밤이 채 가기 전 다 타버리겠지만 아, 내 적들과 오, 내 친구들이여, 나의 초는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멀레이(미국 시인·극작가)
시인은 자신의 삶을 양초에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초는 어쩌면 버거운 고통과 현실 때문에, 마치 양쪽으로 타들어가는 초처럼 버티기 힘들거나 곧 꺼져버릴 듯 위태롭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주눅 들거나 비관하거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촛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빛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자신감은 어떤 모습이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나옵니다. 고통 받고 있는 나, 세상에서 패배한 나, 뒤돌아오면 회한으로 가득한 나, 그런 내 모습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타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에 대한 긍지가 바로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은 결과와 무관히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초라한 나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따듯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친 나를 받아주고 품어주는 마음이 자신감입니다. 지금 이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끝났다고 울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고 웃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감은 결과에 관계없이 노력하고 투쟁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입니다. 단순히 고통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이상의 마음입니다. 바이런이 쓴 시를 보면 이해가 될지 모릅니다.
내 영혼이 고통 속으로 이끌려가는 것을 느끼지만그렇다고 그것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나를 고문할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나를 굴복시키진 못하리라. -바이런(영국 시인)
그렇기에 병상에 있던 미국 작가 피츠제럴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복과 기쁨이 아니라 투쟁에서 나오는 보다 깊은 만족감에 있다”라고요. 그 깊은 만족감이 나에 대한 긍지이며 사랑이며 자신감입니다. 큰소리만 치는 것이 용기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하루가 끝나는 순간 실패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내일 다시 시작할거야.” 라고 말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자신감입니다. 때로 초라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내 속에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름다운 힘과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믿어주는, 나의 존재에 대한 따뜻한 긍정과 사랑입니다. 지금 나는 가시뿐인 아픔이라도 어느 날 꽃으로 피어나리라는 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자신감이 나오는 것입니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 김승희, '장미와 가시' 중 일부
(C)2017이봉희 저작권이 있으며 일부 혹은 전부를 사전 승인 없이 인용하거나 사용할 수 없음. HATO 원고: 병원 환자들과 장기요양환자들, 그리고 가족을 위한 잡지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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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때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 살배기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生(생)!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 속에서 달려 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 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기)가 ―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마음의 수수밭], 창비,1994) ---------------------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시인의 후기: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한 것들과 생각해야 할 것들이 길이 되어주었다. 삶 속에는 왜 그런가요? 라고 물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다. 일년 내내 눈이 먼 채고 살다가, 가을이 되어 문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앞을 볼 수 있다는 숭어대해, 벚꽃이 필 무렵, 남풍이 부는 따듯한 날에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가을에, 제가 태어난 하구로 돌아가서 알을 낳고 죽는다는 은어에 대해, 땅 속에서 6년 동안 애벌레로 살다가 네 번째의 껍질을 벗은 뒤, 가장 날씨가 좋은 여름날을 택하여 다섯 번째의 껍질을 벗고, 땅 속을 뚫고 나와서야 날개 달린 한 마리 매미가 된다는 유지매미에 대해, 둥지가 없어 춥고 긴 밤을 떨면서 날이 밝으면 꼭 둥지를 지어야지 하고 밤새 다짐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그 따뜻함과 편안함에 취해 집짓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는 야명조라는 새에 대해, 나, 할말을 줄이려 한다. 다시는 아무 곳에나 내 이름을 내려 놓지 않으리라." ----- - 김사인 시인의 발문 중
___________________ 참 오랜만에 시를 올린다. 기력이 바닥이어서 랩 탑을 열지도 못한 채 지냈다. 게다가 얼마 전 교통사고로 또 다시 나는 가해자가 차라리 편한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어린 딸이 대뜸 해 준 말이 기억이 난다-- "그거야 엄마가 피해자니까 그렇지." 천양희 시인의 신실한 싸움과 견딤을 읽는다. 언제나 내가 의지해야 할 것은 나의 두 다리 뿐. 나의 몇 가지 삶의 철학 중 하나인 wait and hope, 아니 희망 없이도 견디는 순전한 마음과 용기를 또 다시 지팡이처럼 붙잡는다. 다시 일어나 주어진 길을 반박자로 절둑이며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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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 강재현
너무 어렵게 이야기하며 살지 말자
너무 어렵게 셈하며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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