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간호사협회 보수교육 2021-2 <예술심리치료의 이해>

9/16/2021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맨드라미에게 부침 - 권대웅>

언제나 지쳐서 돌아오면 가을이었다.
세상은,
여름 내내 나를 물에 빠뜨리다가
그냥 아무 정거장에나 툭 던져놓고
저 혼자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나를 보고 빨갛게 웃던 맨드라미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단지 붉은 잇몸 미소만으로도 다 안다는
그 침묵의 그늘 아래
며칠쯤 푹 잠들고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며 일어서는 길에
빈혈이 일어날 만큼 파란 하늘은 너무 멀리 있고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

그래,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었다.

빈혈이 일어날 만큼 멀리 있는 파란 하늘 말고
기대면 체온이 전해져 오는 빨간 맨드라미 같은 가슴을 가진
그런 친구 평생 기다려왔다.
평생 그런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일까?
그건 환상일 뿐일까....

너무 바빠서 외롭다 말하니까 누군가 웃었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너무 바빠서 나 자신에게서 유기되고 방치된 나는
어느 정류장에 툭! 짐짝처럼 던져져 있을까?

울컥
각혈하듯 깊은 속에서 치미는 뜨거운 고백 한마디...
오늘도 그 말을 발설해선 안되는 비밀처럼 주어 삼킨다.
나는.....

 

091609 MP

bhlee | 2017.09.11 14: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이 무서운 것은
나를 두고 떠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내가 원치도 않았고 알지도 못한 곳에
내가 예측도 할 수 없는 때에
나를 툭,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용서의 의자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 의자도 아닌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 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여름의 끝 -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팽나무 식구 - 문태준

  작은 언덕에 사방으로 열린 집이 있었다
  낮에 흩어졌던 새들이 큰 팽나무에 날아와 앉았다
  한 놈 한 놈 한 곳을 향해 웅크려 있다
  일제히 응시하는 것들은 구슬프고 무섭다
  가난한 애비를 둔 식구들처럼
  무리에는 볼이 튼 어린 새도 있다
  어두워지자 팽나무가 제 식구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출처: [맨발, 2003/창비]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1942~)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 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것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 비평사, 1994)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이라는 제목이 내 손을 보게 한다.
나는 손이 굵고 유난히 크다. 다행이 우리 딸은 곱고 길고 하얀 가는 손을 가져서 휴우~ 했다.
별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악수를 할 때마다 남자들 손이 나보다 작고 가늘고 고울 때가 있어서 상대가 뜻밖이라는 듯 내 얼굴 다시 쳐다보고 손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오물거리다 마는 걸 자주 겪으면서 내 손이 참 크고 남자처럼 뼈가 굵고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악수를 하면 늘 손 끝만 얼른 내밀고 빨리 뺀다......
고구마 장수 손 같다는 말도 들었고 그래서 호감이 갔다는 말도 들었지만 별로 믿기지 않는 인사였다.

그 사람을 믿지 못한지 오래이기에..흐흐.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내 발에 대해서 썼던 글이 생각이 난다.......

나보고 그랬지. 엄마의 손과 발을 보면 사람들이 모르는 엄마의 인생이 보여라고.

우리 딸은 나의 어떤 인생을 읽었을까?

쓸데 없이 내 못난 손에 마음길을 주지만

내 못난 손과 그 손이 닿은 곳의 끝을 보면 빛이 날까?

무엇을 닦았을까?

 

마음 닦는 사람... 그가 닦은 마음 끝은 무엇일까?

마음의 끝이 언제나 보일까?

빛을 내는 일은 끝이 있을까?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고독 - 릴케>

 

고독과 외로움은 마치 비와 같아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달려와

오랜 제 처소인 하늘로 올라가서는

그 하늘을 떠날 때야 비로소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뒤엉킨 시간에 고독은 비 되어 내린다

모든 거리마다 새벽을 향해 얼굴을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두 육체가

실망과 슬픔으로 서로 등 돌리고 누울 때,

서로 경멸하는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만할 때ㅡ

그 시간 고독은 강과 하나 되어 흐른다.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2021.5.31. 

<The Bustle in a House - Emily Dickinson>

The Bustle in a House
The Morning after Death
Is solemnest of industries
Enacted opon Earth –

The Sweeping up the Heart
And putting Love away
We shall not want to use again
Until Eternity –
____
5월의 마지막 날 언니가 떠났다...

엄마 내가 이모 기도하는 데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라는 찬송이 귀에 들렸어.  엊그제 딸이 또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달린 채 말했다. 

사실은 (딸은 전혀 몰랐지만) 그게 울 언니가 제일 좋아하던 찬송가였다.  너무 아파하지말라고, 너무 슬퍼말라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는 언니의 메시지 같아서 큰 위로가 되었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너무나 급히 떠난 언니.. 코로나로 면회도 불가능하고 2주 격리까지 있어 가볼 수도 없이 멀리서 안타깝고 측은하고 미안하고 보고 싶고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보내드릴 생각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뉴욕으로 떠나기 전 언니를 만나고 오는 날 유달리 몇달 사이 창백하고 소녀 같이 작아진 언니가 현관 문고리 잡고 배웅하면서 “너마저 가면 난 어쩌냐..” 하셨던 게 내내 가슴에 걸리고 맘이 아팠었다. 늘 다녀오는 여행이었는데 왜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셨는지... "언니 가긴... 곧 돌아올거야.  늘 그랬잖아... 식사 잘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오늘 길이 왜 그리 무겁고 안쓰럽고 불안하던지... 

바로 지난 주에도 보내 드린 우리 아가 사진들 보면서 너무 좋아서 까꿍까꿍하고 난리가 났다고 전해들었는데. 그래서 또 맘이 짠 했는데... 몇일사이 손도 쓸 수 없이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하고 저혈압 패혈증 투석 또 2차 수술 시도... 대체 그리 괴사가 된 몸을 어찌 견디며 지내신 것일까... 너무 불쌍하고 딱하고 미안하고 .... 

언니가 중환자실에서 그리 쓸쓸히 홀로 가셨지만  결코 "홀로"가 아니었을거라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베드로처럼 “주여 여기가 좋아오니...”하며 고통스런 이 땅에서의 삶을 다 내려놓고 평안히 눈부신 빛속에 안겨 가셨으리라 믿고 감사한다.  
하느님이 언니를 더이상 고통속에 두지 않으시려고 딱해서 얼른 안고 가셨을거라고.... 혼자가 아니었을거라고...  
쓸쓸하고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았을거라고... 
언니는 가서 아버지 엄마 큰언니 큰오빠 모두 만났을거라고.......  그리 믿으면서도 왜 이리 아프고 슬플까. 

그래... 상실의 아픔과 슬픔 그리움 미안함 회한... 그 모든 것은 남겨진 자가 짊어질 사랑의 대가이며 감사히 지니며 살아갈 선물이다. 

https://journaltherapy.tistory.com/2454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도종환]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

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 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

오래된 수틀 - 나희덕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오래된 수틀 속에서

비단의 둘레를 댄 무명천이 압정에 박혀

팽팽한 그 시간 속에서

 

녹슨 바늘을 집어라 실을 꿰어라

서른세 개의 압정에 박혀 나는 아직 팽팽하다

 

나를 처음으로 뚫고 지나갔던 바늘 끝,

이 씨앗과 꽃잎과 물결과 구름은

그 통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헝겊의 이편과 저편,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언어들로 나를 완성해다오

오래 전 나를 수놓다가 사라진 이여

 이름   비밀번호 
 홈페이지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