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뒤돌아선 표지판 앞에서

길을 물었습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가장 먼 길을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길을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낮은 길을

얼굴 없는 표지판 앞에서

침묵하는 표지판 앞에서

울음 터질 것 같은 가슴으로 물었습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Trail Rodge Rd. Mt Rocky2004

(사진/글-bhlee)
사진이 없어져서 (늘 내가 모든 자료를 그렇게 잃어버리듯이) 한 제자의 페북에서 가져왔던 거다.
정말 아쉽다. 처음 내가 찍었던 것과 너무 다르고 다 흐려져버린 20년 넘은 사진.

얼굴 없이 돌아선 표지판이 원본과 달리 이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는구나. 
그래 그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그게 길이지.... 
오래되어 낡은 지도처럼.  

오래되어 빛바랜 추억처럼 

"방황한다고 모두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 톨킨

 

photo bh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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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up님: 맞아요, 방황의 길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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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L: 맞습니다 선생님. 길이 열릴거에요.
내가 생각한 내게 간절했던 길이 아니어도 또 열린 다른 길이 ‘나의 길’인 것을 알 수 있는 지혜와
그걸 받아들이고 성실히 걸어가는 성숙함을 올해에 나에게 기대하고자 합니다.
어느날 그 길이 끝나고 돌아보며 감사할 것을 아니까요^^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참 좋은 당신 - 김 용 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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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알려진 시이다.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나는 어떤 사람이 참 좋은가?

늘 환히 웃어주는 자?

누가 늘 환히 웃을까?

 

시인은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ㅡ그는 어둠을 건너온 자라고 말한다. 

그의 웃음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어둠을 아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이다. 
그의 존재가 어둠을 밝히는 깨끗한 빛이다. 
그게 그의 웃음이다. 


어둠을 건너 온 자... 어둠을 아는 자,  그래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수없이 지나야할 어둠의 길목과 터널마다 

그 자신이 빛이 된 사람,

참 좋은 당신. 

[덕담 한마디- 김지하]

 

    새해에는 빛 봐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샘물 넘쳐흘러라
    아이들 싱싱하게 뛰놀고
    동백잎 더욱 푸르러라
    몰아치는 서북풍 속에서도
    온통 벌거벗고 싱그레 웃어라
    뚜벅뚜벅 새벽을 밟고 오는 빛 속에
    내 가슴 사랑으로 가득 차라
    그 사랑 속에
    죽었던 모든 이들 벌떡 일어서고
    시들어가는 모든 목숨들
    나름나름 빛 봐라
    하나같이 똑 하나같이
    생명 넘쳐흘러라
    사방문 활짝 열어제쳐도
    동지 섣달
    어두운 가슴속에서
    빛 봐라
    빛 봐라
    빛 봐라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 이기철

  

나팔꽃 새 움이 모자처럼 볼록하게 흙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질까 두렵다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와 새끼 새의 입에 넣어주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따뜻해질까 두렵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면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저 추운 가지에 매달려 겨울 넘긴 까치집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이 도시의 남쪽으로 강물이 흐르고 강둑엔 벼룩나물 새 잎이 돋고 동쪽엔 살구꽃이 피고

서쪽엔 초등학교 새 건물이 들어서고 북쪽엔 공장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서문시장 화재에 아직 덜 타고 남은 포목을 안고 나오는 상인의 급한 얼굴을 보면

찔레꽃 같이 얼굴 하얀 이학년이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가는 걸 보면

눈 오는 날 공원의 벤치에 석상처럼 부둥켜안고 있는 가난한 남녀를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세상 여리고 부드러운 것만 사랑한 셈이다

이제 좀 거칠어지자고 다짐한 것도 여러 번, 자고 나면 다시 제 자리에 와 있는 나는

아, 나는 이 세상 하찮은 것이 모두 애인이 될까 두렵다

흙으로 그릇을 빚는데

그 안에 빈자리가 있어

그릇으로 쓰네

- 노자 [도덕경] 11장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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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고 

없음은 쓸모를 위한 것이다.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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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나씩 비워야하는 시간

비움도 "빚는 일"임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사랑하는 옴마!
엄마,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나 초등학교 때 엄마가 TV세트 앞에 이쁘게 포장해서 선물 잔뜩 올려놨던 기억이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너무나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 받았는데 역으로 내가 엄마한테는 (특히 유학오기 전까지) 아픈 상처만 많이 줬던 기억이 나서 참 많은 후회가 돼.  엄마, 우리는 명절 때 왁자지껄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내 가슴속에 남는 것은 그때의 쓸쓸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런 나를 위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채워주려고 노력했는지야. 그리고 엄마의 그 사랑이야 말로 내게는 가장 감사한 선물이고 내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야.  엄마, 이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아서 너무 미안해. 우리 옴마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우주 최고로.  우리 좀 이따 만나~~~  2011 크리스마스 옴마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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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자료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추억의 카드 편지. 
내가 여기저기서 받은 손편지들이 박스로 넘친다. 버릴 수 없는 마음이 가득해서 간직한 것들이...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추억은 언제나 선물 같은 조우이다. 
이상도 하지. 내가 뭔가 해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난다. 
서로서로 그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준 것이 아니라 받은 것만 생각나는 거.... 

많이 보고 싶지만 멀리서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우린 서로 보고 싶단 말도 자제한다...... 왜 그러는지 서로 안다.....) 

어둠 속에도 동행자는 있다

- 혼자라는 외로움

 

하늘의 별빛이 몇 백, 혹은 몇 억 광년을 건너 나에게로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어쩌면 그 별은 나에게로 오기 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빛은 우리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별빛이 없는 암흑의 밤을 상상하면 별과 달이 새삼 고맙습니다. 혹시 그 별은 알까요? 자신이 보낸 그 빛을 몇 억 년 후 누군가가 바라보며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과 희망을 찾았다는 것을.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똥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똥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 정호승, <별똥별> 중에서

 

생후 7개월 된 아이와 단 둘이 남겨져 공부해야 했던 유학 시절, 기숙사 건물에서 유독 내 방에만 항상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불이 켜져 있곤 했습니다. 새벽 두 시까지는 건너편 기숙사 방에도 불이 켜져 있었지만, 두 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그 방도 불이 꺼졌습니다. 그 순간이 되면 나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어둠 속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 건너편 기숙사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면서, 두 시면 잠자리에 드는 그 학생이 부럽기도 하고, 또 아직도 과제를 다 끝내지 못하고 나 혼자 어둠 속에 남았다는 게 절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때때로 나의 집중을 방해했습니다. 혼자 어둠 속에 남겨진다는 것이 절망과 외로움의 영역을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기억은 더 있습니다. 시간강사 시절, 가까운 지방으로 강의를 다니던 때의 일입니다. 내비게이션은커녕 아직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인 데다, 고속도로나 큰길도 생기기 전이라서 시골길을 몇 시간씩 운전하며 다니던 때였습니다. 날이 일찍 저무는 늦가을, 학교에서부터 가로등도 없는 어둑해진 좁은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 보면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인생이란 길이 없는 숲속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 말을 머릿속에 되뇌면서 어둠 속에서 홀로 길을 찾아 헤매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좁은 일차선 도로 위에 내 차가 아닌 다른 차의 불빛이라도 보일라치면 그 반가움이란……. 더군다나 맞은편으로 스쳐가는 불빛이 아니라, 내 차와 앞뒤로 서서 나란히 달리는 불빛은 마치 인생의 동행자를 만난 것처럼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지친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를 인도하듯 앞서 가던 빨간 미등이 어느새 다른 길로 접어들거나, 뒤따르던 차들이 하나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찾아왔지요. 안도하고 있다가 문득 들여다본 자동차 뒷거울에 불빛 한 조각 없이 어둠만이 들어차 있는 걸 확인하게 되면, 갑작스레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들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공연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인생길이 사실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혹시 건너편 기숙사의 학생은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이 매일 밤 고독에 휩싸인 한 유학생과 어둠 속을 동행해 주었다는 것을. 그 자동차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자신들이 무심코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한 이름 모를 중년 여인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불안함과 두려움을 몰아내도록 함께 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을까요? 내가 삶의 한구석에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내 안에서 작은 빛이 피어나고, 그 빛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는 것을. 한 사람이 성실하게 묵묵히 제자리에 ‘존재’할 때, 그 존재자체, 그 생명력은 아름다움이며 빛입니다. 그 빛은 그가 사라진 후에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 (이후 생략).............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 카페]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