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고 나올 때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출처 : 전북일보
예술·심리·철학·문학 분야 전문가와 함께 만나는 인문학
전북교육문화회관, 4~7월 ‘마음을 채우는 끌림의 인문학’ 강연 운영
--예술·심리·철학·문학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인문학으로 마음을 채운다.
-------------------------------- *코로나19가 아직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전 작년 겨울에 계획된 프로그램이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돌멩이-정호승
아침마다 단단한 돌멩이 하나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침묵]
그 곳에
-- photo by bhlee
MP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잡초다 -이문조]
저 푸른 들판을 보라 들판을 푸르게 하는 것은 이름도 없는 그들이 들판을 푸르게 한다
photos by bhlee0520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F/C: 이봉희 교수 국내유일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상담심리사
이 연필 속에 말들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한번도 쓰인 적 없는, 표현된 적 없는, 생각한 적 없는 말들이 숨어있다. 어둠, 그 어둠 속에 깨어서 우리를 듣고 있다 ---------------------------------
초대의 글: http://journaltherapy.org/3888
*이번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은 서울이 아니고 특별히 천안에서 모입니다.
1. 일시: 6/12~7/3일 (4주 8회) 매주 금요일 1회) 오전 11시~12:30/ 2회)12:45~ 2:15 <인텐시브이므로 주 2회 연속 진행함> 2. 장소: 천안 구체적 장소는 추후참여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함. 3. 준비물: 줄쳐지지 않은 A4용지 크기의 공책. 혹은 스케치북+ 12가지 사인펜이나 유성펜 4. 신청: <5명 내외로 선착순마감> 이메일 journaltherapy@hanmail.net로 연락처와 함께 신청 또는 블로그에 비밀댓글로도 신청가능함. (단, 블로그에는 전화번호/이메일주소/성함을 남기시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반드시 비밀댓글로 해주십시오. 참고로 비밀댓글은 pc로 가능하므로 되도록 이메일로 보내주십시오.) 5. 참고도서: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교수의 문학치유 카페]-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선정 [분노치유] 이봉희 역 /학지사 페니베이커의 [글쓰기치료] 이봉희역/학지사 6. 참여관련 자세한 문의: journaltherapy@hanmail.net 7. 워크숍에 대한 참여자 인터뷰/후기의 한 예 http://journaltherapy.org/2958 저서 [내 마음을 만지다]에 대한 리뷰는 http://www.journaltherapy.org/2779 -를 참고 이봉희교수 프로필은 공지사항 -연구소 소개를 참고 하십시오.
------------------------------------------------------------
한국글쓰기문학치료 연구소는 K. 애덤스의 저널치료센터(CJT-Center for Journal Therapy)의 한국지소(CJT-Korea)로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을 교수하거나 치료모임을 할 수 있는 합법적 자격을 가진 국내 유일한 연구소입니다.
이 워크숍은 글쓰기치료/저널치료/문학치료에 대한 강의나 수업 또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닌 글쓰기문학치료모임입니다. 모여서 차를 나누고 다과를 나누면서 좋은 시나 책을 함께 읽고 감상과 의견을 나누고, 글을 쓰고, 또는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드는 것 같은 독서모임이나 독서코칭, 또는 교제를 위한 모임과는 다른 진지한 치료모임입니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 블로그에는 광고목적으로 워크숍 사진을 공개/활용하지 않습니다.)
한국글쓰기문학치료연구소의 워크숍: 국내유일의 미국 공인문학치료전문가(CPT)/공인저널치료전문가(CJT)이며 상담심리사(한국상담심리학회)인 이봉희 교수의 글쓰기문학치료 워크숍은 시치료와 저널테라피(그림저널 포함)를 활용한 치료모임입니다. 수 십 년간의 교수생활, 지난 13년간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다양한 연령층의 성인남녀, 고령자 어르신들, 그리고 언론전문인클럽, 의대학생, 가정의학과교수, 교사, 학부모, 장애뇌변병요양환자, 암환자 및 가족, 교정시설, 위기의 부부, 폭력의 희생자, 트라우마 생존자, 학교폭력, 등 수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문학치료워크숍과 수많은 개인 상담, 여러 연수와 학회 특강 경력을 가진 치료전문가가 주관하는 전문적 글쓰기문학치료모임입니다. *치료모임 프로그램은 이곳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유리조각>- 나희덕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임의 말씀 절반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c)이봉희2007- 새국어교육 2007
저널치료: 새로운 일기쓰기
李 奉 姬*
<차례>
1. 서론 2. 저널치료란 무엇인가 3. 효과적인 저널쓰기를 위한 제안 4. 저널도구와 치료사례들 5. 문학과 저널치료의 만남 6. 결론
<국문초록>
독자나 평가자를 염두에 둔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별도로 저널(일기)처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감정표현 글쓰기의 중요성은 그것이 정서적, 정신적 문제를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국어교육의 문외한인 필자의 본 논문은 상한 감정의 치유와 문제해결, 자아성찰을 위한 자신만의 사적인 글쓰기인 저널(journal)이란 무엇인가를 알리고 그 치료적 효능과 글쓰기기법을 몇 가지 구체적 사례들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저널이 한국의 글쓰기교육과 인성교육에 미력하나마 하나의 도전이 되고자 하는데 주목적이 있다.
*주제어: 저널치료, 일기(다이어리), [보내지 않는 편지]쓰기, 감정표현 글쓰기, 문학치료
1. 서론
인간은 누구나 자기표현 욕구를 가지고 있다. 글쓰기는 그림그리기와 동작(무용) 같은 다른 표현예술처럼 본능적 자기완성의 활동이며 자신만의 즐거움과 자아표현을 위한 행위이다. 글쓰기를 위한 교육은 국어교육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굳이 대학입시를 위한 논술 교육이 아니라 해도 어려서부터의 글쓰기 교육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교육이다. 글쓰기교육의 목표를 “좋은 글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고 한다면 좋은 글이란 “글쓴이의 감정과 느낌, 생각이나 사고 등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한 글이다”(김경훤, 7). 이 말은 모든 글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게 된다는 말과 다름없다. 글쓰기(글짓기)는 “쓴 사람과 그것을 읽어 줄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다”(이오덕, 19). 따라서 성인들은 물론이고 어린 학생들도 글을 쓸 때는 글씨, 어법, 문장의 오류 등을 검열하는 내적, 외적 ‘검열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적이고 솔직한 감정은 일상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도 통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기쓰기는 어떨까? 아마 사적인 감정을 가장 자유롭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감정표현 글쓰기(expressive writing)는 일기쓰기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에서조차 글을 쓰는 사람은 가상의 독자를 의식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글을 쓰는 자신이 스스로 독자가 된다. 특히 어려서부터 일기를 숙제로 제출하고 검사를 받는 데 익숙한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일기에서 조차 마음껏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털어놓지 못한다. 학생 뿐 아니라 직장인들을 위한 글쓰기 전문서적과 지침서들이 범람하는 요즈음, 필자가 독자나 평가자를 염두에 둔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별도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감정표현 글쓰기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려는 것은 그것이 정서적, 정신적 문제를 치료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표현과 반성적 글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글쓰기인 저널이 치료적 힘을 갖는 것은 우선 글쓰기가 해결되지 못한 채 저장된 감정의 처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생각에 대해 명료하게 밝히는 저널쓰기는 장기간 지속되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사람들이 겪는 문제 중 일부는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처리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저장해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해내듯 모든 생각과 감정을 글로 털어 놓으면”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모든 감정을 털어놓으며 정리하는 과정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전체 상황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는 성찰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감정표현글쓰기와 그 치료효과에 관해서 어느 나라보다 가장 먼저 그리고 전문적으로 연구되고 보급, 응용되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1920년대부터 시(문학)치료를 연구하여 문학의 실용적 가치와 문학에 내재된 치료로서의 힘을 다시 부활시켜 수용자/독자에게 돌려준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는 일기(diary)쓰기를 저널(journal)이라는 글쓰기치료법으로 개발하여 문학치료의 일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T. 라이너의 경우는 ‘저널’이라는 말 대신 ‘새로운 일기(New Diary)’라는 용어로 기존의 일기(다이어리)와 치료를 위한 새로운 방식의 일기쓰기를 구분하고 있기도 하다. 본 눈문에서는 저널치료의 정의, 역사와 효용을 간단히 알아보고 현재 미국에서 저널치료의 선구자요 가장 대중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저널치료의 권위자이며 동시에 공인 문학치료사인 캐슬린 애덤스의 저널치료기법에 주로 근거하여 효과적인 저널쓰기를 위한 8가지 제안을 제시한다. 또한 구체적 글쓰기 기법인 “저널도구”는 어떤 것인지 간단히 알아보고, 대표적 저널도구인 [보내지 않는 편지]를 통한 저널치료의 사례와 문학을 매개로 하여 문학치료에 글쓰기를 적극 도입한 경우의 사례를 간략히 소개함으로 저널쓰기의 적용과 치료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갈수록 심해지는 경쟁과 성과위주의 교육환경 속에서 감정적 억압과 과다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위해, 점점 확산하고 있는 학교폭력의 해결과 예방을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인성교육을 위해, 글쓰기교육과 학생상담 등에 저널치료가 유용하게 활용되며 이와 관련된 연구가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중략 -
<Abstract>
Journal Therapy: an alternative way of writing education in a task-oriented environment
Bong-hee Lee Korea Nazarene University
Writing education in the task-oriented country like Korea is mainly focused on how to write "good and well organized" paragraphs with no awkward or unclear expressions. However, the focus of this paper is on the importance of expressive writing, especially on the journal as a new challenge to writing education because of its therapeutic effect. It is high time that we accepted this challenge for holistic general education to our younger generation when the violence in elementary and high schools, suicidal tendencies, depression are more and more widely spread among young students. The therapeutic effect of expressive emotions writing is proven by The Freedom Writers Diary(1999), a real story of a high school teacher, who has changed her students' lives through their journals. Journal Therapy is the act of writing down thoughts and feelings to sort through problems and come to deeper understandings of oneself or the issues in one's life. Unlike traditional diary writing, where daily events and happenings are recorded from an exterior point of view, journal therapy focuses on the writer's internal experiences, reactions, and perceptions. Through this act writing and literally "reading" of his or her own mind, the journal writer can perceive experiences more clearly and thus feels a relief from tension. Moreover, there is scientific evidence that the relief that comes from writing things down is more than just psychological. Dr. Pennebaker's studies indicate that the release offered by writing has a direct impact on the body's capacity to withstand stress and fight off infection and disease. This paper surveys the development and the benefits of journal therapy. It also summarizes suggestions for satisfying journal writing and K. Adams' "journal tools"(writing techniques) offered as a way to match a specific life issue with a specific writing device. It finally chooses some of the journal techniques as specific examples to heal the relationship problems with testimonies of the therapeutic process in some of the members of the writer's Journal/Poetry Therapy Group and in the Literature class.
이봉희: bhlee@kornu.ac.kr /journaltherapy@hanmail.net http://journaltherapy.org 나사렛대학교 영어학과 교수(대학원 문학치료학과 주임교수) 미국공인문학치료전문가, 공인저널치료전문가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 존재의 가치 (c)이봉희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오로지 부모에게만 의지해야 하는 어린아이도 온 마음으로 ‘난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안 돼요’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나요? 부모님도 나 없인 안 된다는 것을. 아직 약하고 부족한 내가 일방적으로 부모님을 필요로 한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부모님은 나 없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부모님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가슴 벅차던 어린 날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요? 밤낮 없이 속만 썩이고 실망시키는 말썽꾸러기,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것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앤 머레이(Anne Murray)의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요/You Needed M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넘어지고 외로운 것은 나였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이’ 다가와서 손을 내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절실히 당신을 원하고 필요로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했었다’고 노래합니다.
내가 추울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아주었고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다주었고 막다른 길목에 몰렸을 때 내게 희망을 주었으며 나의 거짓도 진실로 다시 바꾸어주었습니다. 날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하면서.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 앤 머레이, <당신은 내가 필요했던 거예요> 중에서
조건 있는 사랑에는 감동이 없다 어린 시절 흔히 듣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인형 중에서 하나의 인형을 유독 아꼈습니다. 항상 자기 품에 꼭 끌어안고 다닐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 인형은 여러 개 중 가장 못생기고 팔도 한쪽이 떨어져나간 낡고 초라한 인형이었습니다. 누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가야, 왜 그 못생긴 인형을 그렇게 꼬옥 품고 다녀?”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다른 인형은 예쁘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만 이 인형은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우리의 관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다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사랑에도 자격이 있다면 얼마나 사랑이 힘들어질까요? 진정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는 사랑에는 감동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가 사랑스럽지 못할 때 먼저 나에게 다가옵니다. 못난이 인형을 사랑한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말도 못하는 그때 나를 먼저 사랑해줍니다. 사랑은 그렇게 항상 나보다 ‘먼저’인 것입니다.
“너를 잃을까봐 겁이 났단다” 영화 <라이언 킹>에서 아버지 무파사는 어린 사자 심바에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경계를 지어줍니다. 하지만 심바는 아버지의 경고를 거역하고 코끼리 무덤에 갔다가 하이에나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타나 심바를 구하지요. 무파사는 훈계하고자 심바를 부릅니다. 심하게 벌을 받을 줄 알고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 다가간 심바는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자기도 아버지처럼 용감해지고 싶었다고,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고 겁낼 것이 없는 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러자 무파사는 어린 심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오늘 두렵고 겁이 났단다.... 너를 잃을까봐!”
그 순간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심바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심바는 아버지의 품에서 말합니다. “우린 친구죠, 그렇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동물의 왕인 아버지도 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한다니, 심바는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조건 없이 ‘나’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집으로 막 뛰어 들어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하나님도 우리 없인 못사신대.” 그렇습니다. 신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니까요.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때 피곤과 곤비는 영어로 ‘sick and tired’라고 표현합니다. 하도 반복적으로 겪다보니 지쳐서 진력이 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실망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피곤해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나에게 실망하고 지쳐 가는데, 그래서 자존감도 용기도 희망도 다 사그라지고, 자꾸 눈치도 보여서 그만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괜찮다고, 내가 사랑하는 자녀니까 눈치보지 말라고. 나는 지치지 않는다고.... 오래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나의 불가능성과 나약함을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혼자 해보겠다고 우쭐대는 어린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아이는 분명 성장할 테니까요. 오늘도 나는 어제의 나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이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데도, 내가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내가 필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신음 소리까지 다 듣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위로인지요. 실망하지도 지치지도 않고 (나도 지쳐버린)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인지요. 그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요. 그러므로 이제 브레히트의 말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의 길을 갑니다. 나를 필요로 한다고 고백하는, 사실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Morgens und abends zu lesen>
(c)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중에서 --------------
[I am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 Philippians 1:6
----------------
@ 이 글과 관련된 글 | 덧글 남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