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풍경'에 해당되는 글 81건

photo by bhlee(Seattl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천상병]
ㅡㅡ

 

다시 올까?
이 시는 읽을 때마다 가슴 어딘가가 아려온다. 
다시 읽는다. 
다시 올까? 이 순간이, 지금처럼 너와 내 외로운 마음이 "순하게" 겹쳐진 그 순간의 행복감, 지극함을 읽는다.

하지만 이어서 나도 시인처럼 그 뒤에  그림자가 따라온다. 
그 행복의 순간 시인은 그것이 아름다운 만큼, 찬란한 만큼 위태롭다는 너무나 지독한 현실을 알고 있다. 
행복의 비현실성. 
현실의 비행복성. 

 

왜 지극히 아름다운 것에 감동받을 때 알 수 없는 슬픔이 따라올까어려서부터 난 이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새벽같이 문을 연 명동지하상가 레코드가게에서 터져나온 파바로티의 "파니스안젤리쿠스...."가 가슴을 찌르고 그 아름다움 뒤의 슬픔을 경험하면서 갑자기 이거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늘 출근을 일찍해서 아주 짧게 일기를 쓰고 하루를 시작하던 나는 그날 일기장에 긴 글을 썼었다. 철학과 성경 그리고 문학에 연결된  나의 답을 찾았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두 사람의 부주의로 두번에 걸쳐 다 소실된 몇십년 된 나의 일기장들!!!) 
상담심리/문학치료가 전공이 된 후에도 그 답은 변함이 없다.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나름 나의 답을 찾았다고 슬픔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슬픔을 고이,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슬픔이 반드시 아픔은 아님도.... 


이젠 또 이렇게 말하지.. 뻔하긴 하지만. 
이 순간의 기억으로 남은 날들을 견딜 수 있다고,  멀리 떠밀려가도 되돌아 올 수 있다고... 나 자신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절실하고 간절할수록 그 모순이 존재한다고. 

이제는 슬픔 뒤에 따라오는 아름다운 여명을 본다.

 

======================

[댓글]

이미 그 순간이 악세비치님의 순간에 남아있는듯한데요?
고체 같은 저 구름 녀석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큰 하늘을 갖는 것은 참 행복이에요....
시애틀은 아직 못 가봤는데.......
 
 acsebichi   2009-04-17 00:54:51  [답글] 맞아요. 하늘이 땅과 맞닿아 대형스크린처럼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늘 겸손해지면서도 또 한편 가슴속에선 울컥울컥 무엇인가가 솟아 나오려고 하지요. 시시각각 한 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적 없는 살아있는 거대한 하늘은 늘 저를 깨어있게 해 주었던 거 같아요. 그리곤 막 그 속으로 질주해 들어가고 싶은...
뛰어서... 달려서... 하늘까지,
시애들 public market 앞이에요. 저 길 건너에 최초의 스타벅스커피숍이 있지요.
 
 * Twinkle Rose   2009-04-16 13:03:28 [답글] 이사진을 보고있으니, 날다님이 호주 가서 찍으신 펠리칸 사진이 연상되네요.
다르지만,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 참 재밌는 일이에요^^
 
 *날다나무   2009-04-16 21:05:29 [답글] 그러게요.. 제가 찍은 펠리칸 사진이 떠오르네요. 비둘기보다는 몇배로 크고 도도했지만,,,ㅋㅋ
이 사진의 재미는 엄청난 물살을 가르면서 접근하는 배가 있음에도 끝까지 태연한 비둘기 두마리가 아닌가 싶네요..^^
 
  acsebichi   2009-04-17 00:45:34 [답글] 새가 워낙 작게 나와서...정말 갈매기가 비둘기 같이 보이네요. 
  acsebichi   2009-04-17 01:01:14 [답글] 무언가 서로 연결된 고리가 있다,,끝없이 이리저리 이어지는.
그 모든 고리의 축은 무엇일까 갑자기 궁금해져요.^^
  

*라디오   2009-04-17 23:16:23 [답글] 저도 고리 하나 달고 갑니다, 계속 생각하시라고..^^; 
  acsebichi   2009-04-18 10:22:35 [삭제] [답글] 앗, 생각의 끈을 더 쭈욱 늘려야 겠어요.^^

 
*potozle   2009-04-16 18:09:45 [답글] 구름을 소재로만 찍은 사진작가가 생각나네요 저도 소재를 구름으로 잡아볼까 생각중인데 ,, (그작가 이름이 모지? 이눔의 나이땜에 ㅋㅋ) 
  acsebichi   2009-04-17 00:55:39  [답글] 구름.. 멋진 소재 같아요. 기대할게요. ^^ (스티글리츠 아닌가요? 조지아 오키프의 남편) 
 
 *라디오   2009-04-16 18:23:15 [답글] 다시 오거든 꽉 잡으세요! ^^; 
  acsebichi   2009-04-17 00:57:39  [답글] 꽈-악....바람의 한 쪽 끝을 잡듯이요? 
  라디오   2009-04-17 23:17:33 [답글] 그렇지요, 허공에의 손질!
 
* jubilate   2009-04-17 02:32:29 [댓글] 기다렸어요. 악세비치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시원한 사진이 눈길을 끌길래 눌러보니 님의 사진이군요. 님의 사진엔 사진과 함께 항상 얘깃거리가 풍성하게 오가더라구요.
악세비치님은 외국에 자주 다니시나 봅니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곳곳마다 둘러보신 님은 좋으시겠어요.~^^
저 배에서 뿜는 듯 보이는 물살은 뭔지..단순히 뱃머리가 속력을 내며 전진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하기엔 물살이 너무 높아 보이는군요?...공중으로 날아오르며 펼쳐진 물살의 모양이 새의 날갯짓 같아 보여요. 잠시 쉬고 있는 갈매기도,하늘의 구름도 모두 날개가 있는 듯 한데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어울려 날아 오르고 싶군요.ㅎㅎ
짧지만 되뇌이게하는 여운이 있는 시도 좋습니다.
 
  acsebichi   2009-04-18 10:20:24  [답글] 기다렸다는 말에 순간 행복해지네요^^;;
외로운, 그리고 늘 지친 귀갓길이면 누군가가 날 기다려주길 바라곤 했었죠.
어릴 때는 길모퉁이에서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어서 와' 하고 안아주었으면, 20대엔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그런 생각했었지요. 제 그림자에 괜히 설레기도 하고. 아, 그러고 보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같네요. 내가 가는 곳이면 나타나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던 사람들. 와락 감동과 행복을 안겨주던 사람들. 앞으로 남은 삶에 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지... 나는 무엇을 어느 길목에서 이 나이에도 기다리는 것인지. "마지막 만남" 앞에서 후회가 없으면 좋으련만. 주빌라테님의 한마디에 제가 너무 멀리 왔네요.^^

jubilate   2009-04-19 20:57:27 [답글] 멀리 가도 좋은 걸요.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님의 얘기따라 가다보면 언제 멀리 왔는지도 모르게 얘기에 빠지곤 해요.

제가 얼마 전 인터넷을 이용하다 우연히 악세비치님에 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이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조심스러웠는데..솔직하기로 했어요.^^  
  acsebichi   2009-04-21 23:28:00 [답글] 헉. 그러셨어요. 들켰나요? 궁금하네요. 좋은 일이었겠지요? ㅎ
얘기 나누다.. 나누다.. 참 이쁜 말이죠....
우리 많이 나눠요.^^ 
 
  *Twinkle Rose   2009-04-21 13:00:18 전 요새, 혼자 꿈꾸고 있어요. 흠.. 
  acsebichi  [답글] 2009-04-21 23:39:05 흠..
그 꿈이 로즈님을 잊지않고 기억해주길 바래요.... 
  Twinkle Rose [답글]   2009-04-22 01:14:10 그러길 바란답니다. 아주 간절히.
제발 그 꿈이 나를 잊지않고 기억해주길. 근데, 과연 그럴까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은 걷고 또 걷고 하늘보며 걷고... 그렇게 걸어다녔답니다^^  


 *어느오후   2009-04-20 11:37:36 [댓글]푸르고, 푸르고, 푸르군요. 역시 지구는 초록별!
전과 같을 수 있을까, 다시 맞은 그 순간? 
   acsebichi   2009-04-21 23:41:41 초록별 오후님...
어릴 때 늘 재밌다고 생각했던 게 있죠. 파란불이라는데 늘 초록색신호등이 켜졌죠.
동요 중에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든가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에 파랄 거예요. 산도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마음으로 자라니까요~'라는 동요가 있는데 그거 부를 때 파랗게파랗게 라는 말을 할 때마다 파란색이 터지듯 입술에서 퍼져 나오는 기분이 들곤 했었죠. 하얗게 하얗게라는 가사가 눈이 부시게 느껴지듯이요.^^

'전과 같을 수 있을까?' 그렇죠.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말도 결국 같은 물음 아닐까요, 오후님!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는 오후였어요. 따뜻한 차를 나도 모르게 자꾸 자꾸 마셨죠....

 

============

나는 이 온라인 모임이 있던 때가 참 자주 그립다. 
작가, 교수, 사진가, 그외 사회 곳곳에서 삶의 아름다움에 진심이며 삶을 고민하시는 분들이 모인 곳이었다. 모두 익명이었다. 
이 카페를 주관하셨던 멋진 편집장이셨던 분이(지금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신다)  카페를 닫으셨고 우리는 다 흩어졌다. 
아니 어디선가 그 분 중심으로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분은 더 많이 더 깊이 더 멀리 본인이 가시려는 길로 가셨다.  이 카페보다 더 중요한....  정말 잘하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문득문득 너무나도 그립다.  외로울때면 더욱. 
소통의 부재.....
모두들 [문학치료연구소]라고 하면서 왜 특강 소식이나, 치료모임 소식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느냐고 한다.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만 나는 남은 생 독백으로라도 다시 내 맘을 소통하고 싶은가 보다. 
순수하게, 그래, 그냥  순하게 겹치고 싶은가보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마음의 흐름이 같은 순한 사람들과. 


 

photo by bhlee0105

 


어스름. 땅거미... 그리고 꿈결

하늘은 항상 땅보다 천천히 어두워진다.

땅 위에 어둠이 덮인 후에도 아직은 바라볼 무엇이
하늘에는 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흐린 날도, 비오는 날도, 

나는 밤이면

늘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이런 시간이면 떠오르는 노래-
김광석의 <거리에서>

사랑하는 옴마!
엄마, 나는 크리스마스 하면 나 초등학교 때 엄마가 TV세트 앞에 이쁘게 포장해서 선물 잔뜩 올려놨던 기억이 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너무나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선물 받았는데 역으로 내가 엄마한테는 (특히 유학오기 전까지) 아픈 상처만 많이 줬던 기억이 나서 참 많은 후회가 돼.  엄마, 우리는 명절 때 왁자지껄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내 가슴속에 남는 것은 그때의 쓸쓸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런 나를 위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채워주려고 노력했는지야. 그리고 엄마의 그 사랑이야 말로 내게는 가장 감사한 선물이고 내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이야.  엄마, 이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아서 너무 미안해. 우리 옴마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우주 최고로.  우리 좀 이따 만나~~~  2011 크리스마스 옴마딸.
----

늘 그렇듯 자료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추억의 카드 편지. 
내가 여기저기서 받은 손편지들이 박스로 넘친다. 버릴 수 없는 마음이 가득해서 간직한 것들이...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추억은 언제나 선물 같은 조우이다. 
이상도 하지. 내가 뭔가 해준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난다. 
서로서로 그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인가 보다.  준 것이 아니라 받은 것만 생각나는 거.... 

많이 보고 싶지만 멀리서 그리워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우린 서로 보고 싶단 말도 자제한다...... 왜 그러는지 서로 안다.....) 

photo by bhlee


나의 마음은 비어있다
오직 네가 와서
가득 채워 주기를 기다리는 뜻으로
이것을 하나 마련하였다

소리치는 것보다
차라리 눈을 감고 인내의 한 때
그리고 멀리
떠나가면 그만인 구름 같은 마음을

아아 이 조그만 면적에 기대서
나는 나의 반평생을 저울질 한다.
.........

귀를 기울이면 가랑잎이 지는데
조심스런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비어있는 내 마음의 갈구의 표지(標識)
창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아라.


<"이형기- 창2"  일부>

<지나친 내 마음의 오지랖>

 

에효... 오늘은 이런저런 오지랖으로 하루가 저물어가 버리고 있다. 

어둑해지는 시간, 집에 오다가 웬 할아버지가 지하철 입구에서 “이리 가면 H아파트 건너편 맞나요”한다. 네.. 하고 가려다가 "건너편"이라는 애매한 말이 그만 덜컥 맘이 걸려서 뒤돌아섰다. "그런데 어디 가시는데요?"

 

외모는 깔끔해 보이시는 그 할아버지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서 휴대폰을 뒤적뒤적 거리시기를 2-3분. 결국 메시지를 찾아 H아파트 건너편으로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고만 하신다. 전철역에서 10여분은 족히 걸리는 H아파트, 그 아파트가 얼마나 긴데 정확히 건너편 어디로 가시냐고 또 묻는다. 기억을 못 해 간신히 또 한참을 걸려서 메시지를 찾더니 [평생학습관]이라 하신다. 더 자세히 묻고 알아낸 것은 검도부 제자가 그 아파트 건너편에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는 거다.

그 장소가 내가 지나다가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아주 좁은 골목에 있고 눈에 띄지도 않아서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마 모를 거다. 네이버 지도로 찾아서 보여드려도 알지 못하시겠기에 그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 마중 나오라고 하겠다고. 또 전화번호를 찾지 못하신다. 할 수 없이 내가 그분의 폰(나와 다른)을 달라 해서 겨우 메시지에서 번호를 찾았다. 그랬더니 또 나보고 걸어 달라 신다. "선생님이 전화하셔야 해요."  결국 통화가 되어 그 선생 성함 대면서 제자에게 어디 어디로 모시러 오라고 하고 근처 큰길에 모셔다 주었다. “거기 골목이라 혼자 못 찾으시니까 꼭 여기서 기다리세요” 하고. 나도 바빠서 급히 돌아섰다.

 

그런데 길을 건너자 그만 맘이 아프기 시작한다.

"선생님 잘못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돌아가실 때도 길 안내해 달라고 하세요 꼭!!!" 이 말을 못 해서.
내가 계획했던 시간이 어그러진 게 아까운 게 아니라 "선생님 잘못 아니라고, 괜찮다"라고 말해주지 못한 게 내내 맘에 걸려서....
귀도 어두운 그분께 “어딘데요?”라고 큰 소리로 계속 물은 게 꼭 추궁(?)한 거 같아 맘에 걸려서.

얼마나 초조하셨을까? 
겁에 질려 자신감이 없어져서 다음에 또 밖에 나가기 두려워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젊은 시절 검도선생으로 일하던 그 꼿꼿하던 시절이, 그 추억이 그리워
제자가 오라는 초대에 용기내어 
이렇게 추적추적 겨울비 오는  저녁시간  낯선 길을 혼자 찾아나셨을 텐데....
자꾸자꾸  마음이 쓰인다. 괜찮다고 누구나 다 그렇다고 말해드릴 걸...
(물론, 제자가 잘못했네요. 모시러 온다고 했어야죠...라고 했지만..)

이래서 또 난 기력이 빠져서 멍하니 있다. 오늘도 하루가 그냥 가버리고 있고...
늘 이런 내 “마음의 오지랖”-- 그 후유증이 문제다. 이런 아픔이 문제다.

아마... 검도부 제자들 만나서 다시 힘을 얻고 가셨을 거야. 내 삶이 그래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위로받으시며...
그렇게 나도 나를 다독인다--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

(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오지랖이란 말을 쓰고 나니, 이게 내 문제를 제대로 표현한 말일까, 궁금하여 새삼 뜻을 찾아본다.)

오지랖: 본래 뜻은 웃옷이나 윗도리의 앞자락이며, ‘오지랖이 넓다’는 옷자락이 넓게 펼쳐지듯 남의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종종 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말이다. 즉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 미덕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이를 경계하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제 몸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세태가 더 문제다. 오히려 사람들의 오지랖이 너무 좁다는 데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지랖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2004/2011 박남일)

[가장 따뜻했던 계란 하나]
 
늘 기운이 없었던 고3. 얼굴도 머리도 노랗고 말랐던 나.
그래도 모두 잠든 밤, 밤새워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난방도 없는 외풍 센 마루에 나와 상을 펴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던 때,
새벽이면 아득하게 힘이 빠져나가고 오슬오슬 추위와 허기로 떨곤 했다.
어느 새벽, 마당 건너 사랑방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던 작은 오빠가
드르륵 문을 열고 아무 말없이 들여 밀고 간 따듯한 계란프라이 하나.
당시 우리들에겐 유일한 고급 도시락 반찬이었던 계란 하나ㅡ
그 고소한 냄새의 계란 맛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걸 먹고 나니 갑자기 자꾸 감기던 눈이 뜨이던
신기한 기억만 또렷할 뿐.
불 켜진 마루를 보고, 동생을 위해 말없이 부엌에 가서
석유풍로를 켜고 계란을 부쳐다 준 오빠의 마음,
어려서 큰오빠의 사랑을 받던 나보다는
외로울까 언니만을 챙기던 작은 오빠의 그 말없는 배려에
지쳐 한기에 떨던 내 외로운 가슴이 얼마나 따듯해졌던지 그 온기를 기억할 뿐.
 
가장 따듯했던 그날의 계란프라이 하나ㅡ
지금도 내 맘 오슬오슬 시린 날이면
말없이 찾아와 주는 따듯한 기억
ㅡㅡㅡㅡ
지난 주 특강 준비하려고 보니, 지난달에도 특강때문에 작업했던 PPT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혼자 해결하려 끙끙대다가 다음날 서비스센터로. 기기문제가 아니라는건 알았다. 그래도 혹시 도움을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할 수없이 78된 오빠에게 SOS. 지난달 이사 간 먼 곳에서 밤늦게 찾아와 해결해주고 갔다.
 
오빠는 내가 미국가서 긴 기간 집을 비우는 때면 빈 집에 와서 화분도 살펴주고 말없이 여기저기 고장난 거 다 손봐준다.  회사일도 바쁜데 음악과 함께 사는 나를 위해 내가 아끼는 정말 오래된 맥킨토시 앰프도 어렵게 충주까지 수리해 줄 수 있는 사람 찾아가서 다 고쳐다 주고,  현관문 손잡이 잠금장치 수리해놓고. 이 모든 걸 아무 말없이….  내가 귀국하는 날이면 늘 비행기도 멀미를 해서 고통받는 나를 위해 시간 맞춰서 문 앞에 죽을 배달해놓는다. (난 거의 28년 차이 났던 이젠 하늘에 계신 큰오빠 사랑도 엄청받았는데 정말 복이 많다. 그저 감사하다. )


사진도 잘 찍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수학천재 오빠. 어려서 천재소리 듣던 오빠가 참 아깝다!! 세상엔 타고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슬픈 삶이 얼마나 많은가. 

키크고 영국 신사같이 멋쟁이였던 오빠가
이제 나이들어 띄엄띄엄 걸어가는 굽은 뒷모습, 벗겨진 뒷 머리가 왜케 아프고 슬픈지…. 뒷모습에 대고 오빠부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기도한다. 

-------------

<"가장 따듯했던 계란 하나"는 아주 오래 전 썼던 일기이다. 남들에겐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나도 가장 가까운 내 가족에겐 왜 못했을까? (울딸에겐 예외~^^) 
맘은 혼자 간직하면 안되고 표현하고 나눠야 할 거 같아서 쑥스럽지만 저 글을 오빠에게 보내려한다. 더이상 뒤늦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글거리지? ㅋㅋ" 라고 덧붙여서^^>

 

슬픔 

사랑한다며 
아름다운 여린 꽃 
아프게 꺾어 
손에 들고 
가시밭을 걷는다, 그 
빛 앞에 
쪼개지는 어둠 


(bhlee 112125)MP
ㅡㅡㅡ

아름답고 예뻐서 지켜주려는 마음? 충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관심과 욕심일까?  
더한 아픔과 상처를 내면서 지켜주려고 꽃을 꺾는 일이 사랑일까? 
척박해도, 추워도, 때로 목말라도  제 땅에서 견디며 뿌리내려야 하는데
그렇게 단단히 성장해야 하는데 끝까지 살려낼 수도 지켜줄 수도 없으면서 상처만 주는 무지한 사랑, 
그 어둠을 비춰주는 빛이 가시 같이 아프다. 
ㅡㅡ
photo by bhlee

나무 

소중한 방문객을 만나러 가는 길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러 가는 길)*
잎하나 내 발 앞에 날아와 앉았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제 몸 한쪽엔
고집스럽게  나는 물들지않겠다
자신을 지키는 노란 빛이 당당하다. 

그 작은 잎 데려다 마음에 심었다 
마른 잎 속 작은 나무가 가지를 뻗고 있다. 
해와 달을 그렸다.  
갑자기 영원 같은 공간에 서 있다 
내가 서있다
떨어진 잎이 아닌 나무로. 

 <bhlee 111325>
 
*정현승 시인을 인용했음 
ㅡㅡㅡㅡㅡ
나도 모르게 해와 달을 그려넣다가 내가 장욱진을 흉내내나보다 혼자 웃었다. 
내가 처음 장욱진 그림을 만났던 그 먼 옛날, 나의 첫 탄성은 그의 그림 속 시/공간을 초월한 순수한 세상이었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세상. 자연과 사람과 선한 동물이 나무 속에, 나무 위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세상.  
ㅡㅡㅡㅡㅡ

by bhlee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ㅡ김남조

11월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곁을 내주지 않고 인색하던 눈부신 가을하늘이 드디어 찾아와주었다.  감사하다!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아름다움....

지난 3일간 매일 연이어 세 분이 하늘로 떠나신 소식을 들었다. 이 나이에 점점 자주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그래도 먹먹했다.

마지막은 그것이 무엇이든 비록 순리이고  아름다울지라도 “슬픔"이다.  가을이 조금씩 떠나가는 11월, 오늘 산책 길에 더더욱 내 마음을 물들인 노을처럼.

노을로 가는 길이 “천천히” 라고 일러준다.
이 말이  이젠 속도가 아니라 한 걸음도 의미있게..로 읽힌다.
ㅡㅡㅡ
photos by bhlee(110225)

낮엔 달처럼
밤엔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좋으리…

 
photos by bhlee(100625)

-----------
 
 

AhnSS
산은 산, 물은 물처럼, 낮엔 해, 밤엔 달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선생님 말씀 중에 어둠속에 빛이 있으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밤에 해가 있으면 밤이 낮이되고 낮이 밤이 되는, 혁명적인 상황이네요^^
선생님 미적 감각은 따라갈 수가 없네요, 어쩜 이런 사진을 찍으실 수 있는지요!

-->bhlee
고마워.
맑고 밝은 하늘을 기다려도 기다려고 인색하던 가을이  요몇일간 마침내 가을 햇살을 환히 내려주니 참 감사했지?
길고 긴 겨울이 오기 전..... 

사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말이 우리에겐 참 익숙하지. 
노래도 있고 ㅡ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하지만 그냥 난 빛과 어둠 너머에 그것에 가려,
또는 우리의 시각과 고정된 의식에 의해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여전히 거기 있는 소중한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어.
낮 달과 밤의 해처럼…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FBk에서 가져옴)
 

 

photo by bhlee

 

모순: 우연 그 기묘한 필연 - bhlee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창에 비친 내 그림자에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지나는 바람이 조용히 흔들리는 소리에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숨죽인 빗방울의 흘러내림에

아, 이젠 그만
굳게 닫아 잠그고
벽을 향해 돌아 누었다
그 눈감은 찰라의 절망 그 사이로
그가 다녀갔다

잠긴 문 앞에서
돌아갔다

아, 난 오늘도
열어보고 또 열어본다
절망하는 그 순간
당신과 나를 놓쳐버리는
그 어리석은 찰라까지

——
올해 초 찍었던 이 사진을 늘 그렇듯 ‘우연히’ 발견했는데 또 우연히

정말 오래 전 쓴 이 글을  얼마전 두 주에 걸친 특강/워크숍 자료를 찾다가 외장하드에서 발견했다.

 

우연,  그 기묘한 필연

photo by bhlee  



저버린 일상(日常)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일모(日暮)......
텅 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正座)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저문다.
살고 싶어라.


[이형기-'비' 일부]

 

170811

선생님과 할머니

2010. 3. 12 금.   

어제 언니가 내가 집에 있을 시간이 아닌 초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낮에도 전화 안 받고.... "
"언니 낮엔 당연히 없지. 학교에 가 있지."

"아. 어디 다녀온다고 했잖아. 중국출장." 

"응. 그건 엊그제 돌아 왔지. 그래서 어제 밤에 통화도 했잖아. " 

"아. 그랬나. 내가 정신이 이렇게 없어." 

언니가 무료해서 낮에도 전화 했구나.....

"저녁 먹었어?" 언니가 묻는다.

"지금 먹으려고..". 막 식사를 끝냈지만 거짓말을 한다.

고속도로로 출퇴근 하는 학교에서 종일 복잡한 일로 지쳐 돌아온 밤,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만 주면 되는데,  간단한 대답 몇 마디만 해주어도 되는데 그것도 버거워 혼자 있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래? 그럼 어서 식사해. 밤낮 이렇게 한 밤중에 저녁을 먹으니 어떻게 해. "

"늘 그런데 뭐. 언니 이따가 또 잠 안 오면 전화해. 나는 2시에 자니까 걱정 말고."

"알았어."


이기적이고 못된 동생. 그냥 좀 들어주지.  어제 밤에 통화했다는 말은 뭐하러 해서 언니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전화를 끊고 후회를 한다. 
전날 밤 통화 때는 목소리도 멀쩡하고 기억도 또렷하더니 하루 사이 갑자기 다시 기억을 못하는 언니. 죽음의 고비를 2-3번 넘기고 겨우 중환자실에서 살아남은 언니. 하나뿐인 폐에 삽관을 하다가 구멍이 나서 잠시 산소공급이 끊긴 사이 두뇌 어딘가 잘못된 것일까? 그 깔끔하고 총기 있던 언니가 3달 후 퇴원하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 애기같이 변했다. 그리고는 머리에 새집을 짓고 하루 종일 집에서만 갇혀 지내고 있다. 온갖 병이 스쳐지나간 몸으로 한 쪽 뿐인 폐로 힘겹게 살았는데 그렇게 질곡 많은 생의 마지막을 어린아이로 돌아가 새장에 갇힌 어린 새처럼 살 것이다.

 

어제 언니와 통화한 일을 쓰다보니, 언니 때문인지 얼마전부터 떠오르던 기억이 있다. 

 

청주에서 서울로 막 올라와 전학 온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손영자선생님. 지금은 어디계시는지, 생존해계시기는 하시는지.... 오빠가 동생들을 다 학교 보내고 돌봐준다는 것에 감동하시면서 내 손을 잡고 교회도 가시고(우리집은 불교집안이었는데)  늘 자신의 집에 데려가 주셨다. 선생님은 이혼인지 사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홀로 반신이 마비된 뼈만 남은 70이 넘은 친정어머니와 숙명여고 다니는 딸과 함께 3식구가 살고 계셨다. 할머니는 나를 유별나게 예뻐 하셨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셨을까 싶다. 나는 툭하면 선생님 댁에 가서 할머니 방에서 말동무 해드리면서 그 집에 있는 위인전기며 책들을 읽었다. 아이들의 보드라운 뺨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듯이 노인들의 뻣뻣한 살가죽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할머니 방은 중풍병자의 방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늘 깔끔하게 참빗으로 머리를 넘겨 쪽을 찌고 하얀 모시옷이나 무명옷을 입고 계셨지만 방에서는 알 수 없는 고통스런 냄새가 났다. 그래서 모두 ‘학교 다녀 왔어요’ 하고 문 열고 한 마디 하고는 나가버리는 쓸쓸한 방에 홀로 남겨진 할머니. 하루 종일 빈 방에서 식구들의 발소리만 기다리셨을 텐데. 그런 할머니의 냄새나는 방에 나는 방학 때면 종종 찾아가 한 나절 곁에 앉아서 배 깔고 누워 책을 보았던 거 같다. 할머니는 그게 좋아서 나만 가면 마비되어 어눌한 입으로 우우 거리시고 기억자로 곱은 손으로 손짓을 하시고는 동그랗게 끝을 말아서 고리처럼 굽혀놓은 파리채 손잡이로 곁에 놓인 작은 장을 열고는 그 속에 있는 곶감이나 다른 먹을 것을 꺼내 주셨다.

 

하루는 선생님이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또 일하는 식모가 그만 두겠다고 한 것이다. 선생님은 친정어머니 방문 앞, 마당에서 어린 나에게 호소를 했다. “다 할머니 때문이야. 똥오줌 받기 싫어서 아무도 붙어 있으려 하질 않아.”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해야 하고,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갈 수는 없고, 일할 사람은 오고 싶지 않다고 하고...... 선생님도 나름대로 삶의 서러움과 어려움이 있을 텐데 남편도 없이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일들이 좀 많았을까. 울음이라도 터질 듯 폭발하기 직전의 표정으로 분노인지 절망인지 원망인지 설움인지 모른 심정을 초등학생 철부지 제자에게 호소하는 선생님과 방에서 그 말을 듣고 계실  할머니 사이에서 어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뇌리에 깊이 박혀있어서 가끔 선명히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선생님이 나를 늘 집에 데려가신 이유는 나를 이뻐하셔서이기도 하지만 빈집에 할머니 혼자 둘 수 없어서 나를 할머니 곁에 두고 외출하셨던 것 같다.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어리숙하고 남에게 잘 이용당하고 어떤 땐 그 속이 다 보여도 그냥 속아주는 아주 바보 같은 사람이니까.  (영악스럽게, 아니면 자신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서,  자신을 지킬 줄 모르는 바보?)   내가 다음해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학교 후배가 된 선생님의 딸은 얼굴에 주근깨가 약간 있었고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약간 통통하고 키가 컸던 언니로 기억이 난다. 내게도 잘해주었지만 살갑지는 않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할머니 때문에 귀찮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던 언니였었다. 할머니는 그 모든 것을 다 빤히 눈치채고 계셨을 텐데 얼마나 외롭고 서럽고 또 구차했을까? 당신이 원해서 그런 병이 드신 것도 아닌데. 

 

인간의 생명이란 무엇일까? 몸과 마음은 죽은 자와 방불한데 숨 쉬고 살아있는 수치심과 그럼에도 살고 싶은 맹목적인 욕망은 무엇이며, 아니 그럼에도 죽을 수도 없는 무기력은 또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 홀로 미지의 세계로 사라지는 공포일까? 

 

잉여인간... 자신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맘대로 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한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  

 

이상하게 얼마전부터 그 할머니가 기억난다. 철없이 그냥 찾아와 곁에서 동화책을 읽고 집어주는 곶감을 먹어드린 것뿐인 데, 그런 나를 기다리고 예뻐하시던 정에 주린 할머니의 외로움이, 그리고 철부지 초등학생 제자 앞에서 울음이 터질듯 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면서 삶의 무게를 호소하시던 선생님의 고달픈 삶과 외로움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갑자기 그 선생님은 (어떤 의미로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길 바라셨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그들 모두 속에서 나 자신의 여러 편린들을 본다.

 

2010.3.12. 금. 흐림. 바람이 심하다.

 

(언니는 하늘나라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뉴욕에서 한국으로 가보지도 못한 때 어린아이처럼 뼈만 남은 몸으로 홀로 떠나셨다.

이런 글이라도 남아서 언니의 기일인 엊그제 다시 미안한 마음을 기억한다.) 

032019

 

------------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 Emily Dickinson

 

만일 내가 단 한 사람의 마음이

부서지는 걸 막을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된 게 아닐텐데

만일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주거나

한 사람의 고통을 식혀주거나, 아니면...
죽어가는 로빈새를
다시 둥지에 올라가게 도와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된 게 아닐텐데

 

 -에밀리 디킨슨

 

오늘 아침에 반박자 걸음으로 일어나 사랑하는 17년 전 제자 제니의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문학치료사/심리상담사가 되기 전 내 원래 전공, 내가 사랑하던 셰익스피어 수업은 참 많은 추억을 남겨준 수업이었다.  이 때도 이미 교실에서는 여전히 학생들 마음에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던...

내가 문학과 글쓰기를 활용하는 문학치료사와 상담사의 길로 가도록 나를 향한 뜻은 긴 세월 준비 시키신 듯하다.

사랑스럽고 귀한 제니. 사랑과 배려가 넘치고 미술 영어 작곡 피아노 봐이올린 첼로 노래... 못하는 것이 없었던 제니. 그런데 난 그의 지치도록 타오르는 열정 뒤에 숨겨진 작은 어린아이, 외롭고 두렵고 힘겨운 아이를 보았다. 문학 수업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던 제니.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때마다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던 제니.  수업이 끝나면 친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 있고 싶었고 긴긴 일기를 쓰게 되더라는 제니.

 

졸업 후 캔버스 앞에서 한 점도 찍을 수 없다고 어느날 문학치료를 받으러 찾아왔던 그녀. 진정한 자신을 찾고 생애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던 그녀.

 

이제는 자신만큼 재주꾼이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런 아들의 엄마가 되어 사랑하는 남편과 알콩달콩 행복한 그녀. 여전히 열정적이고 따듯하고 멋진 선생이 된 그녀. 나의 소중한 제자, 제니!! 글씨마저 예술인 그녀가 도장도 여러개 새겨 함께 보내주었다.

고마워 제니야!! 

넌 늘 감동이야.

네가 가장 소중한 '선물'이란다.

 

https://www.facebook.com/bonghee.lee.7399

바람이 분다..

늦은 아침, 창을 열자 제법 센 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밀려 들어온다. 

바람...하면 어떤 바람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를까? 

오늘처럼  차가운 겨울바람? 산에 올라 땀을 식히던 그 맑고 시원한 바람? 
어린 시절 동요에 나타난 잠든 뱃사공 대신 말없이 노를 저어주는 고마운 바람? 
추억을 일깨워주는 수많은 바람들... 
그중에서 나는 윤동주의 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얼마나 맑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또 그래서 끙하고 가슴 저려오는 고백인가?

큰 바람이 불어야만 바람을 느끼는 우리들인데. 

뿌리 깊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도 아니고 작은 이파리 하나가 흔들리는 그 작은 바람에도 그는 아팠다 한다.

 

오늘 찬바람 스치는 거리를 지나며 동주의 이 맑은 시구절을 습관처럼 외다가

아주 오래 전 30대인가, 어느 날이 떠올랐다. 지친 퇴근길에 일몰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ㅡ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야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죽어가는 것이니까…"

이 나이 되어서도 아직도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죽어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아직 살아있기에?
나도, 그리고 그들도/세상도.... 

120324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선인장 사랑 - bhlee (2007)

 

괜찮아...
난 널 안아줄 수 있어

널 잃어 빈 가슴에 못 박는 아픔보다
널 안고 가시를 품는 아픔이
차라리 행복임을
너는 알까?

널 안고 흘리는 따듯한 눈물이
널 잃고 흘리는 따가운 눈물보다
차라리 축복임을
너는 알까?

 

그러니 네 상처투성이 온몸

그 가시로

홀로 아파하지마
안기지도 못하고 자꾸자꾸

도망가지마

 

맘껏 내 품에 안기렴

내 사랑  

 

MP

02/22/2007
---------------
글을 쓰다가 언젠가 보았던 이 그림이 생각났다. 

그림:출처미상(혹시 출처를 아시면 알려주십시오.)


ㅡㅡ
언젠가 꿈을 꾸었었다. 내 몸에서 끝도 없이 장미가시를 뽑아 내는 꿈이었다.

너무 슬프고 아프고 두려워서  꿈에서 깨어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022207
------------

참 많이 아팠던 시절이었다.  이젠 기억 저편에 있는 그런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 journal의 힘이고 치유인 것 같다. 
그 막막하던 아픔의 시간들은 영원하지 않았다. 결국 가시를 꿈에서처럼 뽑아내고, 가시에 찔려도  가시보다 단단해진 나와 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시들이 만들어준 단단한 마음을 본다. 당연히, 여전히 삶은 가시밭을 만나는 길이다.  나에게 솟아나는 가시, 혹은 나를 밖에서 찌르는 가시들... 하지만 이것도 그 때처럼 넉넉히 이길거라는 걸 알게 해주는 게
바로 지난 저널을 읽을 때의 위로와 격려다.092924


<추억의 책갈피, 내 마음 갈피>

 

책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책을 사면 전공서적이 아닌 경우 대부분 그 책을 살 때 언제 어떤 마음이었는지 표지 안 쪽 첫페이지에 몇 줄 적곤 했었다. 수도없이 떠나보낸 책들. 그들을 다 버리려 할 때마다 그 몇 줄 글과 함께 한 번씩 책갈피를 스르륵 들쳐보면 줄쳐진 곳, 여백에 적혀있는 책과 대화한 나의 단상들을 만난다. 그 때의 시간과 추억이 소환되고 잊었던 그 시절 내 마음 갈피가 열린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옛날 젊은/어린시절의 빛바랜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소환하곤 한다. 하지만 나에겐 누렇게 바랜 책갈피에서 발견하는 밑줄쳐진 글이나 메모와 나의 생각들이 추억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보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상실감이 더 크기 때문일까? 내가 이렇게 치열했고 순수했고 고민했구나. 이제는 잃어버린 그 시절의 나의 빛났던 “언어“가 아프다.
 
지난 겨울 너무 많이 아파서 꿈도 무엇도 다 힙겹고 무의미하고 버거웠던 때, 방을 가득채운 서류더미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차마 나는 열어보지 못하고 도우미 아줌마를 시켜 수도 없이 버리고 버리고…방가득 쌓인 15박스 넘는 내가 정리했던 글들과 공부한 내용들을 버리고 나서 일주일 넘게 이유 없이 끙끙 앓았다.
 
내가 간직했던 수많은 영화사에 중요한 구하기 어려운 귀한 명작 영화 비디오도 씨디도 특수쓰레기 대형봉투 6자루정도 버렸다. 어딘가 기증하고 싶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도 모르겠고 기력이 없었다. 저질 체력 앞에 모든 꿈과 열정이 다 허무하고 고통스럽고 부담되어서 다 결별하고 싶었다.
 
지난 것은 지난 것대로 그 때를 살았던 것이니 되었지… 라는 스스로의 위로는 이번에는 가슴 속 빈 공간을 채워주진 못했다. 사실 그 빈 구멍이 무엇때문인지 나는 안다….
 
이제 다가오는 추수의 계절 나는 오히려 또 비워야지 생각한다. 아직도 남은 책들과 서류들과 모든 물건들을 다 정리해야지…. 이별은 면역이 없다는 걸 알지만 이젠 그래도 좀 쉽겠지?
ㅡㅡㅡㅡ

오늘 우연히 제목이 새삼 마음에 들어와 버리려 모아둔 책들 속에서 들쳐본 <현재라는 이름의 환상>.

다른 책갈피 메모보다 평범한 메모긴 하다. (빛바랜 줄 친 부분들도 지금 읽어보니 새로운 눈으로 읽힌다. )

 

My Blue Guitar by bhlee092520


[내 마음의 첼로 - 나해철] 

 

텅 빈 것만이 아름답게 울린다

내 마음은 첼로

다 비워져

소슬한 바람에도 운다

누군가

아름다운 노래라고도 하겠지만

첼로는 흐느낀다

막막한 허공에 걸린

몇 줄기 별빛 같이

못 잊을 기억 몇 개

가는 현이 되어

텅 빈 것을 오래도록 흔들며 운다

다 비워져

내 마음은 첼로

소슬한 바람에도 운다

온 몸을 흔들어 운다

 

[물 새] 

 

여름 바다 보다

겨울 바다를 더 좋아하는 건

바다는 그리움이어서 그런가 보다

영원히 바라보기만 하는 나의 눈먼 자유

 

내 곁에 내려와 넘실대는 하늘

내 안에서 나만큼 낮아지는 저항 못 할 부름이건만

그 푸르름에 몸 맡기고 익사할 용기 없어 여태

더듬거리고 머뭇거리며 마지막을 유보하고 있다

 

오늘도 산산조각 난 땅 끝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하늘 끝에서

이내 지워질 편지만 터벅터벅 남기며

아쉬워 아쉬워 돌아보는 물새가 된 나

 

080103 bhlee

MP

Vincent van Gogh- Cherry trees in full bloom

-----------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

여러겹의 마음을 가졌기에 그 나무가 까닭 없이 불편하였습니까. 

멀리로 멀리로 지나쳐가며 혼자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 스스로에게 그 나무 탓을 했나 봅니다.

"내가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다 말하기 불편하였을까......

그러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여 나무를 멀리서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멀리서 멀리서 보면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그동안 눈이 부셔서 직시하기 불편했을까요?  그리고 그 여러 겹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합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아서라고, 하나의 꽃빛을 피우기엔 너무 많은 소망과 열정이 있어

켜켜히 마음을 피우고 있는 그 나무가 참 외로웠겠구나.......... 깨달았다 합니다.

 

그러다 또 생각합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아 외로웠을 것이지만 그 나무는 어쩌면 외로운 줄로 몰랐을 거라고.

그렇게 고고하게 홀로 제 열정을 따라 여러 꽃빛을 피우고 있는 그 나무는 외로운 줄도 몰랐을 거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서 또 알았다 합니다. 

그 오랜 시간 당신은 그 나무를 떠나지도 못하고 멀리서 멀리서 계속 지켜보았군요.

외롭게 피워 올린 꽃잎들 다 흩어져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에야

그 나무 이제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려 겹 꽃잎 같은 마음 다 흩날아가버리고 맨 몸으로 선 그 시간에야

비로소 당신은 그의 그늘에 앉았습니다.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진 나무라 생각하던 그 나무 아래, 당신은 그제야 다가가 앉았습니다.

심심한 얼굴을 한 나무 곁에.

 

알 수 없네요.

그 나무가 심심한 얼굴을 하고 나서야 당신은 편하게 그에게 다가간 것인지

다가가 보니 외로운 줄도 몰랐을 듯,  열심히 겹겹이 피워내는 마음을 가진 그도 어쩌면 참 심심한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심심하고 외로워서 더 여러겹 꽃빛을 피워 제 맘을 감싸 입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당신은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이제, 어둠이 머지않아 내려올 소리를.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하십니다.

그 몇 겹의 색깔을 읽어 보셨을까요. 

까닭 없이 부담스러워 멀리서 멀리서 떠나지도 못하고 지켜만 본 당신,

당신도 그 나무처럼 외로웠나요?
어둠이 내려오는 그 시간에야 그를 통해 알게 된 당신의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저녁 당신이 찾아와 앉았던 그 나무, 여려 겹 꽃잎 다 흩어 보낸 그 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수천의 꽃잎이 비명도 없이 떨어져 날아와 내 마음에 쌓입니다.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

바람도 불어주지 않는데.